• 중앙파-국민파-현장파의 기원
        2008년 11월 19일 09: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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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집회에는 00파가 별로 안 보이네.”
    “…….”

    최근 노동조합의 각종 집회나 투쟁현장에서 종종 듣는 소리다. 정파를 불문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거나 들었을 것이다.

    일본 좌파운동이 한국 좌파운동을 보면서 신기해하는 것이 있다. 한국에서는 정파와 노선이 다른데도 서로 어울려 당과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를 같이 만든다. 낮에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거리낌 없이 어깨 걸고 술집에 간다.

    좌파 운동, 일본과 한국

    일본에서도 한 때는 그런 적이 있었다. 총평(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을 함께 했었고, 원수협(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을 함께 했었으며, 전공투(전학공투회의)를 함께 했었다. 그러나 일본 좌파는 경쟁 정파의 조직원을 죽이기까지 하는 갈등을 겪었고, 지금처럼 정파별로 따로 하는 운동문화를 만들었다.

    일본 진보운동은 정당도, 노동조합도, 시민단체도 정파별로 따로 한다. 같은 시민단체나 노동조합에 있으면 지지하는 정당이 거의 일치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집회도 따로 한다. 초청이 없으면 다른 정파가 조직한 투쟁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지난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 등이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해 만든 모임이 그것을 극복해 보려고 시도했으나 성사되지 않았고, 각자 따로 하고 있다.

    나는 일본의 활동가들을 만날 때면, 한국의 정파들이 어울려 함께 일하는 것을 자랑하곤 했다. 노동조합운동이든 평화운동이든 일본의 활동가들에게 자랑했고, 일본도 보고 배우라 했다. 한데 얼마 전부터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이 찜찜했다.

       
      ▲ 2008 전국노동자대회. 전국 각지에서 모인 노동자들과 깃발들 (사진=손기영 기자)

    “과연 한국의 정파들은 올바로 단결하고 있는가.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있는가. 내가 저들에게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사라지는 한국 노동운동의 미덕

    한국 노동운동의 정파들은 대중운동의 발전을 위해 함께 했다. 노선에 커다란 차이가 있어도 수많은 민주노조를 함께 만들었다. 전노협을 함께 했었고, 민주노총에서도 함께 하고 있다. 노동조합운동에서의 조직과 교육을 함께 했다.

    특히 투쟁이 벌어지면, 그 투쟁을 다른 정파가 주도하건 말건 가리지 않고 경쟁적으로 결합했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연대했다. 물론 투쟁을 주도하는 정파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결합했고, 다른 정파들은 그 보다 결합 정도가 낮았지만 그 나름대로 투쟁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것은 한국 노동운동의 미덕이었고 힘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전통이 위협받고 있다. 어떤 정파가 결합하고 주도하는 투쟁인가에 따라 지원과 연대의 범위가 달라지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이랜드, 기륭전자, 뉴코아 등 최근의 비정규직 투쟁현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정파는 큰 역할을 했다. 굳은 의지와 헌신으로 무장한 수많은 활동가들을 노동운동에 수혈했고, 노동자들을 훈련시켰으며, 노동조합 결성에 복무했다. 그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어 한국 노동운동은 자본의 무자비한 폭압을 뚫고 민주노총을 세울 수 있었다.

    운동에서 정파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다. 누구든 정파에 참여하지 않고 돌멩이를 던질 수는 있어도, 정파 자체를 부정하거나 없앨 수는 없다.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복잡하면서도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거기에 적응해 살아가는 인간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불완전하다. 그래서 인간은 똑같은 현상을 보아도 다르게 인식한다.

    노동조합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운동방향과 실천방법 등에서 차이가 생긴다. 그렇기에 같은 방향을 가진 사람들이 뭉치는 것은 자연스런 것이다. 그렇게 모인 집단이 바로 정파인 것이다.

    정파 정치와 유일사상 체계

    역사적으로 정파를 금지한 사례가 있다. 스탈린은 정파활동을 금지한 1921년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10차 당 대회의 결정사항을 절대화하고 숙청정치를 단행했다. 그리고 북한은 수령론과 유일사상체계, 반종파투쟁으로 모든 정파를 부정했다.

    그 결과 국가와 당은 고인 물이 되었고, 결국 썩어버렸다. 그와 함께 인민과 노동계급의 창의성은 가로막혔고, 사회체제는 생동감을 잃은 채 시들어갔다.

    정파는 운동과 당, 대중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고 창의성을 만들어 준다. 하나의 방향이 틀렸을 때, 그것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정파는 노선과 실천사업에 대해 비판적 검토를 하도록 만들어 운동을 풍부하게 만든다.

    엥겔스는 “하나의 당 내부에서 온건파와 과격파의 경향이 발생하며 서로 투쟁하는 것은 그 당이 생존하고 크게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운동 현실에서 정파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속한 중앙파도 다르지 않다. 한국의 정파운동은 투쟁을 앞에 놓고도 단결하지 못하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정파라면 고개부터 가로 젓는다. 정파가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 지난 7월 진보신당은 ‘전진’과 관련된 논쟁으로 게시판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1998년 금속연맹 홈피에서 탄생된 정파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 그것을 한 번 추적해 봐야 할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8년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서울역 뒤편의 용산구 서계동에 위치한 금속연맹 사무실에서는 조용한 술렁거림이 있었다. 사무처 성원들이 한 편의 글을 놓고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어, 이것 봐라. 분석이 그럴 듯하네.”
    “그러게 말이야. 중앙파, 국민파, 현장파라는 명칭도 그럴 듯하고.”
    “혹시 한석호가 쓴 것 아니야. 글투를 보니까 비슷한 것 같아.”

    “아니. 내가 안 썼는데.”
    “그럼 누굴까.”
    “울산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을 보니, 울산의 누군가 쓴 것 아닐까.”

    그날, 금속연맹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한 편의 글이 익명으로 떴다. A4용지 세 쪽 정도의 분량이었다. 노동운동사에 남을 만한 특별한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었기에, 그 이후 누구도 그 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고, 또 대다수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그 글은 내용의 깊이와 상관없이 노동운동사에 한 역할을 했다. 그 글이 민주노총의 3대 정파흐름에 ‘중앙파’, ‘현장파’, ‘국민파’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붙인 글이다.

    권영길, 정갑득, 배석범, 이석행, 강승규, 차수련 등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흐름에 대해서는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에 초점을 둔다고 해서 ‘국민파’라 이름 붙였다. 이갑용, 유덕상, 조돈희 등으로 대표되는 다른 하나의 흐름에 대해서는 ‘아래로부터의 현장권력 쟁취’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해서 ‘현장파’라 이름 붙였다.

    이상한 작명, 중앙파

    국민파와 현장파라는 호칭은 그런대로 훌륭한 작명이었다. 그 흐름에 속한 활동가들이 듣기에도 큰 불만이 없는 이름이었다. 현장파의 대다수와 국민파의 비교적 다수는 그 이름을 자랑스러워했다. 각자의 노선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병호, 문성현, 양경규, 채운석, 심상정 등으로 대표되는 또 다른 하나의 흐름에 붙인 ‘중앙파’라는 이름은 작명의 배경과 의도가 달랐다. 그것은 노선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중앙파라는 호칭은 그 흐름의 주요 구성원들이 전노협, 금속연맹, 전문노련, 사무금융노련 등의 집행부를 책임진 중앙권력이었다는 것에서 따왔다. 그리고 그 명칭에는 권력만을 추구하는 집단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중앙파로 호칭된 그 흐름의 활동가들에게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중앙파로 호명되고 중앙파로 가두어지기 전까지, 단병호를 비롯한 그 흐름의 활동가들은 계급주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 또한 운동 내에서의 좌(PD)-우(NL)파 구도에서는 좌파의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런데 자신들의 의지와 아무런 관계없이 중앙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중앙파라는 말 쓰지 맙시다. 도대체 중앙파가 뭔데요.”
    이른바 중앙파로 불리는 활동가들이 운동 상황을 논의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그 누군가 중앙파라는 표현을 쓰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어김없이 나왔던 말이다. 그 누구보다도 공공노조 이근원 선배의 거부감이 강했다.

    나는 그 글이 당시 현장파에 속해 있던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좌파 정체성을 가진 한 무리를 좌파로부터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그 의도는 성공했고, 중앙파는 현장파로부터 파문당했다.

    아무튼 그렇게 이름 붙여진 현장파, 중앙파, 국민파는 각종 선거와 주요 투쟁을 거치며, 각자의 울타리를 만들어 나갔다. 3대 정파흐름은 지난 10년간 민주노총의 방향과 태도에 중요 변수로 작용했다.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는 주요 계기마다 그럴 듯한 도표와 함께 각종 매체에 오르내리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었다.

                                                        * * *

    * 한석호는 전노협과 금속연맹 등에서 20여년 동안 조직, 쟁의, 선봉대 업무를 담당하며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이다. 노동운동사의 주요한 현장에 있었다. 정파운동의 편력도 다양하다.

    다산보임그룹에서 운동을 배웠고, 한 때는 주체주의자였으며, 사노맹을 거쳐 지금의 전진에 이르렀다. 노동조합 정파인 중앙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운동의 참모로 규정하고 있으며, 오지랖 넓게 이곳저곳에 관여하고 있다. 얼마 전 <레디앙>을 통해 자신이 무지개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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