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장 "대변인, 이 두 문장을 빼시오"
        2008년 11월 18일 09: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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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변인에게 튄 불똥

    논쟁은 논쟁이고, 국민들에게 나갈 당 입장을 정리해야 했다. 그것은 대변인 업무이기도 하다. 그런데 발표 직전 김선동 사무총장의 전화가 왔다. 발표될 성명서를 자신에게 미리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사전검열처럼 받아들여 질 수도 있었지만 민감한 사안에 대해 사무총장이 요구할 수 있는 일로 생각했다. 그런데 성명서에 대한 사무총장의 요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는 두 군데 문장을 모두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는 북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와 “핵실험에 대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시한다.”는 두 문장이 삭제되면 북한 핵실험에 대한 당의 입장은 사라지고,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엉뚱한 성명이 되고 만다.

    북핵실험의 문제점만 지적하는 것도 문제지만 당장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미국의 정책실패만 맹비난하는 입장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사무총장의 삭제 지시

    나는 그것은 회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따르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무총장은 ‘이번만은 박 대변인이 나의 뜻을 따라 달라’라는 요구에서 ‘문대표가 성명 발표에 대해 사무총장이 대변인과 논의하라’고 했다면서 ‘지시사항’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자주파의 지지를 받고 대표직에 당선된 문대표로서는 사실상 ‘알아서 하라’는 애매한 태도를 보인 것이겠지만 대변인으로서는 이런 식의 압력은 죽을 맛이었다.

    ‘오늘 이것 발표하고 그만 두자’

    나는 이렇게 각오하면서 회의록을 전체 최고위원회에서 회람하여 어떤 입장이 정확한 회의 결과의 반영인지 따져 보자고 맞섰다.

    회의록을 발표하는 것이 아닌 국민정서를 감안해 당의 확고한 입장을 반영한 ‘대국민 메시지’를 담은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었다. 단순하게 어느 정치적 견해가 더 담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화통화 목소리는 서로 높아졌고 주변 당직자들은 이 상황을 당황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 북한이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한 가운데 4일 오전 서울 중구 봉래동 서울역 대합실에서 승객들이 북핵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대변인에게 뒤통수 맞은 사무총장

    장시간의 설전 끝에 나는 총장이 요구한 두 문장 중에서 “‘북의 핵실험이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한 문장만 제외했고 나머지는 내가 작성한 그대로 발표했다.

    두루뭉수리하게 총장의 요구에 대답한 뒤 내 맘대로 했으니 사실상 대변인 경질감이었지만 당과 진보정치의 어려운 처지를 고려한,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사무총장으로서는 대변인에게 뒤통수를 맞은 셈이어서 개인적으로 미안했지만 내가 선택한 최선의 양보 지점이 그것이었다. 이 핵폭풍 속에서 민주노동당이 무방비 상태로 난도당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야 했고, 그 근거를 남겨야 했다.

    뒤에 사무총장이 이 문제를 두고 무겁게 문제제기를 하기는 했지만 대변인 경질까지 논의되지는 않았다.

    놀라운 북의 대미전략전술, 그러나…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우여곡절 끝에 내부적으로는 논란을 겪지만 국민적으로는 당연하고 평범한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당시 시민단체 반응을 종합한 <한겨레>의 기사제목마저 ‘“한반도 생존권 볼모삼다니…” 충격·우려’였다. 당시 국민들의 정서적 상황이 어땠는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운동권의 인식과 운동권의 고집대로 입장을 정리해 발표했다면 말그대로 엄청난 여론의 집중타를 맞았을 것이다.

    운동권 하고 싶은대로 하고자 한다면 흔한 말로 그냥 운동단체 활동하지 국민들 눈치봐야 하는 대중정당 만들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자칫 잘못 대응하면 당이 북에 대한 이해심 깊은 태도를 강조하면서 발 딛고 선 남쪽 민중들에 대한 이해심은 조금도 갖지 못한 집단으로 낙인찍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을 둘러싼 당시 논쟁의 파장은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대선 경선 과정과 이후 방북 과정에서 까지 영향을 미쳤고 심지어는 분당의 필연적 사유로 언급되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은 나중에 다시 언급하게 될 것이다.

    핵실험 논쟁, 분당 필연적 사유

    북한의 도박은 성공적인 것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북한에 대해 가장 적대적인 부시정권의 손에 의해 북한의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라는 고비를 넘기고 북핵문제 해결의 큰 방향을 잡게 된 결정적 물꼬는 다름아닌 2006년 10월 핵실험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민주노동당마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될 경우 북의 고립은 심각해지고 미국의 원인제공 책임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자주파쪽의 당시 우려도 충분히 근거있는 주장일 수 있다. 핵실험 후 진행된 민주노동당의 평양방문 당시 북한의 김영남 위원장 역시 이번 핵실험이 남쪽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의 분쇄를 위한 고도의 정치적 조처임을 누누이 강조했다.

       
      ▲ 2006년 방북과 북핵문제에 대해 <참세상>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참세상)

    언젠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벌여 온 생존을 위한 대미외교 전술들은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국제외교관계에서의 교과서적 사례로 다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한 전술이고, 북의 입장처럼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실현된다고 한들 “북한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용납할 수는 없다”는 내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굳이 핵 불용 입장인 진보정치의 오랜 전통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야말로 ‘절멸적 위험’인 핵무기를 가지고 모든 민중의 생존을 건 도박을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 때문이다. 남한에서 진보정치세력의 생존을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내가 지낸 대변인 시절 약 20여개월의 시간동안 가장 강력했고 충격적인 사건, 전 세계를 뒤흔든 북한의 핵실험 사건은 나와 민주노동당 마저 심각하게 요동치게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충격에 의한 민주노동당의 균열과 내상은 분당시기까지 끊임없이 충격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 * *

    참고자료

    북 핵실험 관련 민주노동당 긴급대책회의와 민주노동당 입장

    – 2006년 10월 9일 오후 3시 50분, 국회 정론관
    – 민주노동당 대변인 박용진
    – 긴급대책회의 참석자 : 문성현 대표, 최고위원회, 권영길 의원단 대표, 최순영 의원단 수석부대표, 이영순 공보부대표, 천영세 국회남북특위 소속 의원.

    민주노동당은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제조, 사용, 비축, 시험에 반대하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지지하고 평화군축 강령을 가진 정당이다.

    많은 국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한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핵의 자위적 수단을 비롯한 핵무기 정책에 반대하고 있음도 분명하게 밝힌다.

    민주노동당은 북의 핵실험 강행의 과정에서 미국이 취해온 대북 고립. 압박 정책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주요원인이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한 일차적 책임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있음은 분명하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어떠한 군사적 행동과 이를 유발하는 조치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지금의 상황은 미국의 악의적 대북 무시 정책과 북한의 극단적 선택이 빚은 지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따라서 북/미간 직접 대화와 동시행동이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부는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신중하고도 조심스러운 접근 태도를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또한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평화를 위한 지렛대 역할을 해줄 것도 당부한다.

    민주노동당 역시 모든 역량을 평화적 해결을 위해 기울여나갈 것을 국민들 앞에 분명하게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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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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