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노무현 전철 밟을까?
        2008년 11월 17일 09: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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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을 한잔하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보았다. 개표결과가 일찍 나왔다. 한국인 1세와 2세가 같이하는 자리에서 물었다. 오바마 당선이 이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부시 때문에 상한 미국 이미지가 달라지는 게 가장 크다. 이제 적어도 깡패국가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노예가, 흑인이 대통령이 되었다는 게 너무 기쁘다. 신분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가 극복될 것이다. 아직 문화적으로 인종차별이 있다. 60여년 만에 그걸 넘어선 것이다.”

    한국 교민들 "문화적 인종차별 극복 계기"

    “미국은 백인 중심 사회였다. 유색인종과 함께 하는 문화적 사회로 발전하는 것이다”
    “누구나 대통령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들어준 투표결과다."
    "인종을 넘어선 역사적인 날이다. 역사적 선거다"

    대략 이런 정도의 얘기들이 오고갔다. 최근 미국에서는 ‘W.W.O.D’라는 새로운 문구가 유행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오바마라면 어떻게 할까? (What Would Obama Do?)”라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선거가 끝난 후 열흘 정도된 시점에 미국 서비스노조(SEIU, The 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의 LA 사무국을 방문했다. 약 30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이다.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모두가 전국 각지로 파견되어 활동한 만큼 다양한 얘기들이 오갔다. 모두가 오바마 당선을 위해 파견될 정도로 SEIU는 이번 선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SEIU는 이번 선거가 “노동자들에 의한, 노동자들을 위한 선거”라고 말하고 있다. (The 2008 Election must be read as a victory for working people and by working people.) ‘SEIU for OBAMA-BIDEN 08’라는 배지와 로고도 만들었을 정도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통계를 보면 조합원이 190만명인 SEIU는 가정방문 3,504,947 곳, 전화유세 16,539,038, 우편을 통한 선거운동 5,125,378통, 새로운 유권자등록 227,000명을 보고하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3,000명의 활동가들을 20개주에 파견하여 노동자들의 선거운동을 했다. 어마어마한 숫자다.

    3천명 활동가 20개 주에서 활동

    미국 전체적으로 볼 때 노동조합은 이번 선거에서 오바마에게 총 4억5,000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돈으로 5,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비용이다.

       
      ▲SEIU의 활동이 오바마 지지를 높인 것에 대한 통계 보고 자료- 위의 선이 오바마 지지를 나타낸다. 9월부터 11월까지 급속한 상승을 보여준다.

    그들은 두 가지 목표를 오바마 진영에게 기대하면서 이런 운동을 펼쳤다. 하나는 의료보험의 문제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 <식코>를 통해서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의료체계는 철저히 사적보험 중심이다. ‘Healthcare for Al’-모두에게 건강보험을-이 그들의 목표다.

    의료보험-노동자단결권 핵심 요구

    이곳에서 보니 생각보다 의료보험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생들이 스타벅스에 취직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일정 시간만 일하면 의료보험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통의 진료를 위해서는 한 달에 30~50만원이 의료보험비로 나가야 한다. 과연 오바마가 어느 정도로 국민모두에게 적용되는 의료보험 체계를 만들 것인지에 관심이 모여지고 있다.

       
      ▲맥케인 관련 인터넷 기사

    노동계는 특히 ‘노동자 자유선택 법안’(Employee Free Choice Act)이라는 법안에 초점을 두고 있다. 맥케인은 그 법이 중소기업은 물론 민주주의의 기초를 위협할 것이며, 따라서 미국에게 위험한 법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법안은 지난 2003년 민주당이 제출한 이후, 2007년 3월 하원에서 통과(241:185) 되었으나 그 해 6월 상원에서 공화당의 반발(51:48)로 법안 상정이 불발로 끝났다.

    미국의 현행 노동법은 노조 결성을 매우 어렵게 하고 있다. 해당 사업장의 과반수 이상이 노조 인정선거를 통해 지지해야만 노조가 만들어진다. 이에 비하면 2명 이상만 있으면 노조를 만들 수 있는 한국은 거저 먹는 셈이다.

    노조 만들기 힘든 미국

    노조 결성을 위해선 현재는 노동자들이 투표를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들의 간섭과 방해가 생긴다. 노조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일이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 설득해야 하고, 또 투표까지 해야 한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면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노조 결성을 지지한다’는 카드에 서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이 법안은 노조와 사측이 120일 안에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면 정부가 개입하도록 돼 있다.

    벌써부터 이 법안을 두고 시끄럽다. 경영자편에 서있는 사람들은 “임금 상승을 초래하고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것” “오바마 당선인은 경기침체 상황에서 기업을 더 어렵게 만들어선 안 된다” “임금상승 등으로 인한 비즈니스의 운영비용 인상에 따라 경제 회복에 큰 타격을 주게 될 것”라고 주장한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조선일보에서도 이와 비슷한 칼럼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조선일보 >

    반면 노동계는 “기업의 영향력과 균형을 맞추고 중산층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SEIU는 “모든 노동자는 노조결성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면서 진작부터 1백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노동조합 활동에도 큰 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SEIU의 서명용지 – 뒷면에 서명하여 대통령과 의회에 보내도록 되어 있다.

    우리에게 낯익은 이런 풍경을 보면서 씁쓸하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비정규직법안을 둘러싸고 벌였던 논쟁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름은 같은 민주당일지 모르지만 미국의 민주당이 보이는 모습은 현재로서는 한국과 매우 다르다. 아니 그러길 기대한다.

    오바마 당선에 큰 역할을 한 SEIU는 바로 이어서 내년 초부터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행동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오바마가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 지는 아직 잘 모른다. “미국은 국익 중심의 사회이기 때문에 아무리 오바마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노무현을 보고서도 뭘 기대하느냐?”라고 거꾸로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국회의 다수를 점하고도 국가보안법 폐지는 커녕 거꾸로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던 노무현 정부처럼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을 만들고도 모자라 공공부문의 파업권을 제약하면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이라고 우기고도 줄줄이 국회의원 선거에서 패배한 개혁세력과는 다르기를 낯설은 남의 땅에서 기대해 본다.

       
      ▲집회 사진을 보도한 LA타임즈.

    사족 1 – 워싱톤 DC에서 SEIU의 대선을 총괄하는 부서에 있는 사람을 만났다. 섣불리 얘기하는 어렵지만 민주당 지지 이상의 전망을 노동계가 가지고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갈 뿐”이라는 대답 이상을 하지 않는다. 내게는 “니들이나 잘해”라는 말로 들렸다.

    사족 2 – 캘리포니아의 동성결혼 인정 문제는 결국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나 강력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집회 중 7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법안과 관계없이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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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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