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중 2개 때문 초등학교 'X판'돼
        2008년 11월 14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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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중으로 인가받은 서울 대원중학교는 요즘 한창 입학설명회를 하고 있답니다. 가끔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강당에 수백명을 모아놓고 하는 설명회는 아니랍니다. ‘방문상담 입학설명회’라고 미리 예약한 40명씩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답니다.

    그렇게 10일부터 12일까지 5차례, 지금까지 200여명의 학부모에게 대원국제중에 들어오는 방법을 알려주었답니다. 물론 13일에 수능이 있어 하루 빼먹고, 예약한 학부모도 많아 40명씩 하면 하염없이 늘어지지 않을까 하여, 15일에는 570여명을 강당에 모아놓고 할 예정이라는군요.

       
      ▲ 강당을 가득 메운 특목고 입시설명회

    학교장 추천서를 빙자한 성적표

    대원국제중학교에 들어가려면 공통적으로 학교장 추천서, 입학원서, 3개 학기 생활기록부 사본, 3개 학기 성적통지표 사본을 내야 합니다. 특별전형일 경우에는 더 제출해야 하구요.

    그런데 학교장 추천서라는 게 재미있습니다. 추천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 학생은 어쩌구 저쩌구 하니 이러쿵 저러쿵 해주십시오”라고 쓴 다음에, 학교장 도장이나 사인이 들어가있는 서류가 아니랍니다. 학생의 성적, 수상실적, 출석 및 봉사활동, 체험 및 영어 방과후 활동 등을 정해진 칸에 표기하도록 했답니다. 그러니까 ‘학교장 도장과 석차가 있는 종합성적표’라고 봐야 합니다.

    그럼, 생활기록부나 성적통지표는 왜 내냐구요. 글쎄요, 대원중학교 관계자에게 물어봐야겠지만, 사실상 학교장 추천서에 기입되어 있는 석차를 확인하기 위한 증빙서류 라고 봐야겠지요.

    상위 1%만 국제중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약간 더 재밌는 건, 학교장 추천서의 칸들입니다. 성적이나 다른 항목이나 대부분 네 개의 칸 중에 하나를 표기하게 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글자가 작아서 잘 안 보일텐데, 오른쪽 표기 부분은 크게 네 종류입니다. ‘탁월함(1% 이내)’, ‘우수(1-10%)’, ‘보통(11-30%)’, ‘미흡(30% 미만)’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주변에 교사가 있으면 보여주세요. 아마 “이게 미쳤나”라는 말을 바로 들을 수 있을 겁니다.

    탁월, 우수, 보통, 미흡 등으로 네 등급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이런 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괄호 안의 비율입니다. 이런 건 아마도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네 등급의 비율이 말하는 건, 상위 1%만 국제중에 응시하라는 의미입니다. 우수나 보통 칸에 해당하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국제중에 원서를 넣으려고 할까요. 또는 그런 학생을 자기 도장 찍어가며 추천하는 교장이 있을까요.

    그러니 대원중학교의 학교장 추천서는 “상위 1%가 아니라구요? 응시는 자유이긴 합니다만, 왜 그러세요?”라고 말하고 있답니다. 하긴 조선시대 과거도 평민은 응시할 수 있었답니다. 법적으로만 말입니다.

    상위 1%면, 1,142명 정도입니다. 서울의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114,243명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의 초등학교가 578개이니, 한 학교 당 2명 많으면 3명까지 되겠네요.

    서울 578개, 전국 5,813개 초등학교 개판 5분전 된다

    사실상의 응시 자격보다 약간 더 재밌는 건, ‘1% 이내’, ‘1~10%’, ‘11~30%’, ‘30% 미만’으로 나눈 부분입니다. 지금 초등학교 성적 처리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Just do it’을 외쳐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겁니다.

    현행 초등학교 성적 처리는 절대평가입니다. 시험을 보든 수행평가를 하든 간에 90점이면, 학교마다 부르는 게 다르겠지만 ‘잘함’이나 ‘매우 잘함’을 줍니다. 쭉 줄을 세운 다음에 1등부터 어디까지 1등급 또는 상위 몇 % 아니면 전교 몇 등 이렇게 부여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원중학교는 지금 상위 1%를 요구합니다. 상대평가를 하라는 말입니다. 그것도 상위 1%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학생들을 아주 정밀하게 줄세우기 하라고 강요합니다. 절대평가한 다음에 ‘잘함’, ‘보통’, ‘노력 요함’으로 3등급을 하거나 ‘매우 잘함’을 추가하여 4등급을 매기는 초등학교에다가 이런 걸 강요한답니다.

    아마 초등학교에서 난리가 날 겁니다. 학부모는 찾아와서 추천서를 써달라고 하지, 담임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은 곤란하다고 하지, 그러면 “왜 안되냐”고 따지고, “나보고 사기치거나 허위 공문서 작성하라는 말입니까”라고 답하는 광경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지 않을까 하네요.

    하긴 생각해보면, “지원자의 창의적 아이디어는 어느 정도인가요?”라는 질문에 ‘1% 이내’나 ‘1~10%’ 라고 표기할 수 있는 방법이 도대체 뭘까요. 뭐, 영어 성적이야 대원외고가 개발에 참여한 IET 국제영어시험의 점수를 가지고 표기할 수 있겠지만 말입니다.

    320명 때문에 65만명 희생

    올해는 어떻게 넘어간다고 치죠. 참교육학부모회와 전교조 때문에 일정이 늦춰져, 부랴부랴 입시를 치른다고 초등학교도 국제중 관계자들도 학부모도 눈 가리고 아웅한다고 칩시다. 입시가 끝난 다음에 탈락학생과 학부모가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여기저기서 항의하고 소송 걸고 언론에 보도되고 해도, 음으로 양으로 대충 무마하면서 넘어간다고 칩시다.

       

    내년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제중이 요구하는 것과 초등학교 현행 방식이 맞지 않는데, 어떻게 할까요. 국제중은 끽해야 320명이고 서울의 초등학생은 65만명인데, 어떻게 할까요. 65만명이 양보해야 합니다. 국제중 320명을 위해 65만명이 희생해야 합니다. 하긴 한 명이 백만명을 먹여살린다는, 구십구만구천구백구십구명이 빌어먹는 시대이니, 65만명 쯤이야 우습죠.

    초등학교도 이제 줄세우기 상대평가 해야 합니다. 등급도 안됩니다. 1%를 가려야 하기 때문에, 아예 석차를 매겨야 합니다. 국제중은 5학년 1학기부터 6학년 1학기까지의 3개 학기 성적을 요구하니, 곧 죽어도 5학년부터는 석차를 매겨야 합니다.

    제일 좋은 건 8살 1학년부터 13살 6학년까지 모두 전교 몇 등인지, 반에서 몇 등인지 상세히 정보를 제공하는 겁니다. 물론 석차를 매기지 않아도 됩니다. 절대평가 방식을 고수하되, 점수 정보를 일일이 표기하여 평균 99점인지 아닌지만 알 수 있으면 되니까요. 뭐, 이렇게 되면, 국제중에서 “초등학교에서 내신 부풀리기를 해서 믿을 수 없다”라고 볼멘 소리를 하겠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공정택 서울교육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국제중을 위해서 이것저것 다 퍼줬는데, 성적 처리 지침 하나쯤 바꾸는 거야 누워서 떡먹기 아닐까요. 그러면 뒤이어 다른 지역들이 따라하겠죠. 서울에만 국제중이 만들어지란 법은 없으니까요. 아, 어쩌면 청와대나 교과부가 먼저 손쓸 수도 있겠네요.

    소중한 가르침 주는 국제중 너무 싫어하지 마세요

    상대평가든 절대평가든 상위 1% 안에 들어야 하니, 초등학생이 내신 사교육을 받아야 하는 건 당연합니다. 학교장 추천서에는 성적 이외에도 수상실적, 체험 및 영어 방과후 활동도 표기하도록 되어 있답니다. 그러니 경시대회 대비 사교육, 영어캠프 참가, 방과후 영어교과 참가, 영재교육원 참가, 그리고 이를 위한 영어 사교육도 필요합니다. 2단계 전형에 면접이 있으니, 면접 사교육도 빼먹으면 안됩니다.

    이렇게 보면, 국제중은 국가경쟁력 강화니 조기유학 흡수니 뭐 이런 게 목적이 아니었나 봅니다. 학교장 추천서도 입학전형 서류가 아닌가 봅니다. 전세계적인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사교육 경기 부양책이고, 학원가를 위한 종합선물세트라고 보면 되겠네요.

    “어린 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라고 말하지 마세요. 영어 수업 때문에 내년부터 7교시까지 할지 모르나, 그래도 초등학생들은 일찍 하교하여 시간이 많습니다. 게다가 이미 놀이터에는 또래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놀이터에 아예 흙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조금 더 학원으로 등을 떠밀고 조금 더 봉고차에 밀어 넣으면 됩니다. 사교육비가 부족하다면 잔업을 하든 아르바이트를 하든 뭔가를 더 하면 되겠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들은 꼭 기억할 필요가 있답니다. 사교육시장에서 국제중 대비반이 생기고,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게 다 국제중 때문입니다. 현행 초등학교 교육이 부실해서 그런 거 아닙니다. 공교육의 내용이 부실해서 사교육을 시키는 게 아니라 공교육에서 경쟁이 발생하니까 사교육을 시키는 겁니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요. 사교육비가 싫다면 또는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공교육 부실 어쩌구 저쩌구 하는게 아니라 공교육에서 경쟁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국제중 대비 사교육이 부담스럽다면, 지금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다가 뭐라고 하는게 아니라, 상급 학교인 국제중을 포기하던가 아니면 국제중을 없애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지금 내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닐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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