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상자료원 심포지움 실종사건
        2008년 11월 14일 0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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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제작사 <다르마>의 프로듀서로 있는 이안젤라씨의 영화 칼럼 ‘세상 vs 영화 마주서다’가 시작됩니다. 앞으로 영화와 현실 사이의 긴장과 갈등 그리고 소통에 대해 깊이 있고, 재미 있는 이야기들이 여러분들께 전달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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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극장 안을 빼꼭히 채운 젊은이들은 당장 스크린에 빨려 들어갈 듯한 눈빛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 한때 왕을 위한 건물이었던 궁전이 이제 대중문화의 총아인 영화의 전당이 되어 좋은 영화, 나쁜 영화, 재밌는 영화, 지루한 영화, 심각한 영화, 우스운 영화, 내 나라 영화, 다른 나라 영화를 가리지 않고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마련하고 영사기를 돌리는 그 곳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몽상가들의 둥지.

    노출 장면과 표현 수위를 둘러싼 논란 때문에 감독인 베르나르도 베루톨루치의 명성이나,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한 매력을 갖춘 아름다운 남녀배우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에 걸리지 못하고 DVD로 출시된 영화 <몽상가들>은 68혁명에 대한 영화적 기억이며 반성이다.

    한국에서 ‘에로’가된 폴리티컬 시네마 

    스크린에서 관객과 만나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영화들의 숙명처럼 <몽상가들>은 어둠의 경로를 통해 ‘에로’라는 딱지를 달고,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외로운 쾌락에 빠져드는 관음증의 대상이 되어 문을 닫아걸고 헐떡이는 이들의 자위를 돕는다.

    ‘정말 야한 영화’라는 검색어로 물어보면 가장 먼저 추천되는 영화들 가운데 단연 앞자리를 차지하면서 성인인증을 받아야 영화에 대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을 무릅쓰고 ‘야한 꿈’을 꾸게 한다.

    <몽상가들>의 꿈은 영화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언제나 극장 맨 앞줄에 앉았다. 이미지가 여전히 새롭고 신선할 때 가장 먼저 받아들이기 위해….” 이런 마음가짐으로 미국에서 프랑스까지 찾아온 매튜는 살육의 현장, 명분 없는 전쟁터인 베트남으로의 징집을 피해 영화의 전당에 자신을 바치고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파리에서 오직 영화만으로도 매튜를 충분히 행복하고 평화롭게 해주던 영화의 전당이 한순간 소란에 휩싸인다.

    시네마테크 관장인 앙리 랑글루아가 부당하게 해임되면서 거리에서 항의의 목소리를 높이고,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에 목소리를 보태고, 그 목소리를 틀어막으려는 공권력의 방패와 곤봉이 순식간에 거리를 아수라장으로 만든다.

    68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의 한 풍경이 그렇게 펼쳐지면서 매튜는 영화가 아닌 사람과 만나 인연을 맺게 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이었던 쌍둥이 남매 이자벨과 테오는 스크린에만 홀려있던 매튜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파리의 공간, 자신들의 집으로 불러들인다.

    시네마테크를 잃은 젊은이들은 부모가 떠난 집에서 부모가 남겨놓은 수표를 쓰며, 그동안 보아왔던 온갖 영화들을 자신들의 기억과 몸과 관계와 공간 속에 마구 되살려낸다.

    몽상가들과 쓰레기

    그러나 스크린에 펼쳐질 때는 그토록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유쾌하던 영화의 이미지들이 이 아름다운 세 젊은이들을 통해 재현되는 순간, 그 이미지들은 빛을 잃고 공허해진다. 마치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무당에게 빙의되어 나타나는 순간 그가 이미 생명을 다한 존재임을 사무치게 되새기도록 하듯이.

       
      ▲<몽상가들>의 한 장면
     

    그것은 꿈과도 같다. 그 꿈에서 깨지 않으려는 매튜, 이자벨, 테오 세 몽상가들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안간힘의 억지스러움 때문에 그 몽상은 퇴폐적인 아름다움과 쾌락, 그 뒤의 환멸로 점점 일그러진다. 영화와 관객의 관계가 관음증적 탐닉에 빠져있을 때의 건강하지 못한 쾌락을 삶 속에서 고스란히 재현하는 세 몽상가들의 시공간을 지켜보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서로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위하고, 또 서로가 지켜보는데 섹스하고, 그 섹스와 쾌락을 서로서로 질투하고, 그러다가도 다시 서로의 몸과 마음을 섞는 꿈같은 나날들을 연출하고 연기하고 관람하는 동안 삶의 공간에는 악취를 내뿜는 쓰레기만 쌓여간다.

    그러다가 자신들만의 몽상을 다른 이가 보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침내는 죽음을 꿈꾼다. 그렇게 널부러져 있던 벌거숭이 세 몽상가들의 꿈은 밖에서 날아든 돌멩이 하나로 유리창의 파편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다.

    꿈에서 깨어난 몽상가들은 거리를 휩쓰는 저항의 목소리에 이끌려 마침내 집 밖으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려든다. 그 물결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할 때, 오직 영화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의 관계를 이어왔던 몽상가들 사이에 금이 가고,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등을 돌리는 순간 영화도 끝나고, 청춘도 끝나고, 꿈도 끝난다.

    심포지엄은 어디로 갔나

    이 아름답고 고통스런 영화는 시네필의 회한으로 넘쳐나면서 영화가 사람과 맺는 관계, 그 사람이 세상과 맺는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그 돌아보는 시선의 한쪽에 한국의 시네마테크, 영상자료원이 비춰진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를 보존복원하고 이것을 학계와 일반에 활용되도록 서비스하는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입니다. 이제 이곳을 ‘세상의 모든 영화가 있는 곳’, 그리고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이것은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 있는 인사말의 첫머리다. 이런 인사를 건넨 한국영상자료원이 부디 그 뜻을 제대로 펼치기를 바라는 것은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 뿐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새로 들어선 산뜻한 건물에서 영상자료원은 쏠쏠하고 매력있는 여러 기획전을 마련해왔다.

       
      ▲지난 10월 진행된 ‘조국근대화 유람하기’ 프로그램 포스터.
     

    그 중에는 지난 10월에 진행된 ‘조국근대화를 유람하기’라는 프로그램도 들어있다. 이 기획전은 1960년대 말 70년대 초,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던 <팔도강산(八道江山)> 시리즈를 중심으로 개발주의 시대의 산업근대화 선전영화들을 함께 돌아보려는 의도로 기획된 것이었다.

    갓 깔린 고속도로의 당위성과 미래의 전망을 설파하는 문화영화들에서 1970년 일본 오사카 만국박람회를 배경으로 옆 나라 일본의 경제발전상을 바라보는 선망 어린 시선까지 ‘산업근대화’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돌아보겠다던 이 기획전은 신자유주의의 장밋빛 전망이 암담한 절망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지금의 상황을 영화를 통해 반성적으로 돌아보게 해주는 근사한 기회였다.

    영화로 향한 자유로운 발걸음을 위해

    더구나 그 시대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지 않거나 아예 그 시대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박정희 정권기, 산업근대화 프로젝트와 미디어정치>라는 심포지엄까지 세심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심포지엄 하루 전, "심포지엄을 기대하셨던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추후 더욱 유익한 프로그램 및 심포지엄을 기획하도록 하겠습니다. 영상자료원 기획전 <조국근대화 유람하기>는 예정대로 진행되오니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라는 짤막한 공지 하나로 심포지엄은 취소되어 버렸다. 어처구니 없는 이 상황에 대한 어떤 설명도, 변명도, 항변도 없이.

       
      ▲심포지움은 사라지고 포스터만 남아.
     

    이것은 한국영상자료원만의 책임도 아니고, 비겁도 아니다. 이런 사태에 대해 아무런 대응도 질문도 하지 않는 우리 모두의 부끄러운 태도로부터 비롯된 상황이다. 다른 모든 분야가 어렵듯 한국영화계도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힘든 시기에도 어두운 극장 안이나 자기 책상 앞의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시네필들이 자위하고 있는 것만으로 세상이 좋아지고, 영화계가 좋아질 수는 없다.

    몽상가로 지내는 안온함 뒤에 쌓인 악취나는 쓰레기를 불태우고, 스크린을 향해 자유로이 걸어갈 수 있는 당당한 발걸음을 위해서 앞에 쌓인 장애물을 치워내야 한다. 꿈은 달콤하지만 계속 빠져들다보면 걷잡을 수 없는 악몽이 되어버리고, 그때는 도저히 깨어날 수 없어져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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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안젤라씨는 대학에서 미학을 공부했다. 첫 직장이었던 방송국에서 일 좀 해보려다가 어영부영 해고당하고, 재판에서 이기고도 복직 못하고, 기업에 들어가 영상사업이라는 걸 좀 해보려다 IMF 바람에 부서가 날아가고… 그래서 영화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뒤늦게 영화학교도 다녀보고… 그랬다.

    지금은 일하라고 불러주는 제작현장이 있으면 현장에서, 영화제 치다꺼리가 필요하면 행사장에서, 영화 이야기를 듣고자하는 판이 있으면 그런 자리에서 영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지내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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