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줌마 공갈단 협박에 농성, 한달 훌쩍”
    By mywank
        2008년 11월 13일 09: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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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결 자체의 의미는 좋게 생각해요. 그런데 노조 지도부가 복직되지 못한 건 큰 희생인 것 같아요. 한배를 탔던 사람들 모두, 희생을 최소로 하는 방법으로 타결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13일 오후 병원 주변에서 열린 ‘가처분신청 결정’ 규탄집회에 참여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인 박종묵 조합원(33)은 이날 오전 ‘이랜드 사태’ 타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면서 아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성모병원 박종묵 조합원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병원 마취과 회복실에서 간호보조 업무를 해오다가, 지난 9월 30일 계약해지 되었다. 지난 9월 17일부터 농성에 들어간 다른 조합원들과 달리, 그는 29일 맨 마지막으로 농성장에 합류했다. 뒤늦게 농성에 동참한 이유를 물었다.

    아줌마 공갈단 협박에 못 이겨

    “부당하게 계약해지를 당하고 우선 억울하다는 생각부터 들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당장 먹고살기에 바쁘고, 저만 믿고 사는 어머니와 여동생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직접 고용을 보장해주는 다른 병원을 찾아보려고 했죠.

    그런데 ‘아줌마 공갈달’이 저를 협박했어요.(웃음) 수술실에서 일했던 천성자 조합원은 ‘투쟁 열심히 해서 나중에 정규직이 되면, 어떻게 우리 얼굴 보고 다닐 거냐’라고 말했어요.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박정화 조합원은 ‘기륭에는 투쟁하고 있는 사람만 정규직 시켜준대’라며 협박했어요.

    내심 ‘나중에 정말 잘 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도 들었어요. 일단 하룻밤만 보내보자는 생각에 9월 29일 병원 행정동 앞에 있던 농성장에 갔어요. 그 때 천막 밖에서 자리를 깔고 잠을 청했는데, 그게 병원과 ‘맞장’ 뜬 첫 농성이었어요”

    박종묵 조합원은 이날 밤 평소처럼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농성장을 찾은 박 씨에게 어머니가 전한 말 한마디는 그가 다음 날에도 농성장에 남게 된 계기가 되었다.

    “농성장을 찾은 자초지종을 설명을 하니 어머니께서 ‘일단 한 달만 있어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마음이 놓였죠. 그동안 모아둔 돈, 퇴직금도 있었고….(웃음) 그래서 ‘한 달만 더 있어보자’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어요. 얼떨결에 이곳을 찾았는데, 벌써 농성장에서 보낸 시간이 한 달을 훌쩍 넘겨 버렸어요 .

    그런데 고민도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제가 가장 역할을 하는데, 그동안 얼마 안 되는 월급 대부분을 어머니하고 여동생에게 용돈으로 챙겨줬죠. 하지만 한달이 지난 요즘 어머님께서 ‘그거(농성) 도대체 언제 끝나냐’는 말을 자주 하세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약해져요”

    알게 되니 떠날 수가 없었다

    박종묵 조합원이 ‘한 달’이 넘도록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을 떠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박 씨에게 질문을 던지자, 장난기 가득한 그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얼떨결에 농성에 합류한 사람이 이런 말을 하기 쑥스러운데요. 강남성모병원을 빠져나가고 싶어도 빠져나갈 수 없어요. 저 하나 빠져도 괜찮은 그런 곳이 아니에요. 언제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이 농성장을 덮칠지, 언제 우리들을 쫓아낼지…. 1분 1초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곳이에요. 지금 8명으로도 얼마나 힘이 부족한데….

    솔직히 예전에는 비정규직, 파견법 이런 문제를 잘 몰랐는데, 한 달 남게 농성장에 있으면서 몸으로 가슴으로 배우게 된 것 같아요. 따로 책을 보고 공부하지도 않았는데…. 이런 것들을 알게 되니 더 떠날 수 없는 것 같아요. 부당한 걸 그냥 넘어 갈 수 없잖아요”

       
      ▲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수간호사 등 병원 직원이 수차례 농성장을 침탈했던 사건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의 악몽이 자꾸 떠오르는지, 이야기 도중 머리카락 부여잡으며 눈을 찡그렸다. 또 곱지 않은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쉬운 감정도 내비쳤다.

    “그동안 병원 측에게 많이 당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병원하고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특히 몸으로 충돌하면서 다투는 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어요. 예전에 다같이 일하고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인데, 갑자기 적이 되어서 싸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끔찍해요.

    그리고 굳이 싸움에 동참하지 않아도 되는데, 적어도 저희들에게 ‘돌’은 던지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신은 비정규직이 아니라는 우월감 혹은 내 문제가 아니라는 그런 시선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파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던진 ‘돌’이 언젠가 자신들이 맞게 될 돌이 될 수도 있잖아요”

    이어 그는 “농성장에 있으면서 재미있는 일, 좋은 일도 있었다”며, 무거워진 분위기를 스스로 바꿔보려고 했다. 그리고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기자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의 로비농성장 (사진=손기영 기자)
     

    “여기 여성 조합원들은 정말 ‘농성 체질’인 것 같아요.(웃음) 잘 지치지도 않고 싸우기도 잘 싸우고, 또 마이크만 잡으면 말도 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를 포함해서 2명뿐인 남성조합원은 좀 무른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기가 죽어서 지내고 있어요”

    여성들에게 기죽고 지내고 있어요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농성장에 있으면서 큰 소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서로 다른 부서에서 일하며, 경쟁 상대였던 사람들이 좋은 누나, 좋은 친구, 좋은 동생 관계로 지내게 된 것이 제겐 행복한 소득이에요”

    한편, 병원 측이 조합원 7명을 상대로 제기한 ‘점유 및 사용방해 금지 가처분신청’을 며칠 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은 현재 벌이고 있는 ‘로비농성’에 제약을 받게 되었다. 또 이에 대한 법원의 강제집행도 앞두고 있다.

    박종묵 조합원에게 “가처분 신청 판결이 솔직히 신경 쓰이지 않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장난기를 머금은 표정으로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였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은 것 같아요. 앞으로 병원보다 더 악랄하고 독하게 강남성모병원을 괴롭힐 거예요.” 그가 웃으면서 말했지만, 마냥 즐거운 것은 물론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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