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 내 딸 그리고 운동
    2008년 11월 13일 10: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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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 현장에서 20여 년 동안 청춘의 시기를 보낸 한석호의 ‘노동운동과 나’가 주 1회 연재됩니다. 뜨거웠던 80년대 이후 긴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노동현장과 함께 치열하게 살아왔던 그의 노동운동 기록은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올 것이라고 봅니다.

아직 역사라기보다는 당대에 관한 기록이 될 이 글은 자료적 가치도 없지 않겠지만, 무엇보다 환희와 절망이 교차되고, 승리와 패배가 연이어지는 현장을 지켜 온 한 활동가의 삶과 시선 그리고 성찰 그 자체가 소중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과 격려 부탁 드립니다. <편집자 주>

나는 왜 이 연재를 시작했나

“한석호씨. 글 좀 한번 써봐.”
지난 해 이맘때쯤이었다. <레디앙>의 이광호 편집국장이 내게 직접 몸으로 부대끼면서 겪어왔던 노동운동 이야기를 연재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망설였다.

   
  ▲필자

기록이라는 것이, 특히 개인의 기록은 정사라기보다 야사에 가까운 것이고. 야사는 그 성격상 내용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살아 있고, 또 많은 이들은 지금도 운동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로부터 쓸데없는 짓 한다는 핀잔을 들을 것이고, 때로는 심하게 질책도 당할 것이다.

내가 망설인 이유가 또 있었다. 글을 연재하기 위해서는 관련 자료를 찾아서 읽고 기억을 정확히 살려내야 하는데, 나에게 그럴 시간의 여유가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었다.

그러다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의 한가운데로 미친 듯 빨려 들어갔다. 그 상황에서 <레디앙>의 제안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뜻한 대로’ 민주노동당은 분당했고, 진보신당이 창당됐다. 물론 그 상황에서도 나는 글을 연재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계속 고민했다. <레디앙> 쪽에서 그 제안을 그냥 잊어버렸으면 좋겠다는 헛된 희망도 가졌었다.

결국 다시 제안이 들어왔고, 글을 쓰게 되었다. 처음 제안 받았을 때의 두 가지 부담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의 역할 때문에 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는데, 그들의 악플이 부담이다. 분당과정에서 먹은 욕만으로도 100살까지는 거뜬히 살 정도인데, 또 먹어야 한다. 그래서 마음을 비웠다. 노동가요 작곡가 김호철 선배의 제안과 격려도 도움이 되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누군가 글을 쓰지 않으면 역사는 사라진다.”는 이유를 붙였지만, <레디앙> 쪽에서 내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전노협, 민주금속연맹, 금속연맹을 거치며 중앙의 조직, 쟁의, 선봉대 담당을 하면서 겪었던 사건들을 재구성해보라는 취지가 큰 것으로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겪은 사노맹과 전진의 정파활동 경험도 풀어놓으라는 의도도 있을 것 같다. 덧붙여 민주노총 중앙파의 참모로서 겪은 다양한 사건을 풀어놓으라는 뜻도 있을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나의 노동운동 초기, 나의 운동의 핵심 동인은 냉철한 과학으로 무장한 사상이 아니었다. 내 심장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좌익에게 죽임을 당했던 나의 아버지는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간절하게 반대했지만, 정작 나를 노동운동에 붙들어 놓은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평생 노동자였다. 그 가운데 많은 세월을 노가다라고 하는 건설노동자로 보냈다. 9년간은 중동의 뜨거운 사막 속에 있었다. 아버지는 성실했다. 남을 속일 줄도 몰랐다. 법 없이 살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성격도 온순했다. 어느 날 퇴근길, 골뱅이 안주에 술 한 잔 마시고 싶어 술집 문을 열었다가, 집에 있는 자식들 생각이 나서 되돌아섰던 그런 사람이었다. 돈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려웠다. 항상 힘들었다. 임금이 늦게 나와 힘들어했고, 또 때로는 아예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임금을 꼬박꼬박 받을 때에도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는 방학 때마다 아내와 자식들을 고향의 처가에 맡겼다. 세끼 밥이라도 제대로 얻어먹으라는 뜻이었다.

나의 아버지와 나의 딸

운동을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고통스럽게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대부분이 노동자의 손을 거쳐 생산됨에도, 그것으로부터 소외된 노동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들이 모두 그렇게 살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노동자들, 노동자계급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초기 노동운동의 핵심 동인이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힘이었다.

나의 노동운동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딸이 태어났다. 운동의 핵심 동인으로 딸이 추가되었다. 나의 딸과 나의 딸 세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진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결심을 수없이 했다. 운동을 포기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거나, 운동한답시고 담배 값도 없이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에,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을 생각하면 할수록, 당혹스럽고 어이가 없다. 나의 딸이 다 성장할 때까지 평등의 가치가 우위를 점하는 세상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나의 딸과 그 세대가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좋은 세상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청춘을 온전히 바치면서 운동했다. 나와 같은 세대의 동지들처럼 운동을 하면서 고생도 엄청나게 많이 했다. 구속과 수배는 기본이었고, 양념으로 고문도 당했다. 서울의 경찰서라는 경찰서는 다 끌려가 보았다. 생활은 궁핍했고 가족은 팽개쳐졌다. 그렇게 고생하고 투쟁한 결과가 비정규직 세상이라니, 그야말로 황당함 그 자체이다.

노동운동 무기력, 무능력, 무책임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내가 몸담고 있는 노동운동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있다.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노동조합운동과 중앙파, 현장파, 국민파로 대표되는 정파운동은 무기력과 무능력과 무책임이라는 3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노동운동의 중심인 노동조합운동은 기업별노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즉 조합원의 임금, 고용, 노동조건만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에 멈추어 있다. 전체 민중의 요구를 위해 실천하지 않는다. 전체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이해를 위해 투쟁하지 않는다.

심지어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와 같이 정규직 대의원들이 비정규직과의 노조통합을 부결시키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사회연대는커녕 계급연대도 못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또 한 축인 정파운동도 마찬가지다. 정파란 모름지기 노선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구성원의 관계와 욕망에 의해 위축되면서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그마저도 동네축구 수준의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절망스럽다. 스스로를 향해 “한심한 놈” 이라는 욕설을 퍼붓기도 한다. 그러나 절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왜 이런 상황에 처했는지,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 해답을 실현할 방법도 찾고, 실천해야 한다.

영역 가리지 않고 쓸 터

지금의 노동운동이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상태에 이른 것은 나를 비롯한 노동운동가들의 책임도 크다. 특히 90년대부터 지금까지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있었던 사람들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것을 되짚어보고 싶다. 해답과 방법이 풍부하려면, 치열한 평가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여러 부담을 무릅쓰고 글을 쓰기 시작한 첫 번째 이유다.

과거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도 쓰려고 한다. 노동조합과 정당과 정파와 사람과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노동운동과 관련되었다고 판단하면 영역을 가리지 않고 써보려고 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도 쓰려고 한다.

노동운동 정사와 야사를 넘나들며 글을 쓰겠지만, 이 글은 오롯이 나의 이야기다. 나의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서의 나의 관점으로 재평가하는 글이다.

따라서 나의 글이 못마땅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얼굴을 붉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을 잘못 전달했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글에 대한 격려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양한 측면에서의 반론과 질책을 기대한다. 그러한 과정에서의 논쟁을 통해서라도 무기력한 노동운동에 잔잔한 파문이라도 일으키기를 기대해 본다.

   
  ▲영화 <파업전야>의 한 장면.
 

                                                 * * *

* 한석호는 전노협과 금속연맹 등에서 20여년 동안 조직, 쟁의, 선봉대 업무를 담당하며 잔뼈가 굵은 노동운동가이다. 노동운동사의 주요한 현장에 있었다. 정파운동의 편력도 다양하다.

다산보임그룹에서 운동을 배웠고, 한 때는 주체주의자였으며, 사노맹을 거쳐 지금의 전진에 이르렀다. 노동조합 정파인 중앙파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운동의 참모로 규정하고 있으며, 오지랖 넓게 이곳저곳에 관여하고 있다. 얼마 전 <레디앙>을 통해 자신이 무지개 사회주의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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