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많은 '모닝'은 누가 만들까?
        2008년 11월 13일 09: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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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미행(美行)’-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행동네트워크-의 첫번째 프로젝트인 지역순회 사업, ‘미디어게릴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을 만나다’의 일환으로 작성됐습니다.

    ‘미행’은 블로거와 인터넷 TV부터, 작가와 지식인에 이르는 다양한 미디어 생산자들이 함께 모여 비정규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팀입니다. 미행의 지역순회 사업은 진보신당과 함께 진행됩니다. <레디앙>은 앞으로 미행의 작업 결과를 독자 여러분들께 신속하고 충실하게 전달해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학교에서 돌아온 조카가 그림과제를 받았다며 그림을 그린다. 주제는 ‘학교폭력’. 그림으로 고발되는 폭력현장은 낯설지도 새롭지도 않다. 힘센 녀석 몇이 약한 아이를 때리고 괴롭히면, 왕따를 두려워하는 다른 아이들은 모른 척 방관하거나 손가락질을 하며 폭력에 동참한다.

    약자에게 폭압을 휘두르는 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녀석들이 단지 때리기만 하지는 않을 게다. 나의 어릴 적 경험에 의하면 금품을 갈취하기도 할 것이고, 그러면서도 선생들에게 보호받는 소위 ‘있는 집 자식’들은 어지간해선 건드리지 못할 게다. 그게 폭력의 기본구조이니까.

    학교가 폭력을 방관하고 동참하고 지위한다면?

    만약 학교가 이러한 폭력을 방관하기만 한다면 어떨까? 혹은 학교가 폭력에 동참하고 지휘를 한다면? 게다가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를 방관하기만 하고, 많은 사람들은 학교가 폭력에 동참하여야만 성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학교폭력에 맞서는 일부 양심 있는 아이들을 법과 공권력이 학교와 손잡고 폭압으로 짓누르는 사회가 있다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싫을 게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러한 사회는 존재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그러한 사회가 있다.

       
      ▲ 지난 9월 19일 동희오토 출근투쟁 중인 조합원이 경비에 의해 강제로 끌려나가고 있다.(사진=미디어 충청)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해달라고 호소했더니 어느 정규직 노동자가 이렇게 얘기하더군요, ‘전 연봉이 6000이 넘고, 주말에는 자가용에 골프채를 싣고 다니는걸요. 귀족노동자라고 손가락질 받을 텐데….’라고 말이죠. 이게 자본의 영악한 논리에 휘말린 겁니다. 노동자는 가난하여야만 하고, 노동자는 골프채를 잡아선 안 된다는 인식. 지금 이 세상이 틀렸습니다.

    노동자도 당연히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노동자도 주말에는 여가생활을 즐겨야만 합니다. 골프도 치고 오페라 극장에도 가고, 또 자신의 작업복을 떳떳하게 여겨야만 하는 게 정상적인 세상이죠. 돈 잘 버는 노동자가 귀족노동자가 아닙니다.

    자신이 다른 노동자들보다 높은 계급, 즉 ‘귀족’에 위치한다고 여기는 노동자가 귀족노동자입니다. 나는 천박한 비정규직과는 다른 ‘귀족스런 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노동자,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바로 귀족노동자입니다." – 민주노총 충남 서부지구협 조직부장

    종로에서 술을 한잔하고 있다며 걸려온 전화는 미행을 기획하고 있던 진보신당 비정규 담당자였다. 피로에 젖은 목소리로 그가 충남 서산에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어온다. 그가 당직자가 되기 이전부터 친한 친구로 지내던 나는 비정규직 투쟁에 힘이 되어주지 못해 늘 빚진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기쁘게 서산을 향한 차에 올랐다.

    ‘美行’의 첫 번째 프로젝트 ‘동희오토’ 현장

    그렇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미디어 행동 네트워크(약칭 ‘미행美行’)’의 첫 번째 프로젝트에 블로거로서 참여하게 되었다.

    아스팔트의 차가운 기운이 쌀쌀한 공기에 냉기를 더해주는 저녁시간, 동희오토 회사 앞에선 많은 사람들이 아스팔트 위에 모여 앉아 촛불을 밝힌다. 서산에서 촛불문화제가 비정규 투쟁과 함께한 게 이번으로 6주차라 한다.

    아침이면 해복투(해고자 복직 투쟁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출근 선전전을, 점심 식사시간에는 식당 뒷산에 엠프를 이고지고 올라가 방송을, 억울하게 해고당한 한 여성을 위해선 장미꽃 선물하기 퍼포먼스를 한다. 회사에선 점심시간에 틀지도 않던 가요를 크게 틀고, 경비원은 장미꽃을 강탈해 도망간다. 이들은 왜 이렇게 싸우고 있는 걸까?

       
      ▲ 사진=미디어 충청
     

    기아차 모닝(morning)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동희오토에는 12개의 사내하청업체가 있다. 동희오토에는 정규직이 있지만 정작 생산직에 해당하는 하청업체들은 100% 비정규직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들은 대기업 자동차를 생산하지만 대기업 노동자가 아닌 하청업체 노동자들이다.

    12개의 하청업체 중 생산직에 해당하는 업체는 9개인데, 그 업체의 모든 기계장비 및 설비는 원청회사, 즉 동희오토 소유다. 12개의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하나의 식당에 모여 밥을 먹고, 동희오토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하지만 동희오토가 아닌 하청업체 소속이다.

    동희오토 인사구조 복잡한 이유

    원청업체는 폐업이나 계약기간 만료 따위의 공문을 하청업체에 내리고 그 모든 영향은 노동자들이 직접 입는다. 즉 근로조건과 고용에 대한 결정은 원청업체가 쥐고 있다.

    하지만 간접고용이기 때문에 동희오토는 노동자들의 교섭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이 노리는 효과 중 하나는 노동자들의 저항을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무력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05년, 하청노동자들 300여명이 민주노조를 만들고 가입하자 에스에이테크라는 한 업체를 폐업시켜버렸다. 노동조합의 핵심적 동력이 그 업체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50명의 주력부대에 해당하는 노동자를 공장 밖으로 밀어내버렸다.

    그 후 노동자들이 조금만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면 계약해지함으로서 노조결성을 완전 무력화 해버렸다. 노조활동을 하면 계약해지 당했지만, 그렇지 않고 1년이 지나도록 계약해지 당하지 않으면 계속근로로 인정, 재계약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지난해 폐업을 했던 업체는 폐업과 무관하게 매년 전 노동자가 재계약을 맺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매년 신입사원인 셈이다. 그리고 올해엔 두 개의 업체가 폐업을 준비 중이다.

    노조결성을 막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

    노조결성을 막기 위한 회사의 노력이 눈물겹다. 활동가들을 미행하고 감시하고, 동료 노동자에게 면담과 협박을 하고, 눈에 가시거리인 사람은 연말 폐업할 때 해고시키고, 노조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학력위조 따위의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계약해지하며,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는 조를 형성하여 노동자들의 대화를 감시하는 게 일상이란다.

    모든 설비와 장비가 동희오토 소유이기 때문에 하청회사 이름과 사장만을 바꾸는 폐업에는 이렇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로는 눈 밖에 난 노동자를 해고시킬 수 있는 기회이고, 두 번째로는 노동자 전체를 재계약시킴으로서 숙련된 노동자를 최저임금의 신입사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회사는 저임금으로 장시간, 고강도 노동력을 아주 효과적으로 착취한다. 감시와 통제아래 어떤 노동착취를 당하더라도 오로지 회사만을 우러러보며 열심히 일하는 노동현장. 반공교과서 안의 무시무시한 빨갱이 세상이 연상되지 않는가?

    이주노동자 차별까지

    동희오토 안에서는 비정규직 차별만이 있는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 차별도 존재한다. 취업규칙에 상여금 600%가 있는데, 인사고과와 기능평가에 따라 가감할 수 있다는 규칙으로 변경하기 위해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차등지급의 기준이란, 전체 노동자의 20%에 해당하는 이주노동자에게만 400%를 지급한다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한층 더 심화된 차별을 심어 둠으로써 한국인 비정규직 계층에게 안위의 착시효과, 존재감의 상승효과를 심어주는 전략이 깔려있다.

    심각한 것은 기아자동차 AS부품 만드는 공장 파텍스와 같이 이러한 동희오토의 고용구조 모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확산과 사회 양극화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모델이. 그런가 하면, 동희오토 비정규직이 최저임금에서 20원 더 받았다면 10원 더 받으며 일했던 기륭전자, 불법파견에 대한 노동부의 결정을 증거 불충분으로 검찰이 무혐의 판정해준 기륭전자, 그렇게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어버린 기륭전자에서는 용역이란 사측 깡패와 경찰이라는 공권력이 손을 잡고 폭압을 행사하는 풍경이 일구어졌었다.

    학교폭력과 비정규직 차별의 닮은꼴 

       
      ▲ 한 어린이가 지난 봄, 진보신당 충남도당 봄소풍 때 동희오토 선전물을 손에 쥐고 있다. 이날 소풍에서는 동희오토 투쟁기금 50만원이 모였다.(사진=진보신당)
     

    조카가 그리던 학교폭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학교 안에 깡패가 있고, 그 깡패가 약자들을 괴롭히고 금품을 갈취한다. 학교는 그러한 폭력을 조장하고 지휘하고, 공권력과 법제도는 학교와 손을 잡고 폭력에 대항하는 아이들을 짓누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민은 그것을 방관하거나 동조하며 심지어 학교가 폭력을 사용해야만 모두가 성장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이 상황이 우리 사회와 꼭 닮지 않았는가?

    기업은 불법과 편법을 사용하여 노동력을 착취하고, 그 부당함에 대항하려하면 사측 용역깡패와 경찰 공권력이 함께 폭압으로 다스리며, 법제도는 자본과 기득권을 위해 존재한다.

    시민들은 어떠한가? 나는 정규직이니까, 나는 비정규직이어도 저렇게 까진 아니니까, 나는 자영업자니까, 남의 일이니까 하며 방관한다. 어떠한 노동조건을 갖추었는지는 관심도 없이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성장할 수 있다며 노조를 무조건 사회의 악으로 여기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사회는 이렇듯 그로테스크한 공간이다.

    당신은 어떤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폭력에 가담하지 않았다하여 그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건 상식이다. 내가 폭압을 방관하여 그 폭압이 사회에 온존할 때, 나는 그 폭압의 생명력에 양분을 준 것과 진배없으니. 개인적으로 성취하는 행복이란 천차만별이겠지만, 사회 안에서 타인과 관계하며 추구하는 행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타인을 폭압으로 짓눌렀을 때의 쾌감과 그 과정에서 얻어내는 이익을 통해 행복을 성취하는 것. 또 하나는 타인과 행복을 공유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 당신은 어떠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가?

    당신,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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