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드디어 북한이 핵실험을…"
        2008년 11월 11일 09:5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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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년 국민승리21 당시 언론부장을 시작으로 민주노동당 대변인, 권영길 선거운동본부 대변인 등을 맡았던 진보정당의 대표적인 대변인 가운데 한 명인 박용진(진보신당 강북구 당원협의회 전 위원장)이 <레디앙> 독자 여러분께 ‘대변인 뒷談話‘를 들려줍니다.

    대변인의 눈으로 본 진보정당과 보수정당 그리고 여의도 정치판의 겉과 속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가 되는 이번 연재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핵시험은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것이다.”

    2006년 10월 9일 오전 11시 40분경. 권영길 원내대표의 담배끝이 새빨갛게 타들어갔다. 대외적으로 이미 금연을 선언한 상태였고 건강 때문에도 상당 기간 지속된 금연이었지만 담배를 급하게 찾는 그의 손길을 말릴 수 없었다. 그의 건강과 대외 금연선언보다 더 큰 긴장이 사무실 분위기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 같다.”

    이 황망한 첩보를 어느 경로를 통해 얻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소식을 접한 순간부터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지옥같은 시간이 흘렀다

    그날 오전 10시 40분에 마친 당 오전브리핑 내용은 “한글날 560돌 / 북핵 관련 / 한일 정상회담” 등 평범한 내용 세 가지였다. 이미 3일날 북의 핵실험 예고선언이 있었던 뒤라 관련 뉴스는 넘치고 있었지만 실제 상황에 돌입할 것을 장담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대미 엄포용, 협상용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이날 한나라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 대부분이 한글날 560돌에 대한 입장 발표를 우선해 놓은 것도 그런 인식들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정당 대변인실로서는 평범하고 조용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 같다”는 이 불확실한 단 한 줄의 소식을 접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문성현 당대표와 권영길 원내대표에게 우선 긴급한 연락을 취해놓은 뒤 암담한 뒷일을 걱정하면서 자세한 상황 파악을 하고 있던 중 권영길 대표가 대변인실이 있는 국회 의정지원단 사무실에 들어선 것이다.

    “사실일까… 사실이겠지… 이거 어떻게 하면 좋나…”

    나에게 묻는 것도 아니고 혼잣말도 아닌 애매한 물음을 그는 반복하고 있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이 터트린 핵폭탄은 미국의 심리적 영토를 향한 것이지만, 남한사회 안에서도 터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개인적으로 더 심각하게 여긴 것은 따로 있었다.

    북이 미국을 향해 터트린 핵폭탄은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또 하나의 후폭풍을 몰고 올 것이 뻔했다. 나는 어쩌면 우리가 그것을 더 헤쳐나가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지옥같은 시간이 흘렀다.

    "사실일까… 사실인 것 같다… 사실이다"

    다시 소식이 들어왔다.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포착됐다는 첩보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이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9일 오전 11시 30분부터 소집해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윤광웅 국방부장관, 이종석 통일부 장관,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과 국정원장 등 당시 참석자의 면면으로 볼 때 청와대는 핵실험 사실 자체를 확인하고 그 대책을 세우는 것이 분명했다. ‘사실확인’은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

    문성현 대표에게 “사실인 것 같다”고 알리는 한편 최고의원과 의원단의 긴급대책회의 소집이 필요하다는 실무선의 의견도 전달했다. 평소 침착했던 실국장들도 당황해하는 빛이 역력했다. 문대표는 “가장 빠른 시간내 회의소집”을 지시했다.

       
      ▲ 북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가 9일 북한이 지하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회의소집 지시가 전달되고 회의를 준비하는 동안 TV에서는 북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공식선언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늦게는 북한 <조선중앙TV>의 아줌마 아나운서가 감격에 젖은 높은 톤으로 핵실험 성공을 기쁘게 전하는 장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에서 일대 비약을 창조해나가는 벅찬 시기에, 우리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주체95, 2006년 10월9일 지하 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과학적 타산과 면밀한 계산에 의하여 진행된 이번 핵시험은 방사능 유출과 같은 위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핵시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하여 진행된 것으로서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 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다. 핵 시험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다.”

    그녀의 기운찬 목소리가 어디 먼 외계에서 타전되어 들려오는 해독 불가능의 전파음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우리랑 상관없는 외계의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신속대응, 그러나 논쟁만 두 시간

    초기, 민주노동당의 사태파악과 대책마련을 위한 행동은 다른 어느 정당보다 빨랐다. 당시 제1야당인 한나라당보다 관련 대책회의 소집 시간이 한 시간이나 빨랐고, 청와대가 사태파악을 마친 것과 당이 사실을 인지한 사이에 큰 시간 차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책회의에 들어간 뒤 무려 두 시간이 넘는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미 모든 나라의 반응과 각 정당의 반응이 전파를 타고 시시각각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특히 우국충정을 부르짖는 한나라당의 비분강개 오버액션이 한참 각종 방송사의 긴급 편성된 뉴스 전파를 타고 국민들에게 왜곡된 안보의식을 전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가장 빠른 대응에 나선 민주노동당은 사태파악 4시간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반응조차 내놓고 있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단 4문단으로 간략하게 정리된 브리핑 내용을 들고 내가 다시 국회브리핑룸에 들어선 것은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이미 대부분 언론사의 1차 마감이 임박한 시간이었고 기자들이 나를 잡아먹을 태세로 “멘트 하나만!”을 목놓아 부르짖고 있을 때였다.

    기자들의 반응은 ‘아니 뭐 그런 당연한 입장을 내놓으려고 몇 시간 회의를 하고 이제야 발표를 하느냐?’는 것이었다.

    당의 입장은 간략하게 줄여 말하면 “민주노동당은 반핵강령의 정당으로서 북한 핵실험에 대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그 일차적 책임이 미국의 적대정책에 있으며 어떠한 군사적 행동에도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 북한 핵실험이 발표된 직후 소집된 민노당 최고위원단-의원단 연석회의 (사진=진보정치)
     

    "아니 뭐 이런 당연한 입장에 회의를…"

    그러나 그 단순한 입장 몇 줄에는 격한 논쟁과 가슴 쓸어내릴 일이 숨어 있었다. 핵실험은 북한이 했지만 정작 그 핵실험의 후폭풍은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정파연합당으로, 흔히 자주파와 평등파로 대표되는 두 큰 흐름이 존재했다. 그 두 흐름의 사이에 놓인 가장 큰 견해 차이는 ‘북’에 대한 이해였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북에 대해 호의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차이일 수도 있다.

    당시 인터넷 신문인 <레디앙>의 보도에 따르면, 한 최고위원은 북의 결정과 태도를 이해하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북에 대고 절대 안된다는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자족적인 측면은 있을지 모르지만 현 정세에서는 의미가 없다”고 인터뷰를 했다.

    또한 분당 과정에서 결별의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되었던 이용대 정책위의장의, 북한이 미국과의 대치국면에서 북핵은 자위적 측면이 있다는 이른바 ‘자위권’ 인터뷰 발언 파문은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북핵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대립을 더욱 부채질하고 말았다.

    반면 평등파는 당의 반핵 강령이나 평화정당으로서의 위치, 국민적 정서를 생각할 때 지금은 북의 행동에 대해 당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권영길, 자주파에 지혜로울 것 당부

    회의 분위기는 이런 양쪽의 분위기가 팽팽하게 맞서는 것이었다.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맞고 틀리고 할 문제는 아니었다. 당시 대변인으로서 나의 관심은 국민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갖게 될 민주노동당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 것일지에 쏠려 있었다.

    대개 한 정당에 대한 국민적 이미지는 여러 차례에 걸쳐 형성되는 것인데 민주노동당을 반대하거나 비판하는 세력이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가장 많이 사용된 ‘친북세력’이라는 포인트에 화룡점정을 하고도 남을만한 사안이라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할 사안이었고 운동권식의 논리로 섣불리 나서기에는 우리는 이미 원내 10석을 가지고 있는 ‘진보정당’이라는 무한책임집단이었다.

    논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날 회의의 무게중심은 권영길 원내대표가 잡았고 문성현 대표와 천영세 의원이 뒤를 이었다. 권 대표는 자주파쪽 참석자들을 향해 지혜로울 것을 당부했고, 이후 전개될 국면에서 민주노동당이 오히려 미국의 책임을 더 부각시키고 정부의 무분별한 대응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지금 당의 입장을 분명하게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날 권영길 대표의 태도는 자주파에게 불리한 것이었고 나중에 대선 경선 국면에서 자주파쪽이 ‘독자후보론’의 불을 지피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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