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본적 변혁’이 더 현실적이다
        2008년 11월 10일 04: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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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11월 7일에 작성되어 <레디앙>에 11월 9일 실린 박노자씨의 최근 글 「세계혁명, ‘거창한 얘기’ 하기 전에」)에 대한 내용은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 필자 주

    최근 박노자씨가 쓴 글 「미 제국, 패권 몰락의 속도」(<레디앙> 10월 19일자)는 상당히 공감할만 했다. 가령 지금의 위기에도 미국 패권이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을 거라는 지적, 강대국들 간 더 치열한 패권 다툼 속에서 더 야만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에 동의한다.

    이런 점들을 경시하는 세계화론 탈근대론 자율주의 등과 달리 현재의 세계가 1920년대 말과 1930년대 초 상황과 흡사하다는 박노자씨의 문제의식은 경청할만하다.

    다만 향후 전망에 대해서 비관적이고 반전 운동의 가능성을 지적하지 않는 그 글의 아쉬움을 한 블로거가 제기하면서 논쟁이 진행됐는데, 박노자씨는 답변 「서구 민중에 대한 낭만적 꿈 버려라」(<레디앙> 10월 28일자), 「최선은 급진적 개혁」(<레디앙> 10월 31일자)에서 논쟁의 쟁점을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로 확대했다.

    혁명에 대한 열의는 중간계급 출신의 낭만적 치기인가

    여기서 박노자씨는 “대체로 도심 중산계층의 가정에서 곱게 커 배고픔을 한 번 겪어본 적이 없는 이 분들(‘다함께’ 회원들)이 ‘혁명’을 이야기할 때에 과연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머리가 아닌 피부로 아는지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우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비롯하여 ‘다함께’ 회원들 중에는 노동계급 가정 출신들이 많다는 것을 밝혀야겠다. 또한 무엇보다 ‘다함께’ 회원의 절반 이상이 노동자들이다.

    그렇다고 내가 혁명을 말하려면 모두 노동계급 출신이어야 한다고 조야하게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박노자씨의 왜곡과 편견을 바로잡으려 하는 것이다. 고전 맑스주의에서 노동계급 중심성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혁에서 노동계급의 집단적 잠재력에 주목하는 것이지, 개인의 출신 계급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고전 맑스주의는 주로 집단적 행위자로서 계급 간의 역학을 통해 역사를 설명하지만, 동시에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 개인의 출신 계급이 아니라, 그의 정치적 견해와 실천이 어떤 계급에게 이롭냐는 점으로 개인을 판단한다.

    맑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 같은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모두 노동계급 출신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출신 계급의 이익을 배신하고,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에 헌신했던 위대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었다.

    마찬가지로 ‘고생 모르고 자란 중간계급 가정 출신’이 자신의 출신 계급을 떠나 혁명을 지지한다면, 이는 폄하할 것이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환영할 일이다.

    맥락을 거세한 사실 나열은 진실을 가릴 뿐

    박노자씨의 이런 편견은 조야한 경험주의와도 관련 있다. 그는 혁명은 민중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며, 고통스러운 민중의 삶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혁명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반면 역사학자인 자신은 잘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러시아 혁명 당시 민중의 삶을 ‘체험 삶의 현장’처럼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각종 사료들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20세기 후반 들어 러시아 혁명의 사회사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관점’에 기초해 작성된 역사 서술을 통해 우리는 러시아 혁명의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관점에 충실한 역사가들(알렉산더 라비노비치, 마르크 페로 등)은 “사실 그 자체가 말하도록 하라”는 기조로 러시아 혁명의 진실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사실 그 자체’에 충실하려 노력했던 역사학자들이 모두 박노자씨와 같은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반면 박노자씨처럼 “어쨌든 사실은 사실”이라는 식의 관점은 사건의 전체적 맥락보다 파편화된 특정 사실을 더 중요시함으로써 오히려 총체적 진실을 알기 어렵게 할 수 있다. 가령 누군가가 강도를 만나 살해 위협을 받을 때 했던 정당방위에 대해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 그 자체만 부각시키는 것이 어떤 효과를 낳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사실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파편화된 개별 사실들을 어떻게 종합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러시아 혁명의 진실

    박노자씨는 러시아 혁명 때 있었던 유격대에 의한 농촌 식량 징발, 혁명군에 의한 “도살, 겁탈, 강간” 등 부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 1921년 대기근 당시의 모습. 부농(кула́к)들이 숨겨놓은 곡물을 징발하는 적군(Red army)과 우크라이나의 굶어죽은 인민들. 당시 군사인민위원이었던 트로츠키는 “농촌 쿨라크는 우리에게 도시 부르주아와 똑같은 적이다”라고 말했다.
     

     “‘위대한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젖먹이 아이라도 죽일 수 있는 처참한 광경이야말로 혁명입니다.”,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이 뒤따르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사회주의 혁명들이 다 빠짐없이 대대적인 반동, 즉 권력과 부의 재등장과 그 체제의 재편성으로 귀결됐습니다.”

    박노자씨가 언급한 사건들은 러시아 혁명 과정에서 실제로 존재했다. 그런데 박노자씨는 이러한 사건이 전체 그림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 사건들이었는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등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이런 사건들은 제국주의 간섭군의 침략과 반혁명군에 의한 내전에 의해 황폐화된 러시아 상황을 빠뜨리고 설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공업은 대부분이 파괴됐고, 농촌의 식량과 교환할 물자를 생산하지 못해 도시에서는 기근과 전염병이 창궐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소비에트 민주주의를 구현할 주체였던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사라졌다. 1917년 혁명에 참가했던 노동계급의 상당수가 내전에서 죽었고, 식량부족 때문에 귀농자가 속출해 도시 공업노동자의 60퍼센트 가량이 줄었다. 결국 노동계급 민주주의의 토대가 취약해졌고, 그들의 사기도 떨어져다.

    도시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재생하기 위해서 식량 조달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내전을 치르고 있는 적군 병사들도 먹을 것이 부족했다. 그런데 당시 농민들은 시장에 팔기 위해 곡물을 매점하고 있었다. 농민들에 대한 식량 강제 징발은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급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강요된 비극적 조치였다.

    그 결과로 러시아 혁명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 중 하나(농민)가 등을 돌리게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을 볼셰비키도 모르지 않았다.

    혁명 정부에 의한 ‘적색테러’ 또한 서방 자본주의 군대와 반혁명군에 의한 내전의 발발, 볼셰비키 지도자들에 대한 암살 등이 없었다면 필연적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볼셰비키는 혁명의 성공에 대한 지나친 낙관 때문에 반혁명 세력들 대부분을 풀어주는 관대함을 보였고, 대중의 개인적 복수심을 자제시키려 했다.

    그러나 반혁명군은 이미 10월 혁명 직후부터 모스크바 공산주의자들을 학살하고 핀란드에서는 수만 명의 노동자들을 학살하는 등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적색테러’는 이에 대한 대응이었던 것이다.

    한편 박노자씨가 언급했던 약탈 강간과 같은 개별적 일탈 행위들도 벌어졌다. 박노자씨는 “총을 잡은 가부장적 남성이 ‘타자’들이 사는 지역으로 가면 그 결과가 아주 뻔합니다”하며 이것을 남성의 폭력성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과연 남성과 총이 만나고 근처에 소수자가 존재하면 남성은 언제나 폭력적이 되는가? 그렇다면 1917년 2월 혁명 때 총을 든 남성들은 왜 장교들의 발포 명령을 거부했을까? 그들은 꽤 오랫동안 총과 함께 살았던 병사들이었고 2월 혁명에서 그들이 마주친 집단은 주로 여성 노동자들이었는데 말이다.

    타락은 혁명 탓?

    즉 남성들의 초역사적 폭력성 때문이 아니라, 특정 사회적 조건이 특정한 행위들을 낳는 것이다. 러시아의 남성 노동자들은 혁명 이전에는 가정에 채찍을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혁명 이후 남성 노동자들의 의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혁명 이후 남녀 관계의 변화는 박노자씨가 언급한 『궤멸』이라는 소설에도 등장한다. 물론 혁명 이후에도 이전의 습성이 어느 정도는 남아 있다.

    약탈 강간 등의 타락한 행동들은 특정 사회적 조건에서 부추겨졌다고 봐야 한다. 역사학자 스티브 스미스는 내전 과정에서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퇴색하자, 기회주의 출세주의적 열망을 가지고 당과 소비에트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런 자들 중에서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개인적 욕구를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한편 박노자씨는 약탈 강간 등이 마치 혁명군과 반혁명군 사이에서 동등한 규모로 일어난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런 악행은 엄연히 반혁명군에게서 압도적으로 벌어졌다. 혁명 정부의 이상과 대의가 만들어낸 규율과 지도자들의 억제 노력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노자씨는 어쨌든 혁명군 내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이다. 그래서 마치 이러한 악행들이 혁명 때문에 벌어진 것처럼 뒤집어씌운다.

    박노자씨는 “내전과 외전들이 꼭 혁명에 뒤따르지 않는다고 반론하실 분들이 계시다면, 각종의 전쟁으로 귀결되지 않은 역사 속의 혁명 하나라도 대주시기를 바랍니다”라며 ‘어차피 혁명이 반혁명을 낳게 돼 있으니 결국 민중의 고통은 혁명 탓’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역사를 행위 주체가 없는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본다면 모를까, 행위 주체의 의식적 노력을 역사의 중요한 변수로 여긴다면 혁명과 반혁명이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된 의지가 표현된 두 사건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엮을 수는 없다.

    혁명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은 혁명 세력의 폭력에 대한 선호 때문이 아니라 반혁명 세력이 폭력을 동원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혁명의 폭력과 체제의 폭력

    한편 박노자씨는 이런 비판을 의식했는지, 체제의 모순 때문에 혁명을 피할 수 없다며 “혁명은 비판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고도 규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혁명을 가급적 피하자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있다.

    혁명의 ‘자연 현상’적 성격을 트로츠키는 이렇게 말했다. “내전은 휴머니즘의 학교가 결코 아니다. 이상론자들과 평화주의자들은 언제나 혁명의 ‘극단성’을 비난한다. 그러나 ‘극단성’은 혁명의 본성 자체에서 비롯한다. 그리고 혁명 자체는 역사의 ‘극단성’일 뿐이다.”

       
      ▲ 1921년 적군(Red army)을 사열하는 트로츠키(앞줄 오른쪽)

    혁명을 ‘자연 현상’, 더 정확히 ‘역사의 보편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혁명이 낳는 ‘폭력’ 때문에 혁명을 피하자는 주장은 관념의 영역으로 도피하는 것일 뿐이다. 혁명이 ‘폭력’을 부른다면 그것은 혁명을 낳은 체제 자체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폭력’ 때문에 혁명을 회피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가 낳는 폭력 또한 회피하는 것이다.

    실제 박노자씨는 혁명을 통해 폭력을 경험하느니 자본주의 내에서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한다. 그러나 박노자씨 스스로가 자본주의가 낳는 일상적인 끔찍한 폭력들을 고발하지 않았던가?

    수천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세계 대전과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경험한 군사 독재와 파시즘의 폭력, 기업의 이윤 논리 때문에 빈곤과 기아로 죽어가는 세계 각지의 민중들의 현실만 봐도 자본주의의 폭력이 혁명이 낳을 ‘폭력’에 비해 얼마나 거대한지 잘 알 수 있다.

    그럼에도 혁명을 피하고자 자본주의 체제 내의 대안을 찾겠다는 것은 작은 ‘폭력’을 피하고자 더 커다랗고 엄청난 폭력을 용인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급진적 개혁은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박노자씨가 말한 “급진적 개혁” 강령들은 모두 지지해 마땅한 내용들이다.

    “일부 대형 기업소 (일차적으로 금융 기업들)를 국유화해야 하겠는데, 무엇보다 먼저 토건 국가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바꾸어 경기부양책을 무상교육/의료 실천을 통해서 하는 것, 부동산 보유세 등 부유층을 직접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들을 징수하고, 부동산 투기 적발시에 투기로 벌어들인 재산을 몰수하는 것,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의 불식을 위해서 최대한의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 남북한 간의 공통 군축으로 군사 예산을 계속 줄이고 교육,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

    박노자씨는 이러한 강령들이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이 낱낱의 요구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도 실현 가능한 요구들이다. 그리고 어떤 시기에는 이러한 요구들이 지배계급의 필요에 따라 “사회적 합의” 하에 도입될 수도 있다.

    가령 2차 대전 이후 서구의 복지제도 도입 과정은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지배계급의 필요가 적절히 맞아떨어졌다. 영국의 보수당 정치인 퀸틴 호그가 의회 연설에서 “만약 여러분이 국민들에게 사회 개혁을 선사하지 않으면 그들이 여러분에게 사회혁명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한 바처럼 대중의 급진화가 한 가지 동력이었다.

    다른 한편 지배계급은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 기반을 복구할 필요가 있었다. 경기가 확장 추세였으므로, 지배계급 입장에서도 생산적이고 건강하고 교육받은 노동력을 위한 복지제도가 필요했다. 게다가 2차 대전 이후 유례없는 장기호황 덕분에 지배계급은 약간의 양보를 감내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조건이 서구의 복지제도 확립 시기의 조건과 다르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경제 상황 때문에 자본가들의 양보가 거의 가능하지 않다. 지난 촛불운동에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지만 운동의 요구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양보하지 않는 것을 보라.

    더구나 자본가들의 이윤 체제를 근본에서 침해하는 총체적 개혁의 요구들은 더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박노자씨가 제안한 “급진적 개혁” 강령들을 진지하게 실행에 옮기려 한다면 어느 순간, 자본가들의 이윤 체제 자체에 도전하며 개혁을 성취할 것인가 아니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진정한 개혁을 포기할 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1970년대 칠레 아옌데 정부의 경험은 노동계급 운동이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려 할 때 어떤 일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인지 비극적으로 보여줬다. 자본가들은 사보타지에 뒤이어 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전복하고 수만 명을 학살하는 방식을 통해 개혁을 봉쇄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신자유주의 정부에 불과했던 노무현 정부조차 탄핵하려 한 자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이런 조건에서 급진적 개혁 강령들을 요구하고 실행에 옮기려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노자씨는 베네수엘라 사회가 “발전된 사민주의” 정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유혈화”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수준의 개혁을 쟁취하기 위해 2002년 반(反)차베스 쿠데타를 비롯한 우파들의 반동에 맞서야 했다.

    반혁명과 유혈투쟁은 지연되고 있을 뿐

    중동에서 수렁에 빠진 미제국주의가 전선을 확대할 여유가 없는 점, 고유가 덕분에 자본가들의 부를 심각하게 침해하지 않고서도 부분적인 개혁을 제공할 수 있는 점, 쿠데타에서 패배한 우파가 아직 회복 중에 있는 점 등 때문에 베네수엘라는 “유혈적” 계급투쟁이 지연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과 베네수엘라의 지배자들은 이런 요소들이 변화하며 기회가 온다면 현재의 “발전된 사민주의”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문제는 노동계급 운동이 무엇을 선택하느냐 이전에 지배계급의 행동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것이다. 역사는 노동계급 운동이 급진적 개혁을 추구하려 할 때조차 종종 반혁명을 불러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박노자씨 주장대로 반혁명을 불러오기 때문에 혁명을 방지해야 한다면, 급진적 개혁 조치들도 반혁명을 불러오기 때문에 가급적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개혁주의자들은 개혁 과제를 내세우지만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 개혁을 쟁취하겠다’는 자기제한적 태도 때문에 진정한 개혁을 성취하는데 한계가 있다. 반면 근본적 변혁가들은 똑같이 개혁 과제를 지지하지만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이 지배계급의 이익에 근본에서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통해 개혁 성취를 더 현실적이 되게 만들 수 있다.

    ‘급진적 개혁’을 위해서도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이라는 혁명적 방식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아래로부터 노동계급의 대중투쟁은 끊임없이 경제 위기와 전쟁과 환경 재앙을 낳으며 개혁의 성과를 다시 되돌리려 하는 이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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