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은 당원을 바보로 아는가?"
        2008년 11월 10일 1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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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레디앙>에 제2창당에 대한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제2창당 토론 잘 되고 있나?」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진보신당 대변인실에서 나온 자료인줄 알았다.

    "당원을 바보로 아나?"

    기사 내용을 간추리자면 ‘현재의 제2창당 토론은 1차토론으로서 당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고, 곧 토론에서 제기된 내용을 가지고 2차 토론을 곧 할 터이니 너무 걱정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표단의 바람과는 달리 이 기사가 <레디앙> 탑에 뜬 뒤 친한 당원 한 명에게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중앙당이 우릴 바보로 아나?"

    나 역시도 그의 독설을 듣고 옳거니 했다. 도대체 중앙당과 당 대표단이 당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자못 궁금했다. 그 문제의 제2창당 토론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사람들은 대부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제2창당 뭘로 하겠다는 거야, 하기는 정말 하는 거야?"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런 방식의 제2창당 토론보다는 몇달 전 당게시판에서 뜨거웠던 ‘전진 논쟁’이 훨씬 건전했다고 생각한다.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추상적인 독설들이 오가긴 했지만 그 논쟁에선 쟁점이 있었다. ‘사회주의’든 ‘프락션’이던 ‘정파’든 논쟁 속에 작지만 의미있는 ‘쟁점’이 있었고 이에 대한 당원들의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당시 전진에 대해 한 당원은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전진 논쟁이 낫다

    “전진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은, 결혼한 지 이제 반 년 되었는데, 어느 날 10살짜리 아이가 찾아와서 내 배우자의 아이라고 하는 기분이야.”

    이 답변은 풍자적이긴 하지만 나름 성찰적이다. 최소한 그 당원은 당의 미래와 주도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고 전진의 행동에 대해서 자기 언어와 표현을 통해 비판했다. 하지만 당 게시판에서 제2창당 토론회를 검색해보면 절망적이다.

    토론회에 관한 재미난 에피소드나 참관기는 당 게시판 전체를 훑어도 찾아볼 수가 없다. 왜 제2창당이 안되는가라는 자조 섞인 글만 있을 뿐 게시판의 글에서 읽을만한 글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인천에서 열린 제2창당 토론회(사진=진보신당 인천시당)
     

    사실 제2창당 토론회 발제문은 엄청나게 길지만 새롭거나 의미있는 내용은 없다. 오직 누구나 동의할만한 좋은 가치를 병렬로 나열한 ‘평등, 생태, 평화, 연대’만이 있을 뿐이다. 이걸 가지고 나와 같은 당원이 코멘트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누구나 다 좋다고 끄덕일 가치를 중심으로 내년 2월까지 이런저런 일정을 밟아 제2창당이란 걸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당원들은 그냥 그렇게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럴 거면 당 대표 하지 말라"

    최근에 <레디앙>에 개재되었던 김현우님의 글 「제2창당 토론은 왜 재미가 없을까?」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다만 그 글에서 빠진 게 있다면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들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이다. 난 김현우처럼 예의바른 사람은 아니므로 솔직하게 내 방식으로 말하겠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것은 당 대표들이고, 이럴 거면 당 대표를 하지 말라.”

    만약 내가 당대표라면 최소한 제2창당 발제문에 이런 내용을 핵심으로 해서 지역을 순회하려 할 거다. "우리 당은 00주의 가치를 지향하는 가운데 **** 정도의 정치적 과제를 갖고, 오는 지방선거에는 XXX선거전술을 고려해서 0000를 달성하고, 이후 다시 한 번 창당해서 0000 할거다."

    만약 위의 안이 부담된다면 최소한 방향이 다른 세 가지 안을 만들어서 들고 돌아다녀야 했다. 그래야 당원들이 할 말이 있는 것이 아닌가.

    “난 XX주의가 싫어요. 바로 탈당할래요.”

    이 말이 무서워서 발언을 못하는가? 오히려 당 대표단이 이 말을 하면 당원들이 다시금 게시판에 벌떼처럼 몰려들 것이고 그 덕에 당분간 떠나 있던 언론들도 조금이나마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표단은 이런 논쟁을 피하고, 되도록이면 피하려 하고 있다.

    그들 역시 현재 중앙당의 방식에는 불만이 있어 보이는데 대표단 회의 자리에선 치밀하게 논의하지 않는 것 같고 막상 지역에 와서는 속내를 들어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책임지기 힘든 의미심장한 한 마디씩을 던진다.

    하지만 막상 토론이 끝나고 공식적으로 회의록에 남는 내용이 없어 게시판에는 쟁점이 전혀 생기지 않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제2창당 토론이고 현재의 진보신당인 것이다.

    제2창당에 2010 선거전술이 없다?

    내년 4월, 12월에는 보궐선거가 있다. 나아가 2010년에는 지방선거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거주의’를 비판하고 있지만 대체로 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과정은 선거를 통해 이루어진다.

    긴 역사를 가진 독일 사민당이 기민당과 연정을 하면서 막장의 길로 간 것이나, 독일 녹색당이 사민당과 연정을 하면서 급진성과 참신성을 상실한 것처럼 정당은 결국 선거 공간을 통해 자신의 포지션과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진보신당의 이번 제2창당은 알맹이가 빠져 있다. 우리 당이 어떤 강령을 가지고 어느 정도의 원칙을 갖고 누구와 연대해서 선거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달성하느냐는 제2창당의 핵심 골자가 되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가운데 우리가 무엇을 중심으로 정당을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고-그것은 ‘00주의’가 될 수도 있다-이것을 밑바탕으로 소위 어떤 외부 집단과 어떤 내용과 어떤 방식으로 선거 연합을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제2창당의 골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근 있었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의 비정규직 통합 투표 부결과 타협에 대해서 논평 하나 제대로 못내는 정당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선거연합을 할 수 있을지도 모두 이러한 고민과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형식적인 제2창당이라는 이유로 1년짜리 종이쪼가리 강령과 생존을 위한 단기적인 선거 전략을 위해 형식적인 당대회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지 노회찬, 심상정 두 분에게 묻고 싶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제2창당을 지방선거 후에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제 솔직해지자

    민주당의 분화가 눈 앞에 다가오는 가운데 새로운 정계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문도 여의도를 통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에 발맞추어 나와 같은 평범한 지역 당원들은 당의 귀하신 분들이 심상치 않은 행보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것은 절대로 검증할 수 없는 괴담 같은 것이므로 믿지 말아야 할 듯)이 들려오고 있다.

    이런 소문은 5년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당에 대한 애정을 한 번에 꺾어버리는 우울한 이야기다. 그나마 내가 속한 과천은 지방의원 한 명이라도 있지만 대다수의 지역 활동가들은 2010 선거에서 현재의 진보신당의 브랜드로는 선거조차 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에 뛰어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고 상당 수의 지역 책임자들은 2010 출마에 대한 압박 때문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지금의 제2창당은 당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형식적인 의례 행사가 될 수밖에 없다. 긴 말 할 필요없이 솔직해지자. 우리의 현실에 대해 당 대표단은 터 놓고 이야기해야 한다.

    "현재의 당으로는 생존이 힘든 것 같아. 차라리 우향우를 하자고."

    한 동지가 최근 내게 한 말이다. 개인적으로 절대로 동의는 할 수 없지만, 그 친구와 토론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대표단은 이러한 건전한 토론을 가로막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갖고 있던 헤게모니에 집착하지 말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과 당이 처한 상황, 자신들의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해 터놓고 말하자.

    만약 대표단이 이후 벌어질 토론에서 위에서 지적한 이야기를 투명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면 제2창당 과정은 큰 의미를 가지고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거점 지역에 중앙당 이상의 정책과 막강한 정보량을 갖고 있는 대표단과 평당원 사이에는 하늘과 땅 정도의 수준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당과 자신의 생존을 직접 책임져야 하는 대표와 당이 성공하나마나 월 1만 원만 내면 상관없는 평당원 사이에는 접근할 수 없는 두터운 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갭이 있기 때문에 대표단은 좀 더 당원들 앞에서 솔직해야 되고 당원들을 믿어야 한다. 비록 현재의 당원들이 정치 구도상 당의 위상 제고에는 별 도움을 주지 못할 테지만 진보정당의 기나긴 역사의 한가운데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역사적 의미와 소중한 가치를 지켜나가는 가운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내는 동력은 당 외부의 기성정치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당 내부의 당원들에게서 나온다는 점을 노회찬, 심상정은 결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솔직한 두 분의 고백을 기대하면서 한 평당원의 짧은 푸념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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