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는 오바마를 뽑을 수 있겠냐고?
    2008년 11월 10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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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뜨면서 미국의 대입제도도 뜨고 있다. 오바마는 청소년 시기 마리화나에까지 손을 댄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미국의 고등교육(대학) 시스템은 그런 그를 받아들였다. 장래성과 소수인종임이 고려됐다. 훌륭한 고등교육을 받은 것이 오늘날의 미 대통령 오바마를 있게 한 힘이었다.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 미국 대입제도를 배우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겨레>조차 사설을 통해, 미국대학 입학처장의 충고와 오바마의 사례를 들며 서울대에게 ‘한국의 오바마’를 선발할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다른 신문에선 미국식 ‘입학사정관제’까지 거론됐다.

입학사정관제는 각 학교에서 입시업무를 담당하는 전문 사정관이 학생의 다양한 능력,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당락을 가리는 제도를 말한다. 이것은 한국의 획일적인 성적 선발 방식보다 더 나은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바마에게서 입학사정관제를 본다?

미국에서도 SAT라는 대입 학력고사를 보지만 우리처럼 학력경쟁이 붙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입학사정관제 때문이다. 학력고사 점수는 그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데 사용되는 여러 가지 지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 제도는 초중등 교육을 학력경쟁의 지옥으로 만들지 않는 데 기여한다.

   
  ▲ 오바마의 고교시절
 

한국은 10대 때 성적이 인생행로를 결정한다. 이때 한 눈 팔면 일류대가 받아주지 않는다. 패자부활전이 불가능한 사회다. 요즘은 아이 때 ‘어린지’식 발음법을 익혔느냐 못 익혔느냐에 따라서도 인생이 갈린다.

종합 학력고사든, ‘어린지’든 20살 이전에 모든 것이 결판난다는 점은 똑 같다. 20살 이전에 결정됐던 것을 나중에 되돌리고 싶은 사람은, 대학원으로 학벌세탁을 하거나 학력위조를 하게 된다.

이런 야만적인 제도에 비한다면야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는 천국처럼 보일 수도 있다. 성적은 좀 떨어져도 가능성 있는 인재를 선발할 여지가 분명히 커질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미국식 선발제도일 뿐이다. 오바마가 한국에 미국식 대입제도를 도입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형국이다.

입학사정관제는 이미 설명한 것처럼 각 대학의 학생선발 담당자가 학생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발하는 제도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입시선발에 있어서의 대학의 완전한 자율성이다. 대학이 ‘엿장수 마음대로’ 학생을 선발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의 입시정책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학자율화, 대학입시자율화를 추진한다. 대학이 알아서 학생을 뽑으라는 얘기다. 대학이 ‘엿장수 마음대로’ 학생을 뽑으면 ‘한국의 오바마’가 나오는 건가?

자율화를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는 당연히 ‘입학사정관제’ 도입도 추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처음에 3불정책을 폐지한다고 했을 때 본고사 부활이라는 비난이 많았다. 그때 이명박 정부는 절대로 본고사를 부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말을 끊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의 그 다음 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3불정책을 폐지하되, 본고사도 부활시키지 않는 대신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것이 바로 ‘입학사정관제’였다. 한국사회는 3불정책과 본고사에 대해선 대단하게 갑론을박을 했지만, 정작 우리 정책이 지향하고 있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선 논의하지 못했다. 국민이 아직 인지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것은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입학사정관들이 학생부에 있는 정보를 충분히 활용해서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생활한 아이들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 이명박 정부에서의 3단계 자율화 계획의 핵심은 대학의 학생선발의 역량을 키워드리겠다는 겁니다. 입학사정관이 필요하시면 저희들이 인건비 보조까지도 해드린다는 겁니다.” – 이주호 전 의원(이명박 당선인 측 교육정책 담당), <KBS>, ‘2008 한국의 선택’ 중

이명박과 이주호의 꿈

   
  ▲ 콜롬비아 대학시절
 

위 인용문은 현 정부 출범 직전 열렸던 토론회의 한 대목이다. 이명박 당선인 측 이주호 교육담당이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자율화의 핵심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이 엉뚱하게 한국에선 이 정책을 선전할 호재가 됐다.

입학사정관제든 학력고사든 중요한 건 일류대 중심 서열체제와 선발이라는 구조다. 뭘로 선발해도 선발은 선발일 뿐이다. 반드시 그에 따른 배제가 일어난다. 미국은 서유럽에 비해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현저히 낮고, 부모의 지위가 대물림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특히 북유럽과 미국은 정반대의 특성을 보인다. 미국의 이런 특징은 바로 교육제도에서 기인한다고 <이코노미스트> 등은 지적한 바 있다. 오바마 같은 사례는 희귀한 경우고, 미국의 교육체제는 결국 중상층을 위한 신분대물림 장치에 불과하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일류대 중심 서열체제와 자율성으로 인해 빚어지는 선발, 고액 등록금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더욱 극단적인 서열체제다.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느슨한 서열체제다. 우리에겐 서울대와 연고대라는 압도적인 괴물이 있다. 이들이 자율성을 갖고 ‘엿장수 마음대로’ 학생을 선발하며 학교를 운영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난리가 날 것이다. 학력고사는 그나마 확실한 기준이라도 있다. 서울대 연고대가 자기들이 알아서 종합적으로 판단해 당락을 가린다면 탈락자가 수용할 리 만무하다. 입시철마다 변별력 문제로 교육판이 발칵 뒤집힌다. 각 대학이 ‘엿장수 마음대로’ 선발하게 되면 선발기준이 뭐냐고 난리가 날 것이다. 학교 운영 자율성의 경우는 당연히 고액등록금으로 귀결된다.

입학사정관제는 우리와 절대로 맞지 않는다

이미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각 대학에게 입시자율성이 주어졌다. 자율성이 있기 때문에 대학들이 국가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툭하면 강남 자녀, 특목고 특혜시비가 일어난다. 얼마 전에도 고려대에서 고교등급제 논란이 터져나왔다. 이것으로 한국 일류대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율성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있다. 한국의 오바마? 농담이다.

그러므로 입학사정관제는 우리와 맞지 않다. 설사 미국식으로 도입된다 해도 결국 미국식 양극화로 귀결될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미국식조차 못 되는 한국식 ‘개판 5분전’ 입학사정관제가 되어 툭하면 대입파동을 일으킬 것이다. 한국에서 대입 당락이 얼마나 첨예한 이슈인데 어떻게 이것을 대학이 ‘엿장수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몽상에 불과하다.

한국의 입시문제는 미국식 자율성으로는 절대로 풀 수 없다. 금융공황 때 필요한 것이 금융규제인 것처럼, 한국 교육공황에도 필요한 것은 입시자율화가 아니라 강력한 입시규제다. 이것은 작게는 대학들이 가난한 집 아이들을 차별하지 못하도록 규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학생선발 제도를 어떻게 국가차원에서 규제할 것인가로 연결된다.

과거 중학입시파동이 있었을 때 국가가 한 일은 경기중학교에 입시자율성을 주고 학생선발을 잘 하라고 권고한 것이 아니었다. 선발권을 일제히 몰수하고 평준화를 실시했다. 그러자 입시파동과 사교육비, 입시경쟁이 사라졌다. 이것이 우리가 참고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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