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10월 혁명이 필요하다
        2008년 11월 07일 09: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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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혼돈의 시기를 앞에 둔 진보 좌파의 상황은 어떠한가? 진보 좌파가 맞닥뜨린 시험과 도전은 무엇인가? 그것을 짚어보는 데에도 지난 번 혼란기의 경험들이 많은 참고가 된다. 그 때의 성취와 한계들을 살펴보다 보면, 지금 우리에게 비어 있는 것, 우리가 반드시 넘어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그럼 20세기 초 진보 좌파의 궤적은 어떠했는가?

    1. 지난 번 대위기 시대, 좌파의 궤적

    ① 민주주의 대중운동 – 국민국가를 확보하고 그 참여권을 쟁취하자

    진보 좌파의 밑바탕은, 언제나,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대중의 운동이다. 1차 대전이 발발한 그 때에 서구에는 지난 수십 년간 성장해온 강력한 민주주의 대중운동들이 존재했다. 우선 노동계급과 여성의 보통선거권 쟁취 운동이 있었다.

       
      ▲ 장석준 진보신당 서울 당원
     

    그리고 세계화 과정에서 확산되던 미숙련, 반숙련 노동자들을 기존의 직업노조가 아닌 새로운 노동조합(그 귀결이 곧 산업노조였다)으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이 운동은 전간기(戰間期)에도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고리들(가령 1930년대 미국)에서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거대한 흐름은 식민지, 반식민지 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이었다. 중국과 인도에서 수억 인의 해방 투쟁이 시작됐고, 이 흐름 안에 조선인들의 투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들 운동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들은 국민국가가 없는 곳에서는 그것을 확보하려 했고, 이미 그것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그 참여권(보통선거권, 노사 단체교섭의 보장 등)을 쟁취하려 했다. 지구 곳곳의 토착 민주주의 대중운동들은 “국민국가를 확보하고 그 참여권을 쟁취하라”는 명제로 수렴하는 모습을 보였다.

    ② 대안 이념의 상황 – 사회주의, 과학적이기보다는 종교적인

    그럼 100년 전의 이념적 상황은 어떠했는가? 서유럽에는 한 세대 이상에 걸쳐 사회주의를 신념으로 받아들인 무시 못할 수의 노동 대중이 존재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100만 당원이 그 상징이었다.

    그리고 ‘사회주의’ 하면 맑스, 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를 뜻했다. 아나키즘이 더 강력한 영향력을 펼친 스페인 같은 예외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제2인터내셔널의 사회주의가 지배했다.

    10월 혁명 이후에는 이제 더 이상 서유럽만이 무대가 아니었다. 코민테른의 세계 혁명 전망은 아시아에서, 라틴아메리카에서, 아프리카에서 과학적 사회주의의 새로운 신봉자들을 낳았다. 식민지 조선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당시 대안 이념의 수준은 그 신뢰의 강도에 비해 그렇게 높지 아니었다. 다들 미래 사회의 모습으로 막연한 국가사회주의 정도를 떠올렸다. ‘과학적’ 사회주의라고는 하지만 사실 대중에게 그것은 기존 종교를 대체하는 막연한 신앙에 가까웠다.

    『1844년 경제학 철학 수고』나 『독일 이데올로기』 같은 맑스(엥겔스)의 주요 저작들은 1932년에야 출판되었고, 그 이후에도 한 동안 제대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자본』조차 여전히 학문 저작보다는 선전 책자 정도의 대접을 받았다. 그람시나 알튀세르는 먼 미래에나 들어보게 될 이름들이었다.

    더구나 이 당시 사회주의에는 진화주의, 과학만능주의, 유럽중심주의의 쉰내가 물씬 났다. 모두 다 제국주의 세계화 시대에 부르주아 사회로부터 이어받은 것들이었다. 한 마디로 20세기 초의 좌파 이념은 유럽 계몽주의로부터 물려받은 짐이 너무 무거웠다.

    ③ 좌파의 양극화 – 전 지구적 비전과 국민국가 내 실천의 괴리

    20세기 초 위기의 시대에 좌파는 대분열을 경험했다.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분열이 그것이다. 흔히 이것을 혁명 노선과 개혁 노선의 분립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분열에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더 근본적인 측면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전 지구적 비전과 국민국가 내 실천 사이의 양극화다.

    ③-1. 최초의 전 지구적 변혁 비전의 등장과 쇠퇴

    유럽인들이 아직도 1914년의 심리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1917년에 레닌은 세계 혁명의 비전을 제시했다. 처음으로 전 지구적 위기에 맞설 전 지구적 변혁의 전망이 등장한 것이다.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계급 혁명과 식민지-반식민지 세계의 민족해방 혁명의 결합으로서 반제국주의 세계 혁명의 비전.

    10월 혁명의 그 순간, 이 비전은 러시아 국내의 민주적 대중운동과 결합해 불꽃을 튀겼다. 빵과 토지와 평화를 원하던 러시아 민중이 레닌과 볼셰비키당의 비전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으로서 전 세계인(유럽인이 아니라 참으로 인류 전체)에게 부각시켰다. 그 여파로,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세계 혁명 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곧바로, 전 지구적 비전과 민주주의 대중운동들 사이의 결합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이 드러났다. 10월 혁명 자체가 혁명 당-국가의 자기 방어 운동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구에서 코민테른 운동은 한 세대 이상의 역사를 지닌 각국 내 민주적 대중운동들의 다수를 쟁취하는 데 실패했다. 독일 혁명의 실패가 결정적이었다. 오직 중국과 같은 식민지, 반(半)식민지 세계에서만 괄목할만한 성공이 있었다.

    서구에서 코민테른 소속 정당이 자국의 민주적 대중운동에 깊이 뿌리내리게 된 것은 프랑스의 반파시즘 인민전선 운동이 거의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때에는 다시 정반대의 오류와 한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련=코민테른 지도부는 이미 10월 혁명의 전 지구적 비전을 포기하고 나치 독일로부터 소련 국가를 방어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반파시즘 인민전선 세력들에게는 자국 내 정치를 넘어서 국제적 반파시즘 전선을 형성할 비전도, 능력도 없었다. 이제 이들에게 전 지구적 비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파시즘을 격퇴할 기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③-2. 국민국가 내 개혁 정치의 실패

    서유럽에서 세계화 시기에 성장해온 토착 대중운동에 깊이 뿌리를 내린 것은 아무래도 관록 있는 제2인터내셔널 세대 정당들, 즉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었다. 물론 상당수의 젊은 세대는 코민테른 쪽으로 떨어져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의 주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을 굳건히 지지했다.

    오스트리아나 스웨덴에서는 아예 사회민주당이 전후의 새 세대까지도 성공적으로 흡수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은 이런 저력을 바탕으로 수도 비엔나에서 지방자치 사회주의 실험을 펼쳤다. 그래서 전간기 서유럽 좌파의 최대 성과였던 ‘붉은 비엔나’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성공이 곧 실패를 잉태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보통선거권 도입(대개 1차 대전 직후) 이후 국민국가의 정치에서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그 때부터 예외 없이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이들은 지속적인 국제 위기의 원흉이었던 금융 자본의 힘을 억제할 정치적 의지와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 때문에 영국에서는 1931년에 노동당 소속 램지 맥도널드 수상과 노동당이 정면으로 충돌하여 사실상 당이 한 차례 붕괴하는 상황까지 겪었다. 독일에서는 세계 최대의 노동자정당이라던 사회민주당이 실직 노동자들이 대안을 찾아 나치당으로 몰려드는 것을 맥없이 지켜보기만 했다.

    이 시기 역사에 대해 고전적 저작-『유럽 노동운동의 비극』-을 남긴 A. 스터름달은, 이후에 케인스주의라고 불리게 되는, 재정 팽창 정책이 이 당시 위기에 맞설 좌파 측의 대안이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냉정하게 보면, 상황을 정리해준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대혼돈기의 마지막 대사건인 이 전쟁으로 유럽의 과잉 축적된 자본의 상당 부분이 감가되고 파시즘을 지지했던 각국 대자본가들의 헤게모니가 흔들렸다. 오직 이러한 상황을 겪고 나서야 거대 자본은 사회의 압력에 일정하게 후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결코 개별 국민국가 수준의 개혁 정책들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었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전 지구적 비전을 갖추지 못한 국민국가 내 좌파 정치의 한계였다고 할 수 있다. ‘붉은 비엔나’는 결국 파시즘 앞에 무너졌고, 오직 스웨덴만이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던 바로 그 때부터 묵묵히 복지국가를 건설해나갈 수 있었다. 조국이 대륙의 인구 중심지보다는 북극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이렇게 놀라운 은총일지는 스웨덴인들 자신도 미처 몰랐으리라.

    ④ 대위기 시대의 최후의 승자 – 윌슨-FDR 비전

    이런 상황에서 지난 번 대혼돈기의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윌슨-FDR(프랭클린 D. 루즈벨트)’ 비전이었다. 우드로 윌슨이 미국의 1차 대전 참전 명분으로 노동조합 활동 보장, 민족자결권 인정 등을 들고 나왔을 때, 그의 구상은 10월 혁명의 왜소한 반영, 서툰 모방 정도로만 보였다. 더구나 이것은 미국 자체에서 곧바로 기각되고 말았다.

       
     

    하지만 윌슨의 비전은 루즈벨트의 뉴딜과 대서양 선언으로 부활했다. ‘윌슨-FDR’ 비전의 내용은 한 마디로 서구의 국민국가를 복지국가로 개편하고 식민지, 반식민지 세계에는 국민국가를 허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떠한 전 지구적 비전도 갖지 못했던 서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윌슨-FDR’ 비전에서 드디어 출구를 찾았다. 그리고 양심의 부담도 좀 덜었다. 코민테른 운동의 잔재인 각국 공산당들은 ‘윌슨-FDR’ 비전의 불철저함을 비판할지언정(1960년대 베트남 전쟁으로까지 이어지는 제3세계 민족해방혁명) 자신들만의 대안으로 그것과 경쟁할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그럴만한 대안이 없었다.

    이런 상태에서 우리 앞 세대의 인류는 그나마 최악의 ‘야만’은 피한 상태로 드디어 대위기의 시대에서 벗어났다.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새로운 종주국이 됐고, 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이 ‘해방’된 게 맞는지, 이것이 과연 ‘해방’인지, 새로운 물음을 던져야 했다. 그 물음은 그 다음 세대, 즉 1968년의 폭발 때까지 점점 무르익어갔다.

    2. 지난 번 대위기 시대와 비교해본 현재 좌파의 상황

    ① 21세기 대중운동의 상황 – 국민국가에 뿌리박으면서 동시에 그것을 의심하는?

    그럼 지난 번 대혼돈기와 비교하여 지금 전 세계 진보 좌파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단 민주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요구하는 대중운동은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성 요소가 크게 바뀌었다. 노동계급 운동으로는, 세계화 과정에서 특히 배제되고 차별받는 부분, 즉 비정규직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 실업자의 운동이 주목받고 있다.

    실질적 평등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와 요구도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또한 지난 세기 초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운동으로서, 생명의 자율성을 지키려는 생태운동이 등장했다. 식민지 민족해방운동은 전 지구적 정의를 부르짖는 남반구 민중운동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들 운동은 모두 각각의 국민국가에 뿌리박고 있다. 민중들은 저마다의 역사와 문화, 당면 과제들을 갖고 있고, 무엇보다도 국민국가 내의 정치를 주된 무대로 삼는다. 하지만 동시에 최근의 민중운동들은 국민국가를 넘어서거나 국민국가의 역량과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쟁점들을 제기한다. 이주 노동자 운동이 그렇고, 기후변화 대응 운동이 그러하며, 전 지구적 남북 격차에 대한 문제제기가 그러하다.

    한편 과거에는 세계화 과정에서 서유럽을 중심으로 강력한 노동계급 세력이 등장했었는데, 이번에는 비슷한 과정이 아직은 라틴아메리카 민중들 사이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어쩌면 라틴아메리카 좌파 집권 열풍은 지난 시대의 제2인터내셔널 운동에 견줄 수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물론 세계화 과정에서 남반구 곳곳의 새로운 인구가 산업 노동자로 편입되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공동의 정체성과 연대의식은 지난 번 세계화-위기 시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다. 많은 이들이 중국에서 계급투쟁이 폭발하리라 전망하거나 기대하지만, 이것은 여전히 예측하기 힘든 미래의 일로 남아 있다.

    ② 대안 이념의 상황 – 좌파의 다원주의

    대안 이념의 상황을 보면, 과거에 비해 훨씬 성숙한 것만은 분명하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는 어쨌든 우리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분명히 확인시켜주었다. 이제 낡은 국가사회주의에 연연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맑스주의가 국가 교리의 짐을 덜면 덜수록 이 전통에 속한 사상가들의 사고는 더욱 깊고 풍성해졌다. 또한 이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 비판가로서 맑스 외에도 T. 베블런, K. 폴라니 등의 이름들이 더 알려져 있다.

    게다가 여성주의, 생태주의, 탈식민주의의 풍부한 성과도 있다. 해방신학의 등장 이후 좌파운동과 종교 사이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좌파의 다원주의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다양성이 증대한 만큼 원심력도 강해졌다. 이제는 사회주의 교리가 기독교 신앙을 대체하던 지난 세기 초와 비슷한 이념적 응집력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마도 그런 식의 복고주의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성숙성의 대가다.

    허나, 그렇다고 해도, 좌파의 다양성을 일정한 방향으로 모아가는 노력은 필요하다. 무엇이 이러한 주축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은 우리 시대의 전 지구적 변혁의 비전을 묻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

    ③ 전 지구적 비전 – 아직은 부재

    지난 세기 초에 레닌이 제시했던 것 같은 전 지구적 비전은 지금 우리에게 없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자본 주도 세계화에 맞선 대안 세계화 운동을 이야기하고, 그 상징으로 ‘세계사회포럼’ 정신(‘포르투 알레그레’ 정신)을 들고는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각각의 국민국가 내에서 벌어지는 운동들의 교류 수준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리의 ‘4월 테제’(레닌이 러시아 민중들에게 자신의 전망을 최초로 제시한 문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허나, 대혼돈의 시기에 인류를 야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대신 문명의 새로운 단계로 이끌려면(“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진보 좌파는 반드시 전 지구적 비전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100년 전의 안타까운 경험과는 달리 이 비전을 각각의 국민국가 내에서 싹트는 민주적 대중운동들, 국민국가 내부의 정치와 효과적으로 결합시켜야 한다.

    아마도 다음의 세 가지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이 이루는 함수 관계가 새로운 전 지구적 비전의 밑바탕이 될 것이다.

    첫째, 어떻게 전 지구적인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것인가? 둘째, 그러면서 동시에 어떻게 남반구 민중들(물론 북반구 내의 남반구, 즉 배제되고 소외된 불안정 고용층을 포함한다)의 삶을 개선시킬 것인가? 셋째, 이 모든 과제를 위하여 북반구의 과잉 축적된 자본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혹은 사회에 환원시킬 것인가?

    ④ 국민국가 내의 개혁 – 케인스주의의 복귀로 충분한가?

    혹자는 비록 전 지구적 비전은 불분명하더라도 국민국가 내의 개혁의 여지는 100년 전에 비해 훨씬 풍부히 열려 있다고 답할지 모른다. 그 때에 없었던 게 우리에게는 있다, 케인스주의 정책 수단이 그것이다, 라고. 실제로 미국발 금융 위기가 닥치자 그나마 진보적이라는 전 세계의 내노라 하는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대안은 하나같이 케인스주의적 재정 팽창 정책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국가 주도 재분배 정책만으로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금융 자본에 대해 몇 가지 새로운 규제책을 마련한다고 해서 이들의 세력을 제압할 수 있을지도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이번에도 결국 해결은 정책가의 이성보다는 피 비린 내 나는 현실에서 나오게 되는 것은 아닌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어느 나라의 진보 좌파든 이 고약하고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2차 대전 이후 서구 국가들이 보편적으로 채택했던 국가 주도 정책 수단들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그것은 지금 상황에서는 분명히 부분적이고 단기적인 대책일 뿐이다. 우리는 이른바 케인스주의 + 몇몇 급진적 조치 식으로 ‘구조 개혁’을 상상하던 상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대목에서 지금 당장 지적할 수 있는 두 가지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이제는 국가기구가 아니라 민중들, 다양한 결사체로 조직된 민중들 자신이 위기 해결 과정의 주역으로 전면에 나서야 한다. 대중이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좌파의 지겨운 미사여구가 앞으로는 아주 실질적인 요청으로 다가올 것이다.

    전통적인 국가기구 외의 결사체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면, 시장과 국가의 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기존 사회과학의 시각도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어느 나라 좌파 정치 세력이든 이제는 국민국가 내의 정치에 뿌리박으면서도 동시에 그 경계를 넘나들고 더 나아가서는 스스로 해당 국민국가 자체의 변형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지금 차베스나 룰라가 보여주는 정치 활동 방향은 아마도 어떤 예행연습일지 모른다. 즉, 이후 세계 곳곳의 좌파 정치 세력이 보다 확대되고 치열한 형태로 반복해야 할 실천의 전조일 것이다.

    ⑤ 최후의 승자는?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는 이 시대에 누가 무려 한 세대 뒤의 일을 내다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난 세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더 없이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세상을 바꾸려는 거대한 운동이 없이는 최악의 ‘야만’을 막는 일조차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1차 대전은 그냥 내버려둬도 파시즘으로 치달았겠지만, 10월 혁명이 없었다면 ‘윌슨-FDR’ 비전도 없었을 것이고, 대위기 시대의 끝이 꼭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10월 혁명은 결코 그대로 반복될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10월’이 필요하다. 인간의 승리 ― 저, 사람들의 승리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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