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없어도 함께 할 수 있어”
    By mywank
        2008년 11월 05일 09: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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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30일 이곳에서 ‘첫 번째 로비농성’에 들어갔을 때, 잘 모르는 사람이 한명이 눈물을 흘리면서 저희들을 촬영하고 있었어요. ‘저렇게 울면서 어떻게 카메라로 찍나’ 걱정부터 들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수정이었어요”

    5일 오후 강남성모병원 본관 로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던 박정화 조합원은 자신의 모습을 촬영하고 있는 박수정 씨(26)를 소개하면서 이런 말을 던졌다. 박수정 씨는 박 조합원의 말이 쑥스러웠던지 계속 카메라 뷰파인더만 바라봤다.

       
      ▲촬영을 하고 있는 박수정 씨 (사진=손기영 기자)
     

    지난 9월 29일부터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이들의 모습을 비디오카메라에 담고 있는 박수정 씨는 다큐멘터리 제작에 관심 있는 20대 여성이다. 또 ‘미디 액트’란 단체에서 독립 다큐 강의를 들으며, 수료작으로 강남성모병원 문제를 다룬 영상물을 제작하고 있다.

    “2006년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했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쓰려졌었죠. 그 때는 너무 정신이 없었고, 강남성모병원에서 벌이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도 잘 몰랐죠. 당시 병원에 입원했던 게 이곳과의 첫 번째 인연이었어요”

    조합원들을 촬영하고 있던 박수정 씨가 카메라를 내려놓으며, 강남성모병원과 맺은 ‘첫 번째 인연’을 이야기 했다. 이어 2년 전과는 다른 일로 맺은 강남성모병원과의 ‘두 번째 인연’을 들려주었다.

    “지난 9월 29일 강의 시간에 선생님이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으로 촬영실습을 가라고 했어요. 수료작은 다른 걸로 생각하고 있어 그냥 현장만 찍고 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촬영만 하고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보냈죠.

       
      ▲사진=손기영 기자
     

    다음 날 조합원들이 첫 ‘로비농성’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병원 직원들과 마찰도 있었어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카메라만 들고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제 모습이 답답했어요. 그래서 눈물이 흘러 나왔죠”

    박수정 씨는 이날 이후로 30일 넘게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촬영 활동뿐만 아니라 병원 선전전에도 동참하고 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렇게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곳을 쉽게 떠나지 못할 것 같아요. 조합원분들이 열린 마음으로 대해주는 것도 있고, 이곳에서 제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그동안 이른 아침과 늦은 밤 농성장이 침탈당하는데, 그 때는 기자들이 없어요.

    누군가는 계속 여기 남아 병원 측의 횡포를 카메라에 담아야 해요.  또 어렸을 때 아버지가 병원에서 일하셔서, 병원은 제게 놀이터와 같은 친숙한 공간이었죠. 하지만 좋은 기억만 남아 있던 공간에서 이런 슬픈 일이 벌어지고 있는 점도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에요”

       
      ▲로비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을 촬영하고 있는 박수정 씨 (사진=손기영 기자)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에서 조합원들은 박수정 씨를 ‘영상 활동가’ 혹은 ‘그 밖에 조합원’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박 씨는 “영상 활동가보다는 ‘그 밖의 조합원’이란 별명이 더 좋다”고 말했다.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주는 표현이 부담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이 붙여준 박 씨의 별명처럼, 강남성모병원 사람들도 그를 ‘준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보통 강남성모병원 내에서의 촬영활동은 병원 보안요원들에게 제지받기 십상이지만, 박 씨의 촬영을 방해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또 이날 로비농성을 벌이던 천성자 조합원도 “우리처럼 ‘파란 조끼’만 입지 않았지, 수정이는 준조합원이에요”라며 박 씨에 대해 이야기 했다.

    “처음에 저를 기자로 알고 병동 선전전을 찍지 못하게 제지 했었죠. 선전전을 돌다가 제가 촬영하는 모습을 보고 수간호사 등이 ‘우르르’ 몰려와서 뭐라고 한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고분고분한 성격이 아니어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계속 항의했어요.

    이후 매일같이 강남성모병원 농성장에서 조합원들과 먹고 자고 선전전도 같이 벌이니, 병원 안에서 촬영을 해도 특별히 제지를 하지 않더라고요. 병원에서도 이제 저를 ‘이곳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했나봐요” (웃음)

       
      ▲강남성모병원 로비농성장의 모습 (사진=손기영 기자)
     

    박수정 씨는 보라색 비닐봉지 안에 담겨있던 6mm 비디오 테이프들을 꺼냈다. 이날로 ‘투쟁 50일째’를 맞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60분짜리 테이프 20개가 쏟아져 나왔다. 모두 합하면 1,200분 분량이었다.

    “기억에 남는 테이프는 지난달 7일 보신각에서 열린 ‘장투장 문제 해결을 위한 촛불집회’ 테이프에요. 사람도 없는 썰렁한 집회장에서 박종묵 조합원이 혼자 선전물을 나눠주던 모습을 찍은 영상이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있던 사진기자 한분이 ‘선전물 나눠주는 게 그림이 된다‘는 말을 박종묵 조합원에게 아무생각 없이 던졌어요. 그 때 박 조합원의 난감한 표정을 카메라로 봤어요. 가슴이 아팠죠” (한숨)

    박수정 씨는 오는 12월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를 담은 수료영상 제작을 마칠 예정이다. 이런 그에게 “한 달 뒤 영상제작이 끝나면, 농성장을 떠날 생각”이냐는 질문을 던지자, 이렇게 답했다.

    “그동안 카메라는 조합원들과 만날 수 있는 ‘다리’가 되어 주었는데, 이제는 카메라 없이도 조합원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료작 제작이 12월에 끝나고 여기에서 카메라를 쓸 일이 예전보다 적어져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아요. 그동안 조합원들과 함께 병원을 돌며 선전물도 나눠줬고…. 제가 할 수 있는 어려가지 방법으로 앞으로도 조합원분들과 연대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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