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더 많은 운동 필요한 때”
        2008년 11월 06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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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락 오바마 미 민주당 상원의원이 제4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8세기 말엽 아프리카 출신 노예들의 육체노동으로 건립된 백악관이 문을 연 지 2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의미에 대해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불과 50년 전만 해도 흑인이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군 입대를 제한받았던 미국에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놀라운”(스페인 <엘 파이스>) 사건이자 “미국인들이 노예제와 인종분리의 쓰라린 과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역사적인 결정”(영국 <가디언>)이라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내 주류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는 “지금은 잠시 멈추고 기본적인 사실을 곰곰이 생각해볼만 한 때”라고 운을 뗀 4일자 사설에서 “백인 여성과 흑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나 미국의 권력과 부의 흐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부모에게 양육된, 버락 후세인 오바마라는 이름의 미국인이 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인종격차를 메우려는 미국의 기나긴 투쟁이 새벽을 맞았다”고 강조했다.

    주요 진보매체들도 성향에 따라 약간의 온도차를 보이긴 했지만 일단 크게 환영하는 모습이다.

    리버럴(liberal) 경향의 인터넷 뉴스 사이트 <허핑톤포스트>의 창시자 아리아나 허핑톤은 4일 밤(현지 시각) “당신이 찍은 후보가 오늘밤 승리하지 않았다고 해도 (오바마의 승리를) 축하할 이유가 있다”며 “유권자들이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길 원했기 때문”이라는 글을 올렸다.

    “공포로부터의 탈출”

    7년이 넘는 부시 대통령의 실정에 지칠대로 지친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허핑톤은 또 “미국이 보다 공정하고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여정에서 오늘밤은 또 하나의 이정표”라며 “당선자가 케냐인 아버지와 캔사스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미국이 공포로 움직이는 나라라기보다는 희망과 약속에 의해 추동되는 나라임을 투표결과가 다시금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04년 선거는 바로 공포의 힘이 위력이 발휘한 선거였는데 몇 번의 선거에서 유용하게 써먹었던 칼 로브의 이 전략을 이번에도 그대로 답습한 결과 맥케인이 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허핑톤은 오바마의 미국이 “우리가 상상해왔던 젊은 국가, 낙관적인 국가, 위험을 무릅쓰거나 큰 꿈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라”가 될 것이라며 희망으로 가득찬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더 네이션>의 윌리엄 그레이더는 “우리가 이 중요한 승리의 상속인이긴 하지만 이 승리가 우리 것은 아니”라며 “월계관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시민권을 위해 싸운 희생자 모두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버락 오바마는 이미 미국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며 “킹 목사처럼 그는 위대하고 용감한 스승”이라고 높게 평가했다.

    인종주의에 대해 그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인종주의를 써먹는 공화당의 ‘남부 전략’은 끝장이 났다”며 “미국인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변화는 우리가 아직 완전히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미국인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전도유망한 순간에 살아있는 것을 자축하자”고 했다.

    “사민주의는 아니지만, 예전보다 나아질 것”

    <얼터넷(Alternet)>은 오바마 승리가 확정된 직후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 활동가들을 인터뷰했는데 여기서 마이클 래트너 헌법권리센터(CCR) 소장은 “역사적”이라는 평가를 내리면서도 미국 내 진보진영의 역할이 끝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래트너 소장은 “오바마가 진보주의자(progressive)는 아니지만 부시나 매케인보다는 확실히 더 리버럴(liberal)하다”며 “그는 부자들에게 간 막대한 부의 일부를 재분배할 것이다. 이것이 사민주의는 아니겠지만 예전보다는 나아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현재의 경제위기로 인해 오바마가 이런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이지만 시민들이 압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늘리겠다는 오바마의 약속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지적한 그는 오바마가 지금의 전쟁을 끝내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래트너 소장은 또 “오바마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전쟁, 고문, 영장없는 감청 등 전쟁범죄에 대해 수사할 특별검사를 임명해야 한다”면서 “요약하면 오마바는 기본권과 침략전쟁 금지가 슬로건만이 아니라 행동지침이 되는 문명국으로 미국을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헐리우드 배우 존 쿠삭은 “오바마가 이라크 점력의 기반을 허물어뜨리기 시작하길 바란다”며 “또 기업적 이해를 차단하고 돈을 미국의 인프라와 민중들에게 재분배하길 원한다”고 언급했다.

    <Z Net>에 실린 테드 글릭의 글 “민중의 승리인가”는 보다 냉정한 분석을 싣고 있다. 40년 넘게 사회운동을 해오고 있는 이 노장 활동가는 오바마와 민주당의 “선거 승리는 확실히 축하할 만한 것”이며 “1980년대 이래 공화당, 그리고 전반적으로 연방정부를 지배해온 전쟁광, 슈퍼 제국주의자, 꼴통 우파인 네오콘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것은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글릭은 또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확실히 역사적이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이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 민중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의 중요한 지표”라고도 했다.

    “민주당 정부에서 근본적 변화 없다…역사가 우리를 부른다”

    하지만 그는 민주당이 연방정부를 인수하는 것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릭은 오바마가 선거운동 마지막에 빌 클린턴 집권기를 모델로 삼겠다고 공언한 것을 예로 들며 그의 한계를 지적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추진하고 금융 규제를 완화한 게 누구며 의료시스템에서 보험회사들의 힘을 키워준 게 누구냐는 것이다. 클린턴 정부 마지막 해인 2000년에 미국의 소득불평등은 1920년대 이후 가장 높았고 이라크 민간인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격이 자행되던 때도 다름 아닌 클린턴 정부 시절이었다.

    글릭은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변화는 민주당이 집권했다고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것은 공화당의 패배가 생태, 고용, 부채와 모기지 경감, 지구 온난화 대응, 청정 에너지, 보편적인 건강보험, 평화와 정의의 외교정책 등을 위한 대중운동의 발현으로 이어지고 개별적인 진보주의자들에 의해 풀뿌리 차원의 조직이 계속될 때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릭은 지금은 한 마디로 더 많은 운동이 필요한 때라며 “역사가 우리를 부르고 있다. 그 부름에 응답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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