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이 될 것인가, 경주가 될 것인가?
    2008년 11월 03일 01: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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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둘러싸고 홍역 겪고 있는 경주

중저준위방폐장 예정부지로 경주가 선정된 지 이제 3년이 지났다. 2005년 경주, 군산, 영덕, 포항 등 4개 지역에서 진행된 방폐장 주민투표는 주민투표 시행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다. 공무원들의 투표 개입 논란, ‘3000억원 + 알파’라는 지역지원금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방식 등이 지적되었고, 이러한 우려는 40%에 이르는 부재자투표 신고율 등 현실로 나타났다.

   
  ▲ 경주시가 지난 2005년 중저방폐장 부지로 선정되자 시민들이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89.5%에 이르는 경주지역주민들의 높은 찬성률은 이러한 문제를 일순간에 덮어버렸고, "20년 숙원사업의 해결", "성숙한 시민의식의 개가"이라는 이름으로 방폐장 주민투표는 훌륭한 갈등 해결 사례로 선전되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경주 방폐장은 어떤 국면을 맞고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주는 아직도 방폐장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투표 직후 지역지원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던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위치를 둘러싼 논란으로 얼마 전까지 방폐장 유치활동을 진행하는 이들이 경주 시내지역과 동경주 지역으로 나뉘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3000억 원 이외의 유치지역사업비를 확정하는 과정에서 지역내 논란, 방폐장 유치시 지자체가 부담해야할 양성자가속기건설 분담금 1604억 원의 정부 지원을 둘러싼 논란, 방폐장을 관리하는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 본사선정을 둘러싼 논란 등 3년 내내 방폐장을 둘러싼 지역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다양한 사안을 둘러싸고 집회, 시위, 플랭카드 부착, 지역내 방송선전 등 20년 동안 방폐장을 둘러싼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은 채 경주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혼란은 모두 방폐장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정부의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경주 방폐장의 공식 명칭이 ‘월성원전환경관리센터’로 지정된 것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방폐장을 관광도시 ‘경주’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거나, 핵폐기물, 방폐물과 같은 문제의 본질은 철저히 감추어져야할 대상이다.

반면 경주 방폐장은 끊임없는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봉’으로 모두에게 각인되고 있다. 애초 방폐장 유치조건의 하나로 명시되어 있었던 양성자가속가 건설분담금을 정부에 요구하거나, 유치조건에 들어가지 않았던 방사성폐기물관리공단이 경주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방폐장 건설을 반대하겠다는 요구들은 애초 방폐장을 유치했던 이들이 방폐장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이러한 요구는 핵발전소를 둘러싼 다른 지역에도 널리 퍼져 얼마 전 있었던 고리핵발전소 1호기 수명연장논란에서는 경주의 사례가 언급되면서 직접적인 지원이 약속되기도 하였다.

‘3000억 학습효과’ 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지역 혐오시설 건설에 대해 지역지원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핵발전소처럼 가동 중 위험이 상존해 있거나, 핵폐기물처럼 오랜 기간 보관으로 인해 받게 될 물질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은 매우 구체적이고 넉넉하게 상정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해당 혐오시설이 반드시 필요한 국가단위, 지역사회 단위의 합의가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아직 우리는 핵발전과 같은 많은 논란에 휩싸인 기술이 우리에게 적합한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치지 못했다. 이는 서구 유럽이 체르노빌 사고를 전후로 국민투표 등 사회적 논의과정을 거쳐 탈핵발전 정책을 선택한 것과 분명히 다른 점이다.

그들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결정한 탈핵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기후변화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사전 포석이었다. 기술적인 한계로 풀지 못하고 있는 핵폐기물 문제, 언제나 위험성을 안고 있는 대형사고 위험성, 금세기가 가기 전에 끝나버릴 우라늄 매장고 등은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제기된 문제점이었고, 이를 종합한 결론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판단의 기준은 오로지 ‘지역지원금’이었다. 부안 방폐장 문제가 불거졌을 때 위도 주민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것 중의 하나도 ‘3000억 직접지원을 둘러싼 논란’이었고, 주민투표 방식으로 방폐장 부지를 결정하기로 한 이후 가장 먼저 만든 법도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이었다. 주민투표가 진행되는 내내 지역내 쟁점도 안전성이나 적합성이 아니라 ‘지역지원으로 인한 혜택’이었다.

중저준위핵폐기물은 처분되고 최소한 300~400년 정도 생태계로부터 격리되어야 하는 물질이다. 300~400년을 가야할 국가의 정책이 마치 시장판의 흥정처럼 ‘얼마면 되는가?’라는 논의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 이제 논의를 시작해야할 고준위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 문제가 있다.

헛돌고 있는 고준위핵폐기물 논란

중저준위핵폐기물과 달리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복잡하다. 우리나라 고준위핵폐기물은 대부분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로 처분시 최소 1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하는 등 방사성의 준위가 높고 관련 기술 연구가 아직 미흡하다. 또한 이를 재처리할 경우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이 나오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핵발전소에 보관중인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고가 부족한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발표에 따르면 2016년이면 임시저장고가 포화되기 때문에 이전에 사용후핵연료를 중간저장하기 위한 시설을 건설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핵발전소 운전중지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은 구체적으로 부지를 선정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논란이 불붙을 경우 과거 방폐장 문제로 몸살을 앓았던 지역은 또다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문제를 앞두고 지난 4월, 정부와 원자력계, 시민사회 등은 국가에너지위원회를 통해 ‘사용후핵연료 문제 공론화’를 위한 권고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 권고보고서는 사용후핵연료 문제에 대해 과거와 같이 일방적인 정책추진(DAD, Decide-Anounce-Defense)이 아니라, 문제를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공신력있는 논의기구를 만들어 사회적인 논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이 권고보고서가 나온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고준위핵폐기물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한발도 진행되지 못했다. 고준위핵폐기물 문제가 부안처럼 대규모 지역주민들의 반발과 혼란으로 이어질지, 경주처럼 ‘돈’이면 갈등도 해결된다는 ‘3000억 학습효과’를 재각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아직 모범사례를 찾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거와 같은 방식의 선택을 한다면,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두고두고 정부와 우리 모두의 짐이 될 것이 분명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적 논의의 전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매번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루고도 교훈은 남지 않는 구태의연함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고준위핵폐기물 공론화는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날 기회이다. 이 기회를 활용할지, 아니면 과거의 악순환에 빠져 있을지는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판단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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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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