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원평가, 실효 없는 교사 마녀사냥일뿐
        2008년 10월 29일 03:00 오후

    Print Friendly




    황당한 일이 있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8일에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입시경쟁 조장부’인 교육부가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내놓는다는 것부터가 황당하긴 하다. 여기엔 그동안 많은 지적을 받았던 일제고사, 자사고, 학교정보 공개 등이 들어 있다.

    여기까진 황당하긴 한데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라 오히려 황당하지 않은, 마치 화장실 안에 오래 있으면 썩은 내를 못 느끼는 것처럼, 그저 그렇게 느껴지는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핵심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 이번 사교육비 대책에 포함됐다. 바로 교원평가다. 교원평가가 사교육비 대책이란다. 이것이 이번에 새롭게 대두된 황당함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도 2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교원평가를 강조하며 공교육 내실화를 이루겠다고 했다.

    교원을 평가하면 사교육비가 줄어든다? 공교육이 내실화된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물론 어떤 논리인지는 이미 알려져 있다. 학교가 제 역할을 못해 소비자가 사교육으로 몰린다. 바로 교사가 아이들을 제대로 못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사를 평가해 경쟁시키면 교사가 제대로 교육해, 공교육이 내실화되고, 사교육이 사라질 거란 논리다. 

    공교육 붕괴가 교사탓?

    한국 교육소비자가 원하는 건 자기 자식이 1등해 1등 대학에 가는 것이다. 모두가 1등을 원하므로 극렬한 경쟁이 일어난다. 이 구조를 교사가 만들었나? 교사를 평가하면 이 구조가 사라지나?

    천만에. 경쟁구조가 더 심화될 뿐이다. 일제고사로 학생평가, 교원평가로 교사평가, 정보공개와 학교선택제로 학교평가가 이루어지면 초중등 과정은 평가의 트라이앵글에 갇히게 된다. 그 결과는 파멸적인 경쟁이다.

       
      ▲한 학생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학생은 학생끼리, 교사는 교사끼리, 학교는 학교끼리 ‘미친 듯이’ 경쟁하게 된다. 남는 것은 참담한 폐허의 학교뿐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을 상대하는 교사는 절대로 대한민국의 모든 아이들을 1등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교원평가를 해도 교사는 절대로 수요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

    지금 당장 모든 교사의 가르치는 능력이 1만 배 향상된다 해도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 1등은 언제나 한 명일 뿐이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교사의 보편교육은 특정한 아이를 1등으로 만드는 데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아무리 교사가 잘 가르쳐도 남을 이기기 위해선 남이 받지 못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교육 수요는 영원하다. 평가로 경쟁구조를 강화하면 입시경쟁이 심화돼, 사교육 수요가 더 늘 뿐이다.

    정신병자들의 마녀사냥

    여기서 조심할 것이 있다. 교원평가를 한다고 하니까, 마치 한국의 교사들이 그 이전엔 평가를 받지 않았던 것처럼 생각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교사들은 이미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평가를 신뢰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전에 교사들은 관리자에 의한 평가를 받았다. 최근 논의되는 교원평가는 거기에 수요자에 의한 평가를 덧붙이자는 것이다. 관리자에 의한 평가는 부적격 교사를 거르는 데도 실패하고, 학교를 신뢰할 만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도 실패했다. 그러면 수요자들은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한국의 교육수요자들은 한 마디로 ‘정신병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교육수요자들의 정신병을 보여주는 지표는 사교육비의 추이다. 사교육비가 커질수록 정신병도 깊어진다. 바로 ‘1류병’이다.

    학원은 교육기관이 아니다. 그곳은 입시교육의 장일 뿐이다. 한국 수요자들은 학원을 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친다. 즉 한국의 교육수요자들은 교육을 원하지 않는다. ‘입시교육’을 통해 ‘1류 집착’을 만족시키길 원할 뿐이다. 학생인권을 무시하는 스파르타식 입시전문 학교가 등장하면 수요자들은 1류학교가 나타났다고 환호한다. 이런 것이 한국의 정신병적 학교평가의 모습이다.

    학원과 학원형 학교를 최고로 여기는 정신질환자인 한국 수요자들이 교사를 평가하면 학교가 정상화된다는 것이 교원평가 주장의 황당함이다. 관리자에 의한 평가 이상으로 수요자들의 평가는 학교를 파괴할 것이다. 결국 학교와 교사는 사라지고 학원과 강사만 남는다.

    한국 교육수요자들의 학교에 대한 불만은 세계 최고다. 그들의 탐욕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절대로 특정인의 자식을 1등으로 만들어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불만은 계속 된다. 수요자들은 그 불만을 교사탓으로 돌리고 있다. 마녀사냥이다. 경쟁구조와 탐욕이 빚어낸 불만을 교사에게 경쟁을 시키는 것으로 풀겠다는 이 미친 소동 속에서,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할까? 

    무엇보다도 먼저 정신병부터 고쳐야 한다. 한국인의 1등 집착증이 만악의 근원이다. 1등 집착은 1등 학교 서열체제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학교를 평준화해야 한다. 학교서열화는 한국인을 영원히 정신병자로 만든다.

    요즘 중학교 평준화 지키기 싸움이 진행되고 있다. 국제중 때문이다. 중학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 평준화를 되찾아야 한다. 그 다음 대학을 서북부 유럽처럼 평준화시켜야 한다. 그곳엔 입시경쟁이 없다. 이런 구조가 되면 한국인의 정신병도 사라질 것이다.

    핀란드에선 성적 경쟁을 하지 않지만 학업능력은 세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교사들의 능력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핀란드는 교사들을 평가하며 닦달하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교사들을 지원했다. 교사들이 잡무를 보지 않게 하고, 담당할 학생수를 줄여주고, 교사의 권한을 극대화했다. 우리처럼 교장이 관료적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도록 했다. 그러자 교사의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능력이란 아이들을 전반적으로 잘 가르치는 능력이지, 어떤 특정인을 1등으로 만들어주는 능력이 아니다. 다시 반복하지만, 그곳엔 입시경쟁, 1등 경쟁이 아예 없다.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평가와 경쟁의 압력에서 벗어났을 때 오히려 더 질 좋은 교육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부적격 교사 문제는 학생회와 교사회의 일상적인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아이들을 전반적으로 잘 가르치는 것은 필요 없고, 내 자식만 1등하길 바라는 수요자들의 정신병적 탐욕이 계속되는 한 교원평가를 천년만년 해도 교육붕괴는 계속 된다. 

    교원평가는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특징짓는 말이 구조조정과 민생파탄이다. 교원평가는 반드시 구조조정으로 연결된다. 그리하여 파탄을 심화시킨다. 지금은 성과급 차등지급 정도에서 그치지만 장차 연봉제, 더 나아가 교직 유연화로 이어질 것이다. 평가를 통해 서열이 발생하면 그에 따른 차등화를 피할 수 없다.

    이것은 한국 사회 유연화를 가로막는 마지막 보루 중의 하나인 교사집단의 해체를 의미한다. 전교조도 약화될 것이다. 노동유연성 정도가 더 높아지는 것이다. 국민들이 ‘내가 당한 구조조정 너흰 왜 안 당하느냐’며 ‘다 죽자’ 물귀신 작전으로 나가면 공멸일 뿐이다.

    오히려 정규직 교사집단을 발판으로 한국사회 노동의 안전성을 다시 회복할 논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안전한’ 노동 부문마저 해체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이것은 결국 국민 스스로에게 돌아올 부메랑이다. 구조조정의 전면화는 노동의 지위를 하락시켜 모든 국민의 삶의 질을 압박할 것이다.

    즉 교원평가는 교육도, 인간으로서의 삶도 공격하면서, 1등 탐욕에서 비롯된 학교불만을 교사 마녀사냥으로 풀어보겠다는 정신병자들의 카니발이다. 닥쳐 올 것은 파멸뿐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