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000V 위에 외침은 같았다
    By mywank
        2008년 10월 29일 05:23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금 너무 추워요. 강바람이 불면 송전탑이 흔들려서 솔직히 무섭네요. 그런데 ‘자본의 칼바람’과 싸우고 있는데, 이정도의 바람은 이겨 내야죠”

    서울의 아침기온이 영상 8도로 내려간 29일 오전, 한강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 둔치에 설치된 한전 송전탑 40m 부근에서 지난 15일부터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인근 콜텍 지회장에게 전화통화를 시도했다. 쌀쌀한 강바람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 위치한 콜트 콜텍-하이텍RCD 고공농성장 (사진=손기영 기자)

     
       

      ▲송전탑 40M 상공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혜진 하이텍RCD 지회장(왼쪽)과 이인근 콜텍지회장 (사진=손기영 기자)

     

    “제가 있는 송전탑에 154,000V의 전류가 흐르고 있어요. 얼마 전에 비가 많이 왔는데, 혹시나 농성을 벌이다 감전이 될까봐 한숨도 자지 못 했어요. 또 비가 올까 걱정부터 되네요”

    지난 15일부터 전국금속노조 콜트․콜텍 지회와 하이텍RCD 코리아 지회는 ‘위장폐업․정리해고 철회’, ‘법인분리․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이곳에서 ‘공동 투쟁’을 벌이고 있다.

    고공농성에서 삭발 그리고 단식으로

    이인근 콜텍 지회장과 함께 김혜진 하이텍RCD 코리아 지회장도 송전탑 40m 상공에 올라가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으며, 이들은 지난 24일 송전탑 위에서 삭발을 한 뒤 단식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주)콜트․콜텍은 각각 전자기타와 통기타를 만드는 회사로써, 박영호 씨가 두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사측은 지난 2008 8월 31일과 2007년 7월 10일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평 콜트공장과 대전 콜텍공장을 폐업시키고 노조 조합원들을 정리해고 했다.

    부평 콜트공장에서는 전체 147명의 노동자 중 조합원 30명(이중 19명은 2007년 4월 해고됨) 전체가 정리해고 되고, 나머지 117명의 비조합원들도 ‘희망퇴직’ 형식으로 회사를 떠나게 됐다. 또 대전 콜텍공장에서는 83명의 노동자 모두가 정리해고 되었다.

       

      ▲송전탑 아래에 배치된 전경들 (사진=손기영 기자)

     

    이에 콜트․콜텍 지회원들은 사측이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위장 폐업’을 단행했다고 주장하면서 투쟁을 벌이고 있으며, 현재 사측은 생산시설을 인도네시아 콜트공장과 중국대련 콜텍공장으로 모두 이전시킨 상태이다.

    노조탄압을 위한 ‘위장폐업’, ‘법인분리’

    (주)하이텍RCD 코리아(사장 박천서)는 모형비행기․자동차의 무선 조종기를 만드는 회사로써, 지난 2002년 임금인상 교섭에서 노사갈등을 겪은 뒤, 2003년 설을 앞두고 노조 조합원 5명을 정리해고 했다.

    이어 사측은 2008년 1월, 이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이 난 뒤, 이들 중 4명(김혜진 하이텍RCD 지회장 복직 거부)을 다시 복직시켰으나, ‘법인 분리’라는 방법을 통해, 복직자 4명을 포함한 노조 조합원 13명 전원을 신설법인으로 전적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조합원 13명이 ‘신종 노조탄압’이라 주장하며, 자본금 5천만 원의 신설법인인 (주)HN&M 프로덕션으로의 전적을 거부하자, 지난 9월 1일 이들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한 상태다. 한편, 지회 조합원들은 2002년부터 시작된 사측의 ‘CCTV 감시’ 등으로 인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겪고 있으며, 2004년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산재판정을 받았다.

    이날 오전 두 지회장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송전탑 아래에는 관할 소방서에서 설치한 대형 에어매트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경찰과 한전관계자 10여명이 현장을 감시하고 있었다. 또 바로 옆에는 전경버스 2대와 현장지휘관이 타고 있는 검정색 ‘지프’도 볼 수 있었다.

       

      ▲한 조합원이 송전탑 위 농성장으로 필수품을 보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마포경찰서 관계자는 “노동조합 쪽에서 지난 15일부터 송전탑에 올라가 농성을 벌이고 있는데, 집회신고는 16일에 했다”며 “15일 미신고 집회를 벌인 부분이 문제가 되고, 지회장 2명과 어제 저녁 송전탑 위로 올라간 조합원 1명이 내려오는 데로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 하겠다”고 밝혔다.

    송전탑 아래에는 두 지회의 농성천막도 마련되어 있었고, 20여명의 조합원들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고, 지지 방문한 금속노조 관계자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경찰이 사다리 치워 내려오지도 못해

    “지회장 두 분의 건강이 안 좋아져, 어제 저녁 119 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송전탑 위로 의사 한분이 올라갔어요. 두 지회장이 얼마 전부터 구토와 설사증상이 심했는데, 진찰 결과 단식으로 인해 혈당수치가 낮아졌다고 하네요. 날씨도 점점 추워지는데 걱정 되네요.

    진찰 후, 남성 조합원 한 분이 고공농성장에 바람막이를 설치하려고 올라갔어요. 그런데 순간 경찰과 한전 직원들이 송전탑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철거해버렸어요. 그래서 그 조합원은 아직까지 송전탑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어요”

    송전탑 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던 정은주 하이텍RCD 코리아 부지회장의 입에서 한숨이 세어 나왔다. 정 부지회장은 현장의 상황을 설명하며, 농성장을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 있는 송전탑으로 정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송전탑 아래에 한전 측에서 설치한 ‘경고 피켓’이 있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곳은 콜트․콜텍 본사가 있는 등촌동과 가깝고, 박천서 하이텍RCD 사장이 살고 있는 서빙고동과도 멀지 않죠. 또 저기 국회의사당도 바로 보이잖아요. 그래서 여기에 농성장을 마련하게 되었죠”

    한편, 농성장 천막 입구에 앉아 연신 담배를 피고 있던 장석천 콜텍지회 사무장이 기자에게 다가와, 억울한 심정을 이야기 했다.

    “지난 92년 대전 콜텍공장이 생겼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적자가 없었어요. 또 부평 콜트공장도 2006년 딱 한 번만 적자가 있었고 지금까지 모두 흑자를 기록했어요. 박영호 사장이 ‘회사가 어렵다’,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국내공장을 폐업시켰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이렇게 회사가 잘나가고 있는데…”

    매년 흑자 기록해도 회사는 어렵다?

    그의 말처럼 부평 콜트공장은 지난 1997년부터 2005년까지 연속 순이익(흑자)을 기록했으며, 누적 순이익은 191억원에 달한다. 또 한번도 적자를 내지 않은 대전 콜텍공장도 2006년 66억, 2007년 7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어 정 씨는 박영호 콜트․콜텍 사장의 ‘노조 혐오증’에 대한 일화를 들려주며, 박 사장의 국내공장 폐업시도가 노조를 탄압하려는 ‘위장 폐업’ 이라고 강조했다.

       

      ▲송전탑 아래에서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이고 있는 조합원들 (사진=손기영 기자) 

     

    “2006년에 대전 콜텍공장에 노조가 생겼어요. 노조가 생기기 전 박 사장이 한달에 한 번씩 대전공장에서 내려와서 ‘콜트와 다르게 노조가 없으니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좋아했어요. 하지만 노조가 생긴 뒤로는 회사를 찾지 않고 회사 옆 톨게이트에서 회사관계자를 만나 업무를 지시해 ‘톨게이트 박’이라고 불려졌어요.

    ‘톨게이트 박’사장 "지랄같은 노동법 때문에"

    이후 노조가 남녀 노동자들의 임금차이 문제와 관련해, 논산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법정에 선 박 회장은 ‘지랄 같은 노동법 때문에 법정에 섰다’는 말을 하며 불만을 표시했죠. 또 지난 8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노조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는 말을 하며 ‘노조 혐오증’을 드러냈죠. 회사경영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노조가 싫어서 회사 문을 닫은 거예요”

    장석천 콜텍지회 사무장은 “부평 콜트공장의 상황도 알려 주겠다”며, 방종운 콜트지회장을 전화로 연결해 주었다.

    “87년 부평 콜트공장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가 일어난 뒤, 87년과 93년 두 번 노조가 깨지는 일이 벌어졌어요. 그 때도 박 사장이 ‘회사가 어렵다’고 하면서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강요했어요. 사실 당시에도 회사는 19억이라는 흑자를 기록했죠.

    매년 시무식이나 종무식 때 ‘노조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 ‘아직도 노조를 탈퇴하지 않고 있나’는 박 사장의 말을 들어야 했어요”

       

      ▲농성장을 찾은 정경섭 진보신당 마포당원협의회 위원장 (사진=손기영 기자)

     

    방금 전까지 송전탑 아래에 있었던 정은주 하이텍RCD 코리아 부지회장이 농성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CCTV’를 회사 곳곳에 설치하면서 지회 조합원들을 감시했던 사측의 ‘노조 탄압’ 사례를 들려주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부터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죠. 정문, 운동장, 작업장, 식당에도 모두 CCTV가 있었어요. 2002년 임금인상 협상이 결렬된 이후부터, 사측이 회사 곳곳에 CCTV를 설치했어요. 저희들을 지켜보던 사측 관계자가 화면을 바로 달려와서 호통을 치곤했어요.

    그래서 아침에 출근하지 마자, CCTV 렌즈에 테이프를 붙이고, 신문지를 이용해 작업 공간 주변에 가림 막을 만들었죠. 하지만 다음 날이면 모두 제거되었어요. 사측의 감시에 항상 마음이 초조해지고 불안해서 ‘우황청심환’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작업을 못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결국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가지신 분들이 생겼어요”(한숨)

    회사 곳곳의 CCTV로 노조 감시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 하는 정은주 부지회장의 표정에는 초조함과 불안감이 가득했다. 정 부지회장은 2008년 복직 후, 지난 9월 초 다시 사측으로부터 정리해고 통보를 받은 심경을 이야기 했다.

    “지난 2003년 조합원 5명이 정리해고 된 뒤, 5년이 지난 뒤에야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이 났어요. 기대는 안했지만, 사측에서 저희들을 갑자기 다시 복직시켰죠. 그런데 얼마 안가 ‘법인 분리’를 통해, 거기로 전적하지 않으면 조합원 13명 전원을 정리해고 시킨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손기영 기자

     

       
      ▲농성을 벌이고 있는 송전탑 뒤로 성산대교가 보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저희들은 반대했어요. 경영합리화를 위한 법인분리가 아니고, 노조 탄압을 위한 법인분리였기 때문이에요. 신설법인으로 가면, 저희들이 나중에 정리해고가 돼도 하이텍RCD와는 상관없는 문제가 되거든요. 회사는 그걸 노렸던 거예요”

    거대자본에 맞서기 위해선 ‘공동 투쟁’으로 연대해야

    이날 콜트․콜텍, 하이텍RCD 농성장에는 지지방문이 이어졌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현장을 찾았으며, 정경섭 진보신당 마포당원협의회 위원장도 신준호 마포당원협의회 집행위원장, 인터넷 카페 ‘함께 맞는 비’ 운영자인 ‘희망(닉네임)’과 함께 농성을 벌이는 조합원들 격려했다.

    농성장을 떠나기 전, 40m 송전탑 위에 올라가 있는 김혜진 하이텍RCD 코리아 지회장과 잠시 전화통화를 나눴다. 김 지회장은 서로 다른 사연을 가진 두 개별사업장이 ‘공동 투쟁’을 결심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본의 힘이 세고 포악해요. 하지만 개별 사업장들이 혼자서 맞서기 힘겨운 부분이 있죠. 그래서 두 사업장이 힘을 합쳐서 함께 농성을 벌이기로 했어요. 자본과 맞설 힘을 배가시키기 위해서요. 서로 사연은 다르지만, 외침은 하나죠. 장투장 간에 연대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저희 모습이 장투장 간에 힘을 모을 수 있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