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교육상 받아야 할 한국 언론
    2008년 10월 27일 10: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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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여러 언론에서 가히 획기적인 연구성과를 보도한다. 학교가 학생성적을 좌우한다는 기사다.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교육개발원 김양분 박사팀이 23일 내놓은 ‘학생들의 학업성취 성장에 관한 중학교 효과’ 논문에 따르면 2005년부터 시작된 한국교육종단연구 결과 학생의 성적 향상에 학교가 미치는 영향력이 90% 가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 <연합뉴스>

90%란다. 이쯤 되면 학교가 학생의 성적을 결정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뒤이어 섹시한 제목들이 등장한다.

학생 성적 향상 학교가 90% 좌우 – <한국경제>
학교 교육역량에 따라 학생성적 차이 극명 – <노컷뉴스>
교육개발원 “학교에 따라 학생 성적 달라진다” – <MBC>

그러면서 나름의 시각을 덧붙이는 곳도 나온다. 주로 평준화에 비판적인 시각들이다.

고교평준화는 신기루? – <머니투데이>
“좋은 중학교 가야 성적도 오른다” 한국교육개발원 “평준화 체제서 교육역량차 존재” – <해럴드경제>

가관이다. 하긴 아빠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성적과 진학을 결정한다는 이 땅에서 사실은 학교가 결정한다는 연구결과이니, 기사거리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확대 해석하면 계층에 따른 교육양극화란 허상에 불과하며, 모든 건 학교와 교사가 열심히 가르치지 않은 탓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땅의 언론은 노벨교육상을 받아야 한다. 1966년 미국에서 발표한 연구결과 이후, 지난 40여년간 전세계를 지배해왔던 “아이의 성적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SES)가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라는 말을 일거에 뒤업는 쾌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벨상에는 교육 분야가 없다. 그래서 언론들이 수상하기 곤란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도 있다. 언론은 김양분 박사의 논문을 오독했기 때문이다.

학교격차를 학교효과로 재해석하는 신묘한 솜씨

논문에 대해 기사들은 주로 수학 성적을 언급하고 있는데, 대체로 “수학교과의 경우 입학 전후인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성적을 결정짓는 요인 중 학교 비중이 20%였지만 이들이 3학년이 된 뒤 성적향상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 중 학교 비중은 88.7%로 나타났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논문의 실제 내용은 조금 다르다. 

20%와 88.7%는 성적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학교 비중, 즉 학교효과가 아니다. 이들은 일종의 학교격차다. 이 수치를 다룬 논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학교 간 평균 학생 성장에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그 결과만을 고려할 때 학생 성장에 있어서 학교 간 불평등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학교 수준 분산을 전체 분산으로 나눈 결과, 수학과의 경우 출발점 값은 20.0%, 성장률은 88.7%로 각각 나타났으며, 영어과의 경우 출발점 값은 30.8%, 성장률은 51.8%가 학교 간 분산으로 설명되어 진다.”

성적이 학생들 사이와 학교들 사이 등 두 측면에서 차이 나는데, 학교들 사이의 성적 격차가 이 정도 비율이라는 의미다.

김양분 박사의 논문에 나와있는 숫자들은 아니지만, 이해하기 쉽게 사례를 임의로 만들면 대충 이런 식이다.

   
 

A중학교의 1학년 평균 수학 점수는 60점이다. B중학교는 72점이다. 둘 사이의 격차는 12점으로 20%(12점÷60점)다. 그러니까 출발점에서 두 학교는 20%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3학년이 된 후 1학년 때와 점수를 비교해보니, A중학교는 7.548점, B중학교는 4점 올랐다. 격차는 3.548점으로 88.7%다. 즉 성장률에서 88.7%의 학교 간 차이를 보이는 거다. 여기에서는 수학 과목을 예로 들었는데, 영어 과목도 마찬가지다.

%로 된 학교효과의 수치는 없다

물론 논문에서는 원인을 살피고 있다. 1학년 성적과 향상된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있다. 하지만 본문에 %로 된 수치로 기술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학교효과의 하위요인들이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니다.

△학교 평균 사회경제적 배경, △학생 수업태도에 대한 교사의 인식, △광역시나 읍면지역 등 학교 소재 지역 등 세 가지 요인은 일부 영향력을 보이나, △교수 관련 협동, △직무 관련 협동은 어떠한 영향력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성취 압력이 성장률에는 일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온다. 학교에서 공부를 강조하는 게 자칫 성적이 오르는 걸 늦출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논문에서는 ‘학교효과 90%’를 발견할 수 없다. 학교 간 격차나 학교 간 성적 향상의 차이는 볼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은 이걸 마치 학교효과인양 보도한다. 노벨교육상이 아니라 노벨오보상을 수여해야 한다.

지나가다가 처음 보도를 접했을 때에는 ‘오’ 했다. 세계 교육학계에 길이 남을 결과였기 때문이다. 미국 교육학의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음 한편으로 “이상하다. 10~30%도 아니고, 어떻게 학교효과가 90%나 나오지?”라고 의구심을 갖기는 했다.

그래서 김양분 박사께 논문을 구해 살펴본다. ‘설마’는 설마였다. 논문의 문제가 아니라 논문을 보도한 언론이 문제였다.

물론 기자들의 생활세계도 얼핏 알고 있기에 마냥 언론만 뭐라고 하기도 그렇다. 하지만 논문이나 연구결과를 보도할 때에는 논문 작성자뿐만 아니라 다른 학자의 자문을 받아 기사를 작성하는 건 어떨까. 임박한 마감 등이 앞을 가로막고 있겠지만, 그래도 정확한 보도가 오독이나 오보보다 낫기 때문이다.

또한 그래야 학자의 연구 결과가 왜곡된 가운데 이야기되고 활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김양분 박사의 논문을 가지고 평준화 어쩌구 저쩌구 말하는 ‘소설쓰기’가 당최 뭔 일인지 의아하다.

덕분에 종단연구 결과를 가지고 학교 간 격차와 그 원인을 살펴본 의미있는 논문이 제 대접을 못 받으면 어쩌려구 저러는지.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오는데, 왜들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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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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