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은 외면한 언론인 명단 우선공개
        2008년 10월 23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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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쌀 소득 보전 직불금을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농민들의 쌀 직불금을 빼먹은 이들을 빨리 공개하라는 대다수 여론과 숨죽이며 자신의 이름이 공개될지 초조해하는 이들의 희비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특히 사회지도층을 자처하는 이들은 명단공개가 ‘사망선고’와 다름없다. 여기에는 언론인도 예외가 아니다. 여야 원내대표들은 국정조사를 합의하면서 명단을 우선 공개하는 사회지도층에 언론인을 포함했다.

    쌀 직불금 문제가 불거진 이후 언론인 직불금 불법수령 문제는 언론이 외면한 사안이다. 언론인을 우선 공개한다는 여야의 방침에 당사자인 언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다음은 23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국방부 불온서적 군 법무관 ‘위헌소’>
    -국민일보 <합참 ‘417계획’ 수립>
    -동아일보 <경제전문가 20명 긴급설문…‘정부 경제수장 평가’>
    -서울신문 <8592만원 vs 590만원>
    -세계일보 <외고입시 내신위주로 뽑는다/구술·면접도 비교과영역 출제>
    -조선일보 <한은, 기업·은행에 돈 푼다>
    -중앙일보 <기업 채용 ‘면접의 진화’ 실무형 인재 콕 집어낸다>
    -한겨레 <세수 줄고 재정지출 느는데 정부 "예산수정 계획 없다">
    -한국일보 <설…설…장중 1100 붕괴>

    지난 22일 오후 국회 정론관 앞. 여야 원내대표의 국정조사 합의 소식을 전한 한나라당 민주당 원내 대변인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공세를 받고 있었다. 다양한 질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한 기자는 조정식 민주당 원내 대변인에게 “언론인은 우선 공개 대상에 왜 포함시킨 것인가”라고 묻자 조정식 대변인은 “포함시키지 않으면 언론인은 사회지도층이 아니냐고 하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현장에 있던 이들도 함께 웃었다. 그러나 농담 주고받기로만 보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언론은 쌀 직불금 관련 소식을 연일 대서특필하고 있지만 명단 공개 대상에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언론인 우선 공개 결정, 언론의 속내는

    감사원이 조사한 2006년 쌀 직불금 불법수령 의혹 대상자 가운데 언론인은 463명에 이른다. 감사원은 이들의 평균소득까지 조사해 공개했다. 그러나 이들이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불법수령자 명단을 찾으라는 사람과 덮으려는 사람의 심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언론은 여론의 물줄기를 돌리는 능력이 있다. 어떤 사안이 터져 국민 관심사가 집중돼도 필요에 따라 관심의 초점을 옮길 수 있다. 쌀 직불금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이 농민 쌀 직불금을 불법으로 수령한 이들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애를 쓰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언론인 등 사회지도층 명단 공개에 대해 주요 아침신문은 어떤 견해를 전했을까.

    한겨레만 보도한 언론인 명단 공개

       
      ▲ 한겨레 10월23일자 6면.
     

    언론인들이 쌀 직불금 불법수령 대상에 포함돼 있고 명단도 우선하여 공개하기로 했지만 이에 관심을 갖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언론 지면에 언론 자신은 빠진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언론인 명단 우선 공개 문제도 23일자 지면을 통해 관심을 보인 언론은 한겨레가 유일했다. 한겨레는 6면 <언론인 명단 포함 눈길 공개시점 ‘갈등 불씨’로>라는 기사에서 “특히 언론인의 경우 의혹을 사고 있는 463명 가운데 상당수가 ‘불법 수령자’로 판명되면 해당 언론사는 물론 언론계 전체가 도덕적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 이런 파괴력 때문에 공개될 명단에 쏠리는 관심 또한 지대하다”고 보도했다.

    다른 언론은 언론인 명단 공개와 관련해 별도 기사를 싣지 않았다. 기사에 한 줄 언급한 정도이다. 언론은 쌀 직불금 명단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고 있을까. 공직자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공직자 자진신고는 ‘헛손질’

       
      ▲ 한국일보 10월23일자 2면.
     

    정부는 쌀 직불금을 불법 수령한 공직자를 찾기 위해 자진신고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실효성 있는 대책인지는 의문이다. 한국일보는 2면 <직불금 자진신고 ‘헛손질’>이라는 기사에서 “공무원의 쌀 직불금 수령 자진신고가 겉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신고 대상 공무원 등에 대한 정부의 지침이 오락가락한 데다 위법 수령 기준조차 애매모호해 일선 자치단체에는 처벌 수위 등을 묻는 문의 전화만 빗발칠 뿐 실제 신고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울 강남, 서초, 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는 자진 신고 사흘째인 이날까지 신고는커녕 문의 전화조차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쌀 직불금 수령 사실을 밝히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지도층은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넘어가려 하지만 여론은 서슬 퍼런 잣대를 갖고 있다. 국민일보는 5면 <부당 수령자 전원 사법처리 가능성>이라는 기사에서 “검찰이 고정형 직불금 부당 수령자를 전원 형사입건할 경우 최소 수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쌀 직불금 국정조사 시작도 전에 정쟁 움직임

    최소 수만 명으로 예상되는 형사 입건 대상자는 언제 공개될까. 한국일보는 6면 기사에서 “감사원의 명단 재작성 작업이 원활하다면 11월 중 하순이면 ‘불법 수령 의혹자’라는 이름으로 명단이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본인의 소명서를 첨부한다지만 그 명단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파렴치한’의 낙인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때의 폭발력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조차 힘들다”고 전망했다.

    국민의 시선은 여야의 국정조사에 쏠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상 규명보다 정쟁으로 치달을 것이란 전망이 벌써 나오고 있다. 국민일보는 4면 기사에서 “활동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면서 “조사과정에서 사사건건 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증인 채택을 둘러싼 대립도 예상된다. 이 때문에 실체 규명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국조가 정쟁의 장으로 악용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고 보도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증인채택을 둘러싼 문제는 여야의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참여정부에서 감사원의 감사결과 자료 은폐를 지시했는지, 윗선이 개입됐는지는 규명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정쟁의 소재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증언대 세우기 논란…중앙 "서면조사가 적절"

       
      ▲ 세계일보 10월23일자 사설.
     

    언론도 다양한 견해를 보였다. 세계일보는 <쌀 직불금 국조 ‘피멍 든 농심’은 없다>라는 사설에서 “노 전 대통령이 증언대에 서는 것이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무조건하고 설 수 없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선례도 있다. 은폐 지시 등의 의혹이 불거지면 당연히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직불금 국정조사, 진실규명을 최우선으로 해야>라는 사설에서 “필요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증인으로 불러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략적인 차원에서 다뤄서는 곤란하다. 특히 전직 대통령의 증언 문제는 신중하게 논의해야 한다. 특별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전직 대통령부터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급하며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23일자 사설에서 “여야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며 국정조사를 정쟁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버려야 한다”면서 “김영삼 정부 시절 군 무기 조달 비리에 대한 감사 때처럼 전직 대통령에 대한 감사는 서면조사가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당, 전임 정부 책임론…인수위, 직불금 관심도 없더니

       
      ▲ 경향신문 10월23일자 5면.
     

    전임 정부 책임론으로 몰아가는 정부 여당의 행보에 일침을 가한 언론도 있다. 경향신문은 5면 <인수위, 직불금엔 관심 없었다>라는 기사에서 “직불금 제도의 부작용과 개선 필요성이 지난해 1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에도 보고된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직불금 파동은 전적으로 지난 정부의 책임이라는 여권 논리의 모순을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라고 지적했다.

    국민은 이번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기대하고 있다. 정쟁만 벌이다 정작 중요한 양심 불량 인사들의 명단 공개는 적당히 넘기는 그런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여론 형성에 영향력이 큰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도 책임 당사자 중 하나라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여야가 합의를 통해 언론인등 사회지도층 명단을 우선적으로 공개한다고 밝혔지만 ‘언론인’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내보낸 언론은 거의 없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할까.

    조선일보 "쉽게 흥분하는 우리 사회 ‘인민재판대’ 가능성"

       
      ▲ 조선일보 10월23일자 8면.
     

    조선일보 8면 <‘쌀 직불금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라는 기사를 살펴보자. 조선일보는 “문제는 17만 명의 ‘불법 수령 추정자’ 명단의 공개 여부다. ‘쉽게 흥분하는’ 우리사회의 속성상 일단 누구든지 이 명단에 들어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법 여부를 떠나 ‘인민 재판대’에 오르게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직불금 국정조사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사설에서 “과도한 포퓰리즘도 경계해야 한다. 직불금 부당 수령은 분명 한국 사회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이다. 그러나 관련자의 소명을 충분히 들어야 하며, 제도적 허점으로 이런 관행이 저질러진 것은 없는지도 찬찬히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는 “관행적 현상이었던 외지인의 농지 소유를 범죄적 시각으로 보는 일도 피해야 한다. 사회문제가 일도양단으로 해결되진 않는다. 책임추궁만큼 제도개선도 중요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경제 비상시국이다. 정치권이나 사회가 집중해야 할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 "누구도 국민을 밟고 넘어갈 수는 없다"

       
      ▲ 서울신문 10월23일자 사설.
     

    쌀 직불금 불법수령 의심자 명단에 얼마나 많은 언론인이 포함될지는 알 수 없다. 2006년 기준으로 463명이라고 하지만 2007~2008년 쌀 직불금을 수령하고 신청한 이들이 늘어난 추세를 고려하면 양심 불량 언론인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매체, 어떤 직책에 있는 언론인이 주인공일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명단이 공개되기도 전에 ‘인민재판’ ‘포퓰리즘’을 경계하는 언론도 있다. 그럴듯한 얘기로 보이지만 각도를 달리하면 주장의 순수성에 의심이 가게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서울신문은 <직불금 진상 규명, 정치권.정부 의지에 달렸다>는 사설에서 “김황식 감사원장은 행여 있을지도 모를 외압을 막아내야 한다. 살아있는 권력이든, 죽은 권력이든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면서 “뒤에는 서슬 퍼런 국민들의 눈이 있다. 누구도 국민을 밟고 넘어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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