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꿔도 지는 꿈만 꿔 속상해요"
    By mywank
        2008년 10월 23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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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선(KTX) “많이 안 다치셨어요? 빵 좀 사왔는데 드세요”

    윤종희(기륭) “이렇게 입고 오니 다른 사람이 온 줄 알았네….(웃음) 실제로 보니 이쁘시네…. 여기 사람들 중에 몸이 온전한 사람이 없어요”

    22일 오전, 기륭전자 분회 농성장 컨테이너에 KTX 열차승무지부 김영선 상황실장과 조합원 정미정이 지지방문을 했다. 투쟁복인 ‘노란색 티셔츠’ 대신, 평상복 차림을 한 것을 보고 기륭분회 윤종희 조합원이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이내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기륭분회 농성장을 찾은 KTX 승무원들 (사진=손기영 기자)
     

    KTX 승무원들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밖에 있던 기륭의 유흥희, 강화숙, 이현주가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오늘 완전 ‘빵 파티’하겠네”. 봉지에 가득 담긴 빵을 보고 그들은 기뻐했다.

    전날(21일) 김소연 분회장이 강제 연행되고, 10m 높이의 철근구조물이 철거된 기륭 농성장에 오랜만에 ‘웃음소리’가 새나왔다. 이날 철근구조물이 철거된 자리에는 다시 천막 농성장이 세워졌다.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투쟁 1,156일 째를 맞은 ‘기륭 전사’들을 22일 오전 농성장에서 만나 보았다.

    꿈에서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요즘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잠도 제대로 못자요. 또 자기 전에 분노가 치밀어서 금세 깨고 그래요. 꿈에서라도 우리가 승리하는 꿈을 꿔야 하는데, 꿈에서도 맨 날 우리가 당하는 꿈만 꿔요. 어제도 그랬고요. 속상해요. 꿈도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아요(웃음)”

    이날 생일을 맞은 윤종희씨는 기자에게 사과 한 개를 건네며,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이날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연신 허리와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륭분회 농성장 컨테이너 박스 옆에 있는 공중전화 부스 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유흥희 분회원(왼쪽)과 강화숙 분회원 (사진=손기영 기자)

     

       
      ▲이현주 분회원(왼쪽)과 윤종희 분회원 (사진=손기영 기자)
     

    “지난 15일 아침 선전전을 하다 배가 고픈 분회원들이 컵라면에 물을 붓는 순간, 농성장이 침탈당했어요. 원래 컵라면이 아스팔트 바닥에 있었는데, 용역들이 자기네들이 뜨거운 물에 데일까봐 전화 부스 위에 올려놓은 거예요. 컵라면을 치우고 싶기도 한데, 억울하게 당한 게 분하기도 하고 농성장이 침탈당한 순간을 보존하기 위해 아직도 치우지 않고 있어요”

    공중전화 부스 위에 있는 컵라면을 바라보며, 그녀는 이를 꽉 물었다. 그리고 잠시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가서 붉은색 기륭분회 조끼를 입고 나왔다. 그녀는 용역깡패들과 구사대들이 서있는 정문을 바라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구사대 분들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구사대원들을 볼 때마다 만감이 교차해요. 예전에 같이 생산라인에서 일하면서 잘 알고 지내던 분들도 있어요. 예전에는 참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분이었는데, 눈빛이 달라져 있는 모습에 놀라요. 하지만 저는 구사대원들과 충돌해도 악감정이 들지 않게 존댓말을 하려고 노력해요. 앞으로 우리와 같이 일할 사람들이잖아요. 우리와 같은 약자들이잖아요”

    컨테이너 박스 옆에서 강화숙 분회원은 농성장 주변을 청소하기 바쁘다. 그녀는 현재 임신 6개월째이다. 몸이 불편한 상태지만, 어제(21일) 철근구조물이 강제철거 되는 순간에도 경찰과 용역들에게 저항하며 싸웠다.

       
      ▲22일 기륭농성장에서 열린 ‘약식 집회’에 참가한 분회원들 (사진=손기영 기자)
     

    “제가 농성장에서 경찰과 맞서고 있으니, 분회원 한 분이 저를 말리며 경찰에게 ‘이 분은 임산부’라고 했어요. 순간 여경들이 달려와서 저를 둘러쌌죠. 임산부인 저를 보호하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때 마치 섬에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처절하게 당하는 순간을 그냥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어요. 저도 싸워야 했는데…. 정말 미안했어요”

    강화숙 분회원이 갑자기 청소를 멈추고 컨테이너 박스 앞에 있던 벤치에 앉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녀는 어제(21일) 벌어진 사태를 지켜보면 느낀 심정을 털어놓았다.

    "금속노조가 안 보여, 말로만 싸우나"

    “어제 정말 서러웠어요. 기륭전자 분회원들도 금속노조에 속해 있는데, 금속노조 분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지난 15일에 기륭농성장이 침탈당했고, 지금까지 언론에도 기륭 사태가 많이 보도가 되었는데…. 아직까지 모습을 볼 수 없어요. 말로는 ‘비정규직 철폐 하겠다’고 잘 말씀하시는데…”

    그녀의 입에서는 작은 한숨이 새나왔다. 그리고 자리를 털고 다시 농성장 주변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는 이현주 분회원이 기륭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문구가 들어간 ‘투쟁 배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28살인 이 분회원은 기륭전자 분회원 중 제일 막내다.

    “언니들이 시킨 일 열심히 하고 있어요. 솔직히 언니들이 시키는 자잘한 일들을 하기 싫을 때도 있어요. 기륭 분회원들 중에 ‘개띠’들이 4분이 있는데, 이 언니들이 많이 무서워요. 특히 김소연 언니가 야단치면 무섭죠.(웃음) 그리고 윤종희 언니도 한 성격 하죠. 여기에서 무서운 분들이에요”

       
      ▲사진= 손기영 기자
     

    컨테이너 박스 안에 혼자 있던 그녀는 주위를 살피며, 분회에서 막내로 지내며 느끼고 있는 애로사항을 폭로(?)했다. 잔뜩 구름 낀 기륭 농성장 하늘에 가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말을 이어갔다.

    28세 막내 "개띠 언니들이 무서워요"

    “오랜만에 농성장에 비가 오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늘 비가 내려서 정말 다행이에요. 어제나 그제 비가 왔으며 10m 위에 올라간 김소연 언니가 비를 맞았을 거예요. 또 오늘 바람까지 많이 부는데 그러면 철탑이 많이 흔들렸을 거예요…. 정말 다행이에요”

    잠시 후 유흥희 분회원이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기자에게 “또 오셨네요”라고 짧게 인사한 뒤, 복분자 음료수를 건넸다.

    “어제 연행된 이상규 위원장님을 잠깐 보고 오는 길이에요. 그런데 정말 얼굴만 보고 왔어요. 면회가 하루에 3번까지만 허락돼는데, 이미 아침 일찍 두 분이 면회를 한 상태라 제가 3번째 차례였어요. 제가 면회를 하면 오늘 다른 분들이 면회를 못하게 돼서, 그냥 얼굴만 보고 왔어요”

       
      ▲기륭 분회원들이 윤종희 분회원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안경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 이상규 위원장이 챙겨 준 김소연 분회장의 안경이었다. 그녀는 김 분회장의 안경을 보고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오늘 내일이 고비인 것 같아요. 오늘 회사 짐이 모두 밖으로 나갔어요. 회사 안에 주차되어 있던 사원들의 차도 모두 빠져나갔고요.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은 없고, 이제 사측이 농성장을 대청소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아요. 곧 이 컨테이너하고 농성천막이 철거될지도 몰라요”

    농성장의 생일 케이크

    잠시 무거운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륭 분회 컨테이 너박스 안에 ‘케이크’ 하나가 도착했다. 윤종희 분회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케이크이었다. 밖에 있던 분회원들이 일제히 컨테이너 박스 안으로 들어왔다.

    “야~ 농성장의 일급비밀인 종희 언니의 나이가 이제 공개 되겠구나.” 분회원들은 농담을 건네며 윤종희 분회원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동안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투쟁의 촛불’을 들었던 기륭전자 분회원들이 이날은 잠시 ‘축하의 촛불’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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