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우리 아줌마노동자들
    2008년 10월 22일 05: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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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륭전자 노조원들에게 폭력사태가 잇따랐다. 94일 간 단식농성으로 몸이 이미 상할 대로 상한 김소연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분회장이 농성에 들어갔다가 경찰에게 끌려 나와 병원으로 후송됐다. ‘비정규직은 사람도 아니냐!’는 절규가 현장을 울렸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21세기다.

국민들은 기륭전자에서 노사분규가 일어나고 있다는 기사제목이야 간간이 봤겠지만, 노동자들(놀랍게도, 그들은 외계인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다!)이 그동안 어떤 참담한 일을 당했는지에 대해선 모른다.

이것을 모르면 우리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처절하게 나서는지를 절대로 이해할 수도, 그 심정에 공감할 수도 없다. 국민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면 비정규직 문제는 절대로 풀릴 수 없다. 이것은 개별 사업장이나 일부 정치인이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 국민적 합의를 통해서만 풀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PD수첩> 785회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사연이 방영됐었다. 그것을 통해 이 분들의 그 기막힌 사연을 들어보자.

   
 
 

기륭전자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 중 정규직은 15명, 계약직은 40명, 파견직은 223명이었다고 한다. 정확히 나뉘어진 신분이다. 정규직은 양민, 계약직은 천민, 파견직은 노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같은 공장의 같은 노동자였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별, 전형적인 봉건사회의 모습이다. 상여금도 정확히 이 신분순서에 따라 차등지급됐다.

차에 실려 간 곳, 기륭

서북부유럽은 비정규직이 우리처럼 많지도 않거니와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 비정규직이 된다 해도 우리처럼 처절해지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국가제도의 문제다. 그러므로 개별 사업장 차원이 아니라 국민적 합의의 차원에서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한 것이다.

“처음에 파견업체인지도 모르고 들어갔고, 차에 실어서 다른 회사로 옮기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기륭이더만. 이게 무슨 인신매매도 아니고 사람을 이런 식으로 파는구나.” – 한 해고 노동자

파견이 좋은 이유는 이 노동자들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직접 고용하면 책임질 것이 많아진다. 파견으로 온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부품과 같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으면 그만이다.

노동자를 인간으로서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경향은 사회 도처에서 나타난다. 최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위탁’이 그것이다. 위탁하면 돈만 지불하고 관리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대대적인 위탁이다. 민영화는 소유권을 팔아넘기는 것이고 위탁은 경영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이 두 가지가 병행 추진된다. 교육부문으로 말하자면 학교자율화, 대학자율화 등은 거대한 공교육 위탁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가 더 이상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각 개별단위에게 떠넘기겠다는. 기업단위에서 이런 무책임이 인간에 대해 적용된 것이 파견직 선호, 비정규직 선호 경향이다.

“파견직은 항상 그러니까 고개도 못 들고, 저 들어갈 때만 해도 별로 파견직들하고 얘기도 안 했어요, 정규직들이. 금방 나갈 텐데 그러면서.” – 노동자 강화숙

   
 
 

“회식을 가도 관리자 분들이 정규직 친구들하고만 얘기해요. 파견 따로 한 구석에 모여 있어요. 와서 술 한 잔 권하는 것도 없고 그랬어요.” – 김소연 분회장

피가 흘려내려도, 아이가 아파도…

철저한 차별이고 분리다. 이런 제도에 놀아나서 노동자들이 지금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이 분리돼 상호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 제국주의 지배세력이 했던 분할지배 전략과 너무나 비슷한 구도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 파견직 노동자들은 결사적으로 일에 매달려야 했다. 한 번은 몸이 아픈 노동자가 참고 일하다가 쇼크로 쓰러져 집에 일찍 들어갔는데, 그 다음 날 출근을 하니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고 한다. 해고 통보가 전화메시지로 온 적도 있었다.

“(해고 메시지를 받으면) 매장당하는 기분이에요. 사회로부터요.” – 노동자 오석순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라는 전화 한 통 받고 해고가 되어버렸어요. 남편하고 아들이 옆에 있었는데 너무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니까 계속 울었어요.” – 한 해고 노동자

청바지가 젖을 정도로 하혈이 있는 상황에서도 잘리는 것이 두려워 옷 갈아입고 잔업까지 다 마쳐야 했다고 한다. 부상으로 피가 나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고 일을 끝마쳤는데, 그 이유가 ‘아프다고 말을 하면 관리자에게 밉보일까봐’였다고 한다.

   
 
 

“딸내미가 중3이었는데 사고가 났어요. 횡단보도에 서있는데 차가 박았나 봐요. 애가 날아갔어요. 그때 달려가지 못했어요. 간호도 못해줬어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잔업을 뺄 수가 없으니까. 나는 머슴처럼 하인처럼 열심히 일했어요. 안 잘리려고.” – 한 해고 노동자

아이가 교통사고가 났는데도 잘리는 것이 무서워 병원에 못 갔다는 얘기다. 뿐인가?

“문 잠가놓고 (출근했는데) 일을 하고 오니까, 큰 애가 변기통에다 대변을 보고, 저도 더러웠나봐요, 엉덩이를 들고 고개를 이렇게 박고 자고 있더라구요. 그때가 굉장히 힘들었죠.” – 노동자 박행란

일할 동안 어린 아이를 티비가 나오는 방에 가둬놨어야 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불이 나 아이가 타죽는 사고도 과거부터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억척스럽게 일을 해서 도대체 얼마나 벌었을까?

“쉬는 날도 없이 한 달 꼬박 일하니까 백만 원 손에 쥐더라고.” “일요일도 안 쉬고 한 달 내내?” “네, 한 달 꼬박 일하니까. 잔업까지 하고. 백만 원 손에 쥐더라고.”

백만 원이다. 그것 때문에 한 달 내내 아이가 교통사고가 나도, 본인이 아파도, 집안에 일이 생겨도,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도 일을 해야 했다. 작업 중에 받는 인격적인 모멸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충성을 바쳐야 했다. 백만 원 때문에.

그들의 백만 원, 누군가의 ‘절세’

이런 식으로 쌓인 한이, 이 ‘아줌마’들로 하여금 투쟁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이것이 좌익세력, 강성노조의 탓인가? 아줌마들이 배후조종을 받고 있나?

돈이 넘쳐나 집을 몇 채씩 샀다가, 세금폭탄 맞는다고 볼멘소리를 하고, 그 집값 떨어질까봐 부동산 경기 부양을 요구하고, 지방에 사놓은 땅 팔 때 세금 안 내려고 소작농이 받을 알량한 지원금까지 가로채는 번영의 세상 그림자 속엔 ‘우린 사람도 아니냐!’는 음울한 절규가 묻혀있다.

인간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한국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사회가 인간을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그들이 심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인간 이하의 삶을 살도록 하는 최근의 변화는 가능할 수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해결방안을 도출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노동유연화를 해야 국가경쟁력이 향상된다고, 노동자 임금이 줄어들어야 기업경쟁력이 향상된다고만 떠들어댔을 뿐이다.

기륭전자 측의 노무관리엔 문제가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기륭전자만의 책임일까? 애초에 차별적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를 만든 국가의 책임이 더 크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주국가다. 왕국이 아니다.

국민의 책임, 노조의 문제

그러므로 국정은 국민의 책임이다.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처럼 국가구조 자체를 뒤바꾸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국민의 동의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정권, 기업, 국민 등 한국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이것을 뒤집는 것도 국민이 결단해야 한다. 스웨덴 같으면 아이가 감기만 걸려도 직장을 쉬고 아이 간호를 할 수 있다. 사업주가 착해서일까? 아니다. 국가제도가 그런 것이다. 국민의 정치적 결단으로 그런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 사회에서 그런 결단이 정치적으로 힘을 발휘하려면 노조의 힘이 강해져야 한다. 인류역사를 보면 강한 노조를 가진 나라가 좋은 복지제도를 향유하는 경향이 있다. 노조도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국가단위의 연대노조가 그렇다. 바로 북유럽이다. 국민이 노조를 적대시하는 한 이런 사회는 오지 않는다.

노동자끼리 분열하고, 국민이 노조를 적대시하고, 전 사회가 노동자의 절규를 외면하는 지금의 상황에선 한국사회는 변할 수 없다. 국민 다수의 고통도 계속된다. 구성원 다수의 삶이 저렇게 무너지는데 나라인들 온전할까? 이대로라면 한국사회는 미구에 썩어문드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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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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