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후 미국 패권 무너질 것
        2008년 10월 20일 10:3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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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일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그대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는 강자의 오만한 마음만큼 우스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약 100년 전에, 막스 베버가 전형적 자본가를 ‘청교도적 정신’의 소유자로 규정하고 중국의 유교가 자본화의 걸림돌일 뿐이라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막스 베버와 중국

       
      ▲ 필자
     

    21세기 중반의 세계의 핵심적 거상들로서 복잡한 혈연/지연/학연 네트워크를 거느리고 글씨를 잘 쓰는 것을 주된 문화자산으로 여기는 중국인이 등장하는, 중국이 머나먼 수단과 같은 나라를 이제 경제적 식민지로 여기게 되는 상황을 베버가 봤더라면 과연 뭐라 했을까요?

    자본주의의 힘이라면 바로 그 역동성이란 그 힘일 것입니다. 베버의 생각과 정반대로, 자본주의는 어떤 특정 문화적 내지 정치-사회적 형태와만 관계를 맺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관계 문화’의 정신은 ‘청교도 정신’ 못지 않게, 북경식의 업적주의적인 관벌들의 과두 독재는 구미의 소위 민주주의 못지 않게 자본주의의 효율적인 상부 구조를 이룰 수 있습니다.

    약 1년 전인가, 중국의 공상은행 (中国工商银行)이 Citibank을 눌러 주식 총가치의 차원에서 세계 최대의 은행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저는 왠지 베버를 떠올렸습니다. 그 분이 교수직에 계셨던 하이델베르그에서 나중에 그 중국공상은행의 지점이 열려 토착 은행들을 좀 누르게 되면 재미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입니다, 대세가 그렇다 하더라도 미국 패권의 몰락과 세계 경제/정치 중심으로서의 상해/복주/광주 – 경기도 – 동경/오사카의 ‘동아시아 삼각 지역’의 부상이란 현상은 당장 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대세는 대세대로 가지만, 소요 시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파악을 해야 할 듯합니다.

    예컨대 미국의 General Motors가 영국의 Vauxhall과 독일의 Opel을 인수 합병하는 등 세계적 자동차 왕국의 초석을 놓은 1920년대부터,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 업체로 부상해 장기적으로 독자 군림하게 된 1950~80년대까지 상당한 기간이 걸리지 않았는가요?

    중국의 정치적 수사 믿지 말아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미국이 ‘하나의 열강'(1890년대~1930년대)에서 ‘세계 패권국'(1945년 이후)으로 가는 길이란 요즘 중국 지배자들이 이야기하는 ‘평화적인 굴기(융성)’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중국 공상은행
     

    미국의 총국민생산의 약 3분의 1을 떨어뜨린 1929~1932년의 대공황, 그 후의 국가 주도 경제로의 전환과 대일 전쟁의 유발(일본에의 석유 공급 거부 등 도발적 조치), 그리고 1941년부터 판문점에서 정전 협정이 타결된 1953년까지의 태평양, 동아시아에서의 ’12년간 장기 전쟁’과 일본, 남한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대만으로 구성된 동아시아에서의 군사 보호령의 설치 등은 미국 패권 획득의 길이었습니다.

    영국의 세계적 패권 획득의 길이란 20여 년 이상의 프랑스와의 전쟁(1790년대-1800년대)이었듯이, 그 전의 네덜란드 패권의 전제가 80년간 전쟁(1548-1648)에서의 신교측의 승리이었듯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호금도(후진타오. 胡锦涛) ‘동지’가 ‘중국의 화평적 굴기’를 이야기할 때에 이게 그냥 정치적 수사라는 사실을 부디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호금도 자신도 이를 주관적으로 바랄 수 있지만, 객관적으로는 세계 자본주의의 질서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본인도 이미 눈치 챘을 것입니다.

    지금 미 제국 몰락의 속도를 재보면 대체로 ‘남은 시간’과 ‘남은 과정’이 어느 정도 될까요? 여기에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지적해두어야 합니다. 예컨대 굳이 제조업의 능력으로 본다면 1945년에 세계 제조업 생산의 50% 정도 담당했다가 이제는 겨우 22% 정도만 담당하게 된 미국이 ‘상대적 몰락’의 과정을 밟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동아시아 은행들의 부각

    중국의 독차지가 된 경공업은 물론이거니와, 도요타가 미국 국내 시장에서마저도 GM보다 훨씬 잘 나가는 자동차 생산업까지 봐도 미국이 상당한 퇴조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 금융 공황의 장기적 효과라면 아마도 동아시아 은행들의 상대적 부상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패권’이란 단순히 생산력-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영국의 패권이 어떻게 무너졌나요?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소련의 도움을 입고서야 독일을 무너뜨렸다는 사실과, 아일랜드, 인도 등지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아주 센 펀치를 맞아 식민지에서 철수해야 했다는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열강 사이의 질서 정하기에 있어서 군사력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면 절대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예컨대 신자유주의자/국가 역할 축소론자 대처가 1982년에 세상이 모르는 그 폴클랜드 열도를 갖고 아르헨티나와 기꺼이 한바탕 붙었던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꾸 붙지 않는다면 저 야수들의 사회에서는 ‘시니어 제국’은 물론 ‘주니어 제국’으로서의 위치도 유지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패권에 가장 센 펀치를 날린(또한 날리고 있는) 것이 호치민과 이라크 저항세력, 그리고 탈레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직시해야 합니다.

    호치민과 달리 탈레반을 긍정시할 좌파가 별로 없겠지만, 어쨌든 조선말기의 의병이나 청말의 의화단을 방불케 하는 저들이 지금 미 제국의 세계적 좌절의 주된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입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유라시아 요충지에서 식민지 정권 하나 간단하게 만들 수 없는 열강이라면 이미 "유일 패권국"이 아니거든요.

    1975년 4월, 미국 몰락의 시점

    패권국가로서의 미국의 몰락의 시점 (始點)이라면 1975년4월30일, 즉 사이공의 함락이었습니다. 2000년대의 이라크와 아프간의 늪, 즉 성공이 없는 장기전들이 그 몰락의 핵심적 과정이라고 봐야 할 듯합니다.

       
      ▲9.11 테러로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
     

    그런데 그 몰락의 마무리는 아직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고, 앞으로 이루어지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아직도 일본과 남한, 독일 등 세계의 주요 공업/금융국들이 미 제국의 군사적인 보호령으로 남아 있는가 하면, 중-러의 총 군비 비출이 미 제국 군비 지출의 3~4분의 1이 될까 말까 합니다.

    물론 몇 가지 중요한 대리전에서 중-러가 2001년 이후에 연승한 것은 사실입니다. 2005년의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미군 기지 철수도 그렇고, 중-러의 번견(藩犬)인 북한에 대한 미국 침략이 불발된 것도 그렇고 최근의 그루지아 사태도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패권에 대한 중-러의 도전이란 아직도 대단히 초기적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예컨대 중-러 지배층의 중대 과제 중의 하나는 독일과 남한 지배층을 ‘중립화’, 즉 미-일과 중-러 사이의 등거리적 입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인데, 슈뢰이더와 노무현 집권기에 독일, 남한에서 그러한 움직임이 약간 보여도 결국 지금까지 대체로 친미적 코스로 일관돼 왔습니다.

    중국계 투자기관들이 삼성전자의 주요 주주가 되고 디폴트에 빠진 미국이 돈에 궁해 주한 미군 철수를 시작하면 모를까 이미 친미에 안주해버린 미 군사보호령들의 부르주아들이 웬만하면 대외적 코스를 그렇게 쉽게 바꾸지 않습니다.

    미국이 결정적으로 휘청거리기 시작할 때

    한반도나 유럽에서는 그나마 큰 유혈이 없을 듯하지만, 중-러계 정권들(아르메니아, 이란, 시리아 등)과 미국 계통의 정권들(그루지아, 이스라엘 등)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거시적 의미의 중동’에서는 앞으로의 몇 십년의 역사는 학살과 절규의 역사일 것입니다.

    양쪽 위성국가들 사이의 각종의 갈등, 그리고 러시아와 그루지아 같은 친미 정권들과의 지속적인 열전들이 약 15~20년이 지속된 뒤에야 미 패권이 결정적으로 휘청거리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야만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현주소라면 ‘탈근대’가 아니고 1920년대말~1930년대 초, 즉 패권 지형의 큰 변동을 앞두고 있는 그러한 시대에 가장 가까울 것입니다. 그리고 제일 슬픈 것은?

    이 세계에서 야만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우리 편’이란 없다는 것. 물론 작은 서클, 군소 정당들이 있다 해도 아직 ‘세력화’는 안된 상태죠. 중-러가 수십-수백만 명의 인명을 값으로 지불하여 승리를 거둔다 해도 세계는 여전히 자본주의일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불편한 자본주의일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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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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