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 뒤에는 무엇이 기다리나?
    2008년 10월 16일 04: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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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에게 공황은 끔찍한 생활상의 고통이지만, 사회운동집단이나 정치세력에게는 고통으로만 멈추지는 않는다. 이번 공황이 유럽이나 미국에서 금융기관의 재국유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큰 타격을 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반대로, 극우 경제노선에 저항해온 개혁가들이나 반자본주의 운동 진영은 반전(反轉)의 계기를 잡았다고 좋아라, 하고 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미래를 낙관할 정황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의 퇴조는 신보호주의, 지역블록 강화, 자원민족주의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서의 이와 같은 이탈 자체가 이념이나 계급성에서의 진보를 향하는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에서 신보호주의로?

   
  ▲ 1929년 공황을 그린 만평
 

곡물법 시대에 노동자와 신흥부르주아에게는 자유무역이 진보였고, EU가 덴마크와 스페인에서 나타내는 현상은 다를 수밖에 없고, 중앙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의 자원민족주의는 민중의 정치적 경제적 권익을 압살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안에서의 어떤 경향이나 사조 자체에 계급성이 본래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역사 조건에 결합하여 개혁이나 반동으로 표현되는 것일 뿐이다.

남는 문제는 역시 국가다. 요즘 사람들은 ‘국가’를 ‘자본’의 반대말처럼 여기고, 그래서 자본 자유의 축소가 국가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라 오해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가 국가를 축소한 적은 없다. 신자유주의가 도입된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부분의 기간 동안 국가기구와 그 관장력은 일관되게 확대돼 왔다.

왜냐하면 자유경쟁이 스스로의 힘으로 잘 돌아가길 바라는 것은 사회주의 계산 가능성 만큼이나 무망한 것이므로 국가의 개입, 국가권력의 불공정하고 반경쟁적인 개입을 끊임없이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국가란 축소된 국가가 아니라 특정한 양식으로 운동하는 국가이고, 신자유주의의 퇴조는 자본주의 국가가 다른 양식으로 운동하게 되리라는 점만을 의미한다. 신자유주의의 퇴조는 다시 한 번 국가 성격, 국가의 계급적 구성이 중요하다는 사실만을 부각시킬 뿐이다.

공황과 전쟁 그리고 사민당들

1929년 대공황 이후 케인즈주의가 꽤 오래 맹위를 떨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사민당들, 루즈벨트, 제3세계 민족주의 정당의 집권이 이어졌고, 2차 대전에 의해 전시자본주의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의 정당이나 사회운동은 당시처럼 혁신적이거나 도전적이지 않을 뿐더러, 성장하는 정당으로서 사회경제적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포섭돼 퇴락하는 와중에 정치적 공황을 맞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조건에서 개연성을 따지자면, 2008년의 공황은 자본주의 개혁가들인 유럽의 사민당들과 세계 곳곳의 민주당들이 자국 산업의 보호에 나서게 하리라는 정도만을 예고한다. 이것은 역사의 진보라기보다는 2차 대전 직전 관세블록에 의한 세계경제의 분할이나 서독, 일본 같은 거대 수출국가들이 쟁투하던 1970년대로의 회귀에 더 가까워 보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자본가들의 논리는 세계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 이데올로기로 다시 집중될 것 같다. 주식 투자자들에게 장부상의 청신호를 보내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다운사이징에서 생산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노동재생산비용 절감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또 한 가지 비관적 가정은 짧으면 1~2년 길면 5년 정도 계속될 연착륙 과정에서 벌어질 일이다. 파국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금융상품과 부동산에 몰린 과잉자본을 분산시키며 중산층의 자산들을 보전해주어야 할 텐데, 이는 전사회적 긴축-복지 축소를 야기할 수도 있다.

무릇 공황은 더 거대한 독점으로 귀결된다. 잠시 멈칫하게 될 자본은 그 독점화에 힘입어 다시금 전일적 지배력을 복구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기가 순환하는 것처럼 이러저러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들도 주기적으로 진퇴한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새 순환이 자본 자유의 정점을 향하지 않게 막을 수 있는 것은 공황이 아니라, 정치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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