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요슈』가 일본 노래든 아니든
        2008년 10월 16일 10: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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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1년 가을, 고려대학에 잠깐 유학했을 때에 가끔 가다가 한국 선후배들에게 "어떤 문학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습니다.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이브하게도 솔직한 답을 주곤 했죠.

       
      ▲ 필자

    제가 좋아하는 러시아 내지 유럽 문학 작품을 열거한 뒤에 "일본 고대 고전인 『만요슈』(萬葉集)의 시를 아주 좋아한다, 특히 그 시 중에서는 가키노모토 히토마로 (柿本 人麻呂)의 서정적인 시를 좋아한다"라고 이야기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안색이 막 좋지 않게 바뀌기 마련이었어요. 제가 그러한 눈치를 채서 아주 열심히 부연 설명을 했죠.

    ‘저 놈 새끼, 왜놈들의 문학을 좋아하는구나’

    『만요슈』가 성립됐을 때에 이용됐던 만요가나라는 특수한 차음 표기 체계가 신라 향찰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 그 『만요슈』의 많은 노래들이 향가들과 공통점을 보인 점, 그리고 『만요슈』의 일부 시시인들이 한반도 계통으로 짐작되는 점 등을 들어 "정말 싫어하실 것 없습니다"라고 열심히 변명을 했죠.

    그럼에도 보통 상대방의 표정은 좀처럼 쉽게 밝아지지 않았어요. 8세기 중반의 옛날 책인지라 뭐라고 말로 공격할 일도 없었지만 대개 눈치는 ‘아, 저 놈 새끼, 저 왜놈들의 문학을 좋아하는구나, 완전히 우리 편이 아니군’ 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그 때의 어색함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사실, 제가 『만요슈』를 좋아한 이유는 ‘일본’이라는 나라와 별로 무관했어요. ‘일본 고전’이라는 부분과 무관하게, 사춘기의 청소년에게 크게 호소할 수 있는 감정들을 전해주는 책이라 그 나이에 읽기가 좋은 것입니다. 예컨대, 제가 17년 전에 서울에서 살았을 때에 『만요슈』의 이 노래의 러시아 번역문을 계속 외우고 다녔어요:

    "海原に霞たなびき鶴が音の悲しき宵は国辺し思ほゆ"
    Когда ночами полные печали Звучат у моря крики журавлей И дымкою туман Плывет в морские дали,— Тоскую я о родине моей!

    말하자면, "바다의 들에 안개가 끼고 두루미들이 슬픈 노래를 부를 때에 나는 내가 태어난 곳, 그 쪽을 생각한다", 그런 뜻입니다. 저도 서울에서 새들이 우는 소리를 산에서 들었을 때에 가끔가다 그러한 감정을 느꼈는데, 그때마다 『만요슈』의 그 노래 생각이 났었어요.

    17년 전 서울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럴 때에 그 노래가 ‘일본 것’이든 아니든 뭐 상관할 게 있어야지요. 그리고 원래 이게 국가에 의해서 징발돼 국경을 지키라고 끌려간 민중들의 가요, 즉 민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일본 민중들의 노래 소리라면 다른 나라의 민중들도 존경스럽게 다루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17년 전에 서울에서 그러한 이야기가 잘 통하지 않았어요.

    서경식 선생님이나 김부자 선생님 등 여러 재일조선인 지식인들이, 징병 피해자 등 과거 피해자들의 문제와 재일조선인 차별 문제 등 한일간의 여러 꼬이고 꼬인 문제들이 다 풀리기 전까지 한일간의 진정한 화해, 즉 한국 쪽의 반일적 무드의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보시더랍니다.

    뭐, 물론 과거의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재발 방지의 사회적 약속, 즉 보다 객관적인 과거에 대한 교육 등이 실시돼야 된다고 믿는 차원에서는 저도 그 분들의 의견에 동의를 하죠. 그런데 짧은 제 생각 같으면, 과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일본의 진보 사회와의 연대적인) 운동을 전개하는 일과, 한국 쪽의 묵고 묵은 반일적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작업이 따로 따로 동시에 병진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반일주의란 이미 단순히 ‘과거 아픔에 대한 반응’의 차원을 넘은 지 오래 됐기 때문입니다. 반일 감정의 상당한 부분을 ‘진보’나 ‘역사의 아픔’과 직접적인 관계가 결여된 영토적 민족주의(‘독도 문제’)가 차지하는가 하면, 이 감정의 논리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본인들의 식민지 때 범죄에 대한 집단 책임의 논리죠.

    일제가 아닌 ‘일본’ 전체가 혐오 대상이기에 일제 침략보다 1300년 전에 살았던 가키노모토 히토마로에 대한 우호적 관심의 가능성이 봉쇄되는가 하면, 일제 침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었던 일본인 납북자에 대한 하등의 동정도 생기지 않습니다.

    획일화된 ‘우리’와 획일화된 ‘저들’의 탈(脫)역사적인, 거의 항구적인 대립과 갈등의 논리, 그리고 개인적 이력과 무관한 ‘저들’의 모든 구성원들의 집단적 책임의 논리입니다. 집단 책임의 논리인만큼 비(非)인권적, 반(反)인권적 논리인데, 그러한 논리에 입각하여 과거 일제의 인권 유린 희생자들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 과연 가능할는지요?

    반인권적 반일의 논리

    우리가 ‘조선민족’ 전체에 대한 보상/배상이 아닌, 징용 내지 강제 연행 피해자 각개인에 대한 개인적 보상/배상을 요구하는 이상, 집단의 세습적 가해/피해 논리보다 개인 인권의 논리를 우선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으로서의 피해자들이 그 존엄을 완전히 되찾고 보상/배상을 완전하게 받을 때까지 당연히 한일 양쪽의 시민 사회는 열심히 연대해서 싸워야죠. 그런데 미안한 말씀이지만 이 세상에서는 ‘가해 민족’도 ‘피해 민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해/피해 관계는 ‘민족’ 간에 성립되는 게 아니라 보통 폭력 단체인 국가와 개인들 간에 생기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는 개인의 ‘민족’ 성분도 문제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계급/성별이 훨씬 더 일차적으로 작용됩니다.

    말하자면 가난한 조선인, 중국인, 심지어 일본인 여성까지도 ‘위안부’가 되어 일군 만행의 피해자가 됐던 것이지만, 그 피해자 중에서는 부잣집 자녀를 과연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민족’과 무관하게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 세상의 역사란 궁극적으로 부자와 가난뱅이들의 갈등적 관계사라는 진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죠. 계급을 문제화시키는 것보다 모든 것을 ‘민족’에다 회귀시키는 일은 훨씬 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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