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도로정비+노점철거×새 건물 짓기
        2008년 10월 08일 09: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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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2008년 서울에는 오세훈이라는 자가 시장으로 있었다. 사실 오세훈이라는 사람은 변호사였는데, 국회의원도 한 번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환경단체 주변에서 기웃하더니 서울시장이 되겠노라고 나선 것이 2004년의 일이었다.

    사람들은 오세훈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오세훈은 변호사였지만 오히려 CF광고모델로 더 알려졌다. 시장 선거시에 정수기 광고에 출현했던 경력 덕분에 오히려 덕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데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이 있듯이, 오세훈이라는 자가 딱 그 짝이었다. 처음에는 그가 광고했던 정수기처럼 깨끗하고 시원한 정치를 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해가 지날수록 이상해져갔다. 뭔가 초조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든 자신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들을 수족부리듯이 한다는 말도 들렸다. 사람들은 그가 다음 번에 또 시장을 하기 위해 그런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오세훈 시장이 갑자기 서울을 ‘디자인 수도’로 만들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귀를 의심했다. 오세훈 시장은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디자인센터가 있는 동대문에 50년이 넘도록 명맥을 유지했던 동대문운동장을 부수고 디자인플라자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매년 예산낭비사례로 찍혔던 보도블록 교체 사업과 노점상 강제철거사업에 ‘디자인거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뿐이 아니라, 노들섬에 문화콤플렉스를 짓겠다고 해외공모전을 해놓고도 1등 수상자가 설계를 하지 않겠다며 계약을 하지 않는 기현상도 생겼다.

    ‘디자인 수도’로 선언된 서울

    그런데도 뭔가 해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린 오세훈 시장은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당장 서울시민들은 ‘무슨 가이드라인?’이라며 의구심을 표했지만, 오세훈 시장은 가이드라인이 무슨 규화보전이라도 돼서 당장 서울이 디자인도시가 된 것마냥 떠들었다.

    아마 이쯤, 오세훈 시장은 큰 결심을 하게 된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이 때 오세훈 시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먹고살기에 아등바등하고 있는 서울시민들이 자신의 고귀한 생각을 알아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으나 확인할 길은 없다.

    한글로 서울디자인올림픽이라고 쓰고 영어로 ‘seoul design olympiad’ 번역하는 해괴한 행사를 개최하고 한 것이다. 시비로 80억 원을 사용하고 각종 수익사업을 통해 13억을 유치해 총 93억을 사용하는 그 행사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한 해 전 11월에는 ‘세계디자인올림픽’이라고 했다가 올해 5월이 되어서야 ‘서울디자인올림픽’이 되었다. 야사를 즐기는 사가들에 따르면 세계디지인올림픽이라는 명칭에 대해 올림픽조직위원회의 항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올림픽이라는 표기, Olympic은 IOC만이 사용할 수 있는 룰이 있었는데 서울시가 그것도 모르고 ‘올림픽’ 운운하니 이를 변경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행사의 핵심은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잠실주경기장에서 진행되는 ‘국제컨퍼런스’라고 할 수 있다. 이 행사에는 오세훈 시장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설계자 자하 하디드를 비롯하여 국제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초청되었다.

    그런데 이 국제컨퍼런스가 핵심인 까닭은 다른 데 있다. 바로 어마어마한 참가비가 있다는 것인데, 3일 동안 컨퍼런스에 참여하려면 20만 원의 등록비를 납부하도록 하고 있다. 너무 비싸다는 항의가 있자 서울시에서는 사견임을 전제로 한 일부 공무원들이 “진작에 지난 25일까지 사전 등록을 하든지, 아니면 학교에 등록하여 학생임을 증명하면 될 것 아닌가”라며 “디자인이라는 것은 솔직히 돈 없이 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귀뜸을 했다는 전언이다.

    회의 참가비 20만 원

    이미 80억 가량을 서울시민들에게 갹출하여 부담시킨 것이 미안했던 것인지, 13억은 어떻게든 마련을 해야겠는데 바로 떠오르는 것은 없고 해서 국제컨퍼런스 등록비를 책정한 것이다. 디자인을 제대로 몰라 우왕좌왕하던 서울시민을 계도하기 위해 서울디자인올림픽을 개최하였으나, 그 성스러운 디자인 복음을 전달받을 수 있는 자는 수중에 20만원 돈이 있는 ‘선택받은 자’로 한정된 것이다.

    신의 분노는 다수에게, 구원은 소수에게 내려짐으로써 신적 권위가 확보된다는 구원신앙의 교본을 따른 것이다. 오세훈 시장은 그 선택받은 자들이 3일간의 부흥대회를 통해 미욱한 서울시민들을 계도하고 꿀물과 만나가 가득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리라 생각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시절을 회고하면서 우려스러운 것은, 과연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2008년도 서울에서 있었던 일을 과연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희대의 흉물이 되어버린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철거 공사를 기억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명물로 여기고 있는 덕수궁 앞의 항아리 공장은 사실 전통의 미를 강조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시청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당시에도 상식은 있었으나 상식은 그저 상식이었을 뿐이었다.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서울은 장로 시장에 의해 신에게 봉헌된 시점에서부터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의 도시보다는 영적 도시에 가까웠을 뿐이다.

    하지만 제1차 암흑기로 불리는 중세시대에도 마녀라고 불리던 저항세력이 존재했듯이, 2008년 서울에서도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교리에 의문을 품는 이가 있었다. 그들은 오세훈의 디자인 교리가 누구로부터 나왔으며, 결국 누구에도 도움이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바로 지금 서울시의 디자인정책에 의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누구인지 밝히려고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교리가 가지고 있는 본질이 보였다. 언제나 회의하는 자가 시대의 진실에 가깝게 다가서는 법이다.

    이들은 디자인거리 조성사업이 사실은 과거부터 있어왔던 도로정비사업과 노점철거사업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디자인플라자 건립사업도 그저 사무실, 상가 임대사업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도 눈치 챘다.

    더구나 행사예산으로 책정된 80억 중 13억 원이 불꽃놀이하고 축하공연하는 데 사용되고 8억 가량이 홍보비로 책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그야말로 무릎을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고 한다. “이것은 80억 세비로 하는 최대의 헛지랄이다!!”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

    그리하여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마공에 대항하기 위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던 정파의 무사들이 모이기로 하였으니, 그것이 10월 10일 잠실 대회전 되겠다. 잠실은 서울디자인왕국을 열고 스스로를 디자인왕이라 칭하는 오세훈 시장의 80억짜리 잔치가 열리는 곳이었다.

    오세훈 시장은 88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곳에서 서울디자인올림픽을 열어 자신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적자임을 만천하에 공개하였던 것이다. 이제 전면전은 피할 길이 없었으니, 무릇 역사를 아는 자가 현재를 알 수 있다 했다. 사실 정파의 무사들은 그 해 8월부터 사진전, 평가토론회, 퍼포먼스 등의 무공들을 익혀왔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전뿐이었다. 80억 원 대 80만 원의 싸움. 누구나 게임이 안 될 것이라 생각했다. 뛰고 발악해보았자 전경버스(옛말사전을 찾아보니, 닭장차가 표준어로 되어 있다)에 가로막혀 독안의 개구리 짝이나 날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곤 오세훈 시장 측에선 “국제적인 행사에 서울 망신을 시키려고 하느냐”는 암기가 실린 전언도 있었다 한다. 일촉측발의 상황이었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이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사건이 과연 발생할 수 있었나, 라고 생각할 테지만, 지금이라도 연표를 꺼내보면 ‘한나라 암흑기’라고 표기된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비상식이 상식이 되고, 자신들만 빼고 법 지키라고 아우성치는 그런 시대였던 것이다.

    오세훈 시장의 서울디자인왕국 조성기를 둘러싼 2008년 가을의 대회전은 다음 기회에 다루어야겠다. 지금 거리에선 연극이 막 시작되었다. 오늘은 우리 동네 아이들이 하는 날로 방과 후에 세 달 동안이나 준비한 것이라며 꼭 오라고 당부를 했던 터다.

    이미 서울을 뒤덮고 있던 마천루가 옛날 그림책에나 나올 정도로 많이 지난 지금, 2008년도의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나의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어이없음이 전염될 정도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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