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버 모욕죄, 도대체 왜 만들까
        2008년 10월 07일 02:3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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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나라당에서 최진실씨 죽음과 관련해서 사이버 모욕죄를 만든다고 한다. 최씨의 죽음은 충격적인 일이지만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신중하여야 한다. 특히, 형벌과 관련된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형벌은 잘못 사용될 경우 그 피해가 클 뿐만 아니라 의도한 만큼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드러난 것 중 가장 주요한 것은 형법 상 친고죄인 모욕죄를 사이버 상에서는 비친고죄로 바꾼다는 것이다.

    2.

    친고죄는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이다. 실제로는 고소가 있어야 수사가 개시되는 경우가 많고, 범죄가 발각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수사기관에서는 당사자에게 고소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리고 고소를 안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친고죄인 범죄는 당사자의 개인적 사생활과 관련된 경우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 처벌할 수 없도록 하거나, 정책적으로 사회의 기본윤리를 해하는 행위가 아닌 범죄 중에서 경제적 이유로 친고죄로 하는 경우가 많다.

    비친고죄의 문제점

    전자는 강간이나 모욕죄가 해당되고 후자는 저작권법 위반과 같은 지적재산권 관련 범죄가 해당된다.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닌 1회적으로 저작권법을 위반한 사람의 경우 합의가 되어 고소가 취소되었다면 굳이 전과자로 만들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모욕죄는 친고죄이다. 누군가 사이버 상에서 모욕을 당하였다면 고소만 하면 처벌이 되는 것이다. 왜 사이버 상이라고 해서 굳이 이를 비친고죄로 하여야 할 이유는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다.

    예를 들어 모욕을 당한 피해자가 오히려 이를 법적 문제로 만들어 더욱 여론의 관심을 받는 것보다 시간이 지나서 여론이 잦아들기를 선택할 수도 있는데, 이를 비친고죄로 하면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데도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도대체 왜 이것을 비친고죄로 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3.

    게다가 최씨의 경우는 인터넷에 유포된 내용이 단순한 모욕죄가 아니라 그 내용이 구체적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에 해당된다. 쉽게 말해서 단순히 욕을 하면 모욕이고, 사실을 말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것인데, 최씨의 경우는 모욕이라고 보다는 명예훼손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형법 상 명예훼손보다 가중처벌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사이버 모욕죄를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 반의사 불벌죄는 친고죄와 달리 당사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해서 처벌하지 못하는 범죄이다. 수사 개시는 고소가 없어도 할 수 있으나, 당사자가 상대방의 처벌을 원하지 못하면 바로 수사가 중단되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모두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가 개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사이버 모욕죄의 효과

    아마 최씨 관련 악성 루머를 유포시키거나 이를 전한 사람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제70조 제2항으로 처벌될 것으로 보이고, 그 결과가 중대하므로 형량도 그에 따라 정해지지 않을까한다.

    즉, 최씨의 경우에 악성루머 유포에 기여한 사람들은 지금도 충분한 형량으로 처벌된다는 것이다. 굳이 문제가 된다면 이러한 루머를 댓글로 유포시킨 사람들일텐데 이들도 댓글의 내용이 구체적이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이 될테고 그렇지 않으면 형법 상 모욕죄가 될 것이다.

    즉, 이른바 사이버 모욕죄의 효과라는 것은 예컨대 최씨에 대해서 욕설 비슷한 댓글을 올린 악플러들을 경찰이 피해자 측의 고소없이도 조사해서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 사이버 모욕죄가 통과되어도 과연 고소하지도 않았는데 수사기관이 모욕죄를 조사할지는 의문이다. 그 많은 댓글들을 조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수사기관은 아마도 무엇을 조사할지에 대해서 선별할 수 밖에 없다.

    최씨 사건과 같은 비극적 사건의 경우가 또 다시 발생하면 이를 조사하겠지만, 이런 사건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수사기관이 고소가 없는데도 사이버모욕죄로 조사할까?

    4.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는 권력집단에 대한 모욕에 대해서 수사기관이 집중적으로 조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권력집단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공인의 범주에 속하고 심각한 사태가 아닌 한 본인이 직접 고소, 고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사이버 모욕죄가 비친고죄가 될 경우 수사기관에서 알아서 조사해주면 이는 그 공인은 고소, 고발을 남발한다는 비난도 받지 않으면서도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적 풍자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

    사이버 모욕죄가 통과되고 나서 인터넷 상에서 ‘쥐박이’라는 표현을 쓴 네티즌들을 대거 처벌하지 말란 법이 없다. 사실 한 인간에게 쥐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히 모욕적일 수 있으나, 그 개인이 전국민의 대표자인 경우에는 어느 정도 비판이나 비난은 당연히 감수하여야 하고, 그럴 의사가 없다면 전국민의 대표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지금의 수사기관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이런 식의 수사가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심지어 유력자에 대한 통렬한 풍자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5.

    형벌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현 정부와 여당의 태도인 것 같다. 하지만 형벌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형벌은 단지 소극적으로 현존 질서를 유지시키는 정도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형벌로 적극적인 무언가를 달성하고자 하면 필연적인 부작용이 생기는데 그것은 인권과 자유의 축소이다.

    당연하게 이는 독재와 파시즘의 좋은 토양이 된다. 그런데도 모든 것을 형벌을 통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현 정부와 여당의 모습은 우리의 어두운 미래를 예고하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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