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대 시민사회'로 본 한국 역사
        2008년 10월 07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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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한답시고 밥을 벌어 먹고 사는 중생인지라 거의 꿈꿀 때도 역사에 대한 꿈을 많이 꿉니다. 그리고 이리 저리 산책하면서 시간 보낼 때에 – 오래간만에 관악산에 올라 등산 좀 하고 그 산신령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주암에서 불공을 드렸던 오늘(6일)처럼 – 늘 역사가 떠오릅니다. 이것도 일종의 망상이고 고뇌의 근원인 집착인데, 그런 줄 뻔히 알면서도 대책이 없어요. 덜 성숙된 근기인 듯합니다.

       
      ▲ 필자

    그러니까 오늘 등산했을 때에 갑자기 남한의 정치, 사회사가 하나의 그래프처럼 등식화돼서 머리에 떠오른 것입니다. 정치, 사회사의 주된 과정이라면 국가(관료기구)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아닌가요? 만약 그 관계를 중심에 넣고 대한민국사를 시대 구분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구분이 될 듯합니다:

    등산 중에 떠오른 역사 그래프

    1. 제1기 – 국가 기구 비대화, 시민 사회를 완전히 압도함: 1948-1980년. 원래 분단 국가이자 주로 식민 관료에 의해서 주도돼온, 외세에 의존하는 외삽적 성격이 강한 대한민국이 애당초에 차라리 ‘연성 국가’에 가까웠지만 1950-53년 동란기를 거쳐서 많이 강경화됐어요.

    일단 다른 친미적인 주변부 독재에서 보기 드문 60만 대군이 생기고, 경찰들이 일체 반체제적 움직임을 원천 봉쇄하는 기술을 익히고 사법부는 조봉암을 법살하면서 진보적 시민사회를 도살하는 경험을 쌓았죠.

    그래도 병역거부자가 징병 대상자의 20%에 달했던 1950년대에 국가가 그 조직적 지배력이 약하고 개별적 관료들의 사리사익에 너무 많이 좌우되는 등 ‘도둑 정권'(cleptocracy)적 특징마저 보였지만, 군부에 장악되면서부터 달라졌어요. 일제 말기를 모델로 하고 미국의 지원에 무조건 의존할 수도 없는 군부인지라 사회를 아예 병영화시키고 말았어요.

    유신 시대 초기, 철도청에 취직하려면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던 그 시대에 겨우 그 여맥을 잇는 재야만 빼고 본다면 대한민국이 어쩌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참 비슷했습니다. 양쪽에서 수령주의적 개발독재, 군사화가 극성을 부렸던 것입니다. 그 절정은 물론 광주 학살이었죠.

    결투의 시대

    2. 제2기 – 시민사회의 대국가 투쟁기: 1980-1997년 – 유신이 무너지고 광주의 충격파가 번진 뒤에 남한에서 다시 한번 ‘급진주의’가 회생되면서 시민사회와 국가의 ‘결투’가 시작됐어요.

    민주 노조, 진보적 NGO, 마르크스주의까지 포괄하는 폭넓은 지적 모색 등등 대한민국이 지금 자랑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다 그 기간에 피를 흘리면서 쟁취된 것이죠. 또 시민 사회에 밀리고 밀리는 역대 정권들이 바로 그 때에 참 중요한 양보를 많이 했어요. 해외여행 자유화부터 민주노총 인정까지 말씀입니다.

    사실, "가슴을 열고 대한민국을 받아들이자"면 얌전한 영국 노동당을 벤치마킹했던 전향 지식인 조봉암보다 1980년대의 그 수많은 위장 취업자와 골방 철학자들을 받아들여야 할 걸요. 어쨌든 이 시기의 절정은 김대중의 "대통령화"이었어요.

    3. 제3기 – 국가에 의한 시민사회의 포섭: 1998-2007년 – 권력화된 1970-80년대 ‘재야’의 일부 (김대중型의 1970년대적 재야, 유시민型의 1980년대적 재야) 그 자체가 이미 재벌과 기존 정치권에 의해서 충분히 ‘순치’된 상태이었는데, 권력화되자마자 재야에 남아 있는 동료들을 빨리 순치시키기 시작했어요.

    온갖 ‘시민 연대’들이 국가 보조금을 받고 국가 프로젝트를 따내고 그 지도자님들을 정부 각처에 보내고 정책 입안 과정에 가끔씩 불리워져 의견 제시의 특혜를 얻는 대가로 구속되고 분신되는 노동 운동가, 짓밟히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을 잃어갔던 그 화려한 시절이었어요.

    전대협 간부 출신들이 정부에 들어가서 이라크 파병을 거의 당연지사로 받아들였던, 인간이란 과연 어떤 동물인가를 고심케 만들었던 시대.

    인간에 대한 회의의 시대

    4. 제4기 (미완) – 국가에 의한 통제와 탄압의 점차적 심화: 2007년 이후. NGO들을 하위 파트너로 끼워줄까 했던 국가는, 이제는 그들에게 당근보다 채찍을 더 자주 쓰게 됐죠. 글쎄, 이렇게 해서 NGO의 ‘시민 사회 지도자’들이 다시 한 번 1980년대적 본심으로 돌아가 노동자들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노동운동과의 든든한 연대를 모색하게 되면 역사의 발전이 계속될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시민사회’와 노동운동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의 역할을, 진보신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마땅히 해야 할 걸요. 단, 지금으로서 아직도 역부족인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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