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야만의 길을 걷다
    2008년 09월 09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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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러시아 매체를 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소수의 자유주의적(www.novayagazeta.ru ) 매체나 국제주의 좌파적(www.aglob.info) 매체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거의 전쟁 프로파간다 기관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빈부 격차가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이상인 나라에서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전쟁이야말로 위로부터의 ‘국민적인 집단적 자아’ 만들기를 가능케 합니다.

범람하는 ‘우리’는 누구인가

   
  ▲ 필자
 

평소 미제보다 뇌물쟁이 경찰이나 뒷골목 폭력배, 여전히 임금 체불을 가끔 해대는 사업주 등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것이 러시아의 소시민이지만, 이제서야 권력자들은 ‘모두들’에게 공유해도 되는 ‘혐오 대상’을 제공할 수 있게 됐습니다.

신문마다 범람하는 것은 ‘우리’라는 단어입니다. ‘유럽연합은 우리에게 제재를 가할 입장이 아니다’, ‘나토 함대는 흑해에서 우리 흑해 함대를 위협한다’, ‘우리는 압하지야와 오세티야의 주민들을 배신할 수 없다’… 이 ‘우리’는 도대체 누굴 지칭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한달 평균 임금이 약 5천 루불 (20만원) 정도밖에 안되는 농촌 인구와, 모스크바의 약 20~30만 명의 백만장자들을 다 같이 묶어서 ‘우리’라고 지칭해도 되나요?

참, 지금 세대의 백만장자와 시골뜨기들은 그나마 서로 언어라도 통하지만, 모스크바의 부촌 주민들은 – 강남족들이 아이들을 미국으로 조기 유학 보내듯이 – 자기 자녀들을 대량으로 아주 초기에 영국이나 스위스에 보내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 와서는 언어마저도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민족’, ‘국민’의 허상을 계속 유지시키려면 월드컵이나 올림픽도 모자랍니다. 진짜 혈전이 필요하지요. 그래야 다들 똑같이 흥분해서 어느 쪽으로든 다 몰고 갈 수 있는 소떼와 같은 모양을 취하지요. 이성을 잃은, 즉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이란 사실 소보다 훨씬 위험한 동물인데 말씀입니다.

이성 잃은 사람, 소보다 위험

‘진보’를 자칭하는 이들마저도 (예컨대 유명한 경제학자 델랴긴 박사: http://ej.ru/?a=note&id=8369) 전쟁 반대론자 내지 회의론자들에게 ‘비국민’, ‘매국노’라고 욕을 해대는 걸 보니 정말 슬퍼지고, 사는 게 싫어집니다.  좀 배웠다는 사람들인데 역사를 전혀 못 배운 것이지요.

‘민족’, ‘국민’을 전쟁이 만든다는 등식은 맞습니다. 오늘날의 일본국민이 청일, 러일 전쟁의 자녀들인 것처럼 남북한의 국민은 각각 6·25의 자녀들이고 러시아 국민들은 1941~45년간 소독 전쟁의 자녀들입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나팔이 울리는 현재의 입장이 아니고 미래의 입장, ‘집단적 나’만의 입장이 아니고 이웃과 인류의 입장에서 본다면 6·25 발발에 직접적 책임을 지는 김일성과 (도발자로서의 책임이 있는) 이승만보다 끝내 분단과 동족 사이의 전쟁을 반대해온 김규식이나 여운형 등은 훨씬 더 인간답게 보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나팔을 부는 썩은 먹물들이나 그 자식들이 직접적으로 전쟁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훨씬 더 적다는 것. 징병제의 러시아 군대인데 징병 연령의 남성 중에서 실제 징병되는 인구는 11% 정도인데 거의 다들 대학에 못간 가난뱅이들이지요. 그들이 ‘우리의 단합’을 자신들의 피로 뒷받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문, 방송에서는 그들의 ‘희생 정신’은 찬양해도 그들의 부모나 여자친구들과의 인터뷰를 절대 안하죠. "내 아들을 살려내라!"와 같은 절망의 외침을, ‘우리’로 도배된 신문에 어떻게 싣겠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말할 권리가 있는 자들은 양심이 없습니다. 이게 계급 사회의 일상이지요.

죽은 자는 말이없고, 힘 센 자는 양심이 없다

러시아는 대표적 준주변부 국가죠. 약 50%의 대외 무역을 유럽연합과 하는데, 주요 무역 파트너(중국, 미국, 일본)들이 다 하나같이 군사, 정치력이 더 우세한 대한민국과 달리, 러시아는 주요 무역 파트너 (독일, 이태리, 네덜란드 등)들보다 덩어리가 크고 (군사적) 힘이 강하지요.

제국주의 미국보다는 약체지만 미국과의 무역은 전체 대외 무역의 5%도 안되기에 생각보다 크게 예속되는 게 아니지요. 즉, 경제적 약함을 군사, 정치적 강함으로 보충할 수 있는 ‘준주변부적 제국’의 전형입니다. 또 거기에다 중국과 같은 비교적으로 안정된 전략적 파트너/준동맹국이 있기에 미국의 위성국가 한 두개를 혼내주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그루지야는 시작일 테고 앞으로는 주변의 친미적 약소국들과의 크고 작은 충돌들이 계속 일어날 듯합니다. 이렇게 가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대형 전쟁으로 갈 수도 있고요. 사회주의를 선택할 능력이 안되는 인류가 다시 야만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 이 글은 ‘박노자 글방’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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