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당 좌파 포괄 새 야당 창당하자
        2008년 09월 07일 10: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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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주대환 주장의 내용적 검토 – ‘4가지 태도 전환’을 중심으로

    주대환은 「진로」를 통해 4가지 태도 전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 내용을 적어보면 △도덕적 우월감 버릴 것 △대한민국을 긍정할 것 △세계주의 노선을 취할 것 △민주주의를 가슴 깊이 받아들일 것이다. 필자는 4가지 주장에 대해 적극 동의한다.

    주대환의 이러한 주장은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파의 합리적 핵심을 ‘적극 수용’함으로서 그들의 하부기반을 ‘적극 무력화’시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는 우파에게 빼앗긴 이슈의 선점을 재탈환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나머지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듯 하고, 이중에서 ‘세계주의 노선’의 중요성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자.

    어쩌다가 우파는 세계주의를 제창하고, 좌파는 민족주의를 제창하는 것처럼 되고 말았다. 예컨대 당내 좌파들은 그간 다자간 무역체제인 WTO도 반대하고, 쌍무 무역체제인 FTA도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다. ‘자본주의하에서’ 무역협정은 전부 반대한다는 것인지, 그리하여 자급자족과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한다는 것인지 자신의 대안적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9. 전진은 말하지 않았지만, 주대환은 말했던 것 – ‘정치전략’에 관하여

    91년 주대환의 신노선은 이념적으로는 PT독재론과 폭력혁명의 폐기였지만, 실천적으로는 조직된 노동조합에 기반한 진보정당, 즉 ‘노동당’ 노선의 채택이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었다.(중앙파이건, 국민파이건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주대환의 안타까움과 무관하게 아무튼 노동당 노선의 실체였던 민주노동당 실험은 실패로 귀결되었다.

    이에 대해 김수민(Lollapalooza)은 “1900년산, 낡은 영국제 시계를 버려라”라고 용감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이장규도 맞장구를 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주대환이 ‘뭘’, ‘왜’ 고민하고 있는지조차 여전히 독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하다.

    주대환이 영국노동당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단지 조직된 노동조합에 기반한 진보정당 모델을 강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중요성을 가졌던 것은 주대환이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 ‘두베르제의 법칙’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가 없는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에서는 근본적으로 양당제로 수렴된다는 것이다. 제3세력은 ‘일시적’ 흥망성쇠를 할 뿐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한 유일한 사례는 세계사적으로 영국노동당 이외에는 없었다.

    요컨대, 주대환이 지난 수십년간 묵직하게 고민했던 근본 화두는 소선거구제라는 쉽게 바뀌지 않을 제약조건 속에서 진보정당의 지속 생존이 가능한 물질적 조건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래서 그가 찾은 해법은 민주노총당 모델과 영남 진보벨트에 기반한 ‘지역근거지론’이었다.

    주대환은 남들이 모두 탐낼 법한(?) ‘노른자위’ 지역구에 해당하던 창원이라는 지역구를 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을 ‘초빙’하며 기꺼이 내줬다. 그리고 선거운동 자금까지 마련할 정도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는 진정 존경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영혼과 온몸을 다 바쳐 자신의 노선에 ‘정직’했다.

    혹자는 이에 대해 현재 존재하는 정당투표제에서 위안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비례의석이 54석에 불과한 상황에서 진보신당이 정당투표로 원내교섭단체(20석)를 만들려면 40%에 육박하는 정당지지율을 받아야 한다. 한마디로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40%의 지지라면, 차라리 대선이 빠를 것이다.)

    심지어 언론과 식자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노회찬/심상정 같은 진보가 배출한 최강의 정치스타들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란 뜻의 은어-편집자) 같은 상대후보들에게 박빙의 승부 끝에 떨어지는 판국이니 다른 사람의 지역구 돌파가 난망한 것은 자명할 뿐만 아니라 노/심의 지역구 돌파 역시도 여전히 낙관할 문제가 아니다. 

    10. ‘경우의 수’로 살펴보는 – 진보신당의 선택 가능한 정치전략 4가지

    총선 직후 필자의 화두 역시도 주대환의 그것과 같았다. 진보신당의 생존 관련 ‘경우의 수’를 상정해보면 다음과 같다.

    1안) 좌파 운동권들이 늘 그래왔듯이 ‘못 먹어도 Go!’를 하는 것이다. 독자노선이다.

    2안) 영국 페이비언 그룹의 ‘초기’ 자유당 침투 이후, 이후 영국노동당 합류처럼 초기에는 민주당으로 침투해서 역량을 키워 향후 독자적 사민당 깃발을 띄우는 것이다.

    3안) 자유주의 세력과의 (선거)연합 정치가 있다. 1906년~1917년 영국노동당의 경우, 1920년대 스웨덴 사민당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4안) ‘색깔있는 야당재편론’이 있다. 민주당 왼쪽을 포괄해서 새로운 대안 야당을 창당하여 단박에 ‘잔류 민주당’을 박살내고 양당제의 한축으로 도약하는 방식이다.

    필자의 경우 이중에서 명백한 것은 1안)은 실패가 판명난 것이라는 생각하는 입장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은 3안에 기초하여 궁극적으로 ‘초록+복지’의 컨셉 하에 ‘색깔 있는 야당재편’을 이룩하는 것이다.(즉,4안) 이념적 모양새로만 치면 김수민이 언급했던 ‘푸른 사민주의'(또는 녹색당과 사민당의 절충) 정도가 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 따라 견해가 각각 다를 것이다. 그러나 본디 총노선 혹은 ‘전략’이란 개념은 우리의 현실을 둘러싸고 있는 주어진 ‘객관적 제약조건’을 모두 감안한 상태에서 탈출구 또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전략적 사고란, 본질적으로 객관적 제약조건을 얼마나 통찰력 있게 인식하는가의 문제이며, 동시에 한정된 주체적 자원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전략의 검토란 본질적으로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전진의 총노선은 반대할 이유조차 없는 ‘좋은 말’들을 모아놓은 것인 반면, 주대환의 글에는 ‘정치 전략’이 제출되어 있다. 주대환의 ‘08년판 신노선’은 몹시 논쟁적이지만 또한 그가 온몸으로 투자했던 35년이라는 세월의 깊이만큼 여전히 몹시 묵직하다. 

    11. ‘비지론’과 ‘독자론’을 넘어 – 영국노동당과 스웨덴 사민당의 ‘헤게모니 정치 전략’

    1900년에 창당된 영국노동당의 전신이었던 독립노동당의 케어 하디는 마치 91년 창당된 한국노동당 멤버들이 그러했듯 초기에는 일관되게 자유당과 선명히 대비되는 ‘독립’ 노선을 강조하였다. 창당 이후에도 영국노동당의 국회의원은 1명~4명 수준에서 맴돌았다. 그러나 창당 이후 ‘정치적 실체’가 되자 케어 하디는 전략적 실용주의에 입각한 헤게모니 노선으로 전환한다.

    바로 그 귀결이 자유당과 노동당이 서로 상대방이 강한 지역에 대해서는 공천을 자제하는 1903년 보궐선거 선거협약과 1906년 총선에서의 연합공천이었다. 특히나 1906년 맥도날드(노동당)-글래드스톤(자유당) 협약에 입각한 연합공천은 노동당이 ‘비약’하는 계기가 된다. 50명이 출마하여 무려 29명이 당선되는 일대 쾌거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1900년에 노동자대표위원회(LRC)라는 임시 명칭으로 출범했던 영국노동당은 29명의 의원이 생긴 이후에 비로소 ‘노동당(Labour Party)’이라는 정식 당명을 채택할 정도였다. 이후 1906년 연합공천을 통해 ‘비약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 영국노동당은 1930년대 결국 ‘자유당’을 잡아먹고 노동당-보수당의 양당 대결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후에는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의 전시내각에 적극 결합하면서 ‘국정 경험’을 쌓게 되고 바로 그러한 신뢰에 기반하여 1945년 총선에서 영국노동당 역사상 최초로 ‘과반 집권’을 하게 되는 일대 쾌거를 하게 된다.

    즉, 영국노동당 성장의 역사는 창당까지는 독자적 결집을 강조하다가 막상 창당이 된 이후에는 전략적 실용주의에 입각하여 1906년 연합공천과 1920년대 선거권 확대, 1945년 전시내각을 통한 연립정부 참여를 통해 비약적 성장의 계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1889년 창당 시점부터 독일 베른슈타인의 개혁주의 노선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스웨덴 사민당 발전의 역사는 ‘전략적 사고’가 얼마나 위대한 결실을 보여주는지 대표적 사례이다.

    사민당의 역사는 ‘전략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17년 스웨덴 사민당은 자유당과 최초의 연립내각을 구성한다. 이로 인해 당내 청년좌파들이 반대하여 무려 1만명이 탈당하고, 15명의 당 소속의원이 이탈할 정도였다. (스웨덴 인구가 현재 900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탈당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음. 현재 한국으로 치면 거의 10만명에 달하는 탈당 규모인 셈.)

    그러나 스웨덴 사민당의 전략적 판단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었으며, 이후 꾸준히 ‘전략적 관제고지’에 해당하는 보통선거권의 확대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1932년 총선을 통해 스웨덴 사민당은 단독집권에 성공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유당을 잡아 먹어버린 꼴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중요한 고비마다 세계 진보정당 운동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옥같은 ‘전략적’ 결정을 하면서 1976년까지 민주적 장기집권에 성공한다. 

    12. 역사적 교훈 – "세력의 크기"가 아니라 "노선의 올바름"이 집권을 좌우한다

    필자는 거의 대체로 주대환의 논지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이다. 그와 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진보신당의 당원이냐 아니냐 이외에는 별로 없는 듯 하다. 그가 08년판 신노선을 제출했듯이, 난 ‘독자노선 반대론자’로 전향했다.

    소선거구제가 관철되는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합정치에 기반한 초록+복지 컨셉의 ‘색깔있는’ 야당재편론이 필자의 기본입장이다.

    영국노동당의 1906년~1917년 자유당과의 연합공천과 1940년대 보수당과의 전시연립정부는 모두 ‘소수파’일 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딛고 상대방을 잡아먹었다. 1930년대 선거권의 꾸준한 확대에 힘입어 자유당을 별볼일 없는 제3당으로 만들고, 보수당의 전쟁영웅 처칠을 격퇴할 정도였다.

    스웨덴 사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17년 자유당과의 소수파 연립정권 참여 이후 ‘전략적 관제고지’에 해당하는 보통 선거권을 꾸준히 확대했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정당에서 소선거구제가 존재하는 한, 주대환이 절절하게 경고하고 있듯이 결코 ‘두베르제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다. 우리가 취할 가장 합리적 방법은 51%를 얻기 위해서는 49%를 과감하게 내어줄 수 있는 ‘헤게모니론’에 입각한 연합정치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실 연합정치를 구사할 수 있었다면 심상정/노회찬/박용진/신장식 이런 이들은 몹시 승산이 높다. 소선거구제 그 자체가 ‘비판적 지지지’ 제도라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

    덧붙여 우리 노선의 올바름을 확립해야 한다. 세계 정당사는 세력이 큰 정당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노선이 올바른 정당이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첫 출발은 무엇보다 낡은 것과는 ‘명백하고’, ‘단호하게’ 단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종북주의 논란과 분당을 통해 시대착오적인 NLPDR과 단절했다면, 그들의 벗이자 일란성쌍둥이인 PDR론과도 명백하게 단절해야 한다. 향후 진보신당 창당 과정을 통해 △PT독재론 △폭력혁명 △중앙집중계획경제 △시장/상품 불인정 등등을 강령 또는 창당선언문의 형태로 공식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이는 말로만 사회주의 이념조직을 외치고 있는 덩치 큰 전진이 아직도 ‘조직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부분인데, 주대환이 17년 전이었던 91년에 했던 것이며, 조봉암이 지금으로부터 62년 전에 신문광고를 통해 1946년에 했으며, 1956년 진보당 창당선언문에서는 두 번째 항목으로 "공산독재는 물론 자본가 독재도 반대하며 진정한 민주주의를 체제를 확립"하겠다고 했을 정도이다.

    전진 역시도 그간의 자신들도 자신들의 정체를 모르는 ‘유령 사회주의’를 중단하고, 위 테제에 대한 공개 폐기를 동의함으로서 자신들의 표현처럼 명실상부한 ‘민주적’ 사회주의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100년전 코민테른으로부터 유래된 운동권의 오랜 사투리이자 NL과 PD 용어 그 자체를 ‘굿바이 레닌’과 함께 역사 저 멀리~ 되돌려 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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