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지지자를 위해 21조원 쏘다
        2008년 09월 04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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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세법 쟁취 투쟁의 역사를 기억하자

    정부의 감세 정책이 도마 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다루는 경우 한 가지 꼭 집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제 세금 문제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주로 가난한 백성들이 세금을 냈다. 고부군수 조병갑이 맹활약하던 동학혁명 시절까지만 해도 세금을 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고된 일을 도맡아 했던 농민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세금’이라는 말만 나오면 치를 떨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럴까? 조병갑이 사라지고 조갑제씨가 맹활약하는 이 시절에는 전혀 사정이 달라졌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즉 어느 순간부턴가 세금은 가난한 백성들이 내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내는 것이 되었다.

    자신이 부유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자기 주변을 한번 잘 살펴보라. 소득세 내는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있는지?

    맨입으로 쟁취한 우리 소득세

    특히 노동자가 부담하는 소득세인 ‘근로소득세’의 경우 각종 공제 등을 통해 이중 삼중으로 국가의 혜택과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의 절반은 아예 세금을 전혀 내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세금을 내는 노동자의 경우에도 세법에 규정된 세율과 상관없이 주로 3~4% 수준의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최고세율이 35%이라는 점과 비교해보면 이것은 커다란 혜택이 아닐 수 없다.

    (전체 국가 세수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그리 크지 않다. 연간 10조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전체 근소세수에서 고소득 근로소득자들이 부담하는 비중이 크게 높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거 누가 그랬을까? 이것은 이 시대의 조세 시스템이 기본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 많은 세금을 물리는 ‘소득세 시스템’이기 때문에 초래된 사건이다.

    우리는 거의 맨입으로 소득세를 쟁취했기 때문에 돈 많이 벌면 세금 많이 내는 것을 상식으로 생각하지만, 이 상식이 상식으로 정착하는 데는 실로 100년 이상 걸렸다. 미국에서 8시간 노동을 주장하다가 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영국에서 여성투표권을 주장하다가 경마장에서 말에 밟혀 죽었듯이 소득세 도입과정도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소득세 처음 도입에 100년 걸려

    소득세는 1799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되었는데, 민중의 요구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프랑스와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전비를 걷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전쟁시기에는 민중을 총알받이로 동원해야 하기 때문에 민중에 대한 과도한 조세 부과는 전쟁승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비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자니 군의 사기에 문제가 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궁여지책으로 고안해 낸 것이 결국 소득세였던 것이다.

    영국 사람들은 이 소득세라는 난생 처음 듣는 괴물을 보고 ‘치욕적이고 야만적인 압제’로 여겼다고 한다. 왜냐면 소득세를 부과하려면 국가가 소득이라는 개인정보를 일일이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가에 사생활을 노출시켜야 하는 이런 ‘악마 같은’ 소득세는 그래서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폐지되었다.

    그러나 그 뒤로 국가에 재정위기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한시법으로 제정되었고, 100년만인 1890년대에 와서야 영구법으로 정착했다. (조선후기에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시행하는데 100년이 걸렸듯이 소득세가 지구상에 처음 정착하는데 거의 100년이 걸린 것이다.)

    미국에서도 1860년대 남북전쟁에 쓰일 전비 마련을 위해 북군 측에서 소득세를 처음 도입했으나 전후 폐지되었다가 몇십 년 뒤에 미국 민주당이 공평과세라는 이념적 차원에서 ‘소득세’를 다시 제안했다.

    그러나 이 소득세법은 1895년 미국대법원에서 위헌판결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득세법이 위헌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황당하게 들리지만, 어쨌건 그때는 8시간 노동제 주장했다고 사형판결을 받을 정도로 미국의 판사들은 이상한 인간들이었다.

    국가 주도 투쟁, 민중운동 역사서 조명 받지 못해

    그래서 미국의 소득세 쟁취 투쟁본부(?)는 무려 20년에 걸친 지루한 투쟁 끝에 1910년대 중반에 와서야 ‘헌법’을 바꿔서 ‘개인 소득세’를 도입했다. 그렇지만 이 때 까지도 ‘종합과세’ 개념은 없었고 종합과세 개념이 도입된 것은 194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도입이 되었다.

    세법개정투쟁의 역사는 그 과정에서 선도적인 운동가가 죽거나 사형선고를 받거나 하는 상징적인 사건도 없고, 오히려 국가가 주도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민중운동의 역사에서 별로 조명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지대의 금납화 이래 가장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감세냐 증세냐 라는 지속가능한 논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정립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역사적 인식을 전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

    즉 소득세는 담세 주체가 주로 부유층이고 따라서 소득세의 감세는 기본적으로 부유층을 위한 수단이라는 기본적인 인식틀이 성립 가능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잘못된 관점을 갖게 되면, 한나라당이 노동자 세금 깎아주는 당으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중요한 대목이다.

    이명박, 지지층 결집에 21조원을 쏘다

    이명박이 예고한 이번 감세 조치의 핵심은 ‘소득세 시스템’을 약화시키려는 시도로 요약된다. 이명박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임기 중 21조원의 감세를 단행했다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감세를 통한 소비 진작, 경기부양 효과는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주로 화폐의 한계효용이 낮은 부유층을 상대로 한 감세조치이기 때문에 같은 돈으로 국가가 공적 소비를 창출하는 것보다 훨씬 소비 진작-자본회전 효과가 미약한 것이다.

    겉으로는 자본주의의 껍데기를 쓰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드높은 소득 세율을 자랑하던 나라들 (예를 들면 독일은 소득세 최고세율이 53%까지 간적이 있었고 미국은 개인소득세는 70%, 법인소득세는 48%까지 갔다가 내려왔다. 소득세율이 100%면 자동으로 구사회주의가 된다) 에서 한꺼번에 10%가 넘는 세율인하를 단행했어도 소비진작은 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판국에 현재 20~30%수준의 세율에서 그까짓 1% 낮춰준다고 뭘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기만적인 논리가 아닐 수 없다.

    이 조치의 기만적 성격은 이번 감세안이 이명박이 제시한 ‘녹색성장’론과 모순된다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녹색성장을 위해선 정부주도의 거대한 투자 재원이 필요한데 오히려 감세로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조치의 실제 의미는 단순히 이명박의 지지층 결집을 위한 비용지출일 뿐이다. 역사상 자기 지지층 결속을 위해 21조 원씩이나 썼던 권력자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것은 단군 이래 가장 거대한 정치적 지출이 아닐 수 없다.

    감세는 경제를 김새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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