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의 두루뭉실 위기설 묻어가기
        2008년 09월 03일 01: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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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설이 진짜 위기를 부른다. 위기설이 과장됐다는 지적도 많지만 시장 참가자들을 반신반의하면서 주식을 내던졌다. 환율도 폭락했고 금리는 치솟았다. ‘9월 위기설’이 다시 이슈로 떠올랐고 신문을 펼쳐보면 ‘검은 월요일’이니 ‘공황’이니 ‘패닉’이니 온갖 과장된 표현이 넘쳐난다. 일부 신문은 ‘9·1 테러’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2일 주요 신문 머리기사도 여전히 9월 위기설과 관련된 내용이다. 우리는 흥미롭게도 9월 위기설에 대처하는 우리 언론의 몇 가지 유형을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 :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 유형은 비교적 현장감을 살려 위기설이 실제로 위기를 부르는 최근 시장의 분위기를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 매일경제 9월2일 1면.
     

    매일경제는 1면에 "맥없이 무너진 원화… 10분새 12원 추락"이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이 신문은 "9월 위기설에 달러 사자 세력까지 몰린 외환시장의 인내심은 장 마감 10분을 버티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은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 같던 정부의 달러개입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이를 확인한 원화 값은 불과 10분만에 12원 정도 폭락했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제도 1면에서 "환율 연일 급등 브레이크가 없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장이 우려하는 경제위기는 단순히 9월 외국인 채권만기 이탈이 아니라 이와 연관된 다른 경제부분과 상승작용"이라며 "금융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 위기는 없다는 당국의 안일한 태도가 의아스럽다"고 전했다.

    두 번째 유형 : "9월 위기설은 괴담이다."

    이 유형은 시장의 반응이 지나치다는데 초점을 맞춘다. 일부 신문은 9월 위기설을 아예 괴담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한국경제는 "기업 자금난 괴담 금융시장 불안 증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업들의 자금난을 둘러싼 루머가 도미노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기업 재무통들 사이에서는 ‘빈지갑을 보여서는 안 된다’, ‘소문에 휩싸이면 죽는다’는 자조섞인 한숨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지면서 계열사 주가가 하락한 동부생명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 동아일보 9월2일 1면.
     

    동아일보는 좀 더 직접적으로 "지표 악화보다 위기설이 더 위험"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과 2008년이 어떻게 다른가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 신문은 "정부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같은 심각한 위기가 금융시장에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진단하지만 위기설 확산현상은 매우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머니투데이는 기획재정부 신제윤 차관보를 따로 만났다면서 그의 말을 인용해 1면 머리기사에 "9월 위기설은 허구"라는 제목을 내걸었다. 신 차관보는 국고채 만기 상환자금 19조원은 이미 자금이 확보돼 있고, 외환보유액도 적정수준보다 많으며 대기업 유동성도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유형 : "이게 다 이명박 때문이다."

    이 유형은 위기의 근본 원인을 정부의 실책에서 찾는다. 지난 정부에서 유행했던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야"라는 우스갯소리를 연상시키는 보도다.

    한겨레는 1면에 "정부 못 믿겠다… 셀 코리아 가속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의 상황인식과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 부재가 한국 자산 매도세와 금융시장 불안의 핵심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크게 떨어져 있고 시장 상황에 대한 관료들의 대응능력이 취약해 예측 불가능한 곳이 돼 버렸다"는 이야기다.

       
      ▲ 한겨레 9월2일 1면.
     

    경향신문도 1면 "9월 위기설 불안감 증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의 정책 실패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료들이 경제정책 실패에 대한 반성보다는 변명으로 일관해 시장 참가자들을 실망시켰다"는 지적이다. 이 신문은 또 "정부와 청와대가 최근 경제 위기설을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지만 정작 위기론을 부추긴 것은 청와대와 여권이었다"고 강조했다.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신문들이 최근 위기를 정치적으로 재단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최근 위기설이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것이고 그렇지만 괴담 수준으로 평가절하할만큼 사실 무근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경제지들이 비교적 객관적인 반면 정부에 우호적인 신문과 비판적인 신문의 관점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특히 한겨레나 경향신문 등이 위기설의 실체를 정확히 검증하지 않고 이에 적당히 묻어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많다. 정부에 대한 시장의 불신을 강조할 뿐 과연 최근 위기의 책임이 정부에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위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심도 깊은 진단과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겨레는 "외국인 보유 채권의 만기 집중에 뿌리를 두고 정부의 외환 보유고 감소 등으로 힘을 얻은 9월 위기설은 과장된 것으로 결론 날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정부의 대응 능력이 신뢰를 얻지 못하는 한, 경기 침체의 가속화와 함께 위기설은 쉽게 수그러들기 어려울 것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고 전하고 있다.

    이 신문은 위기의 징후와 위기설을 뒤섞고 이를 경기 침체와 정부의 정책 실패와 연결시킨다. 그래서 위기설이 정부의 정책 실패 때문이라는 결론을 끌어내지만 사실 이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 다른 여러 신문이 지적했지만 위기설의 핵심 쟁점은 유동 외채와 외환보유액, 기업 부실 등인데 이는 지나친 우려라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겨레는 3면 "정부, 시장불안 대처 못하며 ‘문제없다’ 되풀이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정부가)’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말라’고 말했지만, 시장은 이 대목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하고 있다"면서 "정부 경제팀이 시장 상황을 제대로 읽고, 이에 대처할 만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전혀 못 주고 있다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대규모 감세와 규제 완화 등으로 양극화와 내수 침체를 가속화시키고 일관성 없는 환율대책으로 시장불안을 가중시킨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한겨레의 논조처럼 부동산 거품과 가계 부채, 외국인 주식 매도 등을 위기설과 두루뭉실 뒤섞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겨레의 이런 호들갑스런 반응은 경향신문이 3면에서 1997년과 2008년을 비교·분석한 것과도 대조된다. 경향신문은 "유사점, 세계 금융불안·외환보유 급감/차이점, 기업부채·단기외채 비율 양호"라는 기사에서 "우리 경제가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1997년과 같은 상황은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의 판단"이라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말을 결론 대신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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