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
    2008년 09월 02일 09: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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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시대정신>에 실린 주대환 전 의장 글 전문이며, 주 전 의장은 당초 "시대정신의 원고 청탁에 응할 때 좌파 매체에 동시 게재"가 조건이었는데, 매체 발간 연기 등 여러 이유 때문에 좌파 매체에 게재가 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편지자 주>

1.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총선 결과를 어떻게 볼 것인가?

올해 초, 민주노동당은 이른바 ‘일심회’ 사건 관련자의 출당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을 벌인 끝에 분당하였다. 민주노동당이 영국노동당이나 독일사민당 같은 진보정당, 진정한 현대적 노동자 대중정당, 진보적 정책정당으로 진화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한국 사회의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면서 민주노동당을 되살려 보려고 애썼던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참으로 안타깝게도 양쪽 모두 어리석은 선택을 하였다.

한 쪽은 고집스럽게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간첩 행위자에게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음은 물론 굳이 친북 주사파를 옹호하고 감싸고돌아 북한 당국의 대남 정책의 지렛대 역할이나 하는 조선로동당의 2중대가 아니냐는 혐의를 감수하는 무모함을, 다른 한 쪽은 한번도 제대로 주사파와 싸운 적도 없이, 당내 노선 투쟁을 제대로 벌여보지도 않고 갑자기 탈당하여 “좁은 골목에 라면 집을 두 개나 차리는” 우(愚)를 범하였다.

물론 잘못의 무게를 단다면 민주노동당 다수파의 잘못이 더 무겁다. 그것은 본질적인 잘못이요 정치노선의 오류일 뿐만이 아니라 다중의 힘으로 우기고 떼를 쓰는 것이다. ‘일심회’와 관련해서 국정원의 발표가 나왔을 때 즉시 “국민의 심려를 끼쳐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하고 “자체 조사를 해서 고위 당직자로서 부적절한 행동을 하였다면 국민의 상식에 맞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거꾸로 국정원 앞에 가서 항의 시위를 하고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했다고 우겼으니 국민의 상식선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한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된 것이다. 말하자면 ‘일심회’ 사건 자체보다도 그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구태의연한 대처방식이 더 큰 문제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뒤늦게라도 이를 시정하자는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최소한의 필요한 조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 다수파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이런 다수파에 반발하여 탈당한 사람들도 실은 정작 일심회 사건 당시에는 침묵으로 일관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노선 투쟁의 시기를 놓쳤을 뿐만 아니라 공개적이고 끈기 있는, ‘끝장을 보는’ 당내 노선 투쟁을 전개하지도 않았다. 주사파의 문제에 대해서 항상 오랜 민주화운동의 미풍양속으로 눈감아주고 덮어두고 감싸주었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결국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으로 갈라져서 4.9 총선에 임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둘 다 함께 망하는 비극적 결과를 예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보다는 더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것이 기대에 그칠 것이라는 점은 속사정을, 특히 진보신당의 실체와 한계를 자세히 아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제 결과는 역시 2004년 총선에 비하면 큰 후퇴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궤멸이라고 할 수는 없는 정도이다. 즉 민주노동당은 5석을 얻고, 진보신당은 원내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래도 정당 지지율 2%를 넘겨서 정당 해산을 면하였다. 이런 현상은 제1야당인 통합민주당의 정체성 상실 및 지리멸렬함과 관련이 있을 듯하다.

그리고 국민들 중의 일부는 민주노동당 내의 종북주의 파동을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으로, 그래서 그 소동만으로도 당연히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여, 그 소동이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다시 뒤집어 보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관계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권영길, 강기갑, 노회찬, 심상정이라는 인물은 살았는지 모르지만 당은 둘 다 죽은 것 같다. 국민은 두 당에 대한 평가에는 냉혹했던 반면 그 동안 의정활동을 열심히 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주었다. 그래서 과연 앞으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정당으로서 소생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강기갑은 뜻밖의 어부지리로 살아남았다. "강기갑이 당선되면 나라가 망하지 않지만 이방호가 당선되면 나라가 망한다“고 외치면서 전국에서 몰려든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의 큰 도움을 받아 강기갑은 당선되었다. 그러므로 강기갑의 경우, 기사회생을 다행으로는 생각할지언정 자랑할 일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전국적으로 의외로 강하게 불어 닥친 박근혜 바람의 일부일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보면서 국민들은 여러 가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우선 왜 민주노동당이 완전하게 궤멸하지 않았는가? 만약 민주노동당이 종북주의 정당, 이른바 친북 NL 주사파의 정당이라면, 당연히 더 처참하게 무너져야 맞지 않은가?

실제로 민주노동당으로부터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동당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4.9 총선의 결과는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 비하여 절반으로 줄기는 했지만 5석의 의석을 얻어 살아남은(?) 반면 진보신당은 의석을 얻지 못하여 무척 어려운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흔히 우리가 관찰하는 사물들이 그러하듯이, 민주노동당 역시 다양한 모순을 내포한 복잡한 존재이기도 하다. 민주노동당은 흔히 주사파의 정당, NL의 정당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조직의 배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정당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하자면 노동자 대중정당이라는 일면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상당한 지지를 받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진보신당은 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는 정당 지지율 3%에 미치지 못하였는가? 그것은 진보신당 역시 모순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진보신당은 매우 잡다한 구성원 가운데 운동권 PD파의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대중정당으로서 뚜렷한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진보신당’이라는 애매한 당명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결국 진보신당은 아직도 PD의 당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에 비하면 ‘새로운 진보’ 같기도 하고 대중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수도권의 지식인들로부터는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보다 많은 표를 얻었지만 영호남의 노동자, 농민들로부터는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보다 많은 표를 얻었다. 지식인들은 친북 주사파인가 아닌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노동자, 농민들에게는 그 동안 민주노동당이 노동자 정당으로서 쌓아놓은 신뢰의 자산이 보다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진보신당이, 운동권 PD의 당을 넘어서서 사회민주주의 대중정당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정한 대안과 희망을, 대중적으로 설득력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하였다면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격류 속에서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를 자신의 노선으로 표방하지 못한 만큼이나 진보신당 역시 아직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관념 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진보신당은 고객의 요구, 정치 소비자인 국민의 입장을 중심에 두기보다는 자기들의 입장, 자기들 내부를 추스르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그렇게 선명하게 노선을 정립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민주노동당의 잘못을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80년대 민족민주 운동권으로부터 유래하는 NL과 PD는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의존하는 관계이고 둘 다 시대착오적이며 관념적인 좌파의 두 파벌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이 이렇게 망하기 직전에까지 이르게 된 책임은 어느 한쪽이 더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 비현실적인 ‘당직 공직 겸직 금지’ 제도나 ‘지구당 폐지 반대’ 당론에 따라 정당법을 지키지 않은 불법적이고 불투명한 당 운영 등에서 오히려 PD파가 앞장을 섰다.

그래서 우리는 NL은 김일성주의자들이라면 PD는 박헌영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다고 본다. 박헌영은 전형적인 스탈린주의자로서 소련의 지령을 충실하게 따라서 국민 정서로부터 먼 정치적 판단과 결정을 여러 차례 내렸다. 그러니까 해방 당시로 소급해서 본다면 PD파는 박헌영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둘 사이에 동일성을 본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둘러싼 입장이 동일하다는 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원내정당화’를 우려하여 원외 인사들로 구성된 최고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만들거나, 끊임없이 원외의 데모와 가두 투쟁, 이른바 ‘대중투쟁’과 함께 하기 위한 실천적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거나, 다 그게 그것이지만 이름을 바꾸어 달았던 재야단체, 즉 통일연대, 민중연대, 진보연합 등과 항상 함께 하고자 노력하는 데 있어서도, NL과 PD는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2.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왜 흥하고 망했는가?

지난 몇 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왜 흥하고 망했는가? 한 마디로 겉과 속이 달랐기 때문이다. 겉 때문에 흥하고 속 때문에 망했다. 겉으로는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라고 외쳤다. 이 구호는 원래의 뜻 그대로의 좌파,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좌파의 구호였다. 물론 구체화되고 보다 현실적인 정책으로 다듬어져야 할 거친 구호들이었지만 적어도 시대착오적인 구호는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선진국의 턱 밑에 이르고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과 빈부격차가 극심하여 누구나 양극화를 인정하고 걱정하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좌파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민은 이에 대해 공감을 하고 기대를 보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아직 NL과 PD, 즉 맹목적 민족주의와 혁명적 민주주의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004년 총선에서 국민의 과분한 사랑과 기대를 받아 원내로 진출한 후에 오히려 그러한 속내가 드러났다. 결국 80년대 운동권의 관념과 습관,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숨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대중 앞에서 선거운동을 하면서 하는 말과 당내에서 하는 말이 일치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대중에게 ‘정직하지’ 않은 사고와 언행의 나쁜 습관은 국민과의 만남에서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차단하였다.

80년대 운동권의 인식은 우리나라를 식민지 종속국의 일종으로 보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경제 체제를 미성숙한 자본주의, 아니면 무언가 부족한 자본주의, 또는 모종의 결함이 있어서 순조롭게 발전할 수 없는 자본주의로 보았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봉건 잔재를 찾아내서 그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1948년 건국 직후에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지주 계급이 소멸하였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까지 일종의 군사 독재 정권이 폭압적 통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제로는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하는 민주화 투쟁이라는 실천을 하면서 관념적으로는 훨씬 더 크고 심오한, 아니면 역사책에 나오는 그 무엇인가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거기서 NL과 PD가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돌이켜 생각하면 NL과 PD는 이미 당시에도 수십 년 시대에 뒤처진 사고방식과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이론과 사고체계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20년대 코민테른 지도 하의 좌파, 식민지시대 공산주의자들의 사고방식과 동일했다. 즉 NLPDR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혁명이니, 그러한 혁명 이론에 젖은 NL과 PD는 현대의 한국 사회를 전근대적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은, 여러 부족함과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독립운동 시기의 공산주의자들이 꿈꾸고 상상하던 것과는 달리 좌파가 주도하지 않았지만, NLPDR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전쟁, 4.19혁명, 경제개발 등을 통해서 부족함과 결함은 보충되어 갔다. 그것이 주관적인 정념을 넘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80년대 대한민국의 근대 국민국가로서의 결함은 주로 민주주의 문제였고 그 역시 1987년 여름의 6월 항쟁과 7,8월 노동운동으로 해소되어 갔다. 그렇기 때문에 1987년 이후에도 NLPDR을 꿈꾸는 것은 그저 철 지난 몽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제 1987년으로부터도 벌써 21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한국은 이미 1996년, 그러니까 12년 전에 OECD에 가입하였고, 국민 소득도 구매력 기준으로는 남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수준에 이르렀다. 21세기 초의 한국은 자본주의가 덜 발전하여 가난한 후진국이 아니고 자본주의가 지나치게(?) 발전하여 그 자본주의의 고유한 모순이 충분히 드러난 전형적인 후기 자본주의 나라들 중의 하나라는 엄연한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여야 한다.

골프장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휴가철에는 해외로 놀러가는 사람들로 인천공항이 붐비는가 하면 해외 부동산을 사는 한국인의 발길이 미국, 중국, 베트남에까지 이르고 있다. 반면에 신용불량자가 경제 활동 인구의 10%나 되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이혼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고, 자살률은 지난 10년 사이에 2.2배가 늘어서 OECD 30개국 중에서 가장 높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한 33명이 매일 소외와 절망을 견디지 못하여 자살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적 한계로 말미암아 진정한 좌파가 되지 못한 식민지 종속국의 불행한 좌파들의 모습을 NL과 PD는 공유하고 있으니, 그들이 좌파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한 좌파는 낡은 좌파이고 시대착오적인 좌파이고, 그런 의미에서 구좌파다.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런 구좌파의 속박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쳤지만 결국에는 벗어나지 못하여 망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신당 역시 기대와는 달리 여전히 구좌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그나마 민주노총이라는 대중적 기반이라도 가지고 있어서 노동조합 간부들이 먼 훗날 어느 날인가 NL 운동권 세력으로부터 주도권을 빼앗고 그 영향력을 극복해내면 순수한 ‘노동당’으로 진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 손드는 일, 한국의 정치 구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보수/자유 양당 체제로 굳어진 후의 일이라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혹시 장기적으로 존속하더라도 일본공산당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면에 대중적 근거가 없는 진보신당이 진화하여 나아갈 길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좌파’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진보신당은 유럽에서 1980년대 신좌파운동으로 등장했던 녹색당과 비슷한 작은 문제 제기 정당으로 존속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다 보면 이데올로기적 순수성에 더욱 매달리게 될 것이고 대중정당으로의 발전 가능성으로부터는 더욱 멀어질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의 분당은 20세기 초에 자유/보수 양당 체제를 극복하여 노동/보수 양당체제를 성립시키고 복지국가를 만들어낸 영국노동당의 드라마를 21세기 초 한국에서 재현할 가능성을 영(零)으로 만든 사건으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유사 좌파’도 정권을 잃고 그 동안 누려왔던 정치적 영향력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 정체성과 도덕적 자부심마저 잃어버린 경우가 태반이다. 100년을 갈 정당을 만든다고 호언하며 만들었던 ‘열린우리당’이 사라짐과 함께 그들의 좌표도 사라지고 말았다.

3. 이제 한국의 좌파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황량한 광야에 선 한국의 좌파는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자기 혁신의 과제가 있을 것이다.

우선 아무런 쓸모도 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내버려야 한다. 항일독립운동의 흐름을 이어받고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는 자부심과 “조국과 민족,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했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훈장으로 달고 다니는 좌파이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

“출세하고 치부하는 이기적인 행동에만 몰두한” 우파에 대하여 도덕적 우월감으로 가득 찬 좌파는 스스로에게 안이함과 나태를, 그리고 대중에게 거부감을 안겨줄 뿐이다. 이제 좌파는 스스로 특별한 존재, 혁명가가 아니라 대중의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도덕적 우월감을 버려야 한다.

우파가 나름의 자기 혁신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한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자부심으로 도덕적 열등감이 없는 우파로 거듭날 때, 좌파 역시 친일하지 않았고 독재에 부역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도덕적 우월감으로 무능이나 나태, 무지를 가리려 하지 않는, 현대인으로서 끊임없이 자기를 혁신하는 좌파로 거듭나야 한다.

이제 좌파는 대한민국을 긍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 시절부터의 광범한 합의라 할 수 있는 토지개혁을 실천하여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만큼 평등한 사회경제적 토대 위에 건국된 위대한 나라이며, 결코 세계사에서 뒤떨어졌다고 볼 수 없이 보통선거권을 실시한 현대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리고 그러한 대한민국을 건국한 사람은 이승만이나 친일파만이 아니었다. 조봉암과 많은 (중도)좌우의 독립운동가들도 함께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민족사의 정통성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만 있고 대한민국에는 없다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긍정하면 좌파이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긍정하면 우파라는 잘못된 사고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사상적 조상, 정치적 족보의 연원을 김일성-박헌영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여운형-조봉암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민족주의는 좌파이고 세계주의는 우파라는 거꾸로 선 인식틀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코민테른 시절, 민족해방운동 시절의 사고 습관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원래 좌파야말로 세계주의자였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민족주의를 우파에게 양보한다. 한국 민족주의는 이제 윤동주의 민족주의, 식민지 약소국의 피압박 민족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아니고 극히 공격적이고 대외팽창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변질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주의 유전자를 제거한 좌파’로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를 가슴을 열고 받아들이며 민주주의를 우리의 이상 실현의 유일한 길로 인정한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비판 극복하고, 그 실천적 귀결인 스탈린 체제, 공산당 일당독재, 북한의 일인독재 체제와 그 아래 벌어지고 있는 인권 유린과 민생 파탄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우리는 철인정치론-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의 잔재인 ‘진리를 독점한 듯한 태도’를 버리고, 국민을 계몽하고 가르치려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과거 민주화운동의 투사로부터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자로 거듭 나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1951년의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 창립의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유럽 노동운동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오랜 투쟁과 1인 1표의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이상 실현의 전술이 옳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시장의 실패를 교정할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며, 그런 의미에서 ‘국가주의’를 일정하게 긍정하고 지나친 개인주의나 무정부주의를 배격한다. 한국의 사회정치적 발전 단계에 맞지 않고 한국의 국민 대중의 생활에서 비롯되지 않는 선진국으로부터 수입된 포스트 모더니즘의 정치철학을 배격한다. 한국은 아직 복지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에 양극화는 심화되고 국민 생활의 불안은 고조되어 복지국가는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에 대한 무정부주의적 부정을 아직은 사치로 생각한다.

이렇게 한국의 좌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 업데이트 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세계사의 시간표에 비추어보면 1950년대 <프랑크푸르트 선언>과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우리나라 좌파가 1920년대 코민테른의 사고방식과 이론적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는 이야기이며 이제야 그것을 벗어나는 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980년대에 녹색당을 낳은 유럽의 이른바 ‘신좌파’ 운동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점에 혼동이 없어야 한다. 그것은 역사의 발전 단계를 건너뛸 수가 없기 때문이고 우리나라의 좌파가 먼저 해결해야 할 중심적 과제가 아직은 ‘복지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건국 당시의 여운형과 건국 초기의 조봉암의 노선과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본다. 오히려 그 분들은 세계사의 동시대를 사신 분들이다. 그 분들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전쟁 영웅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을 누르고 집권하여 세계를 놀라게 한 영국노동당에 대해서 거듭 언급하였다. 그리고 항상 모든 문제의 해결 방법으로 “대중에게 묻고 선거를 하자”고 주장하였으며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거에 참여하였다. 그것이 그 분들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증표이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진실로 극복한 위대한 민주주의자였음을 말해준다.

여운형이나 조봉암이 스스로를 ‘사회민주주의자’라 부른 적도 거의 없고, 심지어 때로는 그런 규정을 거부하기까지 하였지만, 그리고 그들이 현대 사회민주주의 선진 복지국가들의 여러 가지 복지제도와 사회정책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졌는지도 의문이지만 왜 우리는 그들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하는가? 그것은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진정으로 긍정하였기 때문이다.

진보당에 대해서도 조봉암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규정에 흔쾌하게 동의하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진보당에는 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다른 점도 많았다. 그리고 조봉암의 주변에 모여든 인물들도 그 경력이나 사상으로 보면 좌우에 걸쳐 있어 매우 복잡한 구성을 보였다. 오히려 전형적으로 이념이 아닌 인물 중심으로 모인 정치세력이라는 인상이다. 그럼에도 조봉암과 진보당은 철저히 민주주의와 다원주의에 충실하고자 하였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론’에 대해 어떤 미련도 두지 않았던 점은 분명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한국의 좌파는 아직도 진보당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제 좌파는 뉴-레프트 운동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거듭나야 한다. 노동자, 서민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분노와 절망이 아닌 대안과 희망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으로 대전환해야 한다.

4. 앞으로 좌파는 어떤 전략으로 활동할 것인가?

1987년부터 지금까지 21년 동안 독자적 진보정당을 만들려는 노력을 거듭해온 세력은 한국의 정치 구도를 유럽식의 보혁구도로 바꾸어야만 한다고, 그것을 양보할 수 없는 전략적 목표로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른바 ‘비판적 지지파’들과 격렬한 노선 투쟁을 거듭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한때나마 지지율 20%에 이르는 제3당의 지위로까지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감격도 잠시 이제는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4.9 총선의 결과가 그러한 보혁구도로의 재편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던져주고 있다. 즉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정치구도가 유럽식의 보혁구도로 바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닌가? 민주화 과도기 동안에 잠시 흔들렸던 한국의 정치구도는 미국식의 자유당/보수당의 구도로 재안정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순간 우리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할 이 문제를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된다. 과연 한국에서 노동당 또는 사회당이 지속 성장하여 건국 이래 한국의 자유당/보수당 정치구도를 뒤집어엎어 영국의 노동당/보수당 체제와 같이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인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 다시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성장 발전하여 통합민주당을 넘어서고 극복하여 제1야당이 되어 정치구도의 한 축을 차지할 가능성이 사라진 것인가? 그렇다면 진보정당들에게 남은 길은 선진국의 녹색당 같은 작은 ‘문제 제기 정당’의 길뿐인가?

소선거구제를 기본으로 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와 결선투표제가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 하에서 정당 체제는 끊임없이 양당체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다. 이를 ‘두베르제의 법칙‘이라고 하는 데 우리나라가 바로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경우이다.

더 전형적인 경우로서 미국을 보자. 미국이야말로 소선거구제와 단순 다수대표제의 나라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도 결선 투표제가 없다. 그러니 양당체제가 흔들리지 않는다. 미국사회당은 1912년 유진 뎁스라는 대통령 후보를 내세워 6%를 득표하였다. 당원은 10만 명에 이르고, 각급 지방 정부의 공직에 선출된 당원이 1,000명을 넘어섰다. 요컨대 미국사회당은 20세기 초 미국에서, 민주노동당이 21세기 초 한국에서 성장한 만큼 성장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역사 속으로 사라져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다.

그것은 소선거구제 하에서 양당 체제는 잠시 흔들리더라도 곧 다시 안정되고 제3당의 존재는 지극히 불안정하다는 걸 보여준다. 그래서 제3당은 양당 체제의 어느 한 축을 밟고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 그걸 해낸 진보정당이 있으니 영국노동당이다. 영국노동당은 1900년 2월 27일 창당되었다. 그러니 민주노동당보다 정확하게 100년 앞서 창당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선거제도는 소선거구제였고 자유/보수 양당 체제가 이미 정착되어 있었다. 그러나 ‘페이비안 소사이어티’라는 머리와 ‘독립노동당’이라는 가슴과 노동조합이라는 몸통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만들어진 영국노동당은 기적과도 같은 일을 해냈다. 다양한 전술과 행운에 힘입어,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어느 한 순간에 노동당이 자유당을 넘어서서 자유당을 극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영국노동당 역시 미국사회당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민주화 과도기에는 정치체제의 유동성이 높아서 한국의 정치 구도가 1948년 건국 당시 또는 이른바 ‘1957년 체제’의 성립 후에 유지해온 보수 양당 체제로부터 이탈하여 유럽식 보혁구도로 갈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생활 속에서 평등 가치를 우선하는 문화가 진보정당 성장의 토양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것은 후쿠야마도 인정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20년간의 민주화 과도기는 끝났다.

정치 구도를 보혁구도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의 성공 가능성을 되돌아보면 좌파 내부의 한계도 있었다. 우선 1987년 민주혁명 당시에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자’들의 세력이 커서 진보정당의 밑거름이 될만한 정치적 자원을 김대중이 다 흡수하고 말았던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지만 그 전부터 그럴 소지를 키워온 내부적인 한계였다. 남은 세력들은 민중당을 만들었지만 1992년 총선의 참패 이후에 주력의 거의 대부분이 신한국당으로 흡수되고 말았다.

다시 잔여 세력들이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민주노동당을 만들었지만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에서 그치고 곧 한계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제 독자적인 진보정당이 대중적인 힘을 가지고 자유주의 개혁 정당을 넘어서서 정치 구도를 진보/보수로 바꾸어낼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좌파는 새로운 전략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좌파는 지적인 역량을 보다 강화하여 사회민주주의의 깃발을 중심으로 뉴-레프트 운동을 전개하는 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만들어서 정치구도를 재편하겠다는 프로젝트를 재검토하여 새로운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정면 돌파의 전략이 무망하다면 냉정한 현실 판단에 기초한 보다 현실적인 우회 전략도 고려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짝퉁’ 진보라 조롱하였던 자유주의 좌파에 대해서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 정치적 연합의 대상으로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들 역시 ‘새로운 진보’의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한나라당이 집권하여 독주하는 향후 몇 년 동안 필연코 야권은 이합집산하게 될 것이며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몸부림을 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합집산 그 자체를 초월하여, 4~5개씩이나 되는 야권의 당적을 초월하여 사회민주주의의 비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야권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마침내 야권의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최대한의 목표는 야권을 ‘사회민주당’으로 재편하는 것이지만, 최소한 야권을 미국민주당과 같이 좌파 세력과 다양한 급진 민주주의 세력들의 연합체로 만들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기회를 놓치고 여러 가지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여 19세기 말 독일사민당이나 20세기 초 영국노동당처럼 나아갈 수 없다고 해서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원대한 목표를 포기할 수가 없다면, 우리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21세기 한국에서 어딘가 숨어 있는 오솔길을 찾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최근에 이명박 정권이 보여주는 단순, 무식, 과격한 행보는 조만간에 좌파에게도 기회가 오리라는 것을 예보하고 있다. 국제 기준으로 보아 매우 낮은 조세부담율을 더 낮추고, 세계 기준과 비교할 수도 없이 한참 모자란 복지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용감한 계획을 발표하고 건강보험의 당연지정제를 재검토하겠다는(물론 곧 현행유지 방침으로 물러섰지만) 엄청난 소리를 예사로 하는 이명박 정권이 풍부한 사회민주주의 콘텐츠로 무장한 좌파에게 야권 재편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므로 정치 전략에서 보다 유연하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시대의 과제를 정확하게 파악한 좌파, 뉴-레프트, 사회민주주의 정치철학으로 재무장하여 대중과 함께 가는 좌파는 자신의 역사적 소임을 다할 기회를 반드시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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