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농 1년차 민재네
        2008년 09월 01일 03: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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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맘 먹고 찾아가는 날이 벌초 때문에 막히는 날이다. 홍성까지 두 시간이면 충분할 길이 무려 네 시간이나 걸렸다.

    오늘은 지난 3월에, 하던 공부 때려치우고 귀농을 하겠다며 홍성으로 내려간 친구이자, 아이들 친구의 부모, 이웃, 그리고 같은 공동육아 어린이집 또바기의 같은 조합원인 민재네 가족을 찾아가는 날이다. 이날 여행에는 우리 가족과 또바기 어린이집에 같이 다녔던 호진네와 채은네 이렇게 세 가족이 함께 했다.

       
      ▲ 민재네가 살고 있는 홍성의 집 전경(사진=윤춘호 기자)

    민재 아빠는 지난 3월까지 대학원에서 논문 준비를 했다. 그 놈의 논문 때문에 속깨나 끓이고 골치깨나 아팠나 보다. 올해 초에 할 얘기 있다며 잠깐 저녁이나 먹자고 하더니 공부 대신에 시골로 귀농을 하겠다고 했다. 평상시에도 어린이집 텃밭관리는 도맡아 하고 친환경 유기농에 관심이 많더니 결국 인생의 갈 길을 귀농으로 잡은 셈이다. 그리고는 6살된 민재와 100일된 여자 아이 나영이와 함께 홍성에서 귀농 1년차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민재 아빠가 짓고 있는 농사는 논농사와 밭농사다. 논은 600평 정도를 빌렸고 밭도 콩밭 400평, 도라지밭 200평, 고구마밭 200평을 동네 여기저기에 빌렸다. 그리고 집을 그냥 얻어 사는 대신에 유기농으로 키우는 소를 돌보는 축사 관리도 하고 있다.

    초보 농사꾼, 아직은 수익도 없어

    농사꾼이면 다 그렇듯이 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일하고 토요일, 일요일, 여름휴가도 없이 일했어도 아직 제대로 된 수익 하나 없다. 당연한 게다. 이제 1년차 초보 농사꾼이 무슨 수익을 얻을 수 있으랴. 그래도 민재 아빠는 서울에 있을 때보다 얼굴도 좋아지고 몸도 튼실해졌다. 예의 실없는 농담이 있긴 했지만 농사꾼다운 폼새가 느껴졌다.

    도착하자마 밥을 지어 먹고는 아이들과 농사라곤 지어 본 적 없는 서울 어른들을 데리고 고구마를 캐러 갔다. 민재 아빠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양 고구마 캐는 법을 참 친절하게도 알려준다. 고구마 순은 고구마 순대로 따로 담고 익숙치 않은 호미질에 행여나 고구마가 다칠 새라 조심조심 다뤘다.

    아이들에게 고구마 캐는 체험을 시켜준다고 했는데 어른들이 더 신났다. 여기저기서 “고구마다. 고구마” 외치고 내 것이 더 크니 네 것이 더 알차니 자랑들이다. 아이들과 한 시간 정도를 땀내고 고구마를 캐보니 어느새 한 바구니다.

       
      ▲ 아이들이 소에게 여물을 주거나 고구마를 캐며 즐거워하고 있다(사진=윤춘호 기자)
     

    다음 날에는 도라지를 캐러 갔다. 1년생 도라지의 흐드러지게 핀 꽃을 감상하다, 이웃한 3년생 도라지밭으로 옮겼다. 도라지 씨앗을 골라내고 도라지 뿌리에서 흙을 털어내고 담는다. 아이들도 열심이다. 아이들도 요리된 음식들만 보다가 직접 흙에서 도라지를 캐내니 애착이 가는가 보다. 행여나 흙 속에 작은 도라지 뿌리 하나라도 버려졌을까봐 새심하게 되짚어 본다. 캐낸 도라지보다 아이들의 도라지 캐는 솜씨가 더 오지다.

    “좋지.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당연히 여기가 백배 낫지”

    서울이 좋냐? 여기가 좋냐? 라는 우문에 1초도 안 걸리고 민재 아빠가 웃으며 대답한다. 민재 아빠의 밝은 얼굴과는 다르게 민재 엄마는 속이 이만저만 타는 게 아닌가 보다. 아이들 교육이야 애초에 자연과 함께 자라게 하는 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한 가족들이라 큰 걱정은 안했다.

    효율만 따지만 아무도 못 해

    하지만 귀농한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 10년 지나면 골병 든다고 하고, 손가락이 펴지지 않아 누구네는 수술을 했다고 하고, 그래도 수입은 도시의 그것만도 못하니 말이다. 시골 살이가 싫은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골병 안 들고 먹고 사는 게 막막한 게다.

    홍성은 그래도 예전부터 유기농 농사를 짓고 젊은 귀농인들이 많아 나름대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췄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직거래도 뚫고 직접 생협 등을 찾아다닌 성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농사는 어려운 직업이다. 효율로만 따지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직업이 농사일이다.

    그럼에도 농사가 소중하고 농사일을 지키는 젊은이가 있다는 것은 도시에서 사는 우리에겐 복이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 마음을 갖고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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