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오는 했는데 무서워요"
    By mywank
        2008년 08월 29일 07: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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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오후 KTX 여승무원들이 서울역에서 가두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안녕하세요~ KTX 승무원입니다”

    29일 오후 서울역 한 편에서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가두선전전에 나선 KTX 승무원 한아름 씨의 손놀림은 분주했다. 한 씨의 손에는 ‘KTX 문제’를 알리는 전단지가 수북이 쌓여있었고,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사람들은 해결된 걸로 알아

    한 씨는 “시민들이 가두선전전을 벌이는 저희들을 보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냐’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며 “작년 1월 철도공사가 조합원들과 체결하기로 약속한 ‘합의서’를 갑자기 파기했는데, 공사 측의 언론플레이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때 ‘KTX 문제’가 해결된 걸로 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 씨는 “시민들이 여전히 ‘KTX문제’에 무관심한 것 같다”며 “아직도 비정규직 문제가 본인의 문제가 아니고,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그런 일을 겪고 있다’는 식의 편견으로 저희들을 바라본다”고 밝혔다.

    한 씨는 또 "어떤 아저씨가 ’맨날 그렇게 데모만 하다가 시집도 못간다’는 험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 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며 애로사항을 이야기했다.

    발길을 돌려 철도공사 사무실 주변에 이르자, 철길 옆으로 높은 조명탑이 보였다. 여기에는 ‘철도공사 사장은 KTX, 새마을호 승무원문제 회피 말고 적극 해결하라’, ‘비정규직 차별도 서러운데 정리해고 웬말이냐’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리고 30m와 40m 상공에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지난 27일 새벽 5시부터 이곳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KTX, 새마을호 승무원들이었다.

    조명탑 30m 부근에는 오미선 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지부장, 정미정 KTX 조합원, 철도공사 서울차량지부 정규직 조합원인 하현아 씨 등 3명의 여성이 올라가 있었고, 40m 부근에는 황상길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조직국장, 장희천 새마을호 승무원 대표 등 2명의 남성이 있었다.

       
      ▲ KTX, 새마을호 승무원들의 고공농성 현장 (사진=손기영 기자)
     

       
      ▲고공농성자들이 바구니를 통해 필요한 물건을 전달받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한편, 조명탑 아래에는 농성천막 2개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곳에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KTX 승무원들, 새마을호 승무원들과 연대투쟁에 나선 철도노조 조합원 20여명이 있었다. 이들을 무전기를 통해 조명탑 위에 있는 고공농성자들과 연락을 했고, 하얀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밧줄에 달아 필요한 물건을 전달했다.

    30m 상공에 있는 오미선 지부장과 전화통화를 시도해봤다. 오 지부장은 “고생을 각오하고 여기에 올라왔는데 생각보다 무섭다”며 “철로에 KTX나 새마을호가 지나다닐 때마다 조명탑이 흔들리고, 특히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 더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각오는 했는데 생각보다 무섭다 

    오 지부장은 이어 “고공농성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이라며 “빨리 아래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KTX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오 지부장은 “조명탑에서 바로 보이는 철길로 지나다니는 KTX 열차를 볼 때마다, 다시 열차를 타고 일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고 말했다.

    조명탑 아래에서는 김영선 상황실장이 무전기를 통해 고공농성자들과 분주하게 연락하고 있었다. 김 실장은 “승무원들이 조명탑에 올라가기까지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며 “하지만 공사 측에서는 여기에 한번도 오지 않고,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고공농성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 실장은 이어 “화장실 문제가 불편해서 그런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승무원들에게 간식이나 식사를 올려 보내도 잘 먹지 않는다”며 “그래서 고공농성자들이 할 수 없이 나중에는 단식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조명탑 아래에 있던 KTX 여승무원들이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김 실장은 또 “조명탑 위에 올라가지 않은 사람들은 지상에서 천막농성 중이며, 서울역 주변에서 선전전도 병행하고 있다”며 “이곳에서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집중집회, 매일 촛불문화제를 여는 한편, 앞으로 ‘기륭’의 경우처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결합해 투쟁을 벌이는 방법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김 실장은 “처음 KTX 승무원으로 입사했을 때는 KTX의 최고속도인 300km가 ‘꿈의 속도’였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성공한 사람으로 대접받았다”며 “하지만 높은 조명탑에까지 올라가야 하는 저희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300km는 ‘고통의 속도’였던 것 같다”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농성천막에서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던 철도노조 이철의 조합원은 “고공농성자들과 같은 철도노조 조합원으로써 연대투쟁은 당연한 것”이라며 “이와 함께 철도노조 조합원들이 KTX 승무원들의 생계비 지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총파업 등 실력행사를 통해 ‘KTX, 새마을호 문제’ 해결에 나서는게 최선이겠지만, 조합원들이 여기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편,  KTX 여승무원 380명은 2006년 5월 19일, 새마을호 승무원 20명은 2008년 1월 1일 ‘계약해지’를 통해 집단해고 되었다. 이들은 지난 7월 1일부터 서울역 광장에서 다시 ‘천막농성’을 시작했고 7월 29일 강경호 신임 철도공사 사장 측과 교섭에 나섰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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