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을 쓴 대러시아
    2008년 08월 29일 1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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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그루지야 사태를 보면서 뭔 놈의 나라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아니 정확하게는 뭔 놈의 나라 안에 나라가 그렇게 많은지 여러 가지로 헷갈리실 거 같아 조금 더 적어 봅니다.

구 소련뿐 아니라 구 소련에서 독립한 나라들 중에도 구 소련과 똑같은 방식의 연방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 소련과 소련 이후 몇몇 독립 국가들의 구성원리들 중에 우리들에게 가장 생소한 것이 바로 ‘민족별 구성 원리에 입각한 국가 내 국가’들입니다.

스페인의 까딸루냐나 바스크 민족 지역, 캐나다에서 프랑스계 주민이 다수인 퀘벡 지역, 그리고 대영 제국 내 북아일랜드 등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듯 합니다. 이들 자치 지역들의 지위와 유사하면서도 훨씬 더 강한 자치권이 보장되는 연방 구성 원리에 의한 민족 단위 국가들이었다고 생각하면 될 듯싶습니다.

소련 당시 소련 내 공화국들의 대부분의 법적, 정치적, 외교적 주권 행사 권한은 법전 상에만 있었고, 군사권이나 외교권, 경찰권 등 실질적 주권은 크게 제약되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소련 당시에도 기술적 분야에서의 소수민족의 교육과 진출은 통제와 제한이 가해진 반면, 문화적, 언어적 자치와 교육은 상당히 보장되었습니다.

각 민족의 민족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민족을 근거로 한 공화국 단위 영역은 소련 붕괴 이후 독립한 국가들의 독립의 법적, 영토적 근거가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신생 독립 국가들 간 수많은 영토적, 민족적 갈등을 몰고 온 과거의 골치 아픈 유산이기도 했습니다.

소련으로부터 유래한 ‘민족’과 ‘영토’

잘 아시다시피, 러시아 민족이 다수인 지역이 아닌 원 거주 민족의 영역에 그 수와 비율에 따라 공화국, 자치 공화국, 자치 주 등을 구성하게 한 것은 레닌을 비롯한 볼셰비키의 민족 해방과 민족 자치에 대한 개념 규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 볼세비키 혁명은 동시에 민족 전쟁이기도 했다. 1920년 폴란드 전선의 적군 기마대
 

그러나, 그럴싸한 이론과는 달리, 현실에서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 수가 많은 민족이라도 자치 주조차 주어지지 않은 민족도 많았고, 정반대로 수가 얼마 안 되어도 공화국을 선포해 주거나 주변 민족과 별 차이도 없는데 민족과 영토를 구별지어 각각에게 자치권을 준 경우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소련 시대에 고려인, 독일인, 유태인 등은 일정 규모 이상의 수에도 불구하고, 자치 주조차 보장받지 못 했으며, 러시아 민족에게 오랜 공포의 대상이었던 타타르인들은 800만이 넘어도 공화국이 주어지지 않고 훨씬 축소된 영역으로 자치 공화국이 일방적으로 선포된 반면, 250만 정도의 에스토니아인이나 400만 명 단위의 키르기스인 등에게는 독자적인 공화국이 주어지는 등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비 러시아 민족들의 분할 지배의 용이함을 위해 해당 지역의 다수 민족이 아닌 소수 민족의 이름으로 공화국이나 자치 공화국, 자치 주 등을 선포하는 경우가 많았었는데, 가령, 1918년 가장 저항적이며 엘리트들이 많은 이슬람 타타르인들의 결집을 막기 위해 타타르어의 방언 정도에 불과한 바쉬키르어를 쓰는 집단을 바쉬키르인이라는 독자적 민족으로 규정하며, 그 지역을 바쉬키르 자치 공과국으로 명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공화국 내 바쉬키르인은 불과 20%도 되지 않은 반면, 타타르인들은 무려 40%를 점했음에도 바쉬키르 공화국으로 명명하여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모순적 정책에 의해 발생되는 갈등과 고통은 구 소련 영토 곳곳에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기도 합니다.

이와 유사한 정책은 바로 그루지야 내 공화국 구성에도 적용되었고, 현재 이러한 모순적 상황으로 고통받았던 러시아가 소련의 유산을 타국에 그대로 분리 통치와 주권 침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60년대를 거치면서 소련이 급속도로 산업화를 이루면서 기술직에서 그 비율을 압도하는 러시아인의 비율이 각 공화국에서 급속도로 높아지게 되는데, 결국 명칭 민족이 자신의 공화국에서 다수를 점하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게 됩니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연방 역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마치 중국 내 신장 위구르 자치 주의 수도 우르무치의 인구가 꾸준한 한족 유입 정책으로 한족이 80%를 차지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체첸 공화국 등 명칭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공화국은 러시아 내에서 두 세 곳에 불과하게 됩니다.

작은 민족은 큰 공화국, 큰 민족은…

오랜 저항 민족인 체첸 민족을 분할 지배하기 위해 방언에 불과한 인근 잉구쉬 민족을 전혀 다른 민족으로 규정하고, 별도의 영토를 떼어 주어 자치 공화국에서 공화국으로 승격시키는 것과 같은 분할 지배 방법은 구 소련의 전형적인 소수 민족 지배 방식인데, 이를 그대로 계승, 이용한 러시아는 심지어 그루지야를 비롯한 타 주권 국가에서조차 이보다 더 교활한 방식을 적용하기에 이릅니다.

러시아는 자국 내 소수 민족 독립은 무자비하게 탄압한 반면, 법적으로는 명백한 타국이자 주권 국가인 그루지야에 대해서는 그루지야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 아주 오래 전부터 적극적으로 그루지야 내 두 공화국에 개입하며 명백한 주권 침해를 자행해 왔습니다.

그루지야 내에도 러시아 연방처럼 아자리아, 압하지야, 남 오세티야 라고 하는 소수 민족이 응집되어 사는 지역이 있습니다. 물론 이들 민족 외에도 수 십 여개에 이르는 소수 민족 단위들이 존재하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이들 민족들에게만 자치권이 주어졌습니다.

이 중 그루지야 민족과 종교 외에는 크게 다르지 않은 아자리아 공화국은 사카쉬빌리 현 대통령 취임 직후 위협에 굴복하여 그루지야에 복속하게 되었으나, 이란 계 민족으로 그루지야와 명백하게 다른 민족인 오세티야 민족과 또 다른 독특한 카프카즈 민족인 압하지야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루지야와 전쟁을 일으켜 결국 심각한 내전 끝에 1992년 러시아 군으로 구성된 평화 유지군의 주둔이 실질적으로는 방패막이 되면서 사실상 독립 국가의 지위를 갖게 되었습니다.

국제적으로 인정은 받지 못 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독립 상태이다 보니 법적으로는 그루지야 내 공화국임에도 불구하고 그루지야 대통령은 이 지역에 들어 갈 수가 없는 모순적인 상황이 소련 붕괴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어 오고 있었고 이는 그루지야 지배자들에게 커다란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압하지야 공화국의 경우 소위 명칭 민족인 압하지야 민족은 압하지야 공화국 내에서 불과 17%도 차지하지 못 하고 있었고, 그루지야 민족은 5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991년 러시아가 지원하는 압하지야 내전으로 다수를 차지하던 그루지야 인들이 압하지야를 떠나게 되면서 비로소 압하지야 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죠. 남 오세티야의 경우도 남 오세티야인과 그루지야인이 동등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두 공화국은 대외적으로는 민족 독립을 외치는 것으로 선전하며, 티벳 등과 같은 수준의 국제적 지원과 관심을 받기를 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반 민중의 독립에 대한 욕구와는 달리, 이 두 공화국의 지배 계급은 독립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으로의 편입을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민족 독립이 아니라, 러시아 편입을 원하는 지배계급

여기서 러시아의 교활한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현재 타민족 배타주의/인종주의가 횡행하면서 러시아 내에서 그 어떤 민족보다 가장 버러지 취급받고 있는 민족들이 바로 이 카프카즈 지역 출신 각종 소수 민족들/이주 노동자들입니다.

이들 민족들은 중앙 아시아 출신 이주 노동자들과 더불어 인종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된 지 오래고, 지금도 이들 카프카즈 출신들에게는 아파트 임대를 안 한다는 광고를 내는 집들이 허다할 정도로 극도의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러시아령 북 카프카즈 지역 출신들은 명백히 ‘러시아 국민’이지만, 취직, 거주에서의 차별 대우는 물론이고, 러시아인들에 의한 일상적 적대와 항상적 위협에 시달리며 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 이중적인 러시아 정부는 그루지야 내 두 공화국(압하지야, 남 오세티야) 주민들에게 아주 오래 전부터 여타 카프카즈 민족은 좀처럼 얻기 힘든 러시아 국적을 쉽게 취득하게 해 주며 ‘러시아인’으로 격상시켜 가며, 이 지역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할 권리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등 이중성과 비열함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 러시아군의 폭격에 파괴된 그루지아. 파괴된 것이 건축물 뿐일까?
 

이렇듯, 현재 러시아 본토에서 소수 카프카즈 민족들은 설사 러시아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러시아 국민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 하고 있는데 반해, 전혀 다른 목적으로 두 공화국의 주민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주어 러시아 국민으로 만든 일도 황당하지만, 이 두 지역에 러시아인들이 많이 거주하기에 러시아군이 보호 차원에서 진격한 것이라는 주장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러시아의 궤변에 불과합니다.

또한, 러시아는 이 두 공화국에 아주 오래 전부터 그루지야 화폐가 아닌 러시아 루블을 통용시키는 등 노골적으로 타국의 주권을 유린하는 행위를 유엔 평화 유지군이라는 방어막 하에서 자행하고 있었는데, 이는 소수 민족 독립 문제 이전에 타국에 대한 명백한 주권 침해를 자행하는 것이라는 점이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수 민족의 주권 회복과 독립이라는 담론은 일단 뒤로 하고 이야기하자면, 어찌 되었든 그루지야의 입장에서는 자국 내 소수 민족 독립은 가혹하게 탄압하면서 타국의 소수 민족 독립을 지원하는 러시아가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러시아는 체첸 등 자국 내 소수 민족의 독립 운동에 대해서는 분리주의자, 테러리스트의 범죄 행위라고 칭하며 잔혹한 진압을 자행하고, 코소보 독립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반대하면서도, 타 주권 국가인 그루지야의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소수 민족의 민족 자결권과 주권,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순에 대한 지적에 러시아 정부는 각 공화국 민족들에게 국민 투표로써 다수의 의사를 확인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즉, ‘러시아 국민’인 압하지야와 남 오세티야 주민들 압도적 다수의 의사가 독립이기에 러시아는 이를 지지하고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대응하는 것일 뿐이며, 반대로 러시아 내 소수 민족들은 이미 수많은 투표와 여론 조사에 근거하여 러시아 연방 잔류를 원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강대국들의 혐오스러운 원칙

그런데, 체첸 등에서 이미 독립을 원하던 집단들을 다 제거한 후 하는 투표의 결과는 뻔한 데다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체첸 공화국 투표율이 99%라는 식의 투표율 조작과 같은 일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주장은 참으로 뻔뻔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와중에서 정말 역겨운 일이 지난 24일에 벌어졌는데, 러시아에서 볼쇼이와 더불어 최고를 자랑하는 마린스끼 극장의 단원들이 남 오세티아의 수도 츠힌발의 반파된 대통령 궁 앞에서 공연을 한 사실입니다.

단장이 남 오세티아 출신인데다가, 참혹하게 파괴된 고향에서 전쟁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하는 공연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자국 내 공연처럼 러시아인들이 마음 놓고 타국으로 들어 와 러시아 땅인 양 행세하는 모습은 가히 가관이었습니다.

상처받은 영혼을 만져 주련다고 겉으로 내세우는 이유 자체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이에 호응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어찌 되었든 저는 전혀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술을 정치의 도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상기할 때, 이 공연은 제가 좋아하는 마린스끼 극장의 공연 중 가장 더러운 공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압하지야와 남 오세티야 민족과 민중의 염원이 독립이라는 것을 지지해야 하는 게 기본적으로 옳겠지만, 두 민족의 지배 계급의 염원은 독립이 아니라 러시아 연방으로의 편입이라는 사실, 러시아 연방으로의 편입이 아니라 독립을 염원하며 지배 계급의 의도에 저항하는 시민 사회는 극도로 억압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 과정이 제3의 국가(러시아)에 의해 철저하게 한 주권 국가가 파괴되어 가며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쉽게 이 두 소수 민족(지배 계급)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이와 정반대로 민족 독립의 염원이 강대국(미국 및 서구)의 입맛에 따라 허용되거나 반대로 무시되는 상황도 매우 분노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민족과 민중의 염원이 자국 지배 계급과 위협적 강대국들에 의해 극단적으로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그것도 그네들이 에너지를 어떻게 확보하는가에 따라 정해진다는 게 비극 중의 비극이 아닌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전 세계에는 독립을 주장하는 민족이 아직도 70여 민족이나 있다는데, 민족 독립 문제 자체도 어렵지만, 강대국의 이익에 따른 국제 정치의 역관계 속에서 민족 독립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하기란 더욱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즈음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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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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