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사기밀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
        2008년 08월 28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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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탈북을 위장한 여간첩사건이 터졌다. 언론의 시각은 일단 선정적이다. 여간첩 사건의 주인공을 ‘마타하리’에 비유하는가 하면, 그녀가 북한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영화 ‘쉬리’가 현실로 나타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은 보면 볼수록 ‘코믹’한 부분이 많다.

       
      ▲ 국방부가 발표한 원정화씨 이동경로 (자료=국방부)
     

    소속이 좀 웃긴다

    우선 이 간첩의 소속이 좀 웃긴다. 원정화 씨는 보위부 소속이라고 한다. 그런데 북한의 조직 중에 대남공작은 보위부가 아니라 통일전선부 소관 사항이다. 즉 보위부는 남한에서 넘어오는 간첩을 막는 역할이고 남한으로 간첩을 내려보내는 것은 통일전선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간첩은 보위부 소속이다. 간첩을 내려보내는 조직이 아니라 간첩을 막는 조직에 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원정화는 남한까지 내려와서 방첩활동을 했단 말인가? 아무리 특수 훈련을 받았다지만 요즘은 전진수비를 이렇게 심하게 하나?

    또 이 간첩은 북한의 절도범 출신이다. 그녀는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부상으로 ‘의가사제대’를 한 뒤 아연을 훔치다 걸려서 처벌받기 직전에 간첩으로 캐스팅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캐스팅 될 때의 기준이다.

    군 당국의 설명에 의하면 그녀가 ‘개방적 성관념’을 갖고 있던 것이 간첩 캐스팅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성을 미끼로 군기밀에 접근했다는 쪽으로 연결시키고 싶어서 한 말이겠지만… 무슨 에로영화 여배우 오디션 보나? 성관념이 개방적이어서 간첩으로 뽑히다니…

    개방적 성관념이 캐스팅 원인?

    또 하나는 그녀의 근무지 문제다. 그녀가 간첩이 되어 처음 배치 받은 곳은 다름아닌 중국의 노래방. 노래방이 무슨 권력의 심장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핵심 군사시설도 아닌데 과연 거기까지 침투할 필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혹시 그렇다면 노래방에서 도우미로 일하며 남한의 노래가사를 북한으로 빼돌렸다는 말인가?

    돈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원정화씨는 북한 보위부로부터 5년간 총 공작금 6만불을 받았는데 그중 절반만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절반은 현물 즉 의약품으로 받았다고 한다. 이 부분도 실소를 자아낸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안좋다더니 요즘은 간첩들 공작금도 ‘현찰’이 아닌 ‘현물’로 주는가 보다.

    우리는 가끔 밀린 임금 떼먹고 도망간 사장한테 돈 대신 현물로 받은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간첩들도 그럴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런데 더 재밌는 것은 여기서 현물로 받은 의약품의 정체다. 그것은 북한에서 정력제로 알려진 ‘천궁백화(天宮白花)’라는 소위 건강보조식품이었다. 이걸 한국에 갖고 와서 병당 4만원에 팔고 나중에는 공식적인 무역회사까지 만들어서 공작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효녀 간첩이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간첩이 효능도 확인되지 않은 정력제를 팔아 공작금을 마련하다니… 이거 무슨 ‘간첩 리철진’도 아니고…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녀는 "외화벌이를 통한 경제적 자립형 간첩"이었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나는 이대목에서 아무래도 현 정권이 자립형 사립고를 좋아하더니 이제 자립형 간첩이라는 말까지 사전에 추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자립형 간첩?

    결국 그녀는 핸드폰으로 지령을 받고 공작금을 스스로 벌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는 "남한의 일상생활에 밀착된 간첩" 으로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이렇게 천신만고 끝에 그녀가 수집한 정보는 결국?!! 각 부대 정훈장교의 연락처와 이메일 등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여간첩의 주요 공작 목표는 결국 젊은 남자 장교들 전화번호 따는 것이었던 셈이다.

    하여튼 이래저래 그녀는 21세기 신개념 간첩이 아닐 수 없다. 이 코믹 간첩 사건의 압권은 여간첩과 대위의 사랑이다. 성관념이 개방적이라는 이유로 캐스팅 된 이 여간첩은 결혼정보 회사를 통해 남한 내 군사조직에 침투했는데 그래서 결국 동거에까지 성공하게 된 사람이 스물일곱살 먹은 황모 대위다.

    여기서 군 당국의 설명이 걸작이다. "여간첩 원정화는 158센티미터의 키에, 말투가 거칠고 그리 예쁜 얼굴이 아니었지만 황 대위가 여자를 사귀어본 경험이 없어 누나 같은 마음을 가졌을 것" 이라는 것이 수사기관의 설명이다.

    그러니까 이 설명은 ‘황대위가 여자를 볼 줄 몰라서 키도 작고 얼굴도 못나고 성격도 까칠하며 이혼경력이 즐비한 7살 많은 누나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 눈이 멀어 군사기밀을 팔아먹었다’는 얘기를 좀 돌려서 말한 것이다. 그 사랑을 비하할 생각은 없지만 오리지널 삼류소설 줄거리가 생각나는 것은 나뿐일까?

    당국에 따르면 원정화씨는 검거 당시 신경안정제를 복용하는 등 신경쇠약에 걸려있었다고 한다. 간첩활동에 얼마나 밤낮으로 피곤했으면 신경쇠약에 걸려 매일 약까지 먹고 집에 자물쇠를 네 개나 걸어놓았을까? 듣는 내가 안쓰러울 정도다.

    코믹 간첩사건의 본질

    간첩들이 받는 스트레스에 비하면 우리가 요새 고생하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내가 볼 때 그녀는 간첩이라기 보다는 북한이라는 권력의 희생자로 보인다. 김정일 정권의 희생자가 남한에서 1차 대전 당시의 전설적인 스파이인 마타하리로 과대 포장되는 결코 웃지못할 코믹 간첩사건이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황대위가 이해가 간다. 이런 상황이라면 다른 남자들 전화번호 같은 소위 군사기밀들을 막 줘버려서라도 그녀에게 삶의 위안을 주는 것이 맞다. 나라를 지키기 전에 한 인간의 상처받은 마음을 지켜줄 수 있어야 진정한 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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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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