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 먹이사슬을 '쌩쌩' 돌려라
        2008년 08월 26일 01:45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필자는 최근 펴낸 책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대자본가를 정점으로 해서 맨 밑바닥의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비정규직으로 구성된 ‘노동시장의 먹이사슬’이 작동돼 굴러간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부동산 시장의 먹이사슬이 하나 더 작동되면서 굴러가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2중 먹이사슬에 고혈 빨리는 서민들 

    부동산 먹이 피라미드라고 할 수 있는 이 먹이사슬의 맨 꼭대기에는 건설재벌을 비롯한 부동산 5적이 똬리를 틀고서, 바로 아래층의 부동산 부자들과 함께 그 아래 있는 무주택자와 1가구 1주택자로부터 불로소득을 빨아올리고 있다.

       
      ▲ 부동산 먹이사슬(출처=부동산 계급사회)
     

    먹이사슬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 굴러가며 부를 빨아들이고 있으니, 대한민국에서 서민으로 산다는 것은 고달프기 짝이 없다.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국가의 부동산 정책이란 다른 게 아니고 부동산 먹이사슬을 쉴 새 없이 굴리는 한편, 먹이사슬이 파괴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것이다.

    이 점은 권위주의 정권이나 민주화 이후 정권이나 별 차이가 없다. 노태우 정권이 토지공개념을 추진한데서 보듯 군부정권이라도 투기가 너무 심해 먹이사슬 자체가 파괴될 위험에 처하면 일시적인 투기규제정책을 펴서 예방한다.

    먹이사슬이 잘 굴러가지 않을 때는 민주정부라 해도 아무 거리낌 없이 투기를 일으키는 정책을 쏟아낸다. 김대중 정권이 1998년 무려 열일곱 가지의 투기 규제 장치를 풀어버린 데서 잘 알 수 있다.

    그 결과 2001년부터 제3차 부동산 대투기가 시작된 가운데 집권한 노무현 정권은 종합부동산세, 전매제한, 재건축 규제, 주택담보대출 규제, 분양가 상한제 부활 등 먹이사슬의 붕괴를 막기 위한 투기규제정책을 순차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군사독재나 문민정권이나 이명박 때도 똑같아

    물론 노무현 정권은 각종 개발정책을 남발해 먹이사슬을 작동시키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그 결과 불로소득을 충분히 빨아올린 뒤인 2007년에 와서야 부동산 가격 폭등세가 겨우 누그러졌다.

    이런 상황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한반도 대운하’라는 전대미문의 개발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물론 그 뒤 촛불정국을 거치면서 대운하를 포기했지만(대운하가 애초부터 선거용이었기 때문에 포기는 예정된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부동산 먹이사슬을 굴리는 임무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취임 6개월 만에 발표한 8.21 부동산 대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 필자

    8.21대책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분양가 상한제를 무력화시키고 후분양제를 내용적으로 폐지함으로써 아파트 분양가 통제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킨 점이다.

    『부동산 계급사회』에서도 지적했지만 선분양제와 분양가 상한제가 짝을 이룬 한국형 아파트 분양제도는 부동산 먹이사슬을 작동시키는 데 독특한 구실을 하는데, 역대 정권은 이 제도를 통해 중산층을 육성해 정권의 기반을 삼는가 하면, 분양가 통제와 자율화를 오가며 부동산 먹이사슬을 원활하게 굴려가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최근 몇 년간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부동산 부자들을 배불린 제4차 대투기는 아파트 분양가격을 결정할 권한을 건설재벌에게 넘겨준 분양가 자율화 조치를 배경으로 시작되었고, 투기국면이 마감된 것도 노무현 정권이 먹이사슬의 붕괴를 우려해 분양가 상한제를 재도입한 뒤였다.

    기름값에 환율까지 겹쳐 물가가 치솟고 경기가 침체하는 가운데 경기부양을 위한 탈출구를 부동산 먹이사슬을 쌩쌩 돌리는 데서 찾고 있던 이명박 정부는 결국 후분양제 도입 계획을 폐기하고, 분양가 상한제도 무력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8.21 대책, 투기로의 초대

    8.21대책은 또한 재건축 규제를 풀고, 전매제한 기간을 단축함으로써 자금동원력이 있는 세력을 투기무대로 초대하고 있다. 이미 예정돼있던 수도권 신도시 두 곳을 확대 건설하겠단 발표는 신도시 개발권을 지방자치단체로 넘겨주겠다는 후속 조치에 이르면 앞으로 막가파식 개발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결국 이런 조치들은 아파트 분양가를 더 끌어올리고 집값 하락을 막는 데서 더 나아가 더 올리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밖에도 건설업체들의 미분양 아파트를 사실상의 공적자금으로 사주고, 종부세를 깎아주고, 집부자의 별명인 임대사업자가 세금 특혜를 더 쉽게 받게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필자가 보기에 8.21대책은 시작에 불과하다. 대운하가 문제가 아니다. 명색이 정권이 출범해 처음 내놓은 주택정책에서 부동산 극빈층에 대한 대책이 단 하나도 포함돼있지 않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명박 정권이 앞으로 서민 수탈의 통로인 부동산 먹이사슬을 얼마나 강력히 굴리려는지 그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물론 그 의지가 현실이 될수록 부동산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는 사태를 앞당기겠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의 진단처럼 곧바로 대파국으로 갈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필자의 능력 밖이다. 그러나 부자는 행복하고 서민은 고통스러운 부동산 계급사회의 법칙은 가격 폭등기 뿐 아니라 가격 폭락기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상황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외환위기 직후 부동산 가격 폭락이 결국 대출금을 감당하지 못한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자금동원력이 풍부한 부동산 부자들에게는 싼값에 부동산을 사재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던 점을 떠올려 보자.

    분명한 것은 벌써 40여년을 굴려온 부동산 먹이사슬이 대한민국 건설재벌의 원조격인 현대건설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 시대를 만나 더 빠르고 더 강력히 작동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럴수록 서민들 살기가 더 고달플 것이다. 언제까지 부동산 먹이사슬에 피 빨리는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살아야 하나.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