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기후변화 대응 못하면 당해
이명박식 '녹색성장' 일자리 줄여
    2008년 08월 25일 12: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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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는 고용을 어떻게 바꾸나

   
  ▲ 필자

2007년 초, 유럽노조(ETUC)은 <기후변화와 고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유럽연합에 소속된 25개 국가에서 기후변화로 인해 야기되는 고용의 변화를 검토했다. 또한 2030년까지 실행하기로 한 이산화탄소 감축목표를 달성하였을 때 발생하게 될 고용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연구하였다.

이 보고서 일부를 살펴보면, 철강산업 생산시설의 상당부분이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을 받지 않은 저비용국가로 이전되면서 5만 여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석유산업의 경우 정제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엄격히 제한되면 2만개의 일자리 감소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전산업 분야에서도 기후정책의 우선순위 수단인 ‘에너지수요 감소정책’으로 인해 전기 소비량의 16%가 감소하면 직접 고용인원의 2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반면에 재생에너지와 관련된 직업은 50%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적응 및 완화 정책에 있어서 노동자들에게 미칠 부정적인 사회적 영향을 예측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를 최소화하고 감소시키기 위해서 충분한 재원을 지원해야 하며, 사회적 합의에 입각하여 추진되는 고용전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고용에 대한 영향에 무관심

많이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엄청난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며 이산화탄소 배출국가다. 그 때문에 2012년 이후의 포스트 체제에서 한국이 이산화탄소 배출 의무감축 국가가 되리라는 점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을 감축해야 할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최근까지 한국 정부는 최대한 미뤄보려고 하면서 준비를 늦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명박이 ‘저탄소-녹색성장’을 내세우고 또 지식경제부가 비민주적 방식으로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을 강행하면서, 정부-기업-환경단체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원자력의 비중을 늘리고 해외 에너지개발을 확대하여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대처하겠다는 전략에 대해서 기업은 ‘비지니스 프랜들리’에 안심하면서도 “천천히!”를 외치고 있다. 반면 환경단체는 원자력 비중을 확대하면서도 ‘저탄소-녹색성장’을 내세우는 것은 기만이라면서 한판 크게 붙어보자는 자세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계획이나 그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에너지 기본계획, 그리고 이를 둘러싼 논쟁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기후변화로 야기되며, 또한 저탄소사회로 에너지체제를 변화시킴에 따라서 나타나게 될 고용에 대한 영향이 그것이다. 국가에너지계획의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언급이나 내용이 없으며, 이를 아무도 문제 삼고 있지 않다. 연말까지 만들어질 것이라는 역시 기후변화 대응계획도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앞서 유럽노조의 보고서가 보여주는 것처럼 기후변화 및 그에 대응하기 위한 에너지체제전환 전략은 고용에 심각한 변화―분야에 따라서는 일자리 대량감소와 같은 부정적인 영향―를 야기하게 된다.

보고서는 유럽 이외의 국가(구체적으로 한국도 언급하고 있다)에서도 기후변화와 고용의 관계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고, 보고서 내용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

일자리 vs 환경

돌이켜 보면 ‘일자리 대(對) 환경’은 오랫동안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를 가로막는 문제였다. 물론 ‘녹색금지 캠페인’을 펼친 호주나 ‘노동계급 환경주의’가 성장한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꼭 적대적인 관계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성물질을 금지하는 등의 환경규제들은 직간접적으로 고용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고 공장이 폐쇄될 위험에 처한 노동자와 지역공동체는 때때로 환경당국과 환경주의자들과 격렬하게 대립하곤 했다.

하지만 환경오염의 문제는 노동자와 그 지역공동체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환경규제의 필요성 자체를 노동자가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고용이었다. 노동자는 “환경이 나빠지면 내일 죽겠지만, 일자리가 없으면 오늘 죽”기 때문이다.

이런 딜레마 상황을 인식하면서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에 ‘완전고용을 위한 환경주의자들(EFFE)’라는 단체가 만들어 노동조합들과 함께 고용 문제를 해결을 위해서 활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정의로운 전환

노동조합도 역시 이런 딜레마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였고, 그 결과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이자 입장이 한가지 해답으로 제시되고 있다. 독성화학물질을 사용한다든지 에너지 사용이 많고 효율이 낮은 산업이 환경규제를 받을 경우에, 이로 인해서 야기되는 고용 불안정 문제의 해결책이 환경규제의 도입과 함께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애초에 1980년대 미국 노동운동가인 토니 마조치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생계를 ‘독성 경제(toxic economy: 유독성 화학물질을 생산하거나 사용하는 산업 경제를 뜻한다)’에 의존하는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안전하고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 과정에서 필요한 생계비와 교육비용을 제공하기 위한 ‘노동자를 위한 슈퍼펀드(Superfund for Worker’s)’를 구체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캐나다의 에너지화학노조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발전시켰고, 1999년에는 캐나다 노총(CLC)의 공식 정책으로 채택되었다.

이들은 “사회의 환경보호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영향받게 될 노동자와 공동체, 산업을 위한 전환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며, 그 과정은 사회적으로 정의로워야 한다는 주장했다. 또 그런 전환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펀드를 조성할 것을 요구했다.

현재 ‘정의로운 전환’ 개념은 점차 국제노동조합 조직들과 기구들에 의해서 수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2001년에 열린 유엔 지속가능개발위원회에 제출된 국제노동조합들와 관련 기구들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교통>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포함시켰다.

또한 2007년에 발리 기후변화회의에서도 유럽노조를 비롯한 여러 국제노조들은 기후변화 대흥책 속에 ‘정의로운 전환’ 전략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녹색 일자리 창출

한편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은 녹색일자리 창출 전략과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환경적으로 건전하지 못하고 지속불가능한 일자리에서 환경친화적이고 안전한 일자리로 노동자들이 옮겨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높은 실업률로 인해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서 지속가능성을 조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독일 노동조합연맹(DGB)이 1999년에 결성한 ‘노동과 환경을 위한 동맹’을 주목할 만하다. DGB는 에너지 절약과 효율성 향상을 통해서 기존 건물을 개선하여 기후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을 세웠고, 동맹에 독일정부, 환경단체 및 사용자단체가 함께 참여시켰다.

이 동맹은 2001에서 2005년까지 30만개의 아파트를 수리하고 2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였다. 또한 수리된 아파트에서는 이산화탄소, 에너지 그리고 난방비를 1/7로 줄일 수 있었다.

노동조합, 기후변화 문제에 주목해야

이명박이 ‘저탄소-녹색성장’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자본친화적이고 기술주의적인 방식의 ‘저탄소-녹색성장’은 기후변화를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만약에 이명박 방식이 기후변화 대응에 실효를 거둔다고 하더라도, 아마도 그것은 사회적 정의도 사라지고 일자리도 사라진 저탄소 사회가 될 것이다. 노동운동이 기후변화 문제에 빨리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지난 8월 22~23일, 강화도에서는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의 연대를 위한 활동가 대회’가 열렸다. 환경정의, 에너지정치센터 및 진보신당이 공동개최한 자리였다. 이와 유사한 자리가 처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두 운동 간에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고 연대를 위한 상호이해를 높이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역시 토론 과정에서 환경과 고용 문제의 갈등과 긴장 관계가 드러났다. 아쉽게도 ‘정의로운 전환’이 심도있게 토론되지 못했으나, 논의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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