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독재 국민전선'에 반대한다
        2008년 08월 24일 01: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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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배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총파업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 제가 감옥에 간다면 거기서 투쟁의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8월 19일자)”라고 말했다.

       
      ▲ 8월19일 경향신문

    최근의 정세와 민주노총의 상황을 살필 때 이석행 위원장의 ‘총파업’ 또는 ‘전면적인 대정부 투쟁’ 결심은 매우 적절한 것이라 동감하며, 투쟁의 성공을 위해 감옥에라도 가겠다는 그의 결단에 감사와 지지의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경향신문>에 나온 이석행 위원장의 생각과 주장 일부에 이견이 있다.

    민주노총이 공기업 사유화를 막았나?

    첫째, 이 위원장은 “민주노총이 탄압받는 것은 국민의 건강권을 옹호하고 물가폭등을 일으키는 공기업 사유화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 민주노총은 공기업 사유화 저지를 내걸었고 정부는 물, 가스, 전기 사유화를 일단 유보했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지나친 오판이다.

    민주노총의 상반기 파업으로 인해 사유화가 저지됐다고 주장하려면 같은 요구를 내걸고 파업했던 과거보다 규모가 크거나 강도가 세거나 기간이 더 길어야 할 텐데, 민주노총의 상반기 싸움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싸움보다 못하면 못했지, 나은 바 없었다.

    점심시간에 집회를 열거나 몇몇이 잠시 일손을 멈추거나 일과 후에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것은 이석행 위원장의 옛 기준으로 치자면 ‘말로만 하는 총파업’이었고, 사업주에 대한 시위(示威)로든 정부에 대한 압력으로든 촛불 기여로든 별 소용이 없었다.

    요즘 조금 ‘인기’가 있다고 하나, 그것은 민주노총이 제 역할을 잘 해서라기보다는 언제나 사실을 과장 왜곡하는 언론 덕분이고, 촛불 시위자들의 아량이다. 지금이라도 허장성세와 아전인수에서 벗어나야 하반기 투쟁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둘째, “이명박 정권에 맞서는 광범위한 대중투쟁조직의 건설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 현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이 참여하는 일종의 반독재 국민전선입니다”라는 이 위원장의 주장에 반대한다.

    반독재 국민전선에 반대한다

    ‘반독재’냐 ‘반신자유주의’냐, 또는 ‘국민전선’이냐 ‘인민전선’이냐 하는 따위 논쟁을 할 생각은 없지만, “현 정부에 반대하는 모든 개인과 조직”이라는 발상이 민주노총의 공식 정치노선에서의 일탈이라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총은 여러 차례의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거듭 확인해왔는데, 이는 단지 ‘민주노동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직에 돈 몇 푼 보태주자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정치적 지향이 과거의 ‘반독재 민주연합’ 따위가 아니라, 반자본주의 진보정당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확인이었다. 이 위원장의 ‘반독재 국민전선’ 주장은 민주노총의 이런 원칙을 파괴하자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이제 민주노동당도 대정부전선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합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국민을 위해 전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라며 ‘반독재 국민전선’을 주장하고 있는데, 굳이 전사할 것까지도 없이 민주노총 조합원의 단 10%가 단 10일 동안만 파업해도 민주노동당이 이명박 정권을 이길 수 있다.

    셋째,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를 그냥 놔둘 수 없습니다. 공기업 사유화 반대 기조도 유지될 것입니다. 물가폭등을 막기 위해 투쟁할 겁니다. 교육 문제도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 문제입니다”라고 말하며, 언론 문제를 최우선으로 하는 하반기 5대 투쟁 이슈를 제기한다.

    거대 조직의 수장으로서 어느 것 하나 중요치 않다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이 위원장의 이런 인식은 제기된 현안, 따라서 투쟁동력이 있는 요구를 우선 수용하고, 거기에 이것저것 가져다 붙이는 관례 그대로이다.

    민주노총의 관례, 관례적이지 않은 물가

    민주노총이 노동자의 총연맹이라면, 그래서 근로대중의 분노와 요구를 받아 정세를 능동적으로 개척해나가는 조직이라면, 민주노총이 지금 매진해야 하는 투쟁 과제는 물가 폭등과 비정규직 문제, 두 가지다.

    자본주의 인플레이션에 의한 근로조건의 악화에 저항하는 것이 노동조합 파업의 본래 목적이기도 하거니와, 최근 저소득층이 겪고 있는 물가고가 거의 폭발 직전임을 주시해야 한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상대적 고임금층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아직 조금 여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근래의 인플레이션이 유류, 사교육 등 도시 중간연령 노동계층의 주요 소비재에 집중되고 있음을 잘 살펴야 한다.

    하반기에 비정규직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 역시 가처분소득이 가장 적은 비정규직이 인플레이션으로부터 1차적인 타격을 받으리라는 점에서다. 자구능력이 없는 미조직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해주는 것이 촛불정국에서 주저했던 민주노총의 죄갚음이다.

    민주노총 위원장이 투쟁 결심을 밝힌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민주노총이 그런 준비를 하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이 위원장은 “9월부터 총력투쟁 본격화 … 총파업을 해서라도 정부의 정책기조를 바꾸겠습니다”라고 비감한 결단을 내비치고 있는데, 20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민주노총의 하반기 사업계획에는 단위별 결의행사를 연다거나 전국노동자대회를 준비한다는, 매년 반복되는 달력 행사 외에는 별다른 게 없다.

    지금 민주노총 위원장이 이대로 감옥에 가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조중동 광고 거부운동을 펼치다 구속된 네티즌 두 명보다 민주노총이 더 위협적인 행위를 했던가? 그 둘은 조중동의 광고수입에 막대한 차질을 주었다고 하는데, 민주노총은 상반기 투쟁을 통해 대한민국 자본가들에게 얼마만큼의 노동손실이나 이윤축소를 안겨줬는가?

    이석행 위원장의 감옥행이 ‘억울한 옥살이’가 아니라 ‘영예로운 포로되기’가 되기 위해서는, 말보다는 실행 그리고 그 말에 대중적으로 책임지는 실천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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