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탄소 녹색성장’은 또다른 대운하
        2008년 08월 22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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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반가웠다. 휴가 중 들려온 이명박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의 발언은 과연 ‘환경영웅’다웠다. 과연 청계천 복원으로 ‘모범적 도심 하천’의 ‘생태계’를 건설하신 환경영웅스러웠다. ‘2030 신재생에너지 사용비율 11%확대’, ‘무공해 석탄’, ‘그린카’, ‘그린홈’….

       
      ▲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TIME지는 2007년 10월 특별호에서 세계 각국에서 환경 개선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으로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환경의 영웅’으로 선정했다.
     

    이에 프랜들리한 기업들과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을 둔 지역들은 발빠르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이미 관련 주가가 상승하고 있고, 대구경북 지역의 에너지센터 건립사업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했으며, 일찌감치 ‘그린경영’을 선언하신 대기업들도 각종 ‘그린’, ‘환경’을 내세운 마케팅의 시동을 걸었다.

    과거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눈빛과 지리산 노고단에 올라 “아직 개발이 덜 됐어”라고 말한 그의 철학은 어디로 갔을까. 대운하 포기 선언을 한 것을 생각해 보면 혹여 임기 몇 년 동안 개종에 가까운 철학의 변모를 겪는 것은 아닐까.

    슬금슬금 후퇴하고 있는 환경관련 규제들

    많은 정황들은, 그가 진심으로 ‘녹색’을 말하고 있다고 믿기에 반하는 정보를 전달해주고 있다. 지식경제부는 지난 6월 ‘발전차액지원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했다. 이 제도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의하여 공급한 전기의 전력거래 가격이 산업자원부 장관이 정하여 고시한 기준가격보다 낮은 경우, 기준가격과 전력거래가격과의 차액을 지원해주는, 말하자면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를 지원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의 무력화는 향후 재생가능에너지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를 삭제한 것이다.

    뿐인가. 5월에는 상수원 보호지역을 대폭축소하고 규제를 완화해주었다. 더불어 환경영향평가제도 역시 무력화시켜주었다. 여기에 지방선거를 의식한 ‘지역발전계획’을 발표하시는 바람에 지역은 각종 개발로 몸살을 앓게 생겼다. 이에 부응한 김문수 경기지사는 수도권 규제를 완화해 달라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농지법, 산업입지법 등 많은 법안들이 ‘비지니스 플랜들리’하게 바뀌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까지 ‘완화’하고 ‘합리화’해야 할 규제들을 검토하고 있다. 그 개수는 30여 개에 달한다.

    부동산 정책들은 또 어떤가. 서울시는 재건축 규제와 관련된 요건들을 대폭 축소하고 완화해주었다. 이렇게 되면 서울시에서 뉴타운이나 재건축을 할 수 있는 공간은 100여 곳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초유의 ‘뉴타운’ 공약 쓰나미가 밀려올지 모른다.

    이렇게 그들에게는 소소하게 보이는, 혹은 기업활동의 장애물이 되는 수많은 환경관련 규제들이 축소되거나 후퇴되었다. 환경과 관련한 규제는 우리 사회가 폭압적 근대화를 통해 묻어두었던 비용인 ‘환경’과 ‘안전’에 대한 비용을 치르면서 생겨난 것이다. 낙동강 페놀사태를 비롯한 다양한 환경사고들이 만들어 놓은 ‘장치’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안전판’들을 ‘규제 합리화’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하나씩 걷어내고 있는 이 이율배반적인 행보는 무엇일까. 정답은 자명하다. 그는 ‘또 다른 대운하’적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생태’는 ‘건설’하는 게 아니거든요

    아마 이명박 대통령에게 ‘진정 청계천이 친환경적이라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는 ‘생태’라는 것이 ‘건설’로 가능하다고 믿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전기를 끊으면 물이 멈추는 시설’인 청계천을 ‘하천’이라고 명명하였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지난 시절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거나 취임 이후 그가 보여주었던 발언과 구상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생태’ 혹은 ‘환경’과는 거리가 멀다.

    촛불시위에 나온 멋진 구호 중 하나인 ‘넌 아무것도 하지마’처럼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생태계에 가장 불필요한 것은 ‘이명박’ 그 자체가 아닐까.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환경’ 혹은 ‘녹색’이라는 구상을 하지만 않으면, 그저 그대로 좋아지게 되지 않을까.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 그의 공약에는 ‘7대 강국’ 중 ‘환경강국’이라는 공약이 있었다. 그 해설에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자연을 보호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환경보호를 추진. 환경기술투자 확대와 주요 수출산업으로 환경산업을 육성해 자연과 인간이 조화된 나라 건설’이라고 되어 있다.

    그가 ‘개종’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구상은 저 해설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자연’을 보호하기는 커녕 삽으로 난도질하려던 계획이 있었다. 우선 첫 단어부터 어겨버린 것이다. 그에게 금수강산이 ‘개발’의 대상만이 아니라 ‘아름답’기도 한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뒤의 문장을 보면 그가 관통해온 그리고 신봉하는 80년대 ‘수출역군’의 기본자세가 잘 나타나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또 살아가야 할 그래서 다음세대가 또 살아가야 할 터전의 연속성 보다는 ‘수출’을 통해 ‘외자유치’를 꾀하겠다는 구상들이 느껴진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의 공약들은 그러한 내용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박정희 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민주주의 뿐만이 아닌 듯하다. 어쩐지 수출역군이니 외자유치니 하는 단어들이 풍기는 냄새는 세로로 판짜기된 신문을 펼칠 때 나는 그것과 같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이명박식의 환경’을 또 다른 수출 역군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의 ‘대운하’적 삽질 ‘저탄소 녹색성장’

    ‘저탄소 녹색성장’, 이 단어가 이명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을 때 본능적으로 떠오른 것은 ‘원자력’이다. 한국이 온실가스 의무감축 대상국인 상황에서 원자력은 그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이다. 여기에 한국의 원전 건설과 운영기술을 팔수 있다면? 제3세계나 개도국에 관련된 ‘건설’을 할 수 있다면?

    어쩌면 이명박은 ‘1타 3피!!’를 외쳤을지 모른다. 온실가스 없는 청정에너지에 수출도 하고 외화도 벌어들이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이 좋을 것이라는. 멋진 구상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참에 대운하로 망가진 ‘환경 영웅’의 이미지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앞에서 언급했듯 후보시절 공약부터 산업기술과 수출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하면 혐의는 더욱 짙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바보가 아니다. 지식경제부가 2010년까지 신규 핵발전소 두세 곳을 더 확보하고, 2030년까지 핵발전소 11기를 새로 신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지난 13일이다. 2030년까지 도합 39기의 핵발전소를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우리는 알고 있다. 얼굴에 백날 녹색 페인트를 칠하고 앉아서 ‘그린홈’이니 ‘신재생에너지’니 ‘환경’이니 떠들어대봤자 그것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결국 그의 ‘녹색 성장’은 ‘원자력 성장’이라는 것을.

    세상이 바뀌어도 절대 ‘개종’하지 않을 그런 사람이라는 심증은 100일이 넘는 촛불시위를 색소 물대포와 사복체포조로 맞서는 그를 보면서 굳어간다.

    에너지 문제는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변모시켜야 하는 대단히 지루하며, 또한 품을 많이 들여야 하는 일이다. 더 이상 석유에 의존해 살 수 없음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는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생산에서 소비하고 재활용하는 그 모든 단계를 재구성하고 바꾸어야 하는 일이다.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구조를 해체하고, 소규모의 자립적인 그리고 순환적인 사이클을 만들어 가는 일이다.

    그들은 말한다. 신재생에너지 확대하겠다. 하지만 그로는 모자라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원자력을 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광고한다. ‘빛은 사랑’이며 ‘온실가스 없는 청정에너지’라고.

    우리는 말한다. ‘저탄소’로 가는 길은 우리가 살아온 방법이자 그들이 만들어온 기준들을 조금씩 바꾸는 것이라고.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는 물론 현재의 에너지 다소비 사회를 조금씩 그리고 단호하게 방향타를 돌리는 것이라고.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 산업은 물론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 넓고 깊게 박혀있는 에너지 다소비적 구조부터 개편해야 한다. 그 모든 분야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그 방법에 대한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세금제도를 바꾸고, 가격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선행되고 동반되지 않는 한 이명박의 ‘저탄소’는 또 다른 ‘대운하’일 뿐이다. 아니면 또 다른 747이다.

    ‘삽질’을 하지 않는다고 ‘환경’적인가. 내용은 아무 것도 없으면서, 또는 너무나도 기만적인 그럴싸한 단어로 포장하여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고 자신의 주가를 올리는 사기꾼적 행각은 취임 후 수정해야 했던 ‘747’ 경제공약과 취소해야 했던 ‘대운하’로 족하다. 여기에 ‘저탄소 녹색성장’까지 추가할 셈인가.

    ‘녹색성장’은 행복하게 살아가기의 다른 이름이어야

    우리는 모두 ‘성장’이라는 단어에 집착해 왔다. 이명박과 같은 오른쪽의 사람들은 ‘성장’이라는 단어에 대해 집착을 넘어선 광신이 있었다. 파이가 커지면 먹을 게 많아진다는 단순한 논리. 사실 왼쪽의 사람들 역시 ‘그들만의 성장’을 반대하면서도 ‘진보적 성장’이라는 야릇한(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단어를 쓰기도 했다.

    사실 ‘성장’이라는 단어에는 사람들의 머리수 만큼이나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생각한다. 제로성장부터 진보적 성장과 이명박의 747까지 한 단어가 내포하는 ‘정의’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여기서 그런 논의를 다 언급하는 것보다는 그저 상징적이고 두루뭉술하며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싶다.

    ‘성장’이라는 것은 어쩐지 ‘좋아지는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감히 ‘성장’이라는 단어를 ‘우리의 삶이 좋아지는 것’이라 정의한다면, 과감한 ‘성장’을 했으면 싶다. 내가 살고 있는 터전의 연속성을 추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좋은 미래를 꿈꾸고, 만족하며, 즐거운 노동을 하고, 삶과 생을 즐기며, 나누고 연대하며 미소를 나누는 그런 ‘성장’이면 어떨까.

    성장지상주의에 쫓겨 찌든 노동과 지친 삶을 ‘살아내기’ 급급한 모습이 아니라 많은 생명과 연대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그런 모습이 ‘성장’이어야 한다고 말하면 너무나 ‘모범생’적이고 ‘교과서’적일까.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성장’의 프레임을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성장’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말이다.

    ‘녹색’은 ‘미래와의 연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안심하고 먹는 먹거리, 맑은 공기나 푸른 숲, 그 안에서 살아가는 숨쉬는 모든 것들(우리 스스로도 포함하여)은 ‘잘먹고 잘살기’ 위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비용인지 모르겠다.

    미국과의 ‘동맹’을 위해 자국민의 건강 따윈 쓰레기통에 쳐박았던 그였던 만큼, 기업을 위해 그 기업에 기대어 사는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로 그는 과감히 미래세대의 삶을 훔치고 있다. ‘생태’의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것은 ‘미래세대와의 연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의 입으로 내뱉는 ‘저탄소 녹색성장’은 아이들의 삶을 훔쳐 장사하는 고도의 상술에 불과하다.

    그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하나다. 말을 하기 전에 ‘환경’ 혹은 ‘녹색’ 혹은 ‘생태’, 무엇이든 이러한 단어들에 대한 뜻을 공부하시라. 기왕이면 영어로 말고 자국어로. 원한다면 ‘단기완성 족집게’ 사교육을 시켜드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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