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정치적 제안 "사랑학을 개설하라"
    2008년 08월 21일 06: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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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의 이 책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다. 인터넷 매체 <레디앙>에 바로 이 제목으로 연재가 시작됐을 때를 기억한다. 독자들의 반응은 열광과 비판이 극명하게 나뉘었고, 꽤 지독한 댓글 싸움들이 펼쳐졌다.

어느 시점부터는 연재가 중단됐다. 그 중간 과정의 사연이야 알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이후에도 목수정의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하나의 삶으로서 계속 됐고, 결국에는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책이 되어 나왔다.

사적 기록이 던지는 날카로운 물음표들

   
 

얼핏 이 책은 목수정의 사적 기록들로 가득 채워진 듯하다. 스물아홉에 무작정 프랑스의 문화정책을 공부하겠다며 프랑스로 날아간 사정이며 그곳에서 68세대 사진작가 희완 트호뫼흐를 만나 결혼은 하지 않은 채 함께 사는 사연들에 대해서 뜻하지 않게 너무 많이 알아버리게 된다.

목수정은 2003년부터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지난 2007년까지 정책연구원으로 일했고, 당을 나오기 직전에는 민주노동당 노조 사무국장으로도 활동했다.

학생운동과 무관한 젊은 시절을 보낸 목수정의 그러한 변신이 놀랍기는 하지만, 줄곧 왼쪽으로 기울어진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면 정작 민주노동당 이력 자체가 문제적인 것은 아니다. 도리어 목수정이 그려놓은 지극히 사적인 초상들이 훨씬 더 날카로운 물음표들로 변주된다.

가령, 한국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은 사회적, 제도적 안정에서 일정 부분 비껴날 수밖에 없는데, 가장 인상적으로 읽힌 대목 역시 그에 관한 부분이다.

프랑스에서 목수정과 희완은 함께 사는 연인인 동시에 연대를 맺은 시민이기도 하다. 1999년에 만들어진 시민연대계약(PACS) 덕분이다. 동성애자들의 사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이 시민연대계약은 동성애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목수정의 표현을 빌자면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제3의 선택”이고, 실제로 많은 이성커플들이 결혼을 하는 대신 시민연대계약을 한다. “시민연대계약을 맺으면 결혼한 사람들처럼 세금 감면이나 국적 취득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제도적 혜택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다.

친절하게 좌절시킨 구청 직원

계약내용도 완전히 열려 있다. 각자 정하기 나름이다.” 곧 제도 너머의 또 다른 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라서 목수정은 결혼의 굴레 바깥에서 어떤 사회적 제약에 걸려 넘어져 본 일이 없다.

반면 희완과 한국에 들어와 사는 동안 사정은 정반대였다. 관광비자밖에 얻을 수 없는 희완은 본의 아니게 3개월에 한 번씩 중국이든 어디든 해외여행을 다녀와야 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아이 칼리가 존재해도 그것이 희완의 안정된 한국체류를 보장해주지는 못했다.

“희완과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민연대계약서를 내밀었지만 한참 동안 서류를 살피던 구청직원은 말했다. “도대체 두 분이 무슨 연대를 하셨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혼인’이라는 두 글자가 없으면 안 됩니다.” “구청직원은 매우 친절했으나, 우리를 좌절시켰다.”

이 친절한 좌절에 한국 사회의 사각지대가 마련돼 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경계와 이방인에 대한 경계는 곧 한국적인 정상과 비정상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정답이 이미 결정된 삶, 곧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삶인 셈이다.

연대의 범위를 어느 정도 확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한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연대의 폭이 좁고 제한적일수록 경직과 왜곡을 피할 수 없다. 목수정과 희완이 겪은 지극히 한국적인 제도와 삶은 그러한 경직과 왜곡의 풍경을 정확하게 가리킨다.

그 지점에 우리가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어떤 자유들, 쪼그라든 자유들이 있다. 이런 자리에 문화적 다양성들이 향연을 펼칠 리 만무하다. 이런 자리에 좌파들의 설 자리가 넉넉할 리 만무하고, 성적소수자들을 쉽게 용납할 리 만무하다.

목수정의 도발적 제안

   

욕망하는 것들을 쫓기보다는, 사회적 욕망으로 인정된 것들을 학습하고, 타인의 욕망을 나의 욕망으로 치환하는 법을 배우며 모나지 않게 사는 것이 처세 원칙 제 1번이 된다. 결국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란,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모종의 긴장감과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목수정의 기록들은 곧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찌르기와 비정상적 일탈에 대한 충동질이 되곤 하는데, 그중 가장 도발적인 제안 중의 하나는 ‘사랑을 의제화하라’다. 아마도 이것은 목수정 자신이 경험을 통해서, 앓을 만큼 앓고 난 뒤에 도달한 판단일 것이다.

목수정의 주장인즉, 사랑학을 아예 교과목으로 지정해서 제대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 이 제안은 거부됐다. 현재로서도 교과목이 너무 많다는 것. 물론 여기에서 목수정의 주장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단지 개인적인 감정을 소모하는 경험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숨 쉬게 만드는 경험이다. 동시에 사랑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줄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나의 주장은 이런 것을 객관화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적극적이고 전면적으로 삶 속에 친화시켜 사랑의 결핍이나 과잉을 겪지 않고, 사랑의 배달사고가 일으키는 피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자는 것이다.”

목수정은 여기에 덧붙여 “가부장적인 가치와 자본주의적 패악이 뒤섞여 지극히 편협한 얼굴을 한 사랑”이 한국사회를 떠돌고 있다고 말한다. “자유로운 두 개인이 서로 감정을 구체화하고 교류하면서 연애의 기쁨을 누리고, 영혼의 날개가 천상을 휘젓는 사랑으로 나 있는 통로는 비좁다.

연애는 결혼이라는 요란스런 사회적 통과의례로 가기 위한 청춘남녀의 요식행위가 돼 버렸고, 심지어 너저분한 상행위로 전락하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행복하게 결혼해서 잘 사는” 걸로 끝나지 않는 모든 사랑은 불장난이며 실패로 규정된다.

사랑학 강좌의 폭발력

목수정의 사랑학 강좌 개설 주장이 인상적인 것은, 그 안에 우리 사회의 온갖 굳어 있는 문제들을 폭발시킬 만한 에너지가 있기 때문이다. 온갖 가치관이 사랑의 문제를 둘러싼 채 갈등하고 대립한다. 그리고 결국 가장 보수적이거나 가장 일반적인 이데올로기가 승리를 거둔다.

그런 사랑은 대부분 미디어를 통해서 재생산되고 재교육된다. 그런 사랑이 사랑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을수록 한 사회의 중심 가치는 더욱 폭력적으로 재편될 것이다. 그 안에서 사랑은 한 사회의 보수적인 가치들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구속될 것이다.

모든 사랑이 세상을 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학 강좌 개설은 전방위적으로 가장 정치적인 제안이 되는 셈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매순간 자신의 삶으로 증언하면서, 계속 안전한 세상 바깥에서 그 삶을 일구는 일의 어려움을 목수정은 기꺼이 즐긴다. 그 즐김의 기록은 목수정의 사생활을 상당 부분 노출하고 있지만, 한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볼 때 생기는 불편한 감정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아, 불편하기는 할 것이다. 그녀의 기록들은 의도적으로 우리 사회를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불편지수를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 불편한 만큼 건강하지 못한 세상에서 왜곡된 안락에 취해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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