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공공성, 우익개량주의?
        2008년 08월 21일 12: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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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일 열린 사회공공연구소 설립 기념 토론회 (사진=레디앙)
     

    20일 열린 사회공공연구소 설립 기념 토론회의 두 발표자 중 한 명인 한신대 김성구 교수는 애초 청탁을 그리 받은 것인지, 일부러 주제를 회피한 것인지 “자본주의에 주기적 공황이 있고, 지금은 신자유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다”라고 공황론을 설명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

    논쟁이 있으리라 기대했던 ‘사회공공성’에 대해 김성구 교수가 짧게 비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김성구 한신대 국제경제학 교수

    “‘사회공공성’이란 개념으로 ‘사회화’ 프로그램을 비판해서는 자본주의 내부에서의 구조개혁만이 남는다. 개량주의의 역사는 언제나 사회화를 특정한 영역으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사회공공성’은 사회복지나 공공서비스는 문제 삼으면서, 사적 독점은 인정하는 것이다. 소유를 부차화시키고, 통제의 문제로 국한하는 것이다.

    ‘사회화’를 사회주의로 치환하고, ‘사회공공성’에만 운동을 국한시키는 것은 우익개량주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이다.”

    김성구 교수의 주장은, ‘사회화’가 꼭 ‘사회주의’가 아님에도 ‘사회주의’인 것처럼 치부하고 회피하면서 더 좁은 개념인 ‘사회공공성’으로 운동을 몰아가는 것은 대기업 같은 사적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과 대안운동을 없애는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다는 논지였다.

    “‘사회공공성’에는 사적 자본에 대한 문제의식 없어”

    또 한 명의 발표자인 사회공공연구소 오건호 연구실장은 김성구 교수에 대한 반박과 노동조합 운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곁들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천 개념을 ‘사회화’로 설정할 것인가, ‘사회공공성’으로 실현할 것인가의 차이다. 사회화보다는 사회공공성으로 내거는 것이 훨씬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사회공공성은 필수서비스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접근일 텐데, 시대가 변하고 욕구가 변함에 따라 무엇이 공공이냐 하는 판단은 백 가지일 수도 있다. 요즘은 자동차가 모든 사람들의 소유물이 되었는데, 그렇다면 최소한 경차 정도에 대해서는 공공성 의미를 붙여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에게는 사회주의 실패의 외상이 남아 있다. 지금 당장 현대자동차 국유화하자고 못 외친다. 사회공공성 운동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잠재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우선은 그런 전망을 잠시 보류시키고 파열구 탈출구부터 만들자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비정규노동센터 김성희 소장은 “사회공공성 운동이 케인즈주의적 조절시스템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묻고, “노조운동은 사회화나 사회공공성 같은 이념에 따라 갈라진 것이 아니라, 사람에 따라 갈라진 분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승창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사람들은 대부분 노조의 경제적 이익과 공공적 이익이 불일치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일치시키고, 노조운동과 시민운동이 만나고 연대할 수 있는 영역이 바로 공공성”이라고 주장했다.

    강원대 이변천 교수는 ‘공공성’ 개념을 가장 크게 확대하며 긍정했다. “‘공공’이 ‘사회화’보다 더 큰 담론이다. 공공(公共)은 common과 public의 조어다. 이 둘 중 어느 것에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서도 운동의 내용이 달라질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적 다툼은 매우 치열하지만, 공적 다툼은 거의 없다. 아마 혁명이라도 해야 사민주의 수준의 공공성이라도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의 노조는 전투적 노조인가 사회개혁적 노조인가, 아니면 …”

    김성구 교수는 마무리 발언에서 “지금 대기업이나 은행을 국유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나쁘면 중간전략이나 우회전략을 취하는 게 당연하지만, 낮은 사회화에서 높은 사회화로 나갈 수 있는 연결고리가 무엇인가를 찾는 데 더 신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노조운동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선진적 부분이 사회화나 공공성 문제를 다루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오건호 공공연구소 연구실장

    오건호 실장은 “사회공공성 운동이 노동운동의 전략적 수준은 몰라도 중장기 수준의 정상화라 생각한다. 예전에는 ‘전투적 노조’이라거나 ‘사회개혁적 노조’이라 불렀었는데, 지금은 우리 노조운동이 그런 운동이라고 할 수도 없다. ‘사회공공적 노조’나 ‘사회연대적 노조’라 불릴 수 있는 전환이 필요하다”고 마무리했다.

    사회공공연구소의 사업계획 등을 얼핏 살펴보니 노동조합운동의 혁신과 사회개혁 프로그램의 준비를 함께 목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그동안 계속 논쟁돼온 노조운동 노선을 다듬고, 지난 2~3년 동안 여러 진보싱크탱크에서 논의된 ‘대안’을 노조운동 안으로 흡수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첫 토론회로만 보자면, 오건호 실장의 발표 이외에는 내용도, 형식도 관성화된 운동권 행사와 별로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토론회를 보고 느낀 사적 단견 몇 가지를 덧붙인다.

    노조가 언제부터 혁명조직이었던가?

    첫째, 필요하거나 해야 하는가의 문제. 민주노총 조합원의 과반수인 대기업 노조원의 명목임금이 이미 상당히 높은 반면, 조합원 또는 노동자 일반의 시장임금 격차가 사상 최대 수준임에 비추어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은 사회임금적 성격의 운동을 펼치는 것은 운동의 자연스런 귀결이다.

    이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엄청나게 다른 경제사회적 삶을 살고 있는 노동대중의 단결은 완전히 물 건너가고 말 것이다. 나아가 조합원 이외의 영역에도 혜택을 줄 수 있는 이 운동의 특성상, ‘시민권’이든 ‘인기’든 노조운동의 활로가 될 수도 있다.

    둘째, 비판하는 쪽에서든 방어하는 쪽에서든 ‘개량주의’라는 우려나 변명이 어이 없다. 노동조합 연구소가 언제부터 혁명을 하는 조직이었던가? 그런 식이라면 아예, 개량도 뭣도 아닌 임금인상에만 매몰돼 있는 노조운동의 근절을 주장하라.

    셋째, 말의 문제, 주제의 문제. ‘사회화’든 ‘사회공공성’이든 학술이나 운동의 이론개념이고, 실제 노조운동 일선에서 쓰일 것은 ‘사회화’도 ‘사회공공성’도 아닐 가능성이 크다. 두 개념 사이의 차이나 영역 구분에 많은 공을 들이기보다는 어떤 주제, 정책, 요구가 더 파괴력이 있을지를 가려내는 데 힘을 쏟길 바란다.

    넷째, 사회공공성 운동이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 확립된 것은 이미 오래되었다. 하지만 ‘비공공’이나 ‘반공공’에 포섭돼 있는 대기업정규직노동조합들은 그리고 그 협의적 대변자인 민주노총은 언제나 “훌륭한 일입니다. 다음에 검토해보지요”라며 그것을 보이콧해왔다.

    이 운동의 첫 관문은 사회적 설득력이나 전파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그것을 어떻게 확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일상적 사업계획이나 ‘동지애’로 문제를 풀 수 있는 시한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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