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독주의 세 가지 배경
        2008년 08월 18일 03: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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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시위라는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는 계속되고 있다. 강부자·고소영 내각 임명과 쇠고기 수입개방, 기업 편들기와 공기업 임원에 대한 낙하산 인사, 언론 장악과 사정기관의 종복화, ‘건국절’이라는 이종적 국경일의 도입 시도 등은 여론의 반발을 고려할 때 어느 것 하나 결코 추진하기 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상실한 헤게모니를 상쇄하기 위해 물리력을 노골적으로 동원하는 강수를 두면서까지도 드라이브를 멈추지 않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뒷받침되었다.

    이명박 대통령 추진력의 세 가지 배경

       
     

    첫째, 언론·사정기관의 사유화이다. 언론 및 사정기관의 사유화는 일방향적 소통을 강제하기 이전에 양방향적 소통을 차단하고 대항담론 형성 및 담론 형성 네트워크를 통제함으로써 대항 헤게모니를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제16대 대선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대거 양성된 보수 네티즌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째, 대안 정치세력의 부재이다. 제도정치 영역에서 비보수정치세력들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큰 의미를 갖고 있지 못하다. 더 나아가 예상가능 기간 동안 중앙정치 영역에서 제도적 대안세력의 성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촛불시위 발생 배경의 하나가 되기도 한 대안 정치세력의 부재는 사사건건 대통령과 국민이 직접 맞닥뜨리는 서로에게 ‘피곤한’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무기력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이 과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셋째, 가장 주요하게 다수의 비동원상태의 유지이다. 참여정부 이후 지속된 각종 선거와 대선과 총선, 교육감 선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보수적 동원이 진보적 동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중간층 또는 무당파층의 최소동원 상태만 유지된다면 정권 유지 및 재창출에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즉 저항의 가능성이 높더라도 그것을 여론조사에서만 분석 가능한 잠재화된 상태로 관리하는 것으로, 비가시적인 여론의 무시와 가시적 저항에 대한 억압 또는 분리로 나타나고 있다.

    비보수세력의 집권은 여전히 ‘예외상태’

    우측깜박이를 킨 이명박 대통령의 후진은 좌측깜박이를 키고 우회전한 노무현 정권의 실패한 개혁의 연장선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해 입문했다는 점 이외에도 절차적 정당성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집시법은 노무현 정권 하에서 조금 더 개악되었고, 집회 및 시위에 대한 불허와 폭력적 진압은 노무현 정권 당시에도 현재보다 덜하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임채진 검찰총장과 어청수 경찰청장, 김종훈 통산교섭본부장 등은 ‘간지나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은 이들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의 실패가 단순히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에 그치지 않고 개혁적 세력의 집권이 예외상태라는 인식을 확고히 했다는 점이다. 보수세력의 집권이 정상적인 상태이고 개혁적 세력의 집권은 보수세력의 실패와 포풀리즘과 같은 술수에 기인한 예외적 상태라는 것이다.

    결국, 노무현 정권의 실패와 언론․사정기관의 도구화 등은 보수집권이라는 정상상태에 대한 확신이 개혁적 세력 집권이라는 예외상태에 대한 두려움에 비해 월등했다는 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저항의 조직화와 대안의 부재

    이명박 대통령의 독주와 지난 10년간 진행된 개혁의 급속한 후퇴, 그리고 제도정치 영역에서의 개혁-진보라 일컬어지는 세력들의 침체는 다양한 이슈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직접행동’과 ‘반 이명박 연대’와 같은 바리케이트 전술, 풀뿌리 민주주의와 같은 진지전 등 다양한 형태의 대안의 조직화로 이어지고 있다.

    다양하게 조직되는 저항들은 진보세력을 동원하는 데에는 성공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 어느 것도 비동원상태의 시민들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대안으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가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주저했던 시민운동 진영이 지방선거를 계기로 전면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하는 것이 비동원 또는 반동원 상태의 무당파 층에게 어떠한 감동과 동기를 부여할 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시민운동은 이미 대안세력이기보다는 기성정치세력으로 상상의 영역이 아닌 현실의 영역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운동, 대안세력이 아닌 기성정치세력

    기존 정치세력의 분화와 진보-개혁적 재구성은 어떨까? 앞에서 언급했듯이 새로운 대안세력의 성장은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이 가치 없다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보수세력과 다를 바 없는 구 민주당 세력과 사이비 개혁의 전도사인 열린우리당세력이 합친 민주당은 어떠한 덧칠을 한다고 해도 대안세력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특히 이들의 지리멸렬함은 될 것도 안 되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에 다름 아니다.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역시도 현실적인 대안세력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비판적 지지’가 보여주듯이 이들의 독자적 성장을 하염없이 기다릴 만큼 국민들은 여유롭지 못하다. 새로운 대안세력의 성장보다는 오히려 보수세력의 자멸과정에서 구래의 ‘대항세력’이 권력을 획득하는 예외상태가 더 현실적인 것으로 보인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시민운동 세력을 포함한 기존 정치세력을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일 수 있겠다. 기존의 ‘반00’와 같이 타자에 의해 자신을 규정하는 양적인 연합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능동적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질적인 연합의 형성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는 중도-개혁세력의 분화, 진보정당의 스펙트럼 확장, 시민운동 세력의 가치-정책지향적 참여가 병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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