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인간적이고, 무서운 부동산 책
        2008년 08월 18일 1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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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동산 귀신이 되어서라도 어떻게든 문제의 원인과 구조를 밝히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동산 계급사회』(후마니타스)를 쓴 손낙구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귀신이 되어서라도’ 따위의 표현을 즐겨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가 만약 그런 표현을 썼다면, 그저 그냥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 것이다.

    "부동산 귀신이 되어서라도"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 <레디앙>에 그가 ‘통계로 본 부동산’, ‘부동산 지도’라는 문패 제목으로 글을 게재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보여주는 부동산 통계에 경악했다.

    형용사 같은 것 없이 숫자와 통계, 그리고 건조한 문장으로 밝혀내는 손낙구의 통계는 부동산 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고발하기 위해 특별한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사실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부동산 계급사회’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통계가 재테크용 자료가 아니라, 고발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은 그가 부동산 부자를 공격하는데 시간을 ‘축내지 않고’, 초지일관 ‘부동산 약자’의 편에 서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대안을 내놓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자신이 ‘부동산 귀신’이 된 사연을 언급하고 있다. 1990년과 그로부터 15년 후인 2005년에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집안에서 ‘보호를 위해 감금’당할 수밖에 없었던 네 살에서 여섯 살 난 네 명의 어린 아이들이 화재로 불타 숨지는 참변을 당했다.

    “지하 셋방이나 비닐하우스에서 자라다가 채 인생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불에 타죽어야 하는 아이들 앞에서 명색이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에 몸담아 온 사람으로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15년 동안 나는 과연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15년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370쪽이 넘는 이 책은 일차적으로 이 같은 저자의 뼈아픈 자책의 산물이다. 하지만 이런 ‘고백’은 짧게 언급되고,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구체적인 수치와 통계로 가득 차 있다. 통상적으로 통계와 수자로 채워진 책이 재미없고, 읽기 쉽지 않은 것과 달리 이 책이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힘을 가진 것은 수자와 통계에서 뿜어 나오는 생생한 현실감 때문이다.

    『부동산 계급사회』는 저자가 심상정 의원 보좌관으로 있던 4년 동안 매년 한 번씩 펴냈던 통계로 본 부동산 보고서를 중심으로, 책을 내면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서 만든 것으로 “‘부동산’이라는 키워드로 한국사회를 분석한 것이자, 대한민국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하나의 종합보고서”이다.

    또 이전의 보고서들이 ‘통계 반 글 반’이었다면 이번에 책으로 나온 것은 독자들이 읽고, 이해하기 쉽게 ‘글 아홉에 통계 하나’ 식으로 새로 고쳐서 쓴 것이다.

    출판사 후마니타스는 이 책이 세 가지 점에서 새롭다고 주장한다. 첫째 ‘부동산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노동 건강 나아가 인간다운 공동체의 문제와 관련해 제대로 들여다본 최초의 책’이라는 점을 꼽는다.

    둘째, 한국 부동산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나온 책 가운데 가장 체계적이고 분석적이라고 말한다. “박사급 연구자 열 명을 모아도 이보다 잘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볼 정도”라고 말할 ‘정도’다.

    필자도 손낙구의 ‘전국 부동산지도’가 <레디앙>에 연재될 때, 혼자 혀를 끌끌 차며 감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공무원 수십 명을 동원해서 몇 년이라는 시간을 바쳐야 나올 만한 물건을 ‘어떻게 이 친구’는, 바쁘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심상정 의원실 보좌관’을 지내면서 뽑아낼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리며 주변에다가도 이런 소회를 얘기하고 다닌 기억이 난다.

    "가장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부동산 책"

    세 번째는 ‘가장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부동산 책’이라는 점이고 네 번째는 저자가 석 달 동안을 출판사로 출근하면서 예비독자가 된 출판사 구성원들은 기획자, 편집자의 역할을 했으며, 저자의 중학생 딸(15세)이 아빠 책에 삽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필자는 이와 함께 이 책이 보여주는 ‘통계의 계급성’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방대한 양의 통계를 모으기 위해 저자가 판 발품은 우리의 상상 이상이다. 하지만 같은 통계를 어떻게 분석하고, 구성하고, 조립하고, 해석하는가 하는 문제는 ‘통계학적’이라기보다 ‘정치적’일 경우가 많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부동산 소유에 대한 통계는 거의 국가 기밀 취급을 받아 통계 자체가 발표되지 않았다. 부자들이 땅을 얼마나 많이 독차지하고 있는지, 집 부자들이 집을 몇 채나 소유하며, 얼마나 떼돈을 벌고 있는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이 발생하면, 생산 차질, 수출 차질, 회사 손실 규모 같은 계산하기 만만치 않을 통계를 전광석화처럼 발표하는 정부의 발 빠른 행동과 선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누구에게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는 통계를 이 책의 저자는 부동산 계급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0년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부동산 폭등이 만들어내는 부동산 소유의 극심한 편중과 이에 따른 불로소득의 규모와 그 대규모 돈을 빨아들인 지갑의 주인을 추적한다.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투기의 먹이사슬’은 얼마나 강고하게 확대 재생산되는지를 분석한다.(1장)

    이어 부동산 투기가 한국 경제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는지, 부동산 투기와 노동자 파업 사이의 함수관계까지 구체적 수치로 조목조목 따지고 있으며(2장), 부동산 투기 사회의 적나라한 내부 모습-부동산 계급별 대학 합격률 차이, 심지어 평균 수명의 차이까지-을 살핀다.(3장)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무서운 부동산 책

       
      ▲저자 손낙구(사진=레디앙)
     

    이어 부동산 빈곤층의 실상과 집이 100만 채 이상 남아돌아감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40%가 셋방을 전전하는 이유를 분석하고(4장), 대한민국 100대 부동산 부자의 모습, 얼굴 없는 100대 빌딩 부자, 5,600명 고위 공직자 부동산 재산을 파헤친다.(5장)

    마지막 6장은 저자의 문제의식이 녹아 응축된, 필자가 보기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며 ‘정수’인 대안을 다룬다. 저자는 당위와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경계한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정책, 그리고 그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과 정치사회적 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저자의 대안이 이런 문제의식에 철저하게 입각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출판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가장 인간적이고 서민적’이면서 동시에 가장 강력한 부동산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저자의 접근 방식은 ‘맞춤형 주택정책’과 그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주택 계급’으로 개념화해서 이들을 6개 부동산 계급으로 분류한다.

    집이 두 채 이상 여러 채 가진 부동산 1계급은 모두 105만 가구(6.6%)로 이들이 소유한 주택 총수는 477만 채로, 가구당 평균 5채씩 소유하고 있다. 이들에게 필요한 맞춤 정책은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하고 투기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비거주 주택에 대한 택지 국유화를 단행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라도 임대 소득과 보유세를 강화해 불로소득을 제대로 환수해야 한다. 저자는 “주택 정책은 1계급의 해체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이어 국민 48.5%(769만 가구)에 해당하는 2계급은 집을 1채 소유하고 현재 그 집에서 살고 있는 1가구 1주택자로 “주택 정책은 이들을 보호하는데 기본 목표를 둬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수십억 원대 집 1채를 소유한 사람들도 일부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 등 관련 세금을 원칙대로 부과해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맞춤형 주택정책

    집을 소유하고 있으나, 경제적은 이유로 남의 집 셋방살이를 전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3계급이다. 전체 가구 4.2%, 67만 가구가 이런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집이 포함될 경우 집값이 오르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전월세 가격이 오르면 고통을 겪는다. 주택정책에서 이들은 보호 대상이며 집에 들어가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4~6계급은 집이 없는 가구로, 보증금이 5,000만원 이상 되는 전월세 거주자가 4계급(6.2%, 95만 가구)과 5,000만원 미만 거주자가 5계급으로 이들이 전체의 30.3%(481만 가구)에 이른다.

    4계급은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만 전월세값과 집값이 폭등하지 않아 셋방 고통을 덜 받는 한편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에 투기를 강력하게 반대하는 계급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맞춤 정책은 “셋방 사는 스트레스를 덜 겪도록 하는 한편 내 집 마련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5계급은 집값이 절반으로 떨어져도 자신의 경제력으로 집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맞춤형 정책은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내집 꿈을 꾸게 하기 이전에 우선 당장 셋방 사는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것을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6계급은 판잣집, 비닐집, 움막, 업소의 잠만 자는 방, 건설 현장의 임시 막사, 동굴 및 지하방, 옥탑방 등에서 사는 주거 극빈층이다. 2005년말 현재 전체 가구의 4.3%(68만 가구)로 인구수로는 162만 명이 이렇게 살고 있다.

    “이들은 부동산 투기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자, 주택 정책을 통해 최우선적으로 구출해야 하는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계급”이며 “이들에게 필요한 정책은 인간이 살만한 거주 공간으로 ‘상향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다리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좋은 정당, 좋은 사회운동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 같은 맞춤형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제2의 토지 개혁과 택지의 국유, 공영 개발, 부동산 특권 폐지, 셋방 스트레스 풀기, 지하방 탈출 방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가능하도록 하는 구체적이고 단계적이며, 다양한 정책 대안을 제출하고 있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유층의 부동산 세금을 깎아주고 투기를 부추기는 각종 정책을 쏟아내며 투기의 먹이사슬을 쉴 새 없이 작동시키고 있다.”며 “결국 중요한 문제는 좋은 정책을 실현할 정치적, 사회적 수단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는 좋은 정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좋은 정치를 실현할 좋은 정당, 좋은 정치인, 좋은 사회운동을 키워야 한다.”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필자는 손낙구가 쓴 『부동산 계급사회』를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부동산 ‘문제’의 해결 방향에 대한 공감 수준이 넓고 깊을수록 좋은 정치와 사회운동의 굳건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며, 이 책의 독자들은 그 방향에 대해 공감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동산 1계급에 속한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특히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등 진보정당에서 정치인으로 성장할 ‘꿈’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진보정치에게 요구되는 것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이며,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책이 그런 민주주의를 심화시켜 가는데 훌륭한 동반자이자 무기가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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