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이 만든 프레임에서 벗어나자
        2008년 08월 14일 07: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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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전진 논쟁’이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 확실히 ‘전진’은 쎄다. 당내의 그 수많은 (드러나 있거나 혹은 잠재적) 의제와 쟁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진’이 화두가 된 논쟁이 이토록 뜨겁고 오래 가다니 말이다. 비록 이런 것을 의도하지는 않겠지만, 당내 토론의 의제를 장악할 수 있는 전진의 그 영향력이 심지어 부럽기까지 했다. 더위 먹어서 그런가?

       
      ▲ 전진 정치대회 (사진=전진)

    ‘전진’은 힘이 세다

    그런데 참 답답했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바대로, 그 논쟁에서 드러난 여러 지점들―예를 들어 사회주의 이념, 노동계급 중심성 테제, 진보정당 내부 정파의 역할 등―은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평가, 재2창당 논의 등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토론되어야 할 사항인 것은 맞다.

    그러나 그 시작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고, 희안했다. 게시판의 제목만 보고도, 그 문제의 문건을 열어보지 않고서도 논쟁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토론을 하고 싶다면서 사람을 불러 놓고서는, 본론에 들어가기도 전에 저 앞 문간에서부터 시비가 벌어지고 있으니… 게다가 그 뻣뻣함이란.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는 한 걸까?

    사실 나도 그 ‘서비스 제로’의 총노선 문건을 읽어 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그런 듯 했다. 그러나 전진 회원이기도 하고 그 문건 작성에 참여했을 법한 지인(知人)이, 그 안에는 몇가지 주목해볼 만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전진의 전 집행위원장인 한석호 동지가 <레디앙> 기고글에서 자칭한 ‘무지개 사회주의자’가 ‘생태사회주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워낙 ‘소수’ 녹색파로 오래 살아온 터라, 어디에서라도 ‘생태’, ‘환경’, ‘녹색’만 들어갔다고 하면 지나갔다가도 되돌아가서 다시 살펴보는 ‘녹색’ 밝힘증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 이야기를 듣고 쪼르륵 달려가 그 문건을 열어봤다. 결론은 나같은 밝힘증 환자나 찾아들어가 물 법한 낚시.

    무지개사회주의가 생태사회주의?

    그래도 총노선 문건 중간쯤에서 ‘친환경적 산업구조조정과 노동권의 충돌 가능성’을 언급하는 내용 한 줄을 찾아낸 것에서 위안을 가져야 할까. 그러나 한편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심대한 함의를 가지는지를 깨닫고 있기를 바랬다. 적어도 ‘무지개 사회주의자’ 한석호 동지라도 말이다.

    전진의 총노선 문건에서 그나마 맘에 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지역운동을 강조하는 지점이다. 사실 지역운동을 일구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강조하고 ‘지역을 현장조직의 실천무대로 삼는다’는 방침은 대단히 주목할 만한 일이다.

    바로 그 지점이 ‘적록연대’를 필요로 하고 또 그 가능성을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의 자립과 활성화를 위한 투쟁에서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회피할 수 없고, 지역의 수많은 녹색들과 손잡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부러 회피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전진 이야기는 그만 하자. 솔직히 전진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서 이야기하기 괴롭다. 왜 우리가 자본주의와 소유권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시작하는, 근엄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총노선’을 두고 토론해야 하나. 토론 안하면 될 일지만,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정파의 힘이다. 좋든 나쁘든 말이다.

    ‘전진’의 프레임에서 벋어나자

    오히려 제2창당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내가 보기에 전진 논쟁의 대부분은 제2창당 혹은 진보정당운동 평가 과정에 담겨져야 할 것들이다. 우리가 해왔던 진보정당운동이 무엇이었으며,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진보정당운동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는 명확한 목표를 두고 논쟁해야 생산적일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점에서 한석호 동지가 전진 논쟁을 제2창당 논의로 전환하자는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껏 심각히 토론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제2창당과 관련된 한 가지 문제―시민사회를 어떻게 껴안을 것인가―를 거론하고 싶다.

    나는 민주노동당의 분당, 진보신당의 창당, 그리고 제2창당의 추진 과정은 퇴행적인 민족주의와 협소한 계급주의로부터 결별하면서 그 지지세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에 시민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수용하고 새로운 지지세력을 확대함으로서 당의 지지 기반을 이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이 당 내외에서 얼마나 지지를 받으며 공유되고 있는지는 미리 확인해볼 기회가 없었다. 다만 진보신당의 평등, 평화, 생태, 연대의 슬로건이나 창당 문서를 통해서 유추해서 그렇게 믿고 있다. 또 그런 믿음에 따라서 시민사회와 운동세력들이 제2창당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런 인식과 주장을 전진 류의 완고한 ‘사회주의자’들은 “진보정당운동의 탈계급적 우경화”라고 여기고 논쟁을 걸어올지도 모르겠다.

    진보신당과 시민사회

    이미 그와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진보신당 초기의 연석회의에서 시민사회의 가치, 예를 들어서 녹색을 수용하고 강조하는 것을 당의 우경화 조짐으로 묘사한다거나, 지난 총선에서 레즈비언 국회의원 후보가 부각되는 것을 불편해 하면서 비대중적인 오류라고 평가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진보신당에서 시민사회와 소통하고 껴안고자 시도하는 과정에 앞으로 끊임없는 긴장이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당이 시민사회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노력들이 자동적으로 당의 우경화로 낳은 것이란 우려는 기우다. 오히려 시민사회는 그간의 진보정당에게 부족, 부재했던 다양성과 창의성의 원천이 될 것이며, 현실적으로는 2010년 지방선거 전략의 주요한 연대 파트너가 될 것이다.

    또한 시민사회의 입장에서는 낡은 ‘정치적 중립’ 테제에서 벗어나 보수-진보의 이념적 분화를 가속화하는 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제2창당의 주요한 파트너로 생각한 초록정치연대가 해소하면서 시민사회를 대변하(려)는 독자적 정치세력의 부재(혹은 미발달)의 상황은, 시민사회와 접속하려는 진보신당에게 곤란함을 야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의 한 중견 활동가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했다. “진보신당 안에 이미 시민사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가지지 않고 진보신당에게 가입한, 전체 당원 중에 6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새로운’ 당원들이 바로 진보신당이 찾는 ‘시민사회’라고 강조했다. 이미 다양한 가치를 드러내고 놀라운 창의성과 자발성을 보여주는 당원들을 조직하며, 이들을 다리삼아 당 밖의 시민사회와 연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었다.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지켜볼 일이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보신당이 시민사회와 어떻게 소통하고 껴안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게 내가 전진이 만들어낸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짜낸 꾀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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