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격적인 진보다당제 시대가 왔다"
        2008년 08월 13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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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Ⅰ. 진보정당운동 제2기의 준비

    1.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진보신당 창당

    98년 11월 청년진보당 창당, 2000년 1월 민주노동당의 창당은 오랫동안 명맥이 끊어진 진보정당운동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이때부터 2007년 대선까지의 시기를 진보정당운동 제1기라고 규정한다면, 2007년 대선 이후는 진보정당운동 제2기가 열리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진보정당운동 제2기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민주노동당의 분열과 진보신당의 창당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분열은 사실 그 태생에서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분열 자체가 새로운 시기의 출발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출발의 조건이 마련된 것일 뿐이다.

    제2기의 주체들이 이미 형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형성 중이라는 견해에 의문을 제기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지금은 제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라기보다는 과도기적인 시기에 가깝다. 제2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주체들이 바로 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의 향방은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제2창당이라고 표현하던 재창당이라고 표현하던 아무튼 진보신당은 아직까지 자체의 내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강령도 없으며 대의구조도 없는 상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반정립과 몇몇의 정치적 인격에 의존하고 있는 불안정한 구조다.

    어떤 세력과의 연대에 중점을 두려 하는지, 어떤 층위의 대중들과 교감하기를 원하는지, 그리고 분열 과정에서 드러난 2대 성역(북한과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 이외에 어떤 자기정체성을 가질 것인지 아직까지 명확히 드러난 것이 없다.

    물론 이는 양면적인 성격을 갖는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아직까지 정해진 틀이 없으므로 많은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본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책임 있는 연대와 실천을 논하는 것이 힘들다고 여길 수도 있다.

       
      ▲ 최광은 한국사회당 대표 (사진=한국사회당)
     

    2. 진보정당운동 주체들의 자기 정립

    2007년 대선 이후 진보정치 혁신과 재구성을 화두로 많은 논의들이 오갔다. 그러나 2008년 총선 이후 그 뜨겁던 논의는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 주체들의 계획된 의도가 개입한 것이라기보다는 선거 전후를 둘러싼 정치적 열기가 식음으로써 생길 수밖에 없는 자연사적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때문에 특정 주체를 향해 재구성 혹은 혁신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것은 지금 시점에서 무의미하다. 지금은 각각의 주체가 자기 정립 과정을 충실하게 밟아 진보정당운동 제2기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리고 이를 토대로 장기적인 연대와 실천 방안을 찾으려는 현실적 노력이 필요한 시기다.

    관련하여, 진보신당 정책팀장 장석준의 다음 글에 대체로 공감을 표하며 진보신당이 더욱 분발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가 추진할 재창당은 결코 기존 정파나 흐름들의 통합에 그쳐선 안 된다. 만약 이런 수준에 그친다면, 그것은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파연합 구조를 되밟는 것에 불과하다. 동반자의 목록에 NL 세력이 빠진다는 것만 차이 날 뿐, 기본적으로 80년대, 90년대에 형성된 운동권 정파의 연합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우리의 재창당 작업은 그런 기존 정파들 사이의 합종연횡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그보다는, 노동 현장과 지역 사회에서 사회운동의 토대를 새로 다지고 그러한 새로운 사회운동의 흐름들을 결집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 재창당 작업이 장기적인 과정이 될 게 분명할수록 진보신당 자체의 내용을 갖추는 제2창당은 더욱 서둘러야 한다.”(장석준, “길게 보되 빨리 시작하자”, <레디앙>, 2008.5.13)

    아울러 9월에 출범 예정인 노건추도 자기정체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노건추는 진보신당의 노동부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인지, 아니면 진보신당이 원점에서 출발하여 계급적 대중정당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한석호 노건추 집행위원은 “노건추와 진보신당은 별개의 단위이다”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는 하나의 단위로서 진보신당의 제2창당 테이블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진보신당의 제2창당 작업이 잘 진행이 된다면 노건추를 소집 해제하고 진보신당과 같이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노건추 9월 20일 출범’, <레디앙>, 2008.7.30)

    위 인터뷰 내용만 보면 명확하지 않은 점이 있다. 진보신당의 제2창당 작업이 노건추의 바람대로 잘 진행된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진보신당이 노동 중심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보다 분명한 정치 행위라고 본다.

    한편, 노동자의힘도 올해 말 혹은 내년 초까지 계급정당 추진위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천명했는데, 그에 걸맞게 정치적 행보를 가속화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동자의힘은 지난 5월 말 노동자계급정당 추진위원회 건설을 위한 ‘추진기구’ 구성을 여러 개인과 단체에게 제안했는데, 3달 가까이 지나도록 그것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3. 사회당의 현 상태

    마지막으로 사회당의 현 상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언급해야겠다. 사회당은 각종 선거에 참여하면서 선거 이후 끊임없이 내부 논쟁이 벌어졌다. 2002년 대선과 2007년 대선은 그 정점이었다. 둘 다 지도부 사퇴와 내부 경선이 이어졌고, 탈당 흐름이 생겨났다.

    그런데 2008년 지도부 경선 이후에 있었던 탈당 흐름은 이전과는 큰 차이가 있다. 탈당 흐름의 주류는 사회당 독자노선 폐기냐 아니냐를 프레임의 중심에 놓았다. 그리고 경선 후보를 비롯한 탈당자의 주류는 곧바로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탈당하지 않은 일부 사람들은 통합진보정당 대세론을 주장하며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하루빨리 통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 장석준의 글에서도 지적된 것이지만, ‘정파들 사이의 합종연횡’으로는 진보정당운동의 도약과 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하다. 섣부른 조직통합 논의는 진보정치 혁신과 재구성에도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혁신과 재구성, 재창당, 통합 등의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을 두고 개별 정치 주체들의 기득권 혹은 조직 논리 때문이라는 비판을 하지만, 이는 매우 공허한 비판에 불과하다.

    통합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조직 논리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톺아보아야 한다. 사회당이 매번 선거에서 죽을 쓰고 더 이상 전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니 좀 더 가능성이 있는 길을 택해야 한다는 것 말고,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당원과 대중들에게 어떤 정치적 언어로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통합이 정말 사활을 걸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그 과정과 경로, 매개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는 것이 올바르다.

    Ⅱ. 진보정당운동 제2기의 전망

    1. 본격적인 진보다당제 시대

    진보정당운동 제2기의 연대와 실천에 있어서 쟁점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먼저 살펴보자. 우선 진보다당제의 현실을 인정하는지의 여부로부터 비롯되는 문제가 있다. 특정 세력이 주도하긴 하지만 아직까지도 유일 진보정당에 대한 향수는 강력하게 남아있다. 물론 그 배경을 이루는 흐름은 다양하다.

    특정 세력의 입장을 떠나더라도 진보정당운동의 힘이 아직까지 미약하기 때문에 ‘뭉쳐야 산다’는 단순한 논리부터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관점에서 진보대연합당에 대한 강력한 주문까지 존재하는 상황이다.

    아무튼 본격적인 진보다당제 시대가 도래한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진보정당들끼리의 생산적인 경쟁 풍토가 마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중조직 내에서도 선의의 경쟁보다는 갈등적 경쟁 관계가 자리 잡기 쉽다.

    우선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을 둘러싼 문제가 쟁점이 될 수 있다.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노총 일각에서는 이 방침이 실질적으로 무력화되기도 했지만,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이를 둘러싼 갈등이 또다시 재연될 것이다.

    2.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

    다음으로는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의 활성화 여부다. 진보정당운동 제1기에서 정당을 비롯한 여러 정치세력들은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에 실패해왔다. 지난 시기에 대한 평가로부터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을 뿐이다. 물론 각 정치세력마다 이를 이해하는 수준에 있어서도 편차는 존재한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지난 지도부 선거에 출마했던 박승흡 대변인은 민주노동당이 보수정당과의 차별화에 실패했다며 ‘항미연북호민전투’ 정당론을 들고 나왔다. 이것은 이념은 물론이고 실천의 수준에서도 과거의 답습에 불과하다.

    이와 반대편에 있었던 후보자들 가운데에는 외연 확장을 통한 혁신과 재창당을 들고 나온 사람도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가치의 전환은 물론이고 대안 형성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잘라 말해, 민족민주전선에 복무하는 당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 말고는 크게 읽히는 것이 없다.

    진보신당의 경우 문제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민주노동당보다 한 걸음 앞서나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이번 촛불정국에서 드러났듯이 편승을 뛰어넘는 독자적인 계획을 수립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는 사회당까지 포함하여 모든 진보정치 세력에 공히 해당되는 비판이기도 하다.

    다시 강조하자면,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의 활성화가 진보정당운동 제2기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선언적이거나 추상적인 가치, 대중 저항에만 의존하는 과거의 낡은 정치로부터 대중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정치에 다가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가 활성화될 때 연대와 실천의 문제도 협소한 조직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대안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정책이나 선거공약이 아니다. 진보정당은 이번 촛불 공간과 같은 대중정치 공간이 끊임없이 확장되고 또 계속될 수 있도록 개찰구 없는 플랫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진보정당이 이처럼 대중정치 공간 형성을 위한 매개자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면서 때로는 대안을 제출하고 때로는 대안을 함께 만들면서 실질적인 삶의 변화,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을 축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가 뜻하는 바다.

    3. 2010년과 2012년 선거 대응

    2010년 지자체 선거와 2012년 총선과 대선의 문제도 지금부터 조금씩 밑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개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은 필수적인데, 이제까지의 경험만으로 보면 사실 그 가능성이 회의적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런 부분에 대한 공동대응과 실천의 경험도 하지 못한다면 진보정치 혹은 진보정당운동이라고 서로를 뭉뚱그리는 게 어떤 실천적 의미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각 정치세력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선거연합도 가능한 제도가 형성된다면 많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으나, 그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앞서 말한 제도개혁 이외에 최소한의 공동대응은 가능하다고 본다. 몇 가지 중요한 사회적 의제에 대한 정책연대, 지역의 후보 조정과 같은 수준의 연대는 선거 이전에 최소한의 신뢰만 구축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다만, 2008년 총선에서 울산 동구와 북구의 후보 결정과 관련한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3자의 암묵적인 합의와 같은 불투명한 정치는 재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고양 덕양갑에서 진보신당과 민주당 간의 후보단일화 문제도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고 본다. 정치 연합 혹은 연대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은 원칙과 신뢰, 투명성, 토론을 통한 민주적 의사결정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4. 사회당의 역할과 과제

    사회당이 바라는 진보정치 혁신과 재구성은 적어도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것이다. 물론 주객관적인 조건에 따라 그 시기는 앞당겨질 수도 있고 늦춰질 수도 있다. 사회당은 우선 이념적 수준에서 민족주의와 사민주의, 조합주의와의 결별과 함께 추상적 계급주의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해왔다.

    이 같은 관점은 앞으로도 유효하다고 보며, 이에 덧붙여 노동자운동의 보편주의적 재구성, 지역정치의 활성화, 사회연대 및 각종 사회운동의 활성화와 같은 과제가 부여된다고 본다.

    이제까지 사회당이 의회 진출 여부에 따른 정치적 시민권 획득에 실패한 것은 열악한 외부 정치 환경을 도외시한다면, 단순한 선언을 넘어서는 이념과 정책 대안 구체화의 부족함과 폭넓은 대중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대중적 기반이라고 할 때 그것이 민주노총의 지지 여부로 등치되지 않는다는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당은 이러한 평가로부터 향후 활동 방향을 새롭게 정립할 것이며, 각종 대중적 근거지의 획득과 대중정치 공간의 형성을 위해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앞서 언급한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의 활성화를 통해 조직을 뛰어넘는 연대와 실천에 나설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언급하면, 사회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20세기형 이념정당 모델이 아니다. 그것이 사회주의이건 사회민주주의이건 20세기형 이념정당을 목표로 하는 것은 현실성 여부를 떠나 퇴행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20세기형 이념정당’이라는 표현에 유념해야 한다. 정당은 그 본질상 이념지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세기형 이념정당을 비판한다는 것은 21세기형 이념정당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대안을 매개로 한 정치에 중점을 두는 대안(형성)정당이 사회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목표다.

                                                         * * *

    * 이 글은 8월 29일에 열리는 한국사회포럼2008 기획워크숍 <진보정치의 현장,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판을 고민한다>에서 최광은 사회당 대표가 발표할 내용으로 ‘프로메테우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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