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면 수혜' 언론, 겸연쩍은 자기 변론
        2008년 08월 13일 09: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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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금빛 승전보가 계속되고 있다. 올림픽 관련 기사가 국내 주요 뉴스를 제쳐놓고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를 차지하는 이유이다. 올림픽 환호성에 가려 국내 주요 현안에 묻혀서는 안 될 일이다.

    13일자 아침신문 1면을 장식한 국내 현안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광복절 특사’와 검찰의 KBS 정연주 전 사장 체포, MBC의 PD수첩 관련 사과 등이다. 별개의 사안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전격 체포된 날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국민일보 전·현직 경영진은 특별사면·복권됐다. 13일자 지면을 보면 8·15 사면 수혜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의 논조 차이가 확연하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을 엄격한 잣대로 비판했던 언론들이 이번 조치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13일자 주요 아침신문 1면 머리기사다.

    -경향신문 <‘이명박식 법치’의 모순>
    -국민일보 <사격 진종오 16년 만에 금 총성>
    -동아일보 <박태환 ‘금빛 은메달’ 4년 뒤를 예약 하다>
    -서울신문 <‘0.2점차’ 남북 사격 나란히 금·은>
    -세계일보 <사격 진종오 5번째 금 ‘명중’>
    -조선일보 <MBC ‘PD수첩 오역·과장’ 사과>
    -중앙일보 <한국 ’10-10′ 보인다>
    -한겨레 <횡령 재벌·탈세 언론사주 ‘무차별 사면’>
    -한국일보 <날마다 금 "요즘만 같아라">

    대통령 사면권 행사가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법치주의 뿌리를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비리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는 봐주고 정권에 비판적인 촛불집회 참가 시민에게는 엄격하고 냉정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법의 위엄이 유지될 수 있을까.

    대통령은 사면권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사면권은 대통령에게 법치주의를 흔들어도 된다는 권한까지 부여한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목적에 따른 사면권 남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3면 <정권 때마다 ‘견제 없는 면죄부’ 법치 훼손>이라는 기사에서 "현행 대통령 사면권은 경제·정치인 등 사회지도층의 부패·비리에 대한 ‘면죄부’로 오용되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특히 대통령 측근, 친·인척들의 권력형 비리까지 사면받는 통로로 이용돼 왔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이명박식 법치의 모순"

       
      ▲ 경향신문 8월13일자 1면.
     

    역대 대통령은 사면에서 ‘명분’을 중시했다. 이번의 경우는 어떨까. 한겨레는 1면 <횡령 재벌·탈세 언론사주 ‘무차별 사면’>이라는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수백억 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3개월 전 형이 확정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 14명을 포함해 모두 34만여 명에 대한 8·15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번 특별사면은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기업인들의 범죄에 사면장을 남발한 것이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도 1면 <‘이명박식 법치’의 모순>이라는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적용을 지시, ‘과잉처벌’을 해온 것과 달리 부정부패와 비리 재벌총수들은 대거 사면함으로써 ‘이 대통령의 법치’가 결국은 편향된 ‘비즈니스 프렌들리’임을 보여줬다는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광복절 특사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언론사 전·현직 경영진들이 사면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김병건 전 동아일보 부사장, 조희준 전 국민일보 사장,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 이재홍 전 중앙일보 경영지원실장 등이다.

    한겨레 "조중동 경영진 줄 사면…’신권언유착 시대’?"

       
      ▲ 한겨레 8월13일자 4면.
     

    한겨레는 4면 <조중동 경영진 줄 사면…’신권언유착 시대’?>라는 기사에서 "이명박 정권이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등 조·중·동 인사들을 사면한 데 대해 ‘신권언유착’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조처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면서 "일부에서는 이번 조처가 방송 겸영을 고려하고 있는 조·중·동 사주들의 운신 폭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고 보도했다.

    언론사 주요 관계자가 광복절 특사에 포함됐다면 이번 사면에 대한 해당 언론의 논조는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까. 언론학 교과서는 사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하게 언론 본연의 견제와 비판을 다해야 한다고 조언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이들 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면 논리를 옹호하거나 원론적인 비판으로 겸연쩍은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조선일보는 6면 <경제 살리고 공무원 달래고>라는 기사에서 "이번 8·15 특별사면은 크게 ‘경제 살리기’와 ‘공무원 끌어안기’ 등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재벌회장을 포함한 경제계 인사들의 사면 폭을 크게 넓혔고, 전체 사면 대상자 34만1864명 중 공무원이 96%인 32만8335명에 달해 공무원들에게 ‘인심’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일보 "기업인 대사면은 경제 살리라는 주문"

       
      ▲ 조선일보 8월13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기업인 대사면은 경제 살리라는 주문>이라는 사설에서 "기업인들은 이번 대사면이 자신들이 처벌받았던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므로 기업인들이 분발과 헌신을 유도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이뤄진 특별한 은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사면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던 조선일보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나마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대사면에 대한 당부의 얘기를 전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관련 사설을 싣지도 않았다.

    중앙일보는 2면에 <이 대통령 "임기 중 비리 단호히 처리">라는 기사를 실었고 <"8·15 특별사면 대상은 과거정부 때 사안">이라는 중간 제목을 달았다. 중앙일보는 10면에 <‘법 족쇄’ 풀 테니 경제 회복 앞장서라>라는 해설 기사를 싣기도 했다. 중앙일보는 송필호 사장의 사면 소식을 기사에서 제외시켰다.

    동아일보 "’국민통합+경제회생’ 분위기 만들어 국정 재시동"

       
      ▲ 동아일보 8월13일자 5면.
     

       
      ▲ 중앙일보 8월13일자 E3면.
     

    중앙일보는 E3면 <"다시 태어났다는 각오…일자리 창출로 보답">이라는 기사에서 "경제계는 기업인들이 광복절을 맞아 대폭 사면된 데 대해 크게 환영하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 다짐으로 화답했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1면에 <"기업인 대규모 사면은 투자 확대하라는 의미">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얘기만 제목으로 실었다. 특히 동아일보는 5면 <"비판 알지만 투자 걸림돌 치워야" 부담 감수>라는 기사를 실으면서 <‘국민통합+경제회생’ 분위기 만들어 국정 재시동> <대상자 90%가 전·현직 공무원…공직사회도 배려> <이 대통령 "임기 내 생기는 부정-비리는 엄정 처리"> 등의 중간 제목을 뽑았다. 동아일보는 사설을 싣지 않았다.

    전 사장이 광복절 특사에 포함된 국민일보는 어떨까. 국민일보는 3면에 <‘경제살리기’ 고육책…논란 여지>라는 기사를 실었고 <대사면 의미 깊이 깨달아야 할 사람들>이라는 사설을 내보냈다.

    국민일보 "대사면 의미 깊이 깨달아야 할 사람들"

       
      ▲ 국민일보 8월13일자 사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우리 경제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고려한 결정일 것이다. 사면받는 기업인들은 국가 경제를 살리는 일에 온 힘을 쏟아 붓는 것으로 화답해야 한다"면서 "이 대통령이 현 정부 임기 중 벌어지는 부정비리에 대해선 기업인이나 공직자를 불문하고 단호하게 처리하겠다고 경고한 것은 적절했다"고 주장했다.

    사면 수혜 대상 언론의 논조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사면은 경제를 살리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른 언론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한국일보는 <명분과 실질이 다른 광복절 특사>라는 사설에서 "우리가 보기에 이번 사면은 국민이 주목하는 몇몇 재벌 총수에게 무리하게 은전을 베푸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지나간 정권 주변세력과의 타협에 역점을 둔 듯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6면 <원칙 없는 ‘통 큰 정치’에 ‘경제’ 구호 퇴색>이라는 기사에서 "’경제살리기에 올인하자’는 메시지가 양윤재 전 서울시 행정부시장과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의 사면·복권으로 빛이 바랜 느낌이다. 꼭 그들이 건국 60주년 사면에 포함돼야 경제가 살아나는 것인지…국민들이 좀처럼 감동을 느낄 수 없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원칙 없는 ‘통 큰 정치’에 ‘경제’ 구호 퇴색"

       
      ▲ 한국일보 8월13일자 6면.
     

    한국일보는 "권력형비리에 연루된 이들을 너그러이 사면하는 것은 ‘국민 대통합’을 위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걸 자신들이 돌봐야 할 정치인과 기업인에 대한 무리한 사면과 맞바꾸는 것은 정치적 야합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서울신문도 <사면 남발하며 법 준수 말할 수 있나>라는 사설에서 "재벌의 전과 말소와 경제 살리기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비리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라며 "사면남발로 법 권위를 손상시킨 정부가 무슨 염치로 이들에게 엄단을 호령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한겨레는 <차라리 ‘국민통합’ 명분이나 내세우지 말지>라는 사설에서 "대통령의 사면권은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거나 정치적 양심수들의 인권을 위한 경우에 극히 제한적으로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의 권위가 무너진다"면서 "현 정권이 국민 통합을 말하려면, 촛불시위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를 중지하고 공영 언론을 장악하려는 시도부터 먼저 그만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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