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환호성에 가려진 '언론장악'
        2008년 08월 11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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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보이’ 박태환(19·단국대)이 10일 중국 베이징 국립수영센터(‘워터큐브’)에서 벌어진 2008 베이징올림픽 수영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1초86의 아시아 신기록 및 올 시즌 세계 최고기록을 수립하며 한국 수영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11일자 주요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1면 머리기사로 전하고 사설로도 논평했다.

    9일 열린 베이징올림픽 여자핸드볼 경기에서 위아래가 뒤바뀐 태극기를 들고 응원해 빈축을 샀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르면 오늘(11일), KBS 이사회가 해임 제청한 정연주 KBS 사장을 해임할 것이라고 전해졌다. 이를 권력의 방송장악 시도로 보고 있는 경향신문, 한겨레 등 진보 성향의 두 신문은 비판적 어조로 이 사안을 다뤘다. 반면 동아·조선·중앙일보 등 보수지들은 정 사장의 후임 인선에 대해 예상하거나 해임을 거부하는 정 사장을 거듭 비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김광준 부장검사)가 10일 전산업체로부터 납품 청탁과 함께 2억여 원의 돈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은 이 소식을 1면에서 3단 크기로 비중 있게 기사화한 데 반해 보수지들은 1단 크기로 1면에 싣거나 1면에선 다루지 않았다. 박태환 금메달 소식이 워낙 셌다.

    다음은 11일자 주요 아침신문들의 머리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박태환, 세계의 별로>
    국민일보 <박태환 ‘수중 혁명’ 동양인 72년 한 풀었다>
    동아일보 <박태환, 아시아 선수로 72년만에 자유형 금(金)>
    서울신문 <박태환 한국수영 사상 첫금(金) ‘신화’>
    세계일보 <박태환 수영 첫 금(金)·여(女)양궁 6연패>
    조선일보 <수영 첫 금(金), 양궁 6연패…‘코리아 신화(神話)’>
    중앙일보 <그대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행복했다>
    한겨레 <‘금물살’ 갈랐다 그러나 아직 배고프다>
    한국일보 <박태환 불가능을 넘다, 새 역사를 열다>

    박태환의 금메달 획득은 ‘인종의 벽’도 넘어선 쾌거다(경향신문). 아시아인이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낸 건 1932년 LA올림픽(100m·1500m)과 1936년 베를린올림픽(1500m)에서 일본이 3개의 금메달을 딴 이후 72년 만이다.

    한국 여자 양궁은 같은 날 단체전에서 올림픽 6연패의 금자탑을 세웠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20년 무적신화를 이어갔다. 주현정(26·현대모비스), 윤옥희(23·예천군청), 박성현(25·전북도청)이 차례로 나선 여자대표팀은 여자단체전 결승에서 중국을 224 대 215로 물리쳤다. 또 여자 역도 53㎏급에 출전한 윤진희(22·한국체대)는 인상·용상 합계 213㎏을 들어 올려 은메달을 차지했다.

    앞서 9일에는 최민호(28·한국마사회)가 남자유도 60㎏급에서 5연속 한판승으로 우승해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고, 남자 사격 10m 공기권총의 진종오(29·KT)가 은메달을 보탰다. 10일 밤 9시 현재 한국은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를 기록, 금메달 개수에서 주최국 중국에 이어 2위다.

       
      ▲ 동아일보 8월11일자 1면.

    10일자 모든 아침신문들은 이 올림픽 메달 관련 기사들을 1면 머리로 올리고 일제히 관련 사설도 게재했다. 제목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경향신문 <‘영 코리아’의 힘 보여준 박태환 쾌거>
    국민일보 <베이징 승전보에 모두가 행복했다>
    동아일보 <박태환·최민호, 국민에게 기쁨과 자신감 안겼다>
    서울신문 <박태환, 최민호 투혼 세계에 빛났다>
    세계일보 <태극전사 선전에 뜨거운 박수를>
    조선일보 <베이징의 박태환과 최민호를 보라>
    중앙일보 <한국 체육사 새로 쓴 박태환의 금메달>
    한겨레 <올림픽 영웅들, 폭염·폭압의 시름 날려버리다>
    한국일보 <박태환 최민호…모두 장한 한국 선수들>

    박태환과 최민호가 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좌절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영웅의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서다. 경향신문은 “수영의 불모지라고 일컬을 만큼 척박한 환경에서, 실패를 딛고 일군 성공이기에 박태환의 금메달은 더 빛난다”고 논평했다. 조선일보는 “고난과 실패의 아픔을 다시서기의 동력(動力)으로 승화시킨 최민호와 박태환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메달이 빛나는 것은) 아픔과 실패를 딛고 일어선 ‘땀과 눈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더욱이 우리 민족의 경사이기도 하다. 중앙일보는 “뭐니뭐니 해도 올림픽의 즐거움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보는 데 있다”고 했고 한국일보는 “바로 이런 게 우리 민족의 힘 아닌가. 올림픽에서 그 힘을 유감 없이 증명해 보이는 선수들에게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고 했다. 국민일보는 “(박태환 시상식에서) 태극기는 성조기와 오성홍기를 양 옆에 거느린 채 우뚝했다”고 감격했다.

    여러 사정들로 엄혹하고 불쾌한 날들이 계속되는 시기에 최악의 폭염이 쏟아지던 날 나온 금메달이다. 한겨레는 “이들의 승리와 선전이 걷어차 버린 것은 폭염만이 아니었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살림살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는 폭정 등으로 말미암아 최고치에 이른 시름과 불쾌지수도 잠시나마 함께 날려버렸다. 특히 그것은 오로지 피와 땀 그리고 불굴의 정신력으로 일궈낸 것이기에, 폭력·협박·속임수·사기·분열책동 따위에 진저리가 난 국민에게 작지만 소중한 희망을 주기에도 충분했다”고 했다.

    동아일보가 “석 달 가까이 불법 촛불시위와 증오, 그리고 폭력이 넘치던 주말의 광화문에도 기쁨과 환호가 넘쳤다”고 한 것을 보면 이 신문이 초점을 맞춘 불쾌감의 원인은 달랐다.

    열정과 노력은 물론 미덕이다. 그게 부정될 순 없을 테다. 그러나 어떤 계열의 미덕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함께 기능해야 할 또 다른 축의 가치가 호도되기도 한다. 올림픽엔 중독되기 십상이다. 열정적 노력의 결실이, 민족주의적 소속감이 우리를 각본 없는 드라마에 붙들어 매둔다. 기실 인류의 화합이라는 고상한 명분은 부차적인 게 사실이다.

       
      ▲ 경향신문 8월11일자 사설.

    경향신문의 시각은 그래서 반갑다. 중독은 몸에 해로운 법이며, 이면과 주변도 두루 살펴야 하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사설 <화려한 올림픽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들>에서 “무릇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게 마련”이라며 “올림픽 개막과 함께 중국 국내외에서 전쟁과 테러 등 악재가 터져나와 축제 분위기를 퇴색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로써 확인되는 것은 올림픽의 숭고한 평화·화합 정신과 상관없이 우리의 현실세계 도처에 전쟁과 테러 등 어두운 그림자들이 강고하게 드리워 있다는 사실”이라면서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21세기 초강대국으로 ‘굴기(屈起)’하겠다는 의지에 넘쳐 있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그 이면에는 당국의 지시로 두달 동안 공사를 못하게 된 도시노동자 등 서민들의 불만과 후진타오 주석 취임 이래 크게 악화된 정치적 자유 등이 도사리고 있다”고 썼다.

    정부가 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을 추진하는 과정이 정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여러 정황들이 그렇다. 경향신문은 2면 <야3당 ‘정연주 해임 국정조사’ 추진>에서 “이명박 정부가 법적 논란이 있음에도 방송장악을 위한 정연주 KBS 사장 해임 절차를 강행하면서 야당과 언론계·시민사회 등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며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야3당은 정 사장 해임 건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및 국회 원구성 문제와 인계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 경향신문 8월11일자 6면.

    또 ‘권력,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제목을 6면에 달고 <“감시견을 애완견 만들려는 것”>이라는 표제로 이정춘 KBS 시청자 위원장(중앙대 교수)과의 인터뷰 기사를 면 머리기사로 올렸다. 이 위원장은 “공영방송 KBS는 어느 정권이나 정당의 방송이 아니라 국민이자 시청자를 위한, 시청자에 의한, 시청자의 방송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정연주 KBS 사장 축출 등 방송장악 기도에 “감시견(워치독)이어야 할 언론을 애완견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면 기사 <특별감사→해임 제청→대통령이 해임…노태우 정권때와 판박이>에서 “이명박 정부의 ‘KBS 장악’ 수순이 18년 전 노태우 정부의 ‘KBS 침탈’ 과정을 쏙 빼닮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이 ‘흠집 찾기용’ 특별감사를 한 뒤 경영진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면 KBS 이사회가 거수기처럼 대통령에게 해임 제청을 하고, KBS에 경찰력을 투입해 반발하는 사원·노조원들을 제압하는 방식이 흡사하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 한겨레 8월11일자 7면.

    한겨레도 7면을 털어 <“막가파식 방송장악…국민저항 직면할 것”> 등의 기사를 비중 있게 실었다.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등 3대 언론학회 회장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전했다.

    이와 관련,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한국일보 기명칼럼 ‘손호철의 정치논평’ 코너의 <고소영YTN, 강부자KBS>에서 “‘정연주KBS’가 얼마나 공영방송다웠는가는 논쟁이 가능하다. 그러나 정연주KBS는 편향방송이고 고소영YTN, 강부자KBS는 공영방송이라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몇 배 더 편향방송을 할 것”이라며 “결국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생겨날 이 같은 시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번 기회에 방송위원, KBS이사 등의 추천권에 대해 정치권의 직접적인 영향력을 줄이고 방송의 공공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이 글에서 감사원이 방만한 경영과 인사전횡을 이유로 정 사장의 해임을 요구한 것을 두고 “방만한 경영과 인사전횡이 해임 사유가 된다면 감사원이 해임을 요구해야 하는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의 오기) 장관이 아닐까”라고 비꼬기도 했다.

    이 두 신문은 유한열 한나라당 상임고문의 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권력에 줄대기…전형적인 ‘부패형 로비’ 양상>(경향신문 9면 통단)과 <‘부패의혹’ 연타…시름깊은 한나라>(한겨레 6면) 등의 기사를 실어 정부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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