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 논쟁,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2008년 08월 11일 05:2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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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천 (사진=레디앙)
     

     1. 전진 논쟁이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는 근본 이유

    본디 정치조직의 총노선이란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밝히기 위해 발표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이된 일인지 전진이라는 정치조직에서 총노선을 발표하자마자 심지어 그 조직원들조차 ‘빛과 희망’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 낙후함에 대해서 사람들이 짜증을 내고 각종 논쟁으로 비화되어 버렸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마포 지역 신입당원인 고훈은 <레디앙>에 글을 썼고, 전진의 전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한석호 당원이 해명의 차원에서 자신은 ‘무지개 사회주의’라는 취지의 글을 실었다. 

    주체파처럼 낙후된 의제

    그러나 진보신당 홈페이지 당원 게시판의 글이 되었건 <레디앙>의 글이 되었건 그다지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근본원인은 사실 명확하다. 그것은 전진의 의제설정 자체가 주체파의 NLPDR론에 맞먹는 수준으로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대규모 정치조직에서 낙후된 의제설정을 할 경우 개별화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반응은, “제발 낙후된 의제설정은 그만해달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진 논쟁의 본질은 바로 이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에 전진논쟁이 진보신당 발전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전진의 의제설정 그 자체가 왜 ‘낙후’되어 있는지, 발전적 논쟁을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를 차분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전진의 ‘비겁함’ 혹은 ‘무능함’

    사실 전진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존경할만한 활동가들이 많이 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운동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분들이 전진에는 많다. 지금부터 쓰는 이 글은 그분들 개인의 ‘인격’을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이라는 ‘조직’의 정체성과 역사성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라는 점을 구분해주셨으면 한다.

    한석호 당원은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무지개 사회주의’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 그러나 이러한 글은 상당히 비겁하거나 무능한 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정치조직이란 자신들이 주장하는 <대안적 사회상>을 제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조직 ‘고유의 임무’이다.

    스스로를 사회주의 정치조직이라고 표방하는 전진의 근본 문제는 바로 그 ‘사회주의’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 전진 비판의 알파요 오메가에 해당하는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3. 전진은 대중의 상식을 ‘우롱’하고 있는 ‘불통(不通)’의 정치조직

    오늘 현재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국민들에게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엇이 연상될까? 혹은 어떤 나라가 연상되느냐고 질문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그것은 너무도 자명하게도 소련식 사회주의(공산주의) 또는 북한식 사회주의(공산주의)이다. 이는 대중적 상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또한 이론적으로도, 학문적으로도 사실이다. 주체파의 NLPDR론은 ‘북한식 혁명모델’을 근간으로 한 것이며, 전진 멤버들이 과거에 공유했던 PDR론은 ‘소련식 혁명모델’을 근간으로 했던 것이다.

    또한 더욱 엄밀하게 말한다면, NLPDR과 PDR론은 △PT독재론의 옹호 △폭력혁명이라는 방법론의 채택 △중앙집중 계획경제 △시장 및 상품 반대 △국유화에 대한 경향적 옹호라는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소련과 북한식의 ‘공산주의 체제’와 유럽식의 ‘사민주의 체제’를 구분하는 <체제적 수준의 핵심 변별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91년 주대환과 한국노동당이 신노선을 제출했을 때, 그 핵심 중의 핵심이 ‘PT독재론과 폭력혁명의 폐기’가 되었던 것이다.(한국노동당은 남한 좌파 운동권 조직 중에서 PT독재론과 폭력혁명을 ‘공식적’으로 폐기한 유일무이한 조직이다. )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충분히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식으로 표현한다면 자본주의적 이상과 원칙도 아름다운 것이고 자유주의적 이상과 원칙도 아름다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상과 원칙’이라는 하나마나한, 그리고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말이 아니라 ‘체제’ 수준의 핵심 변별점과 대중들의 핵심 의문점에 대해 공개적이고, 책임 있게 답변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대중의 상식적 의문에 ‘화답’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입장을 사회민주주의로 ‘정리’했다. 즉, 필자를 비롯한 사민주의자들은 △PT독재론 반대 및 다당제 옹호 △폭력혁명 반대 및 의회를 통한 점진적 변화 △중앙집중 계획경제 전면 폐기 △시장 및 상품 옹호 △국유화에 대한 ‘제한적’ 옹호 및 시장 기능 적극 활용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상과 원칙’? 하나마나한 소리

    유럽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우파가 대중적으로 고립되고 ‘좌파’가 대중적으로 호응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1950년 한국전쟁을 통해 그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 이 땅의 민중들은 레드컴플렉스라는 자본가의 이데올로기적 공세 때문이 아니라 한국전쟁이라는 ‘경험적 체험’ 때문에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근거 있는’ 분노를 갖고 있다.

    ‘그놈의 사회주의’ 때문에 최소한 500만명 이상이 죽은 경험을 했던 나라가 대한민국이며, ‘그놈의 사회주의’를 수 천 만명의 민중들이 직접 경험해야 했던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 민중들은 ‘피와 눈물, 그리고 죽음과 고통과 가난’으로 사회주의를 체험했고 학습했다. 그리하여 한국전쟁과 사회주의에 대한 아픈 역사를 알고 있는 민중들은 ‘전진’에게 묻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당신들의 사회주의가 뭐냐고? ”

    그러나 언제나 그들은 ‘계몽적’ 자세로 일관했다. 유럽 사민주의 좌파(*유러코뮤니즘)의 이론을 모방 혹은 직수입한 것들에 불과한 것들을.. 마치 자신 혼자만 진리를 체득하고 있는양, 현란하고 복잡한 정치경제학적 수식어를 동원하며 자신들을 방어하면서 말이다.

    이명박 시대에 ‘소통 VS. 불통’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수백만명, 수천만명의 대중적 상식과 의문에 대해서 답변하지 않는 전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그리고 계몽주의적 자세로 오만한 ‘불통(不通) 조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4. 전진이 ‘꼭’ 해체되어야 하는 3가지 이유

    나는 정치조직 일반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정파 일반을 반대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을 위해서, 그리고 진보신당을 위해서 전진은 ‘발전적으로’ 해체되어야 한다.

    첫째, 전진은 본질적으로 ‘PD 운동권 향우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과거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정파를 일컬어 ‘운동권 동창회’라고 표현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전진이라는 조직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호남향우회’ 정도의 역할은 했다는 의미에서 동창회가 아니라 ‘향우회’라는 명칭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호남 향우회는 남한에서 군부독재와 맞서는 전투적 경험을 최선두에서 했던 분들이다. 지금도 그분들을 만나보면 높은 정치적 의식수준으로 굳게 무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진이 정치적 의식수준과 전투적 경험의 측면에서 일개 동창회보다는 훨씬 높은 ‘호남향우회’에 견줄만큼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은 자신의 ‘총노선’에서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국민파-주사파 연합에 대한 ‘좌파 통일전선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진 내부에는 여전히 PT독재론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고, 사민주의자들도 있다.

    유령 사회주의자

    그리고 대다수는 자신이 무슨 사회주의인지도 모르는 실체 없는 ‘유령 사회주의자’가 되어, 남아있는 것이라곤 사회주의라는 네 글자와 한때 고향이 PD 운동권이었던 ‘향우회적’ 정서 이외에는 없게 된 것이다.(한석호는 ‘사회연대전략’을 사회주의 핵심 내용인 양 말했는데, 사회연대전략은 스웨덴 사민주의의 핵심 간판 상품과도 같은 것이다. 여전히 ‘사민주의’와 무엇이 다른지 전혀 해명되지 않고 있다. )

    즉, 전진은 출발하던 바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도 ‘미래적 비전’을 공유해서 모인 정치조직이 아니라 ‘과거’의 PD 운동권 정서를 공유한 조직으로 출발했다.

    둘째, 소통의 방법론과 관련하여 PDR론 자체가 ‘태생적’으로 계몽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전진의 핵심적인 이론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장석준은 새로운 진보운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계몽주의적 자세’의 척결을 중요한 과제로 제시하였다. 필자 역시 전적으로 공감한다.

    다만 사민주의는 의회주의, 선거주의를 권력 획득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한다. 사민주의는 선거에서 표를 많이 받기 위해서라도 태생적으로 ‘대중과의 소통’을 자신의 생명으로 간주한다. 사민주의자에게 선거는 계급투쟁의 핵심 승부처이자 동시에 대중과 호흡하는 ‘소통의 장’이며 자신의 옳고 그름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장’이다. 그렇기에 사민주의자는 태생적으로 계몽주의자와 상극관계이다.

    반면, 남한에서 PD 운동권을 공유했고 아직도 그것을 전면적으로 포기하지 않고 있는 이들은 태생적으로 ‘계몽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자신은 꿈꾸고 있는 ‘뭔지 모를’ 사회주의를 대중들은 몰라주고, 자신은 알고 있는 ‘착취의 비밀’을 대중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기에, 그들은 학습하고 또 학습하고 또 학습해야 한다. 대중을 ‘계몽’하기 위하여.. 더욱 정확하게는 자기 자신을 계몽하기 위해서…

    ‘사회과학적 성찰’이 없다

    셋째, ‘새로운 상상력’은 낡은 것과의 단절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전진 멤버들이 과거에 주로 공유했던 PDR론은 주체파의 NLPDR과 사실상 ‘일란성 쌍둥이’였다.

    80년대 PDR론 내부에서 ‘독점 자본주의’인지, ‘국가독점 자본주의’인지의 차이에 대해서 중요하게 논쟁했던 이유 자체가 중앙집중계획경제로 가는 ‘과도기’에 얼마나 더 근접했는지에 대한 판단 때문이었다. 이들은 자본주의가 자유방임 → 독점자본주의 → 국가독점자본주의 → 전면적 국유화 + 중앙집중계획경제로 가는 ‘필연성’에 놓여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중요한 논쟁을 통해 중앙집중계획경제는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이며, 시장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으며, 사적소유(개인적 소유)는 옹호되어야 하며, 국유화 역시도 민영화에 맞먹는(혹은 그 이상의) 폐단이 있음이 논증되었다. 그리고 소유의 직접적 국유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성’에 훨씬 효율적인 수많은 방법론이 있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이론적으로 논증되었다.

    그러나 전진의 총노선에 드러나는, 아니 ‘민중대표자회의’라는 3권 분립의 해체를 주장하고 (중앙집중계획경제를 연상시키는)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의 ‘일원화’를 주장했던 황당무계한 전진의 대선강령에는 도무지 90년대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의 ‘사회과학적 성찰’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이 기괴한 조직의 총노선을 보고 ‘헉’하며 숨 막혀 하는 당원이 많다는 것은 진보신당의 구성원들이 그만큼 현대적이고 새로울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토종 사회주의’ 혹은 ‘토종 사민주의’의 백가쟁명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역사상 혁명을 성공시켰던 나라에서는 언제나 ‘정통’이 패배하고, ‘토종과 수정주의’가 승리를 거두었다.

    유럽의 정통(?) 사회주의자들이 농민을 ‘소자산가’(쁘띠 부르조아지)로 간주할 때 그람시는 노동자와 농민의 정치동맹을 주장하기 위해 남부문제를 제출했다. 레닌은 ‘조국에게 패배를~!’이라는 혁신적 구호를 내걸며 전쟁에 신물이 난 러시아 민중들을 이끌고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리고 발전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기존의 ‘통설’을 뒤엎었다.

    마찬가지로 모택동 역시도 당시 ‘정통’ 노선에 입각하여 노동계급에 기반한 도시폭동을 주요 운동 방향으로 설정하던 28인의 볼세비키에 맞서 마치 클린턴의 기발한 선거구호처럼 “바보야, 문제는 빈농이야”라고 외치며 정강산에서의 근거지 투쟁을 시작으로 결국 중국혁명을 성공시켰다.

    ‘정통’은 언제나 패배했고,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은 그대로 간직하되 ‘토종의 문제의식’과 ‘수정주의적 방법론’을 채택한 나라들만 혁명을 성공시켰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대안적 입장’을 있는 그대로 제출하는 정직함과 용감함이다.

    토종과 정통

    그것이 없다면, 정직하게 조직을 해체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전 없는 공룡조직의 유지’는 필연적으로 패권으로 귀착될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종 착각하는데, 패권은 나쁜 의도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무능’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유능한 경우 그것은 ‘헤게모니’라는 고상한 말로 표현된다.)

    전진을 해체하고, ‘어떤’ 사회주의인지를 구체화한 조직을 건설하라. 2008년 오늘 현재, 압축근대화와 한국전쟁의 체험, 세계최고의 고학력 수준과 세계최첨단 수준의 지식 정보 인프라, 아파트라는 세계최고 수준의 밀집형 거주공간 등등의 역동성을 간직한 대한민국의 ‘토종’ 현실에 부합한 각종 정책과 정치전략을 제출하라. 지역 활동 방식의 모델을 창출하라.

    분석은 래디컬하게, 그러나 실천은 소박하게, 그러나 반드시 성공시켜 많은 이들의 공명(共鳴)을 일으킨다면, 그때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모범’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사례의 힘’이 세상을 변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전진’이 자기 자신의 해체를 통하여 ‘전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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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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